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장동 축산물 시장
한우 도매가는 떨어지는데 소매가는 요지부동이라는 기사가 자주 보인다. 그 원인으로는 축산물 유통의 비대함*이 지목된다. 유통구조가 복잡해 도매가 하락의 혜택을 소비자가 누리지 못 한다는 거다. 그런데 축산물은 그 특성상 유통구조가 어느 정도는 복잡할 수밖에 없다. 도축과 가공 등의 과정을 반드시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유통상이 자신의 잇속만 챙기는 소위 ‘도둑놈’들 일 리도 없다. 그럼에도 비난의 화살이 유통상에게 집중되는 것은 유통구조가 깜깜해 그 안이 잘 들여다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안 보이니 신뢰가 생기지 않는다. 요컨대 우리 축산물 유통구조의 문제는 그 복잡함보다는 신뢰가 부족한 데서 기인하는 바가 크다.
그런데 여기 플랫폼 비즈니스를 통해 축산물 유통에 신뢰를 불어넣겠다는 스타트업이 있다. 미트박스가 그 주인공이다. 미트박스의 김기봉 대표를 만나 축산물 유통에 구체적으로 어떤 문제가 있는지, 이를 어떻게 해결하겠다는 것인지, 그리고 플랫폼과 신뢰 사이에는 어떠한 상관관계가 있는 것인지 들어봤다.
▲ 미트박스 김기봉 대표
깜깜한 축산물 유통구조
김 대표에 따르면, 축산물 유통시장에 신뢰가 형성되지 못하는 이유는 정보가 투명하게 흐르지 않기 때문이다. 얼마 전 일반 돼지고기를 흑돼지로 속여 판 유통업체가 검찰에 적발되는 일이 있었다. 유통과정에서 품질 정보가 제대로 흐르지 않는다는 방증이다.
품질 정보뿐 아니라 가격 정보도 깜깜이다. 가령 A라는 삼겹살집이 있다. 이 삼겹살집은 칠레산 아그로수퍼(Agrosuper) 돼지고기를 유통상으로부터 납품 받아 손님에게 판매한다. 그런데 삼겹살집 사장님은 아그로수퍼의 도매가를 알지 못 한다. 그저 물건을 주는 유통상이 요즘 도매가가 좀 올랐다면 그러려니 할 뿐이다.
관행적으로 이뤄지는 외상 거래 역시 신뢰를 좀 먹는다. 삼겹살집을 차리면 유통상들이 와서 영업을 한다. 그러면서 고기를 외상으로 대준다. 하지만 세상에 공짜는 없다고, 외상으로 받은 고기는 곧 ‘미수의 덫’이 된다. 시간이 지나면 삼겹살집 사장님은 외상값 때문에라도 유통업체가 넣어주는 대로 고기를 받아야 한다. 가격경쟁력이 더 있는 유통상이 나타나도 납품업체를 바꾸기가 쉽지 않다. 신뢰를 기반으로 이뤄져야 할 외상거래가 거꾸로 신뢰를 무너뜨린다.
삼겹살집 사장님의 처지가 이런데 하물며 일반 소비자들은 어떨까. 지금 불판에서 익고 있는 고기가 일반 돼지고기인지 흑돼지인지, 소매가에 얼마만큼의 유통마진이 붙어있는지, 소비자는 투명하게 알기 어렵다.
오늘자 아그로수퍼의 가격은 얼마?
미트박스는 플랫폼 비즈니스 모델을 가지고 신뢰가 결여된 이 시장으로 뛰어들었다. 미트박스는 B2B 축산물 유통 플랫폼으로서 식당이나 정육점과 같은 소비자와 판매자(도드람이나 하이포크 등의 원생산자 및 원수입자)를 연결한다. 미트박스에 따르면, 2017년 11월 기준 미트박스에는 130여 업체가 1,800여 종의 아이템을 가지고 입점해 있다. 거래 규모는 매출액(거래액) 기준 월 100억 원 정도다.
그렇다면 미트박스는 어떻게 축산물 유통에 신뢰를 불어넣을 수 있을까. 첫 번째 무기는 정보다. 미트박스는 플랫폼이다. 물건을 사입해 팔지 않는다. 제품의 판매가격 역시 미트박스의 MD가 아니라 판매자가 직접 결정한다. 그런데 김 대표에 따르면, 미트박스에는 현재 하나의 제품에 대해 2~3개 정도의 업체가 경쟁을 벌이고 있다. 가격이 내려갈 수밖에 없는 구조다. 실제로 김 대표는 “미트박스는 판매가격을 조정하는 데 거의 개입하지 않는다”며 “그럼에도 (판매자간 경쟁의 결과로)판매단가는 마장동 1차 도매상에게 넘기는 수준에서 형성된다”고 전했다.
미트박스는 이렇게 형성되는 130여개 업체의 1,800여 종의 아이템에 대한 가격정보를 대중에게 실시간으로 제공한다. 그리고 이러한 가격 정보가 거래에 신뢰를 부여한다. 삼겹살집 사장님은 이제 적어도 자신이 납품 받는 아그로수퍼의 도매가가 얼마인지 알 수 있다. 더 싸게 물건을 공급하는 유통상이 있다면 거기로 갈아타는 것을 고려할 수도 있게 됐다.
김 대표는 “감귤만 해도 정보를 쥐고 있는 수집상이 비싸게 살 수 있는 감귤을 싸게 사다 파는데, 축산물 유통도 이와 마찬가지였다”며 “그런데 시세가 공개됨으로써 유통상이 쥐고 있던 칼자루가 소비자에게로 이동한다”고 밝혔다.
▲ 1,800여종의 상품의 실시간 가격과 변동 추이를 확인할 수 있다.
미트박스가 가격 정보라는 무기를 손에 쉽게 넣은 것은 아니다. 지금이야 플랫폼에 130여개 업체가 입점해 있지만 사업 초 10여개 업체만 입점해 있을 때는 제공하는 가격 정보가 빈약했다. 시장에서 유통되는 2,000~3,000여 종의 상품 가운데 10여 종의 상품 가격만 제공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었다. 이에 따라 미트박스 직원들은 나머지 가격을 파악하기 위해 매일 마장동에서 살다시피 했다고. 그렇게 늘어나는 가격 정보는 소비자들을 플랫폼을 끌어들였고 이제는 그 소비자를 쫓아 판매자들이 플랫폼에 입점하고 있다. 플랫폼이 스스로 덩치를 불리고 있는 거다.
결제와 물류로 신뢰를 더하다
미트박스가 축산물 유통구조에 신뢰를 불어넣는 두 번째 무기는 결제다. 미트박스는 결제대행(에스크로) 서비스를 제공한다. 상품을 구매하려면 소비자는 미트박스 플랫폼에 현금을 충전해야만 한다. 그리고 거래가 이뤄지면 미트박스가 거래대금을 맡아두고 있다가 판매자가 보낸 상품을 소비자가 문제없이 받았을 때 그 대금을 판매자에게 정산한다. 제3자가 가운데서 결제를 대행하기 때문에 판매자가 돈을 먼저 받고 물건을 제때 공급하지 않거나 소비자가 물건을 받아놓고 대금을 지불하지 않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즉 플랫폼이 거래에 신뢰를 부여한다.
세 번째 무기는 물류다. 일반 돼지가 흑돼지로 둔갑하는 사태에서 볼 수 있듯 축산물 유통에서 중요한 것은 품질관리다. 품질관리를 위해서는 온도를 철저하게 관리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배송과 보관 과정에서 온도를 계속 추적하고 기록하면서 그때그때 온도를 조절해야 한다. 미트박스는 이를 위해 오뚜기OLS와 물류 계약을 체결했다. 김 대표에 따르면, 오뚜기OLS는 현재 500대 이상의 냉동 탑차와 냉장·냉동 물류센터를 직접 보유하여 운영하고 있다. 이러한 오뚜기OLS와 계약을 체결한 덕분에 미트박스는 물류에 큰 비용을 투자하지 않고도 전국 모든 곳으로 신선한 상품을 익일배송할 수 있게 됐다.
김 대표는 향후 미트박스의 물류서비스를 보다 고도화할 계획이다. 김 대표에 따르면 현재 축산물 판매자들은 서로 다른 WMS(Warehouse Management System)를 사용하고 있다. 미트박스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은 이러한 WMS를 하나로 통합하는 것이다. 김 대표는 “향후 미트박스는 각각의 창고에서 사용하는 시스템과 연동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고 이 시스템에서 판매자가 바로 제품을 등록하고 재고나 판매현황 등을 확인·관리할 수 있도록 하는 서비스를 제공하고자 한다”며 “즉 독립적으로 운영되는 시스템을 미트박스의 시스템을 통해 하나로 연결하는 것이 우리의 목표”라 전했다. 김 대표가 미트박스의 미래를 ‘고도로 발전된 인텔리전트(Intelligent) 물류 회사’라 말한 배경이다.
지금까지를 정리해보자. 미트박스는 플랫폼에서 이뤄지는 거래의 판매단가를 대중에게 실시간으로 공개한다. 이를 통해 소비자는 상품의 가격에 불필요한 거품이 껴있지 않다는 신뢰를 얻을 수 있다. 동시에 미트박스는 결제를 대행함으로써 거래가 안전히 성립될 수 있도록 돕는다. 끝으로 배송(물류)을 책임지고 처리함으로써 제품 품질에 대한 신뢰를 높인다. 김 대표는 “미트박스 플랫폼을 통해 이 시장의 크레딧(신뢰)이 높아질 것”이라며 “이제 소비자는 정직한 물건을 정직한 가격에 살 수 있다”고 전했다. 또한 그는 “신뢰는 거래의 예측가능성을 높인다”며 “코스피를 선행지수 삼듯, 향후 미트박스의 정보가 일종의 지수처럼 활용돼 축산물 수급의 신호(시그널)이 되길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축산물 시장에 ‘다나와’가 등장한다면
김 대표는 플랫폼의 힘을 거듭 강조했다. 김 대표에 따르면, 미트박스가 현재 가장 저렴한 가격으로 상품을 판매할 수 있는 이유는 미트박스가 플랫폼 업체이기 때문이다. 플랫폼에는 투자할 게 많지 않다. 대형 유통마트처럼 냉동·냉장 물류센터나 탑차 등에 비용을 쏟아 부을 필요도 없고, 상품을 직접 보관하고 관리하는 데 필요한 인건비와 관리비도 적게 든다. 들어가는 고정비가 적다는 이야기다. 이는 결국 낮은 수수료로 이어진다. 미트박스가 대형마트의 유통 수수료(10~15%)보다 훨씬 저렴한 3.5%의 수수료만을 받고도 서비스를 지속할 수 있는 배경이다.
플랫폼의 힘은 확장성에서 나온다. 플랫폼을 통해 상품을 구매하는 이용자가 늘어나면 이에 따라 입점하는 판매자도 늘어난다. 그렇게 되면 미트박스가 공개하는 가격정보는 보다 촘촘해지고 정확해진다. 실제로 김 대표는 “구매자가 많아지니 매주 훌륭한 업체들이 판매자로 입점하고 있다”며 “향후 미트박스는 고기집에서 함께 사용되는 고춧가루, 식용유, 마요네즈, 세제 등도 플랫폼에 붙여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김 대표에 따르면, 축산물 유통 시장의 규모는 25조 원가량이다. 그 가운데 미트박스가 중점을 두는 B2B 시장만 해도 13~14조 원 규모다. 미트박스의 월 거래액 100억 원은 그에 비하면 적어 보인다.
하지만 “얼마까지 보고 오셨어요?”라는 목소리가 사방에서 들리던 용산 전자상가의 풍경을 바꾼 것도 다나와라는 플랫폼이었다. 그 전까지 용산 전자상가에서 판매자와 소비자 간 정보는 비대칭적이었고 거래에 신뢰도 없었다. 하지만 우리는 이제 안전한 가격에 전자제품을 사기 위해 전자기기에 해박한 친구를 데리고 용산으로 갈 필요가 없다. 농축산물 유통시장도 바뀔 수 있을까. 플랫폼의 성공이 관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