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IGHT

해운 위기, 계약서 이면에 폭풍이 몰아친다

by 신태섭

2017년 03월 27일

쓰나미

 

글. 신태섭 트레드링스 CMO

 

필자는 다음커뮤니케이션(현 카카오)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IT기업은 본질적으로 불확실하다는 저만의 근거 없는 생각 때문에 입사 1년이 지난 시점 이직을 결심했습니다.

 

필자의 관심은 물류로 향했습니다. 국가 간 교역량이 매년 증가하고 FTA로 국경이 허물어져가는 것을 바라보면서, 물류와 무역이야 말로 인류의 시대가 끝나지 않는 한 사라지지 않을 산업이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수입량

그래서 선택한 저의 두 번째 직장이 ‘현대상선’이었습니다. 현대상선을 선택한 이유는 현대상선이 글로벌 선사이자 국적 선사라는 점, 2010년 당시 세계 최고 수준의 수익성을 기록하고 있었다는 점, 직원들에게 주재원 근무 등 다양한 해외 경험을 제공해 글로벌 비즈니스맨으로 성장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공한다는 점 등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2011년 필자가 입사한 뒤 해운업은 사상 최악의 불경기를 겪고 있습니다. 그로부터 약 6년이 지난 현재에도 시황은 크게 개선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한진해운 사태처럼 역사에 길이 남을 만한 사건사고가 터져 나오고 있을 뿐입니다.수요공급▲ 수요-공급 곡선. 상품 공급이 증가하면 가격은 내려가고, 공급이 하락하면 가격은 올라간다. 일반적으로 시장에 나온 상품은 소요와 공급 곡선의 흐름을 따라가는 것으로 여겨진다.

 

해운업이 최악의 상황에 처하게 된 배경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이미 많은 분들이 저마다의 문제를 지적했고, 대안을 내기도 했습니다. 필자도 해운업에 직접 종사하며 피부로 느낀 바가 많았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해운업 위기의 이유로 ‘계약’과 관련된 문제를 거론해보고자 합니다.

 

계약서와 현실, 둘 사이의 간극

 

세계 해운물류는 ‘아시아 ↔ 유럽’, ‘아시아 ↔ 북미’, ‘아시아 ↔ 남미’, ‘아시아 ↔ 아프리카’, ‘아시아 역내’ 등의 권역으로 크게 나눌 수 있습니다. 각각의 권역별로 특징 및 특이점들이 존재합니다만, 필자는 세계 최대 권역 중 하나이자 필자가 실제 근무했던 ‘아시아 ↔ 북미’ 노선을 예로 들어 말씀 드리고자 합니다.

 

요컨대 화주와 선사가 체결하는 계약서(Contract)에는 본질적인 문제가 존재합니다. 매년 4월 선사는 수출입 기업(이하 ‘화주’)과 NVOCC(Non-Vessel Operating Common Carrier: 무선박운송인)를 대상으로 한 해 농사를 결정짓는 연간 운송계약을 체결합니다.

 

계약서를 작성할 때 가장 중요한 요소로 ‘운임’과 ‘MQC(Minimum Quantity Commitment)’를 꼽을 수 있습니다. 우선 운임이란 화주가 요청한 구간에 대해 선사가 화물을 옮겨주고 받는 대가입니다. 한편 MQC는 화주가 보장하는 연간 최소 약정 물량입니다. 화주에게 있어 MQC는 선사에게 안정적인 선복(Space)을 할당받을 수 있는 근거가 됩니다. 반대로 선사에게 MQC는 화주에게 경쟁력 있는 운임을 제공할 수 있는 판단의 근거가 되는 한편, 한 해 동안 선복을 안정적으로 운영하기 위한 계획을 수립하는 데 초석이 됩니다.

 

언뜻 보기에 MQC는 화주와 선사가 업무를 합리적이고 원활하게 진행할 수 있게 만드는 수단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계약서 이면에서 돌아가는 실제는 다릅니다. 본래의 취지와는 다르게 화주는 MQC를 과대계상함으로써, 조금이라도 경쟁력 있는 운임을 획득하고자 합니다. 선사는 화주의 MQC 불이행에 대한 리스크를 회피하기 위해 화주가 약속한 물량에 미달하는 운송 실적을 기록할 경우, 모자란 부분에 대해 ‘부적운임(Dead Freight)’을 부과할 수 있는 권리를 지닙니다. 부적운임이란 화물의 실제 선적수량이 선복 예약수량보다 부족할 때 그 부족분에 대해 지급되는 일종의 손해배상금을 말합니다.(무역용어사전)

 

하지만 협상 테이블에서 선사는 화주에 비해 상대적 약자입니다. 때문에 현실적으로 선사가 화주에 부적운임을 청구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이는 특정 선사만의 문제가 아닌, 현존하는 모든 선사가 지닌 고질적인 문제입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화주는 MQC물량을 근거로, 1년 52주 중 고작 몇 주에 불과한 성수기에 자신들이 필요한 선복을 강하게 요구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선사 스스로 권리와 지위를 보장받기 위해 작성한 계약서의 MQC 항목이 도리어 그들의 발목을 잡고 있습니다.

 

간극을 어떻게 메울까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요? 선사는 이러한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화주가 MQC를 과대계상하지 않도록 촉구하고, 약속한 물량을 성실하게 달성하도록 요구해야 합니다. 가장 이상적인 것은 양자가 합리적인 수준에서 신뢰할 만한 수치를 제시하고, 이를 신의성실 원칙에 근거하여 이행하는 것입니다. 이와 함께 소신 있는 부적운임을 부과해 수익성을 개선하고 선사 지위를 재정립할 필요성도 제기됩니다.

 

현재와 같은 상황에서는 제2, 제3의 한진해운 사태가 발생하지 않으리라 그 누구도 장담할 수 없습니다. 주어진 시간은 많지 않습니다. 화주와 선사가 동반자라는 의식을 가지고 서로 배려하고 존중해야 합니다. 해운업을 짓누르고 있는 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실마리는 그 작은 곳에서부터 풀리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신태섭

현대상선, 다음커뮤니케이션 근무 경력을 바탕으로 물류 플랫폼 스타트업 트레드링스에서 CMO 를 맡고 있습니다. 수출입 기업의 물류도우미를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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