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에서 감귤이 서울에서 금귤로 변하는 까닭
제주에서 서울까지, 감귤이 이동하는 유통물류의 흐름
제주도에 살면서 가장 좋았던 것 중 하나. 감귤을 ‘배 터지게’ 먹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말 그대로 배가 터질 정도였다. 감귤철만 되면 거실 탁자에는 감귤을 넘칠 듯이 담은 소쿠리가 놓여 있었고, 베란다에는 감귤이 포대자루채로 혹은 컨테이너채로 담겨 있었다. ‘제주도 사람들은 손이 노래질 때까지 미깡(밀감) 먹는다’는 장난 같은 이 말, 사실 장난 아니다.
제주도에서는 손이 노래질 정도로 감귤을 먹으면서도 감귤이 어떻게 집까지 오는지 궁금하지 않았다. 감귤이 사방으로 널려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는 ‘삼촌’ 중에 적어도 한 명은 과수원을 하며 감귤 농사를 짓고 있었고, 부모님이 전화를 걸어 감귤 한 박스만 보내달라고 하면 집에 ‘짠 하고’ 감귤이 생겼다. 일종의 직거래 방식이었던 거다. 그러니까 감귤의 유통체계라는 게 궁금할 만큼 복잡하지가 않았다.
그런데 이제 본 기자도 서울살이 10년차에 접어들었다. 겨울에 감귤이 수북이 담긴 포대자루나 컨테이너를 안 본 지도 꽤 됐다. 가끔 생각날 때 동네 마트에서 작은 소쿠리 하나 정도를 사다 먹는 게 전부다. 사방으로 널려 있던 감귤이 귀해서 ‘금귤’이 되니까, 문득 궁금해지기 시작하더라. 도대체 감귤이라는 것은 어떻게 만들어져 어떻게 유통되는 걸까. 이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해 제주도행 비행기 티켓을 끊었다.
노랗게 물든 제주도
10월 16일. 제주도의 오후는 흐렸고 빗방울이 내리고 있었다. 수소문해 제주 서귀포시에서 감귤 농장을 운영하는 농가를 찾아갔다. 마침 극조생 감귤을 수확하고 있었다. 극조생 감귤은 10월 초부터 출하되어 시장에서 가장 일찍 맛볼 수 있는 노지감귤을 일컫는다.
▲ 극조생귤. 귤 표면에 얼룩덜룩한 것은 농약을 많이 치지 않아 그런 것이라고.
사실 요즘에는 1년 4계절 내내 감귤이 나온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극조생 감귤의 수확이 서서히 마무리되는 11월부터는 일반 조생귤이 나온다. 일반 조생귤은 저장성도 있는 품종이다. 그 이후 1~3월에는 비가림 감귤이 출하된다. 2~4월에는 한라봉과 천혜향, 레드향과 같은 만감류가 출하되고 한여름에는 하우스 감귤이 나온다. 극조생 수확을 시작으로 그야말로 ‘1년 농사’가 시작되는 거다.
요즘 감귤 가격은 어떨까. 농가에 물어보니 올해 극조생 감귤의 가격은 비교적 높게 형성됐다고. 그 이유는 감귤이 평년보다 적게 생산됐기 때문이다. 제주도 농업기술원과 감귤관측조사위원회는 지난 9월 올해 감귤이 역대 최저 수준인 43만 9천 톤가량 생산될 것이라고 추정해 발표했다. 더욱이 올해는 여름이 덥고 가뭄이 길어 감귤의 당도도 높다. 품질 좋은 감귤이 적게 생산되다 보니 자연히 감귤 가격이 잘 형성된 것이다.
수탁과 매취, 농협 통한 감귤 유통
수확된 감귤은 어떤 경로를 거쳐 소비자에게 도달하는 것일까. 소비자 입장에서는 동네 마트에서 감귤을 보고 고르는 게 전부지만 사실 그 내막은 좀 복잡하다.(어느 농산물이나 다 그렇긴 하다.) 많은 경우 농가에서 수확한 감귤은 지역의 선과장(과일을 선별하고 포장하는 시설)으로 보내진다. 선과장을 운영하는 주체는 여럿 있는데 그 중 첫 번째는 농협이다.
지역농협 혹은 감귤농협은 지역에 산지유통센터(APC)를 운영한다. 여기서 감귤을 유통하는 방법은 다시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수탁과 매취다. 우선 수탁이란 농협이 감귤의 단가를 결정하지 않고, 농가로부터 판매권한을 위임받아 시장에 감귤을 판매한 뒤에 일정액의 수수료를 뗀 대금을 농가에 지급하는 방식을 말한다.
특히 제주농협은 수탁 사업의 일환으로 약 10년 전부터 공동선별출하회(이하 공선회)의 조직과 운영에 힘을 쏟고 있다. 공선회란 공동선별과 공동계산을 실천하는 농협 단위의 출하 조직이다. 제주 표선농협 관계자는 “과거 작목반은 일종의 법인 형식으로 시장에서 힘이 세지 않았다”며 “반면 공선회는 농협을 중심으로 조직되기 때문에 가락시장이나 청과물시장 등 공판장에서 협상력을 발휘할 수 있다”고 전했다.
한편 매취는 수탁과 달리 농협이 농가의 원물을 직접 구입하는 것을 말한다. 표선농협 관계자는 “농협이 이마트나 롯데마트 등 대형 유통업체와 거래하려면 연중 감귤을 댈 수 있어야 하는데 그때그때 농가로부터 원물을 확보하는 것은 쉽지 않다”며 “그래서 1차적으로는 공선회를 조직해 물량을 수급하지만 일정 물량은 매취를 통해 미리 확보해 놓는다”고 밝혔다.
상품은 어떻게 만들어지나
이렇게 농협에 모인 감귤은 APC 내 선과시설에서 선과 과정을 거쳐 상품화된다. 선과 과정을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아래 사진은 제주도의 한 농협APC 내 선과시설의 모습이다. 해당 농협 관계자에 따르면, 감귤 선과시설의 규모는 APC마다 제각각이나 과정은 대체로 비슷하다.
▲ 농협APC 내 선과시설의 모습
맨 먼저 감귤을 실은 차량이 선과시설로 들어와 컨테이너에 담긴 감귤을 내린다. 그러면 지게차가 컨테이너를 파렛트에 실은 뒤 기계에 적재하고 기계는 감귤이 담긴 컨테이너를 집어 레일로 올려 보낸다.
▲ 차량이 선과시설에 도착하면 지게차가 파렛트에 감귤 컨테이너를 실어 기계로 올려 보낸다.
레일을 도는 감귤은 사람의 눈에 의해 1차적으로 선별된다. 이 단계에서 부패했거나, 표면에 상처가 있거나, 크기가 매우 크거나 작아 상품가치가 떨어지는 감귤(비상품 감귤로 흔히 파치라 한다)이 걸러진다. 육안으로 1차 선별된 감귤은 이후 세척과 건조, 왁싱, 재건조 등의 과정을 거쳐 ‘비파괴라인’으로 이동한다.
▲ 사람의 눈을 통해 상품가치가 떨어지는 감귤이 1차적으로 걸러진다.
비파괴라인은 감귤을 까서 사람이 맛을 보지 않고도, 그러니까 감귤을 파괴해보지 않고도, 감귤의 당도를 확인할 수 있다고 해서 붙은 명칭이다. 비파괴라인은 크기와 착색, 중량뿐 아니라 당도까지 측정한 뒤 감귤을 배출구별로 나뉘어 내보낸다. 이때 통제실에서 어떤 종류의 감귤이 어떤 배출구로 향할지 설정한다. 가령 S와 L사이즈의 감귤은 10Kg 상자로, M사이즈의 감귤은 5Kg 오픈형 상자로 보내는 식이다. 이렇게 해서 감귤로 채워진 박스는 농협 자체 브랜드나 PB(Private Brand)를 달고 대형 유통마트 혹은 공판장으로 향한다. 이중 가락시장 등의 공판장으로 향한 감귤은 경매 후 중도매상을 거쳐 소매상에게까지 이동하게 된다.
▲ 비파괴라인을 거쳐 크기와 색깔, 중량, 당도별로 구별된 감귤이 배출구로 이동한다.
선과장 운영의 또 다른 주체들
그런데 이처럼 농협APC를 통해 유통되는 감귤은 제주에서 나는 전체 감귤 가운데 20~30% 정도에 불과하다. 나머지 70~80%는 어떤 경로를 거쳐 유통되는 걸까. 우선 상당수가 감귤중간수집상(상인) 혹은 영농법인을 거친다. 상인과 영농법인 역시 앞서 말한 ‘선과장을 운영하는 여러 주체’들 중 하나로서, 상인은 그해 감귤 가격을 예상해 농가로부터 감귤을 매취해 재판매하는 이들을 일컫는다. 한편 영농법인은 농민들이 법인을 구성해 공동판매하고 마진을 공동 정산하는 조직을 말한다.
표선농협 관계자는 “제주도에 있는 수백 개의 감귤 선과장 가운데 농협이 운영하는 것은 열 개 남짓”이라며 “이것으로는 제주도에서 나는 감귤을 다 처리할 수 없고, 이에 따라 엄청나게 많은 상인들이 활동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렇게 상인이나 영농법인에 모인 감귤 역시 농협APC에서와 마찬가지로 선과 과정을 거친 뒤 각각의 유통 채널로 보내진다.
표선농협 관계자에 따르면, 15년 전만 하더라도 농협APC 정도만 비파괴선과기를 보유하고 있었고, 이러한 사실은 그 자체로 경쟁력이었다. 그러나 요즘 대형 유통업체와 거래하는 상인이나 영농법인은 모두 농협 수준의 시설을 보유하고 있다. 대량 시설을 갖추고 대량으로 원물을 유통할 수 있는 생산 체계를 확보한 상인이 늘어나고 그들의 파워 역시 세지고 있다는 것이다.
표선농협 관계자는 “농가는 감귤이 공판장에 올라가 팔리는 것을 기다릴 필요 없이 바로 감귤을 처리해버릴 수 있는 상인과의 거래(매취)를 선호한다”며 “이렇게 해서 좋은 품질의 감귤이 몽땅 상인에게 가버리면 농협에는 안 좋은 감귤이 모이고 이것은 감귤 가격 하락이라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고 전했다.
끝으로, 농협이나 상인이 운영하는 선과장을 거치지 않고 감귤을 유통하는 방법으로 직거래가 있다. 최근 블로그나 온라인 홈페이지 등을 운영하며 상품을 P2P 방식으로 판매하는 농가가 늘고 있다. 이와 더불어 옥션과 같은 오픈마켓을 통해 감귤을 판매하는 농가 수 역시 증가하고 있다.
그러나 농협 관계자에 따르면, 이처럼 직거래되는 감귤의 유통량은 전체의 10%도 되지 않는다. 소비자가 온라인에 자주 노출되기 때문에 감귤의 온라인 거래 비중이 큰 것처럼 느껴지나, 실제 그렇게 유통되는 물량은 미미하며 이는 감귤 유통구조 개선에 영향을 줄 정도도 아니라는 거다.
감귤에 유통비와 물류비를 더하면
정리하자면 농가에서 수확한 감귤의 10% 남짓이 직거래 방식으로, 20~30%가 농협이나 감협이 운영하는 공영선과장을 통해, 나머지가 상인이나 영농법인을 통해 유통된다. 그러나 실제 감귤 농가에 물어본 결과, 이러한 비중과는 별개로 상당수의 농가는 직거래 방식의 거래를 선호한다고 밝혔다. 이유는 간단명료했다. 직거래 이외의 방식의 거래에서 발생하는 유통마진과 각종 수수료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어떤 유통마진과 수수료일까. 다시 선과장으로 돌아와 보자. 우선 선과 과정에서 감귤을 선별하고 박스 작업을 하는 데 일정 수수료가 붙는다. 이후 가락시장에서는 경매수수료를 뗀다. 상품이 낙찰되고 농협에서 농가에 판매대금을 입금할 때 떼는 1% 정도의 수수료도 있다. 중도매상과 소매상, 유통마트 등에서도 유통마진을 뗀다. 한 감귤 농가에 따르면, 유통마진과 수수료 때문에 농가가 상인에게 감귤을 판매한 가격과 감귤의 최종소비자가격이 2~3배 이상 차이 나기도 한다.
여기에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있다. 제주에서 육지까지 가는 데 드는 운송비(물류비)다. 제주도 물류는 기본적으로 복합화물운송이다. JBL로지스틱스 이순섭 대표에 따르면, “제주도 물류는 화물차로 제주항에 가서 물건을 싣고, 목포항에서 하차한 뒤, 다시 육로로 이동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며 “이처럼 다른 지역의 물류보다 실었다, 내렸다 하는 작업이 많기 때문에 비용이 많이 든다”고 전했다.
또한 이 대표는 “현재 제주도는 감귤을 포함한 농산물 운송에 대해 역차별을 받고 있다”며 “제주도가 수도권에서부터 가장 멀리 떨어진 곳이니만큼 국가적 차원에서 물류비 지원이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농림어업인 삶의 질 향상 및 농산어촌지역 개발촉진에 관한 특별법’은 도서 지역의 해상운송비 지원을 보장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는 제주도가 ‘도서개발촉진법상’ 도서 지역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제주를 해상운송비 지원 대상에서 제외하고 있다.
이처럼 해상운송비가 지원되지 않는 상황이다 보니, 감귤 농가를 비롯한 제주 농가가 막대한 운송비를 있는 그대로 짊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제주연구원에 따르면, 제주도 농산물의 총물류비는 연간 최소 2,170억 원이며, 이 가운데 해상물류비가 1/3(약 740억 원)에 달해 제주 농산물 경쟁력 저하의 주요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 역시 후보 시절 ‘농가소득보전을 위해 제주농산물의 해상운송 물류비를 국가가 지원하겠다’(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 제주도 공약 발표자료 中)는 공약을 내걸었지만 아직 이행되지 않고 있다.
본 기자는 취재차 방문한 감귤농장에서 10kg 감귤 한 박스를 구매했다. 가격은 25,000원. 그런데 거기에 5천 원의 택배비가 더 붙었다. 얼마 안 되는 돈이라 생각할 수도 있지만, 따져 보면 상품 가격의 1/5이 물류비로 붙은 셈이다. 배만한 배꼽이다.
제주도에 20년 가까이 사는 동안 육지의 2배에 해당하는 물류비(택배비)를 꼬박꼬박 지불해왔다. 그래서 반품도 잘 안했다. 그런데 이제 이와 같은 피해를 고스란히 서울의 소비자가 안고 있다. 농가도 피해를 입긴 마찬가지다. 사각지대에 놓인 제주물류를 다시 한 번 고민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