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신광섭 인천대 동북아물류대학원 교수
최근 3년간 기술의 발전 속도가 매섭습니다. 그러한 기술 발전에서 기인하는 물류산업의 변화 역시 상당한 수준으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제, 물류산업도 서비스 혁신 없이는 살아남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이처럼 빠른 변화가 진행되는 과정 속에서 우리는 잠깐 멈춰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빅데이터부터 인공지능, 머신러닝, IoT, 그리고 블록체인까지 숨 돌릴 틈 없이 쏟아져 나오는 기술의 홍수와 서비스의 진화 속에서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요. 끊임없이 회자되는 4차 산업혁명의 개념이 물류에서 ‘로지스틱스4.0(Logistics4.0)’으로 구현될 수 있을까요.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앞 사람의 발끝만 보고 헐레벌떡 뛰다보면 언젠가 우리는 전혀 엉뚱한 곳에 도달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필자가 가장 빠른 속도로 변화가 진행되는 지금이 역설적으로, 쉼표가 필요한 시간이라고 생각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물류를 바꿀 기술들
물류산업에서 화두가 되었던 최신 기술을 나열해보겠습니다. 빅데이터, 인공지능, 머신러닝, IoT, 최근의 블록체인까지. 이 가운데 데이터의 생성과 공유의 관점에서 가장 중요한 변화라고 할 수 있는 것은 빅데이터와 IoT, 그리고 블록체인일 것입니다.
우선 ‘빅데이터’는 과거 전통적인 관계형 데이터베이스가 처리하기 어렵거나 불가능한 데이터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사회현상을 말합니다. 한편 이러한 빅데이터는 아래에서처럼 RFID와 같은 센서 기반 생성 방식을 거쳐 ‘IoT’ 기술이 등장한 뒤 더욱 폭발적으로 증가했습니다.
그런데 최근의 ‘블록체인’ 기술은 데이터를 생성하고 공유하는 방식 자체를 의사소통(Communication) 방식에서 동기화(Synchronization) 방식으로 바꾸어놓고 있습니다. 물론 블록체인이 이 세상 모든 것을 바꾸지는 않을 것입니다. 다만 그것이 물류산업에 미칠 파급효과의 범위와 속도가 다른 산업에 비해 훨씬 클 것이라는 사실은 분명해 보입니다. 최근 민간 기업과 정부 기관, 각종 물류기업이 참여한 사례에서도 알 수 있듯이 블록체인 기술이 가장 먼저 적용될 산업은 물류가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블록체인의 핵심은 분산원장이라는 금융 관련 기술입니다. 해당 기술이 1차적으로 적용돼 개선할 부위는 물류산업의 고질적인 문제였던 다자간 거래(Transaction)에서 발생하는 데이터의 낮은 신뢰성과 느린 처리 속도가 될 것입니다. 누군가는 아전인수(我田引水)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만, 블록체인은 어쩌면 물류를 위해 개발된 것이 아닐까 할 정도로 개발 목적과 적용 방법, 기대효과가 물류산업에 딱 들어맞습니다.
그러나 블록이 비어있다면
하지만 블록체인이 물류산업에 적용돼 혁신적인 서비스 수준의 향상을 이끌어낼 것이라는 것은 일단 이론에 불과합니다. 블록을 구성하는 정보가 비어있다거나 블록체인 컨소시엄에 참여하는 기업이 활용할 만큼 정보의 가치가 없다면 컨소시엄은 유지될 수 없을 것입니다.
2016년 4월에 본지에 기고한 글에서 살펴본 대로 데이터가 가진 가치를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데이터 공유를 위한 플랫폼이 필요합니다. 마찬가지로 블록체인에 참여하는 기업과 기관이 블록을 구성하는 정보를 공유하려 하지 않는다면 블록체인은 그저 새롭고 신기한 기술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게 될 것입니다.
실제로 최근 다양한 분야에서 블록체인 기술을 도입하기 위한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고 물류산업에서도 그 개념을 구체화하기 위한 노력이 행해지고 있으나 그 과정에서 어느 누구도 자신이 가진 정보를 공유하지 않으려 한다는 문제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무엇보다 문제가 생겼을 때 책임질 사람이 없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일 것이고, 정보를 공유했을 때 나에게 돌아올 혜택(Incentive)이 크지 않다는 것도 이유 중 하나일 것입니다.
그러나 데이터 공유 기반의 비즈니스는 데이터를 공유하려는 주체가 많을수록, 그리고 공유되는 정보의 양이 늘어날수록 그 가치가 극대화됩니다. 국내에서 블록체인의 활용이 금융 분야에 집중돼 있는 현상도 이와 연관돼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신기술 도입의 시작, ‘분명한 목적 설정’
어떻게 하면 블록체인에 참여율을 높이고 기술 활용도를 끌어올릴 수 있을까요. ‘Garbage In, Garbage Out(무가치한 데이터를 넣으면 무가치한 결과가 나온다.)’이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아무리 많은 데이터를 확보하더라도 그 데이터에 오류가 많거나 비어있는 정보가 많거나 목적에 부합하지 않는 데이터가 많다면 데이터 분석을 통해 얻을 수 있는 효과는 크지 않습니다. 오히려 데이터가 상황을 개선하는 게 아니라 악화시킬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알파고가 잘못된 기보만을 가지고 학습을 한다면, 그 학습 알고리즘이 아무리 우수하다 하더라도 알파고가 인간과의 바둑 대결에서 이길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이러한 문제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는 데이터 분석의 기본 절차를 반드시 준수해야 합니다. 요컨대 데이터 분석의 첫 단계인 ‘목적을 명확하게 하고 목적에 맞는 데이터를 확보’하는 과정에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즉 빅데이터와 인공지능, 기계학습 등 최첨단 기술 도입을 고려하고 있다면 다음과 같은 질문들을 스스로 던져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왜 이 기술이 필요한가. 데이터를 통해 해결하고자 하는 문제는 무엇인가. 문제를 해결할 만큼 양질의 데이터를 확보할 수 있는가.”
이는 블록체인에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블록체인을 통해 어떤 서비스를 완성할 것인지, 컨소시엄에 참여하는 주체들은 동기화되는 정보를 바탕으로 어떤 문제를 해결할 것인지, 어떤 가치를 확보할 것인지 구체적으로 분석하고 검증해야 합니다. ‘블록체인이 좋으니까 모든 사람들이 알아서 적극적으로 참여할 거야’라고 기대해서는 곤란합니다.
앞으로도 다양한 기술이 발전하고 새로 만들어질 것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기본(Basic)은 달라지지 않는다 생각합니다. 물류산업의 ‘디지털 전환(Digital Transformation)’이 진행되는 이 시점에서 우리가 지켜야 할 기본은 바로 데이터의 가치를 인정하고 그 가치를 극대화하기 위해 공유하는 것입니다.
필자는 2년 가까운 시간 동안 본지에 ‘데이터, 데이터 분석, 그리고 물류’를 주제로 약 스무 편의 글을 싣고 저의 짧은 생각을 말씀드려 왔습니다. 공부하고 고민하고 있던 문제에 대해 정리할 수 있어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부족하고 빈틈 많은 글이지만 여러 곳에서 ‘잘 보고 있다’라는 말을 전해들을 때면 뿌듯하고 감동적이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아직 배움도 짧고 실력도 부족한 탓에 저의 글이 누군가에게 오해를 불러일으킨다거나 어떠한 기술을 이해하는 데 혼선을 초해하지는 않을까 걱정이 들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그래서 이번 호를 마지막으로 연재를 잠깐 쉬려고 합니다.
그 동안 어쭙잖은 견해를 여러 독자들과 공유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주고 졸고를 멋진 글로 탈바꿈해 준 CLO에 감사드립니다. 앞으로 더 새롭고 의미 있는 연구에 집중하여 조만간 다른 주제로 찾아뵐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그간 감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