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박정훈 CJ미래경영연구원 수석연구원 / 정리. 김정현 기자
세상이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변화하고 있다. 미래를 예측하는 것이 가능할까 싶을 정도다. 그럼에도 필자는 2017년의 키워드로 ‘물류로봇(Rogistics)’을 강조하고자 한다. 특히 물류의 심장이라고 불리는 물류센터에서 사용되는 로봇(창고로봇)에 큰 변화가 생길 것으로 기대된다.
그렇다면 2017년 창고로봇의 진화를 이끌 플레이어로는 누가 있을까. 이 글에서는 이미 많이 언급된 주연급 선수들 대신 새롭게 떠오르고 있는 유망주, 혹은 ‘씬스틸러’ 기업을 살펴보고자 한다. 그들의 이름을 기억해두었다가 올해 그들의 행보를 지켜보는 것도 재밌을 것이다.
2016년 8월, 미국 시장조사전문기관 CB인사이트(CBINSIGHT)는 ‘창고의 미래(The Warehouse of the Futuer)’라는 제목으로 물류센터 작업 프로세스에 변혁을 가져올 48개 기업을 발표했다. 그 중 창고로봇으로는 16개 업체가 포함되었다. 그 가운데 판을 뒤흔들 ‘다크호스’ 기업 4곳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자. 물론 이 업체들은 각각 다른 매력을 가지고 있다.
③ 시그리드, 물류기기에 눈을 달자
미국 피츠버그에 본사를 둔 시그리드(SEEGRID)는 뉴페이스라고 하기에는 내공과 역사가 깊은 기업이다. 2003년 설립된 시그리드는 자재취급 분야에 ‘비전 기술’을 접목시켜 ‘기계가 눈을 뜨도록’ 만든 개척자로 평가된다. 시그리드는 미국 카네기멜론 대학에서 개발한 기술을 바탕으로 무인자율주행 기술을 위한 ‘비전 시스템’을 지속적으로 개발하고 있다. 특히 판매보다는 연구개발 자체에 중점을 두고 있는 모습이다.
시그리드는 자신을 ‘3차원 비전 네비게이션 소프트웨어 개발사’로 정의한다. 작년에는 비전 분야에서 기술력을 인정받아 로봇 전문매체 RBR(Robots Business Review)이 선정한 ‘50대 로봇기업’에 꼽히기도 했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 자율주행은 무인이동체가 센서와 자기위치 인식 등과 같은 기술을 기반으로 경로를 계획하며 이에 따라 이동한다. 반면 시그리드는 3D비전 인식을 통해 자율주행을 구현하는 방식을 개발했다. 실제 사람이 길을 보면서 움직이는 것처럼, 이동체에 달려 있는 ‘눈’을 통해 장애물을 회피하면서 이동할 수 있는 것이다. 기존의 자율주행과 달리 GPS, 비콘 등 각종 센서나 위치 확인용 ICT 디바이스가 필요 없다는 점도 강점이다.
시그리드 로봇의 눈이 되는 이 시스템은 하나의 솔루션 모듈로 구성되어 있다. 때문에 일반 지게차에도 해당 모듈을 부착하면 ‘무인차’로 운영이 가능하다. 시그리드는 이런 솔루션이 적용된 주행 장치/장비를 VGV(Vision Guided Autonomous Vehicle)라 명명한다. 시그리드는 ‘인프라 불필요’, ‘유동성’, ‘검증된 전문성’ 등 3가지를 대표적인 장점으로 내세운다. 시그리드는 VGV를 집단 제어할 수 있는 관제/통제 소프트웨어인 ‘시그리드 슈퍼바이저(Seegrid Supervisor)’도 함께 제공하는데, 여기에는 여러 대의 로봇에 대한 운영관리, 모니터링, 작업통제 기능이 탑재돼 있다.
또한 시그리드의 기술은 작업자가 직접 승차하여 경로를 주행하는 방식, 즉 ‘직접교시(로봇이 수행할 동작을 프로그래밍이 아닌 실제 동작에 기반해 입력할 수 있는 것)’가 가능하다는 특징을 갖는다. 즉 별도 프로그래밍 없이도 작업 지침을 내릴 수 있어, 작업 간 전환배치가 매우 쉬워진다.
▲ 시그리드의 GP8 팔렛트 트럭
시그리드의 GP8 팔렛트럭은 약 1억 2,000만 원 정도에 판매되고 있으며, 15년 기준 다임러(daimler)사 등의 기업에 약 300대 이상의 판매가 이루어졌다. 시그리드가 자체 경험을 바탕으로 분석한 것에 따르면 기기 도입 후 투자회수 기간은 최대 24개월로 추정된다. 한국의 경우 인건비 차이 등을 감안할 때 3~4년 정도의 투자회수기간이 예상되나 향후 도입가격 하락 등 긍정적인 요인도 있어, 도입의 경제성은 지속적으로 높아질 전망이다.
▲시그리드 고객사. 시그리드의 VGV는 아마존, 월풀, BMW, USPS 등 유수의 제조·유통·물류회사에서 운영중에 있다. 시그리드에 따르면 80억 파운드를 운송하는 과정에서 단 1건의 대인안전사고도 없을 정도로 안전하다.
④ 브레인코퍼레이션, 물류로봇의 ‘브레인’
브레인코퍼레이션(이하 브레인)사는 미국 샌디에이고에 소재한 로보틱스 소프트웨어 전문기업이다. 브레인사의 창업자는 저명한 뇌/신경 과학자인 유진 이즈히케비치(Eugene Izhikevich)다. 뿐만 아니라 브레인사의 37명의 직원들 중에서 15명이 인공지능, 비전 인식, 로보틱스 분야의 박사들로 구성되어 있어, 기업이라기보다는 연구소에 가까운 느낌을 준다.
브레인사는 훈련(Training)에 기반한 ‘로봇 운영 시스템’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다른 로봇업체와 차이점이 있다. 브레인사의 시스템은 훈련을 거듭하면서 스스로 운영수준을 고도화할 수 있다. 마치 인간의 뇌처럼 로봇이 학습을 하는 것이다. 브레인사는 학습가능 시스템인 ‘브레인OS’를 통해 기존 프로그래밍 방식의 로봇이 더욱 자율적으로 작동되도록 업그레이드하는 것에 초점을 두고 있다. 말하자면 브레인사는 자율주행장치를 위한 인공지능 시스템(기계뇌)을 개발하는데 특화된 기업이라고 할 수 있다.
브레인사가 2016년 10월에 공개한 첫 제품 역시 이러한 부분에 초점을 둔 EMMA(Enabling Mobile Machine Automation)라는 이름의 인공지능 ‘뇌(Brain)’였다. 아래 그림에서 보면, 주황색으로 표시된 부분이 EMMA의 영역이다. 기존 기계에 EMMA를 장착함으로써 기계는 인공지능 뇌를 갖고 자율주행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 브레인사의 EMMA를 장착한 로봇. 인공지능 뇌 영역이 주황색으로 표시되어있다.
또한 2016년 10월, 브레인사는 인공지능 뇌와 함께 EMMA가 장착된 실내용 청소차를 공개했다. 이후에는 ICE, NSS, 미니트맨(Minuteman) 등 다수의 청소차 제작업체와 EMMA 장착을 위한 라이센스 계약을 체결하는 등 가시적인 성과를 냈다. 현재 이들 업체의 청소차는 브레인사의 두뇌를 장착한 모델을 순차적으로 출시하고 있으며, 올해 초에는 시중에서 제품을 구매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요컨대 청소차가 기술을 통해 단순한 기계가 아니라 ‘로봇’으로 변신한 것이다. 우리가 주목해야할 것은 이 ‘로봇으로의 변화’이다. 물류장비에 눈을 다는 것도 좋지만, 스스로 학습을 통하여 개선된 작업을 수행할 수 있다면 더 없이 좋지 않겠는가. 필자는 바로 이 부분에 주목하여 청소차를 출시한 브레인사를 ‘미래 물류계’의 다크호스로 지목했다. 앞서 언급한 업체들에 비하면 아직 구체적으로 공개된 물류로봇 분야의 성과는 적지만, 필자 개인적으로는 가장 큰 기대를 걸고 있는 업체이다.
여기까지, 두 번에 걸쳐 총 4개의 창고로봇 업체를 살펴보았다. 지난 3년간 창고로봇은 조용했던 시장형성기를 지나 지속적인 기술발전을 거치며 다양한 업체에서 도입 및 운영되기 시작했다. 뿐만 아니라 전반적으로 로봇시스템 단가가 하락하여 새로운 형태의 로봇 시장이 점차 커지고 있다. 2017년에는 고객 입장에서도 로봇 도입에 따르는 경쟁력이 높아질 것으로 기대된다. 이에 따라 로봇산업은 더욱 가파른 성장세로 들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물론 서두에서 언급했듯 미래는 한 치 앞도 예측하기 힘들다. 이들이 정말 시장의 다크호스가 될지 또 다른 누군가가 그 역할을 넘겨받을지도 알 수 없다. 그럼에도 이 4개 업체들의 행보를 유심히 살펴보는 것은 분명 흥미로운 일일 것이다.
<용어설명>Rogistics=Robot+Logistics의 합성어로 물류용 로봇을 뜻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