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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 라우팅, 물류효율 높일 밑거름 될까

by 임예리 기자

2017년 07월 16일

UPS의 ‘오리온’이 좌회전을 하지 않는 까닭은

택배·유통·화물운송·라스트마일 시장, 자동 라우팅 두고 견해차

라우팅

글. 임예리 기자

 

미국의 배송업체 UPS는 ‘좌회전을 하지 않는’ 독특한 라우팅(Routing: 경로배정) 시스템 ‘오리온(Orion)’을 활용하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물론 좌회전을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다리를 건너야 하는데 좌회전을 해야 한다면 좌회전을 하기도 하고, 일본이나 영국처럼 차량이 좌측통행을 하는 나라에서는 반대로 우회전을 하지 않도록 경로를 설정하기도 합니다.

 

다만 이처럼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라면 좌회전을 하지 않습니다. 좌회전을 하지 않다보니 UPS 차량의 배송경로가 언제나 최단거리로 설정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라도 더 빨리 배송하는 게 중요한 상황에서 최단거리를 벗어나는 경로 지정은 얼핏 이상하게 보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UPS는 좌회전을 금지함으로써 오히려 비용을 절약할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가령 좌회전 신호를 받기 위해 빨간불을 기다리는 것보다 우회전으로 돌아가는 게 엔진공회전 등을 줄여 연료비용을 절감한다는 것입니다.

 

잭 리비스(Jack Levis) UPS 프로세스 관리 담당 이사는 올해 2월 IT 전문매체 아이테크포스트(Itech Post)와의 인터뷰에서 “오리온을 도입한 이후 UPS는 연료 및 차량 유지보수에 드는 비용을 연간 3~4억 달러 절약할 수 있게 됐다”며 “오리온은 배송을 위해 미국에 있는 2억 5,000만 개의 주소를 매일 분석하고, 분당 3만 개의 경로를 최적화 한다”고 밝혔습니다.

 

택배업계, “자동 라우팅 꼭 효율적일까”

 

이렇듯 라우팅 시스템은 물류 효율성과 직결됩니다. 그렇다면 한국의 상황은 어떨까요. 택배업계부터 살펴보면, 현재 한국 택배업계에는 수동 라우팅과 자동 라우팅이 혼재돼 사용되는 것으로 파악됩니다. 허브터미널에서 출발한 간선차량이 택배 터미널에 도착하면, 택배기사는 당일 배송할 택배 상자를 분류해 자신의 차량에 실어 넣으면서 운송장 바코드를 스캔합니다. 이때 택배기사는 가장 나중에 가는 지역의 물건부터 안쪽으로 채워 넣습니다.

 

국내 택배사는 보통 자체적으로 라우팅 시스템을 개발해 사용하고 있습니다. 택배 상자의 바코드 데이터가 전송되면 라우팅 시스템이 배송 지역의 과거 배송 순서 정보와 네비게이션을 통해 수집한 도로 정보 및 위치 정보 등을 바탕으로 최적화된 배송 루트를 설정합니다. 이러한 자동 라우팅 시스템은 물량은 느는데 인력은 부족해 택배기사 개개인에서 업무가 가중되는 택배업계의 업무 효율성을 높이는 데 기여합니다.

 

그러나 자동 라우팅 시스템이 택배업무의 효율성을 높인다는 의견에 대한 반론도 존재합니다. 물론 넓은 배송 구역에 비교적 적은 물량을 배송하는 경우, 게다가 배송기사가 배송 구역의 지리를 잘 모르는 경우라면 시스템을 통한 자동 배차가 효율적일 것입니다. 하지만 배송기사에게 할당된 물량이 많다면 상대적으로 배송 밀도는 높아지고 배송기사가 움직여야 하는 지역은 좁아질 것이기에 시스템보다는 배송기사의 직관적인 판단이 더 빠를 수 있다는 것입니다. 특히 아파트 단지처럼 좁은 곳에서 많은 물량이 발생하는 경우에는 자동 경로배정 도입의 효과는 낮을 수 있습니다.

 

라우팅에 ‘목숨 거는’ 온라인유통사들

 

한편 온라인 유통사는 라우팅에 큰 관심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지난 4월 열린 ‘로지스타 서밋 2017’에서 최우정 신세계그룹 전략실 부사장은 이마트몰 자동화센터 네오(NE.O)의 소프트웨어를 설명하며 한 가지 흥미로운 이야기를 꺼낸 바 있습니다. 네오 소프트웨어에 마스터 정보관리 시스템부터, WMS(Warehouse Management System), 자동화 로봇 설비 조종 시스템, 물류배송에 필요한 라우팅 시스템까지 모두 내재화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마트몰의 온라인 전용 물류센터 한 곳에서는 SKU 기준 5만 가지의 상품을 매일 2만 가정으로 배송합니다. 목적지도 매일 바뀝니다. 수많은 상품을 처리하는 데 효율적인 시스템이 필요했습니다. 물론 이마트몰이 처음부터 내재화를 의도했던 건 아니었습니다. 처음에는 외부 시스템을 사용했습니다. 그러나 외부 시스템에는 회사의 비즈니스 모델과 맞지 않는 부분이 있어 비효율을 낳곤 했습니다. 특히 이마트몰이 맨 처음 사용한 배송 솔루션은 한 도착지에서 다음 도착지로 이동할 때 실제 거리와 무관하게 지역구가 다르면 배송 차량이 멀리 돌아가도록 경로를 설정했습니다. 배차 단계에서 각 배송기사가 처리하는 물량을 균등하지 않게 배분하는 일도 일어났습니다. 결국 이마트몰은 외부 시스템을 포기하고 내재화를 결정했습니다. 최 부사장은 지금의 라우팅 시스템을 구현하기 위해 실시간 교통정보를 넣어보기도 하고, 네비게이션과 연동하기도 하면서 몇 년간 시행착오를 겪었다고 전했습니다.

 

이후 이마트몰은 물류스타트업 메쉬코리아와 협업하여 라우팅 시스템의 완성도를 높였습니다. 최근에는 라우팅 시스템에 머신러닝을 활용해 각 배송기사에게 물량을 균등하게 배분하는 기능과 배송기사가 잘 아는 길은 직접 경로설정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기능을 추가했습니다. 최 부사장은 “가령 한 배송기사가 자신이 설정한 경로를 따라 반복해서 가면 시스템은 배송기사가 설정한 경로가 더 효율적이라고 판단해, 이후에는 처음부터 그 길로 배송기사를 안내한다”고 밝혔습니다.

 

식품 전문 온라인 쇼핑몰 마켓컬리 역시 라우팅 시스템을 자체 개발해서 운영하고 있습니다. 밤 11시 이전까지 들어온 주문을 처리해 다음날 아침 7시까지 배송을 완료해야 하는 ‘샛별배송’의 첫 단계는 주문 분배입니다. 마켓컬리의 라우팅 시스템은 밤새 배송해야 하는 물량을 배송기사에게 최대한 공평하게 배분하고, 그에 따라 배송 경로를 배정합니다. 보통 마켓컬리의 배송기사는 우편번호를 기준으로 일정 구역을 담당하게 됩니다.

 

이성일 마켓컬리 물류팀장은 “주문의 70%는 자동으로 차량에 배분된다”며 “매일 주문지가 다르기 때문에 한 배송기사가 너무 많은 물량을 책임지는 일이 발생하기도 하는데, 이때는 사람이 직접 물량 배분을 조정한다. 그게 나머지 30%에 해당한다”며 “이 모든 과정은 1시간 내에 이뤄진다”고 전했습니다.

 

이처럼 온라인 유통사가 자동배차를 포함한 라우팅에 목숨을 거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경로 배송이 효율적일수록 배송기사가 처리할 수 있는 물량이 늘어나기 때문입니다. 최 부사장은 “실제로 라우팅 시스템이 업데이트되면서 배송기사가 처리하는 물량 역시 증가했다”며 “현재(2017년 6월 기준)는 한 명의 배송기사가 하루 40건 정도의 물량을 처리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화물운송과 라스트마일의 라우팅

 

반면 화물운송 분야에서 자동 라우팅에 대한 관심도나 활용도는 다소 낮은 편입니다. 특히 차량이 한 장소에서 모든 짐을 싣고 바로 목적지로 떠나지 않고, 실시간으로 여러 장소에서 접수되는 소량의 짐을 실어 목적지로 가는 경우 라우팅을 활용하기 쉽지 않습니다. 이 경우 화물의 종류도 다양할 뿐더러 그에 따른 상차시간 변동, 실시간 교통상황까지 모두 적절히 자동화하는 게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라스트마일 분야에서 라우팅이 두각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라스트마일 분야에서는 최근 배차부터 경로안내까지 전 과정을 자동화하려는 시도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업체가 앞서 언급한 메쉬코리아입니다. 메쉬코리아 통합 물류관리 솔루션 ‘부릉TMS’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부릉TMS는 주문수량, 상품의 부피와 무게, 상점의 위치, 희망 도착시간 등 50여 개의 제약조건을 반영해 배차와 경로배정을 수행합니다.

 

박인선 메쉬코리아 도심물류사업팀장은 “일과시간에 산발적으로 발생하는 주문과 달리 소셜커머스처럼 주문이 특정 시간에 마감되면 그 시간까지 접수된 주문에 대해 배차 계획을 세우고 다음날 일과시간 중에 배송을 하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인력을 투입할 필요가 없다”며 “여러 배송조건 중 ‘최단거리’를 최우선순위로 삼는다”고 전했습니다.

 

자동 라우팅 어디까지 왔나

 

그렇다면 한국 자동화 라우팅 기술은 현재 어디까지 와 있는 것일까요. 최근 지리정보시스템(GIS)을 기반으로 한 라우팅 솔루션이 출시되기도 했습니다. 지리정보는 배송경로를 설정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정보 중 하나입니다. GIS란 일반 지도에 나타나 있는 지형정보와 지하시설물 등의 지리공간정보를 디지털화한 복합적인 정보시스템입니다. GIS 전문업체 한국에스리는 작년 말 도로 네트워크 데이터를 기반으로 배송경로 최적화 솔루션 라우트 플래너(Route Planner)를 선보였습니다.

 

사실 라우트 플래너 자체는 제품이라기보다 제품을 활용하기 위해 만들어진 프론트엔드(Front-end) UI에 가깝습니다. 라우트 플래너는 오픈 소스(Open Source)를 활용하며, 백엔드는 GIS를 엔터프라이즈 규모로 확대해 활용할 수 있는 플랫폼 환경인 아크GIS 엔터프라이즈(ArcGIS Enterprise)와 복잡한 경로설정 문제 해결을 위한 네트워크 기반의 공간 분석 도구를 제공하는 네트워크 아날리스트(Network Analyst), 히어(HERE)사의 GIS 데이터를 기반으로 합니다.

프론트엔드: 프론트엔드 응용프로그램은 사용자와 직접 상호작용을 하면서 요구된 데이터를 얻거나 요구된 서비스를 수행하기 위하여 원격지의 다른 컴퓨터에 위치한 백엔드 프로그램으로 요구를 전달한다. 백엔드 응용프로그램은 보통 요구되는 자원들에 가깝게 있거나 요구되는 자원들과 교신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는 등을 통해 프론트엔드 서비스를 간접적으로 지원한다.(출처: 지형정보공간체계 용어사전)

 

라우트 플래너는 기본적으로 화물차량, 운전기사, 화물 세 가지가 가진 정보의 조합을 통해 사용자가 원하는 배차 스케줄과 배송경로를 계획합니다. 실제 배차와 배송경로 설정은 사용자의 목표에 따라 달라집니다. 가령 사용자가 시간 최소화를 목표로 삼는다면, 라우트 플래너는 거리가 멀더라도 사용자가 더 빨리 갈 수 있는 경로를 설정합니다. 연비 최소화가 목표라면 라우트 플래너는 시간이 더 걸리더라도 연비를 가장 아낄 수 있는 차량을 우선순위로 선택합니다. 이 모든 판단에는 차선 수, 도로 폭, 도로변 주차가능 여부, 유턴 가능 여부 등의 상세한 지리정보가 반영됩니다.

 

한국에스리는 이 모든 것이 자사의 GIS 솔루션 기술을 적용한 것이며, 현재(2017년 6월 기준) 여러 산업에 맞춘 시나리오도 개발돼 있다고 설명합니다. 박철우 한국에스리 이사는 “가령 배송기사가 2시간을 운전하고 10분을 쉬어야 한다면, 라우트 플래너는 이런 환경적인 조건까지 모두 다 라우팅 과정에 반영할 수 있다”며 “라우트 플래터의 완성을 100이라고 하면, 이미 GIS 플랫폼에 80의 틀이 잡혀 있고 고객은 자신에게 특화된 부분을 고려해 나머지 20만을 개발하면 된다”고 전했습니다.

 

한편 라우트 플래너는 국내 장거리 운송과 라스트마일 배송 영역에서 PoC(Proof of Concept: 개념검증)를 완료했습니다. 박 이사는 “시범 적용 결과 기존 대비 20~30%의 물류비용을 절감하는 것으로 확인됐다”며 “회사 규모와 도입 수준에 따르지만, 빠르면 6개월 안에 라우트 플래너 투자비용을 회수할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임예리 기자

三人行,必有我师。 페이쓰북 / 이메일: yeri@cloma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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