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전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대리운전 기사는 약 8만 명 수준이다. 업계에서는 이보다 더 많은 20만 명 이상이 현업에 있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들은 월 평균 200만 원을 번다. 하지만 대리영업을 위한 프로그램(어플리케이션) 이용료나 수수료, 보험료, 교통비 등을 제하면 손에 떨어지는 돈은 150만 원 남짓이다.
수수료나 보험료 등은 사실상 고정비라고 봐야 한다. 업체에 종속된 을(乙)의 삶을 사는 기사가 대다수인 업종의 특성상 계약에 따라 납입해야 하는 비용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교통비는 다르다. 기사의 역량에 따라 지출을 줄일 수 있는 변동비에 해당한다. 노하우가 있는 기사는 도심지에서 교외로 갈 때도, 다시 도심지로 돌아올 때도 콜을 받아 영업 겸 이동을 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전업이 아닌 투잡 형태로 대리운전을 하고 있는 기사들의 경우에는 이 같은 노하우를 체득하는데 제법 시간이 걸린다.
줄어든 ‘셔틀’
대리운전 기사를 위해 서울시가 마련한 쉼터에서 한 기사에게 “셔틀이 줄어들어서 불편하시냐”고 조심스럽게 물어봤다. 이에 기사는 “대리 4만 원 짜리 한 건 뛰고 택시 타고 (도심지로) 돌아오면 얼마 남지도 않겠죠?”라고 반문했다.
▲한 상가건물에 대리운전 업체들의 간판이 걸려 있다.
일반화 할 순 없겠지만 대다수 대리운전 기사들에게 있어 셔틀은 유용한 도심지 복귀 수단이다. 통상 대리운전 콜은 유흥가나 술집이 밀집해있는 지역에서 발생한다. 목적지는 대부분 아파트나 주택이 밀집해 있는 교외, 혹은 베드타운이라 불리는 위성도시로 집중된다. 그렇게 교외로 뛴 대리운전 기사들이 또 다른 콜을 잡기 위해서는 도심지로 돌아와야 한다. 이때 유용하게 이용할 수 있는 게 바로 셔틀이다.
셔틀을 운영하는 사람들은 낮 시간대에 25인승 미니버스나 12인승 봉고를 운영하는 기사들이다. 이들은 낮 뿐 아니라 밤에도 수익을 만들기 위해 적게는 1,000원, 많게는 3,000원 정도를 받고 대리운전 기사를 도심지로 실어다준다. 각각의 노선에 따라 정해진 스폿에 기사들이 모여 있으면 실어 나르는, 버스 같은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작년 초부터 셔틀이 급격하게 줄어들었다. 오차는 있겠지만 기존에 약 350여대가 운행되던 셔틀은 현재 100여 대 정도만 운행되는 수준까지 급감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왜 이런 일이 발생했을까. 셔틀을 활용해 대리운전 시장을 장악하려던 몇몇 업체가 시장의 질서를 흐렸기 때문이라고 업계 사람들은 입을 모은다.
요는 이렇다. 부산・경남권을 커버하던 트리콜대리운전(이하 트리콜)이라는 업체가 수도권으로 진출하면서 먼저 손을 댄 것이 셔틀이라는 전언이다. 셔틀 운행을 통해 대리운전 시장을 장악하고 기사들을 확보하기 위한 전략이라는 해석이다. 문제는 셔틀 공급자로 부상한 트리콜이 기존에 영업 중이던 셔틀을 모두 불법으로 신고했다는 데 있다고 설명한다.
사실 셔틀운영은 국내법상 불법이다. 현행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 상 영업용이 아닌 차량이 운임을 받고 사람을 실어 나르는 것은 범법행위로 규정돼 있다. 때문에 신고를 당한 대부분의 셔틀 기사들은 더 이상 대리운전 기사를 상대로 한 운행을 지속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할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일련의 사태 이후 트리콜이 셔틀 공급선을 장악하는 듯 했지만 대리운전 배차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업체인 로지소프트(업체명: 바나플)가 셔틀을 무료로 공급하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기사들은 트리콜이 아닌 무료로 운영되는 로지의 셔틀을 이용하기 시작했고, 결국 트리콜은 시장에서 발을 뺐다. 트리콜이 시장에서 철수하자 로지측도 셔틀 운영을 중단했다. 결국 셔틀만 줄어든 꼴이 됐다.
대리운전 업계 관계자는 “부산지역에서 수도권으로 진출하려 했던 트리콜이라는 업체가 대리운전 기사를 장악하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셔틀 운영에 뛰어들었고, 기존 셔틀을 전부 불법이라면서 신고해버렸다”며 “이후 기존 셔틀이 다 죽은 뒤에는 로지가 차량(셔틀)을 18~20대 가량 석 달 동안 무료로 돌렸다”고 말했다.
반응은 ‘제각각’
그렇다면 실제 현장에서 영업을 뛰고 있는 대리운전 기사들의 반응은 어떨까. 불편하다는 의견이 많았지만 어떤 업체에 속해있는지, 전업인지 아닌지 등 처한 상황에 따라 답변이 갈리는 경우도 있었다.
우선 전업이 아닌 투잡 형태로 대리운전업을 영위하고 있는 기사의 경우에는 셔틀이 줄어든 것이 아쉽다고 말했다. 한 기사는 “셔틀이 줄어들면 당연히 일일 단위 뛸 수 있는 건수도 줄어드는 게 당연하다”며 “수익도 어느 정도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경기도나 인천 등 교외로 나갔다가 다시 서울로 돌아오기 위해 이용하던 셔틀이 줄어들면서 비교적 느릴 수밖에 없는 심야버스나 셔틀보다는 가격이 센 택시합승 등 대중교통 이용 빈도가 늘어났다는 말이다.
하지만 이와는 다른 반응도 있다. 서울권에서 제법 영향력 있는 대리운전 업체인 A社에 속한 기사의 경우 셔틀이 줄어든 것과 자신이 영업하는 데는 큰 인과관계가 없다고 말했다. 해당 업체에서 기사를 위한 셔틀을 무료로 운영하고 있어서다. 물론 수수료 명목으로 내는 비용 안에 셔틀 운영비가 포함된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지만 셔틀이 무료로 운행된다는 사실에 이견을 달 여지는 없다. 때문에 법망도 자연스럽게 피해갈 수 있는 상황이다.
셔틀이라는 수단 자체에 부정적인 경우도 있다. 전업으로 대리운전을 하는 기사의 경우 셔틀이 운행되는 노선이 늘어날수록 건당 대리운전 단가가 낮아지기 때문이다. 해당 기사는 “예전에는 콜 받기 꺼려지던 오지라도, 셔틀 노선이 들어서게 되면 기사들은 낮은 가격에도 콜을 받기 마련”이라며 “결국 그렇게 되면 전업으로 대리운전 하는 사람 입장에서 수익이 줄어든다”고 말했다.
수익보단 ‘사람’
어찌됐든 셔틀을 통해 대리운전 기사들이 수익을 내는데 더 편해진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이를 다르게 바라보는 시각도 존재한다. 대리운전이라는 직업을 단순히 수익성에만 초점을 맞추다 보면 해당 직업군의 ‘지속가능성’이 불투명해질 수 있다는 견해다.
대리운전은 밤 시간대가 영업의 피크타임에 해당한다. 전업으로 대리운전을 하는 기사를 기준으로 보면 대략 19~20시부터 콜 대기를 시작해 새벽 4시가 넘어서야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 그렇게 한 달 꼬박 일해도 손에 쥐어지는 돈은 최저임금을 살짝 넘거나 그에 못 미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그렇다보니 한 건 한 건의 콜이 중요하다. 콜을 많이 잡을수록 돈이 되는 구조인 것이다.
▲신논현역 인근. 주로 경기 남부 지역의 콜을 받고 이동했던 기사들이 다시금 올라오는 곳이다.
그러나 생각을 조금 달리하면 이는 기사들의 건강을 담보로 하는 일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노하우가 생긴 경우와는 달리 초보 기사의 경우 일일 기준으로 적게는 8km, 많게는 20km까지 걷기도 한다. 콜이 잘 잡히는 지점까지 무작정 걸으며 교통비를 절약하기 때문이다. 봄이나 가을이면 그나마 괜찮을 진 몰라도 무더운 여름이나 한겨울에는 상황이 달라진다.
하지만 이 같은 기사들의 진짜 이야기는 잘 알려지지 않은 게 현실이다. 방승범 서울이동노동자쉼터 사무장은 “대리운전이라는 직업을 볼 때 대리운전 기사의 건강과 업으로써의 지속가능성이라는 두 가지 관점으로 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서울 외곽에서 장거리 콜이 뜨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는 게 방 사무장의 설명이다. 즉, 외곽지라 하더라도 수 시간을 기다리면 높은 가격대의 장거리 콜을 얻을 수 있지만, 셔틀을 이용할 경우 이러한 기회를 놓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래서 생겨나는 고민도 있다. 그는 “제 3자 입장에서 (기사들의) 수입이 많아지는 게 좋은 것인지, 그러한 기회를 놓치더라도 셔틀을 적절히 이용하면서 기사 개개인이 건강을 챙기는 게 좋은 것인지는 다각도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셔틀, 대안은 없나?
전국대리운전노조에 따르면 지난해 대리운전 기사들은 사회적 안전망과는 동떨어진 삶을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고용보험과 산재보험 적용률은 5% 내외였고, 국민연금 가입률도 34.3%에 그쳤다.
대리운전은 사실상 버스와 지하철, 택시 등 대중교통 서비스를 보완하고 있는 또 다른 형태의 운송 서비스다. 하지만 지난 10여 년 간 대리운전 요금은 제자리걸음을 계속하고 있다. 대리운전이라는 업태가 시장에서 존재하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의 수요가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만 대리운전에 대한 제도적인 밑바탕은 미비한 것이 작금의 실태다.
셔틀도 마찬가지다. 불법임에도 기사들을 위한 셔틀이 운행된다는 것은 분명 수요가 있기 때문이다. 김주환 전국대리운전노동조합 정책실장은 “셔틀의 수요와 공급을 정상화하고 안정화하는 게 우선적으로 필요하다”며 “동시에 (셔틀 정상화로 인해) 대리운전 건당 요금이 저하되는 것도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리운전 업계에서 제시하는 대안은 심야 대중교통의 확충과 셔틀의 합법화다. 서울시가 운영하고 있는 심야버스를 좀 더 확충해 심야 노동자들의 권익을 확충하고, 경기・인천 지역으로도 심야 대중교통이 운행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셔틀의 대부분이 불법이기 때문에 사고가 발생할 경우 보험 혜택이나 보상에 취약하다는 문제점도 보완해야 할 대상이다. 실제 2014년 성남에서 발생한 셔틀 사고 사례를 살펴보면 당시 셔틀에 탑승했다 사망한 한 대리운전 기사의 가족은 일부 변호사의 도움 없이는 보험금도 제대로 지급받지 못할 상황에 처하기도 했다.
그러나 아직까지 대리운전 업계의 목소리는 큰 울림을 내지 못하고 있다. 근본적으로는 대리운전 기사를 위한 셔틀의 합법화가 예외적으로 가능해진다면 가장 좋겠지만 사회적으로 이에 대한 관심도는 낮은 상황이다.
김 정책실장은 “대리운전 기사와 관련한 문제가 해결되기 위해서는 야간 이동수단(대중교통)이 확보되는 게 일차적인 해결점”이라며 “지자체 등이 적극적으로 개입해서 셔틀을 합법화 하는 것 역시 해답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