꽃, 음식, 맥주부터 이제는 면도기까지?
정기 구독 서비스, 국내 면도기 시장 판 뒤엎나
아무리 쇼핑에 관심이 없는 남자라도 꼭 사야만 하는 필수품이 있습니다. 바로 면도기인데요, 면도기는 크게 클래식 면도기, 카트리지 면도기와 전기 면도기로 나눌 수 있습니다.
이중 가장 대중적인 면도기는 카트리지 면도기인데요, 탈착식 날을 채택한 카트리지 면도기는 휴대하기 쉽고 절삭력이 좋아 많은 소비자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문제는 가격인데요, 카트리지 면도기가 고가의 전기 면도기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저렴하기는 하지만, 면도날이 소모품인 만큼 주기적인 교체 비용이 소요됩니다.
기자는 대형마트에서 기획 상품으로 출시된 미국산 제품을 종종 사서 썼는데요, 교체 비용이 부담스러워서 날이 무뎌진 뒤에도 한 날을 2~3개월씩 사용했습니다. 교체의 필요성을 인지하고 있으면서도 면도날에 수 만원을 지출하기란 쉽지 않았습니다.
이런 면도기 시장을 바꿔보겠다고 도전장을 내민 회사가 있습니다. 스타트업 와이즐리(Wisely)는 국내면도기 시장이 과점 체제인 점을 문제라고 보고 사업을 시작했는데요, 그렇다고 단순히 저렴한 제품을 출시하기만 한 것도 아닙니다. 면도날 정기 구독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는 점에서 기성 기업들과 차이가 있습니다.
와이즐리 제품 주문 과정. 단품/정기 배송과 배송 주기를 선택할 수 있다(사진: 홈페이지 캡처)
단품 구매도 가능하지만, 이처럼 면도날 4개 세트를 1, 2, 4개월 주기로 받아볼 수 있습니다. 와이즐리에서는 면도날 한 개당 2주 사용을 권장하고 있으니, 2개월에 한 번 주문시 계산상으로 한 달에 4,450원을 면도날에 투자하는 셈입니다.
가격 정책, 지속 가능할까
와이즐리는 현재 면도기 핸들은 국내에서 만들고, 면도날은 독일 공장에서 생산해 수입하고 있습니다. 수입된 면도날은 인천 소재의 와이즐리 물류센터에서 고객에게 배송되는데요,
와이즐리는 정기 배송 이용 고객에 한해 배송비를 받지 않고 있습니다. 면도날도 저렴한데 배송비까지 받지 않는다니, 기자는 업체가 과연 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지 궁금했습니다. 와이즐리 측에서는 현재의 서비스 이용료 정책에 대해 자신감을 내비쳤습니다.
와이즐리 전영표 이사는 "와이즐리의 서비스 이용료는 물론 지속 가능합니다. 유통마진을 없애고 기업이윤을 줄여서 파격적인 가격을 확보하긴 했습니다만, 이것이 기업활동의 지속 가능성을 위협하는 수준은 아닙니다"라면서 "고객들에게 좋은 제품과 서비스를 지속적으로 제공하기 위해서는 충분한 이윤 확보를 통해 기업을 존속시키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와이즐리는 이 부분을 잘 인지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지속 가능한 정도로 서비스 이용료를 책정했습니다"라고 전했습니다.
네이버에 '면도기 정기배송'을 검색하면 여러 개의 업체가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다(사진: 네이버 캡처)
출혈 경쟁 우려, 당연한 생리라고?
사실 면도기 정기구독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체는 여럿 있습니다. 포털에 해당 키워드를 검색하기만 해도 몇 개의 업체들이 뜨는데요, 너도나도 저가 정책을 내세우면서 출혈경쟁이 시장 환경의 저하로 이어지지는 않을지 궁금했습니다. 실례로 핸섬박스는 최근 서비스 종료 소식을 자사 홈페이지에 공지하기도 했습니다.
전 이사는 이런 시장 상황을 당연하게 여겼습니다. 그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그는 이런 형태의 경쟁이 ‘출혈’ 경쟁이라기 보다는, 더 나은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해야 소비자들에게 사랑받을 수 있는 시장경제의 생리인 것 같다고 전했습니다. 같은 제품을 더 저렴한 가격에 공급하는 것은 판매자의 선택이며, 여기에 어떻게 대응할지 또한 마찬가지로 경쟁사의 선택이라는 것입니다. 그는 기본적으로 더 좋은 제품과 서비스를 만들고 더 나은 선택을 하는 브랜드가 소비자들의 사랑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와이즐리의 면도기. 기자도 스타터 세트를 구입해 이용해봤고, 결과는 만족스러웠다(사진: 와이즐리)
국내 정기 구독 서비스 시장, 전망은 어떨까
면도기 시장뿐만이 아닙니다. 꽃, 셔츠, 맥주 등 전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영역에서 정기구독 서비스를 도입하고 있는데요, 전영표 이사는 최근 정기구독이 각광받는 소비재 시장의 추이가 과거보다 역동적으로 발전하고 있다고 봤습니다. 그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그는 고객들이 필요로 하는 것은 더 좋은 제품과 가격이지, 정기구독 서비스 그 자체는 아니라고 봤습니다.
전 이사는 국내 소비자들이 정기 구독 서비스를 얼마나 선호하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충분히 검증되지 않았다고 말했는데요. 미국에서는 정기 구독 서비스들이 큰 성공을 거두었지만, 한국과 미국의 소비자들은 구매행동에 있어서 꽤나 큰 차이를 보인다는 이야기입니다. 미국은 오프라인 소비를 위해 보통 차로 10~15분 정도 이동해야 합니다. 하지만 한국의 소비자들은 집 근처 편의점만 서너 개, 한 두 곳의 드럭스토어와 대형마트가 있습니다. 따라서 국내 소비자들은 필요할 때 제품을 구입하는 행동에 큰 불편함을 느끼지는 않는 것 같다는 게 전 이사의 설명입니다. 그러면서도 그는 정기구독 서비스가 소비자의 편의에 맞게 개선된다면 그 규모는 충분히 커질 가능성이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그렇다면 현재 와이즐리의 상황은 어떨까요? 와이즐리 측은 구체적인 매출액 수치는 공개하지 않았는데요, 네이버 검색량 지표를 보면 면도기 업체 중 와이즐리의 검색량이 가장 높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와이즐리 면도기가 출시되기 전까지는 질레트, 도루코, 쉬크가 시장점유율과 비슷한 수준으로 검색량을 점유하고 있었다고 하는데요, 전영표 이사는 "와이즐리는 올 1월 30일에 출시됐고, 출시 이후 약 두 달이 지난 4월부터는 꾸준히 검색량 1위를 유지하고 있으며 그 격차를 조금씩 벌리고 있습니다"고 전했습니다.
일반 우편물로 배송한다고?
한편 업계 경쟁이 심화되면서 일반 우편물을 이용해 면도날을 배송하는 업체도 생겼습니다. 소비자가 택배 방식을 선택하면 배송비 2,500원이 부과되고, 일반 우편물을 택하면 제품을 받는 데 5~7일이 소요되지만 배송비는 무료입니다.
와이즐리는 일반 우편물을 통해 배송할 계획은 없다는 입장입니다. 전영표 이사는 "D2C(Direct-to-Consumer) 브랜드로서 갖춰야 할 가장 중요한 부분 중 하나는 배송경쟁력이라고 생각합니다. 배송경쟁력이라 함은 저렴한 가격, 빠르고 안전한 배송, 정확한 추적 등이 주된 내용일 것입니다"라면서 "일반 우편물의 경우 가격이 저렴한 장점이 있기는 하지만, 나머지 두 가지 기준에서 많이 부족한 것이 사실입니다. 또한 우편물이 도난될 위험성도 높고, 품질과 위생이 철저히 관리되지 못할 위험도 큽니다"고 답했습니다. 일반 우편은 자사의 서비스 품질 기준과는 맞지 않는 배송 방법이라는 설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