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이성일 마켓컬리 로지스틱스 리더
과거 소비자들은 ‘식료품은 눈으로 보고 사야한다’고 생각했다. 식료품 시장의 ‘이커머스화’가 가장 느리게 진행된 것은 이 때문이다. 이에 따라 시장이 요구하는 B2C 영역의 콜드체인의 발전 속도 역시 더뎠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며 많은 이커머스 업체가 훌륭한 사용자 경험(식료품과 비식료품을 포함하여)을 지속적으로 고객에게 제공하면서 신뢰를 쌓아간 결과, 식료품 시장의 이커머스화에 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온라인 식료품(Online Grocery) 시장의 규모는 점점 커졌고, 기존의 대형 유통사뿐 아니라 많은 스타트업이 온라인 식료품 시장으로 뛰어들었다.
이 시장에서 성공하기 위한 필수역량은 바로 ‘콜드체인’이다. 오프라인 점포와 연계된 콜드체인은 구축 및 운용이 비교적 용이하다. 대단위 납품이 주가 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현재 오프라인 콜드체인은 아주 훌륭한 수준으로 구축돼 있다. 그러나 온라인 B2C 영역의 콜드체인은 상황이 다르다. 도크를 보유한 센터와 라스트마일(Last-mile)에서 필요한 냉장차량 등의 물류망을 구축하는 게 어렵기 때문이다. 현재 국내에서 이러한 콜드체인 역량을 갖추고 있는 기업은 대형마트 3사를 포함해 마켓컬리, 티몬, 배민프레쉬, 더반찬 정도에 그치고 있다.
배송권역을 한정하는 까닭
그런데 이처럼 온라인 콜드체인 구축이 쉽지 않은 가운데, 재밌는 현상이 관측되고 있다. 온라인 식료품 시장에서 라스트마일에 도전하는 업체들이 ‘배송 권역을 한정지어’ 물류망을 구축하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특히 새벽배송 시장에서 도드라진다.
현재 마켓컬리와 배민프레쉬, 더반찬, SK플래닛, GS리테일 등이 새벽배송 시장에서 활동하고 있고, CJ대한통운은 시장 요구에 발맞춰 기존 택배망과는 별도로 새벽배송 택배사업부를 만들었다. 그런데 흥미로운 사실은 이들 업체가 모두 ‘서울과 수도권’에서만 직접 배송을 한다는 것이다. 왜일까. 인구 밀집지역을 위주로 물류망을 구축하기 위해서라든가, 선두 기업의 전략을 벤치마킹한 결과라든가 하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보다 구체적으로 그 이유를 살펴보도록 하자.
① 메가시티(Mega City) 서울
위 막대그래프는 세계 주요 도시의 인구 및 GDP 순위를 보여준다. 서울의 인구는 2,500만 명을 넘어 세계 5위이며, GDP는 8,500억 달러를 넘어 세계 3위에 올라있다. 위 그래프에 나타난 수치는 메인 도시와 그 주변 도시를 합쳐 산정한 값이다. 즉, 인구 2,500만 명, GDP가 8,500억 달러라는 수치는 서울특별시와 경기도, 인천광역시의 수치를 모두 합한 결과이다.(참고로 도쿄의 경우 사이타마현, 지바현, 가나가와현을 합한 수치이다.)
위 그래프에 따르면, 인구 2,000만 명, GDP 8,000억 달러를 동시에 넘는 도시는 세계에서 도쿄와 서울 단 두 곳밖에 없다. 이는 온라인 식료품 시장에서 꽤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기업 입장에서 볼 때, 한 도시의 인구수가 많다는 것은 그곳에 식료품을 필요로 하는 수요가 충분히 많다는 것을 뜻한다. 또한 도시의 GDP가 높다는 것은 식료품 구매에 대한 지불능력 역시 충분하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즉 세계에서 보기 드문 인구 집적도와 구매력을 자랑하는 서울(수도권)은 온라인 식료품을 다루는 기업에게 매우 매력적인 시장이다. 그리고 실제로 이는 온라인 식료품에 적합한 물류방식인 새벽배송의 배송 권역이 수도권에 집중되는 근본적인 원인이 된다. 즉, ‘한국은 시장이 너무 작다’는 많은 이들의 푸념은 적어도 새벽배송 시장에는 해당되지 않는 것이다.
② 권역 재설정의 비밀
배송권역 재설정은 총 시장(인구)의 규모를 최대한 유지하면서 배송을 수행해야 하는 지역의 면적을 최소화하는 작업이다. 배송권역 재설정을 통하여 효율적인 물류망을 구축하게 되면 기업들은 해당 권역에 대한 기준이 생기게 된다.
굉장히 간단하고 극단적인 예로, 한 기업이 현재 3000㎢의 배송권역 내에 2,000만 명의 인구를 대상으로 물류를 하고 있다고 가정해보자. 이때 1㎢당 인구 밀도는 6,666명이 된다. 따라서 그 기업은 ‘현재 배송권역에 인접하면서 인구밀도 6,666명이 넘는 지역은 확장을 해 나아 가겠다’라는 전략수립을 하게 되는 것이다.(물론 이렇게 인구와 면적만으로 전략을 수립하는 것은 아니다.)
이번엔 한국과 일본을 예시로 살펴보자. [표1]은 서울과 도쿄의 면적과 인구수를 비교한 것이다. 서울의 면적은 도쿄의 88%에 해당하며, 인구는 도쿄의 71% 정도이다. 이를 물류 관점에서 해석하면, 서울에서의 라스트마일 배송이 일본에서보다 더 비효율적으로 수행된다는 것이다. 이는 면적 대비 집적도가 낮기 때문인데 따라서 라스트마일 배송을 수행하는 기업은 ‘배송권역 재설정’을 통해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다.
[표1]을 살펴보면 서울에는 아주 높은 밀도로 시장이 형성되어 있어 권역 재설정이 그다지 필요한 상황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경기도나 인천광역시는 시장의 크기에 비해 넓은 면적을 가지고 있어 물류 효율이 다소 떨어진다. 그리하여 동일권역 인구 편중 현상(경기도 등 일정 범위 내의 특정 지역에 인구가 몰리는 현상)을 활용하여 배송권역을 재설정하게 된다.
[표2]는 경기도 주요도시 면적 및 인구를 나타낸다. 표를 보면 알 수 있듯이, 1만 172㎢에 이르는 넓은 경기도 지역에서 몇 개의 주요 도시를 타깃으로 잡는 것만으로도 총 시장(인구) 81%를 유지하면서 배송면적을 39%로 줄이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
그러나 이렇게 진행한 권역 재설정을 실시한 후에도 경기도의 배송권역은 4000㎢에 육박한다. 이에 따라, 자세한 계산식을 공개할 수는 없지만, 경기도 도시 내에서도 인구 편중 현상이 심하고 상대적으로 넓은 면적을 지닌 용인과 인천 등 10여 개 미만의 도시를 대상으로 다시 한 번 권역 조정을 하면 더 효율적인 배송권역 설정이 가능해 진다.
[표3]은 설명한 대로 경기 및 인천 지역의 배송권역을 재조정한 후의 결과이다. 이에 따르면, 권역 조정 후 서울의 인구는 도쿄의 59% 정도를 유지하게 되지만 배송면적은 도쿄의 23%로 급격하게 줄어들게 된다. 이렇게 되면 시장규모 축소를 최소화하면서 엄청난 물류 효율성 향상의 효과를 누릴 수 있다. 또한 3,000㎢ 정도의 배송면적은 트래픽이 적은 새벽시간의 경우, 물류센터 1개만으로도 충분히 커버할 수 있기 때문에 고정비 관리의 효율성도 높아진다.
③ 유리한 상품 소싱
끝으로, 서울과 수도권은 많은 인구가 모여 있기 때문에 교통 인프라 역시 잘 갖춰져 있다. 따라서 서울과 수도권은 상품을 소싱하는 데도 유리하다. 인천항과 인천공항, 김포공항을 통해 수입품을 원활히 입고할 수 있고, 고속도로와 철도 시설을 통해 각 산지의 상품을 원활하게 수송할 수 있다. 전국 어떠한 곳에서든 4시간 30분 안에 소싱할 수 있다.
또한 서울을 포함한 수도권은 HMR(Home Meal Replacement: 가정간편식), 착즙주스, 이유식, 빵, 샐러드, 디저트 등 유행에 민감한 상품을 생산하는 제조사가 밀집해있는 지역이기도 하다. 즉 서울과 수도권은 이커머스들이 좀 더 트렌디하게 시장에 반응하며 ‘핫’한 상품을 소싱하기에 적합한 지역이다.
새벽배송시장의 유니콘을 기다리며
지금까지 온라인 식료품 시장의 라스트마일 업체, 특히 새벽배송 업체들이 서울을 포함한 수도권에 한정해 직접배송을 하는 이유에 대해 살펴보았다. 고정관념을 갖고 시장을 바라보지 않고, 시장을 끊임없이 재정의 하면서, 식료품 시장의 이커머스화를 더욱 가속화한다면, 머지않은 시점에 새벽배송 업체 가운데서도 ‘유니콘’이 등장하지 않을까. 기분 좋은 꿈을 꾸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