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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퀵을 느리게 만드나

by 김지훈 기자

2017년 05월 09일

칼질부터 지지기까지, 퀵을 느리게 하는 것들

계약서도 안 쓰는 특고직, 법의 사각지대에 놓인 퀵 기사

퀵

 

글. 김지훈 기자

 

퀵(Quick). 사전적 의미는 ‘(재)빠른’이다. 하지만 요즘 퀵은 종종 느리다. “아니, 퀵이라면서요?”라는 불만이 폭주한다. 문자 그대로, 빠른 속도에 그 존재 이유가 있는 퀵이 느려진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수수료 인상과 ‘칼질’

 

“하루 5~6만 원 버는 게 힘들어. 누가 여기(종각)서 서초나 영등포 한 번 오고가는 데 만 원 벌라고 가겄어. 더 모아서 가지.”

 

퀵이 늦어지는 이유 중 하나는 퀵 기사가 여러 개의 물건을 모아서 한꺼번에 움직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기사가 한 번에 여러 물건을 싣고 이동하는 이유는 뭘까? 퀵 단가가 그만큼 떨어졌기 때문이다. 출발지에서 도착지까지 한 번 오고갈 때에 기대수익을 맞추려면 여러 주문을 한 번에 해결해야 한다. 기사 입장에서는 불가피한 선택이지만, 퀵사는 배달이 늦어지니 애가 탄다.

 

물가는 오르지만, 운임은 계속해서 떨어진다. 택배, 화물 쪽과 마찬가지로 퀵의 단가도 많이 떨어졌다. 단가가 왜 떨어질까? 현재 수 천 개가 넘는 퀵사가 모두 엇비슷한 서비스를 제공한다. 결국 유일한 경쟁요소는 ‘가격’이다. 결국 치열한 단가 경쟁이 벌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라스트마일 물류스타트업 고고밴코리아의 남경현 대표는 “단가 경쟁의 피해가 기사에게 돌아간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퀵 기사와 다르게 퀵사는 이런 피 말리는 단가 경쟁의 피바람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일종의 자구책을 마련해두었다. 남 대표에 따르면 퀵사는 크게 두 가지 방법을 이용해 단가는 낮추면서도 그 피해로부터 자신을 지킬 수 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수수료 인상’이다. 현재 국내 최대 퀵 서비스 업체인 인성데이타는 15%로 시작해 현재는 23%까지 수수료를 올렸다.

 

다른 하나는 소위 ‘칼질’이라는 것이다. 칼질이란 퀵사에서 고객에게 제시하는 배달 가격과 기사에게 제공하는 보수를 다르게 책정하는 것을 말한다. 가령 고객에게는 배달비가 2만 원이라 말하고, 기사에게는 만 원이라 말했다고 하자. 그러면 퀵사는 기사에게 지급할 만 원 중 23%인 2,300원의 수수료와 추가로 만 원의 차익까지 챙기게 된다. 익명을 요구한 한 업계관계자는 “예전에 한 퀵사의 재무제표를 봤는데 수수료와 칼질 수입이 정확히 반반이었다”며 “생각보다 칼질이 이 업계에서 만연하게 자행되는 것 같다”고 전했다.

 

돈이 여기저기서 샌다

 

“안 그래도 경기가 안 좋아서 주문이 없는데…빼가는 돈도 엄청 많아. 만 원 벌면 오천 원도 안 남을 걸?”

 

한편 퀵 서비스에 대한 수요는 계속 줄고 있다. 전체적인 경기가 안 좋은 것도 한몫하지만, 경쟁 서비스인 택배 업계의 배송 주기가 짧아지는 것도 영향을 끼친다. 상대적으로 가격이 저렴한 택배로 수요층이 이동하는 것이다. 인성1공용센터 나영환 센터장은 “특히 외곽지역의 오토바이 퀵이 많이 줄었다”며 “택배로 고객층이 이동한 것”이라 말했다.

 

퀵 기사들은 업계 불황과 더불어 ‘프로그램 사용료’에 대한 압박도 많이 느낀다. 기사가 공유그룹을 이용하려면 공유그룹 프로그램을 설치하고 사용료를 지불해야 하는데, 일감이 없다보니 여러 프로그램을 동시에 사용해야 한다. 당연히 그만큼 지불해야 하는 사용료도 늘어난다.

 

기사들이 가지고 있는 가장 큰 불만 중 하나는 국내 최대 규모의 공유그룹을 제공하는 인성데이타가 ‘인성1망’과 ‘인성2망’에 사용료를 중복으로 지불하게 한다는 것이다. 심지어 인성공용센터가 운영되기 전에는 공유그룹이 7개나 있었다. 당시에는 7개 공유그룹에 각각 사용료를 매겼다. 기사들로서는 왜 같은 회사에서 제공하는 공유망을 굳이 7개로 나누었는지 납득하기 어렵다. 한 기사는 “아주 더 뜯어먹으려고 난리”라며 한숨을 쉬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업계 관계자는 “경영자의 관점에서 생각해보면 쉽다”고 말한다. 그는 “인성데이타의 주 수입원은 프로그램 사용료인데, 인성데이타가 국내 1위를 선점했기 때문에 더 이상 외연 확장을 할 수가 없다”며 “자연히 수익을 더 내기 위해 기존에 제공하던 서비스를 쪼개는 것”이라 전했다.

 

반면 인성1공용센터 나 센터장은 “공유그룹이 만들어지고 7개까지 늘어나게 된 것은 시장이 성장하고 수요가 증가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따라온 것”이라 주장한다. 기존 공유그룹으로는 양적으로 늘어나고, 질적으로도 다양해지는 퀵 주문을 소화할 수 없었기에 공유그룹을 늘렸던 것이라는 설명이다. 그는 “현재 1, 5, 6, 7그룹을 1망으로, 2, 3, 4그룹을 2망으로 통합해 운영하고 있는데 이마저 하나로 합치는 것은 어려운 일”이라며 “지금 인력으로는 터무니없다”고 덧붙였다. 현재 인성데이타는 7개 그룹별이 아닌, 2개 통합망에 각각 16,500원의 사용료를 부과한다.

 

‘지지기’는 필요악

 

“아니 근데 요즘은 지지기 없으면 일을 못해. 얘가 막 0.1초만에 주문을 잡아채가니까. 근데 이게 또 돈을 내야지. 월에 7만 원이었나, 8만 원이었나. 비싼 거는 20만 원도 한다던데.”

 

요즘 기사들은 수수료와 더불어 ‘지지기’라는 프로그램의 사용료도 지불해야 한다. 지지기 프로그램이란 사설업체에서 만드는 일종의 기생 프로그램으로, 간단히 말하면 공유그룹 상에 올라온 주문을 빠르게 낚아채는 프로그램이다. 기사가 눈으로 화면을 보고, 손으로 일일이 주문을 선택하는 것보다 지지기 프로그램이 자동으로 주문을 낚아채는 속도가 훨씬 빠르기 때문에 요즘처럼 주문량이 적은 때에는 지지기 없이 주문 한 건을 가져오는 것도 힘들다.

지지기▲ 요즘, 지지기 프로그램 없이는 일감을 받기도 어렵다.

 

노동자 복지 시설을 운영하는 안효원(가명) 씨는 “같은 인성프로그램을 사용하는 기사끼리 무한경쟁 구도가 형성된 상황에서, 이런 취약한 틈을 파고들어 생겨난 또 다른 착취수단이 바로 지지기 프로그램”이라며 “안 깔고는 수익 보장이 안 되기 때문에 체감상 80~90% 기사님이 울며 겨자 먹기로 지지기를 사용하는 것 같다”고 밝혔다.

 

이에 덧붙여 한 퀵 기사는 “회사에 하루 출근비를 천 원~천오백 원씩 내야하고, 거기에 매일 적재물 보험 몇 백 원이 더 나간다. 자잘한 거에서 다 빼먹어간다”며 “실제로는 매출에서 30% 정도밖에 남지 않는다”고 말했다.

 

계약서도 안 쓰는 ‘특고직’

 

“제일 힘든 게 보험이야. 아니 기름값 같은 것도 다 우리가 내고…사고 나면 진짜…목숨 걸고 일하는 거에 비해 너무 하지 이건.”

 

퀵 라이더가 되는 것은 매우 간단하다. 면허증만 있으면 된다. 계약서 따위는 쓰지 않는다. 퀵사에 들러 개인정보를 입력한 뒤 가상계좌에 약 10만 원을 선입금하면 바로 퀵 기사로 일할 수 있다. 영업용 번호판도 필요 없다. 바로 공유그룹 프로그램을 다운받아 주문을 받으면 된다.

 

일하는 데 필요한 절차가 간단한 만큼, 퀵 기사는 법이 보호하는 영역에서 벗어나게 된다. 특히 퀵 기사처럼 임금을 받으면서 일은 하지만 직접적인 고용관계에 놓이지 않은, 이른바 ‘특수고용직’은 법의 사각지대에 위치해 있다. 4대 보험 적용은 꿈도 못 꾼다. 근로기준법상 노동자로 인정되지 않기에 노동법의 적용도 받지 못한다.

 

무엇보다 ‘보험’ 문제가 치명적이다. 오토바이 운전은 매우 위험하기 때문에 보험 가입이 필수적이다. 특히 산재보험 혜택이 시급하다. 현재 산재법상, 일반 노동자는 사측으로부터 100%의 보험료를 지급받는데 반해, 특고직은 단 6직종만이, 그것도 50%만을 사측으로부터 지원받는다. 게다가 퀵서비스 영업용 오토바이에 드는 보험까지 따지면 퀵 기사들의 실제 수입은 훨씬 적어진다.

 

노동자 복지 시설을 운영하는 안 씨는 “퀵은 운수업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고,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형태로 지난 30년간 있어왔다”며 “이곳은 말 그대로 무법지대, 즉 법이 없다”고 전했다. 그에 따르면 현재까지 노동자들의 투쟁으로 이뤄낸 것은 단 하나, 절반 수준의 산재보험 적용뿐이며, 이를 제외하면 퀵에 대한 정부의 대응은 거의 전무하다고 주장한다.

 

인성공용1센터 나 센터장은 “정부가 제공하지 않는 퀵 기사님들의 복지·혜택 마련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며 “현재 자녀 1인당 50만 원의 장학금 지원 사업, 생계 곤란 기사 지원 사업 등을 시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고고밴코리아의 남 대표는 “고고밴은 현재 수수료를 일절 받지 않는다”며 “더욱이 단가 경쟁을 최대한 지양하면서 실질적으로 기사들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자 한다”고 전했다. 그는 “기사들이 쉴 수 있는 공간이 전무하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고 사내 쉼터를 마련하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고고밴휴게실▲ 고고밴코리아는 기사들을 위한 쉼터가 없다는 사실에 충격 받고 쉼터를 마련했다.

 

속도보다 중요한 것

 

우리의 눈에 보이는 것은 ‘퀵’의 속도다. 퀵이 빠른지 아닌지가 중요하다. 그래서 퀵이 예상보다 늦어지면 “아니, 퀵이라면서요?”라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하지만 조금 더 시야를 넓히고 귀를 기울여 보자. 그러면 보험 혜택 없이 차 사이를 요리조리 피해 다니며 위험한 질주를 하는 기사들의 모습을 보거나, 여기저기서 줄줄 새는 돈에 터져 나오는 기사들의 시름을 들을 수 있을 지도 모르겠다.



김지훈 기자

CLO 옆동네 서울대학교에서 경제학과 인권학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왠지모를 까리한 느낌을 받아 CLO에 불쑥 합류했는데, 합류 첫달 까대기 현장에 보내더군요. 열심히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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