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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철', '헌옷', '폐지'로 보는 폐자원 공급망의 비밀

by 임예리 기자

2016년 12월 15일

- 다단계가 당연한 고철 공급망, 피해는 누구에게

- 헌옷으로 기부 아닌 돈버는 민간사업자가 있다는데

- 폐지 공급망 안에서 가수 행위는 무엇일까?

- 탈세의 온상이 되기도 한 폐자원

 

Idea in Brief

한국은 광물자원의 99%, 에너지자원의 97% 이상을 해외에서 수입하는 자원빈국이다. 이에 해외 자원 공급 리스크를 줄이는 방법으로 자원별 수급파악과 이와 관련 데이터 구축, 재활용 비율 증대가 요구된다. 하지만 국내 폐자원 시장은 유통구조가 복잡하고, 때때로 ‘탈세의 온상’이라는 오명을 쓰기도 한다. 고철, 폐지, 의류를 중심으로 재활용 폐자원 공급망과 유통 과정 단계에서 발생하는 일들에 대해 알아본다.

 

글. 임예리 기자

 

기자는 가끔 집에서 캔맥주를 마십니다. 휴일에 혼자 영화를 보며 마시기도 하고, 맛있는 음식과 함께 반주 삼아 마시기도 합니다. 다 비워진 맥주캔은 부엌 한 쪽에 있는 재활용품 전용 쓰레기통에 버려집니다. 기자가 거주하는 아파트 단지는 재활용품 분리수거하는 날이 화요일 하루로 정해져 있어 맥주캔은 신문이나 택배 상자, 페트병 등과 함께 버려집니다. 기자의 손을 떠난 맥주캔은 어디로 가는 것일까요. 바로 제철소로 가는 것일까요.

 

기업의 폐자원, 현대제철은 맥주캔을 사지 않는다

 

폐지, 고철, 유리병, 플라스틱 등 가공을 거쳐 재활용될 수 있는 폐자원은 소상(小商), 중상(中商), 대상(大商)을 거쳐 폐자원 재생업체나 폐자원을 원재료로 매입하는 업체에 납품됩니다. 흔히 '동네 고물상'으로 불리는 업체는 소상, 소상들로부터 폐자원을 매입하는 업체는 중상, 중상으로부터 폐자원을 모아 매입업체로 최종 납품하는 업체는 대상이라 불립니다.

 

현재 한국 폐자원 시장은 작은 소상들이 난립해 있습니다. 폐자원은 보통 무게 단위로 거래가 이루어지기 때문에 최대한 많은 물량을 확보하기 위해 소상은 직접 폐자원을 수거하거나 개인으로부터, 한 중상은 여러 소상으로부터 폐자원을 매입합니다. 즉, 버려진 맥주캔이 현대제철로 들어가기까지는 최소 두 개 이상의 중간상을 거치게 됩니다. 이는 폐지나 플라스틱 등 다른 재활용 폐자원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됩니다.

자원사▲ 자원사 한 편에 쌓여있는 고철 폐기물. 분류 작업을 거쳐 대상으로 옮겨진다.

 

폐자원의 최종 매입가격에는 여러 중간상을 거치면서 자연스레 유통마진이 더해집니다. 이 과정에서 정보의 비대칭성으로 인한 가격 왜곡이 발생하기도 합니다. 가령 철 스크랩은 현대제철이나 포스코 같은 대형 제철업체에서 매입가격을 공시합니다. 제철업체는 대상으로부터 폐자원을 매입하므로 보통 가격은 대상에게 공시됩니다. 대상은 다시 중상이나 소상에게 가격을 공시합니다. 따라서 폐자원의 단위 가격이 내려가게 되면 폐자원 수거의 가장 말단을 담당하는 영세 소상인은 큰 타격을 받습니다.

철 스크랩: 쇠 부스러기, 파쇠 등을 일컫는 말. 철광석, 연료탄과 함께 철강산업의 3대 원료로 불린다. 발생원인에 따라 자가발생 철스크랩(철강회사의 제조공정에서 발생), 가공 철스크랩(자동차회사 등에서 가공시 발생), 노폐 철스크랩(최종제품의 유용성 소실, 폐기시 발생)으로 나뉜다.

 

그렇다고 중간상들이 아무런 역할 없이 제 뱃속만 부리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폐자원 공급망 속의 중간상들은 제 나름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대형 제철업체는 최소 몇 톤 이상 되는 원자재를 안정적으로 매입하길 원합니다. 개인이나 소상의 경우 철강회사와 거래하기에는 확보한 물량이 부족합니다. 이런 연유로 현대제철은 기자가 가진 맥주캔을 직접 매입하지 않고, 대상과 거래합니다.

 

중간상은 또한 폐자원을 분류하는 역할도 합니다. 철 스크랩의 경우 생철, 중량철 스크랩, 경량철 스크랩, 가공철 스크랩, 선발설로 나뉘고 그 안에서도 등급이 나뉩니다. 등급마다 철스크랩의 가격이 다르고, 처리 방법이 달라서 중간상은 이를 분류하고, 폐자원을 압축해 유통하기 쉬운 형태로 만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복잡한 국내 폐자원 공급망과 유통구조는 여전히 영세한 자원사나 개인에게 불리한 것이 사실입니다. 실제로 한 자원사 관계자는 자원사를 운영하면서 가장 어려운 점이 무엇인가 묻는 기자의 질문에 “폐자원의 가격은 주식처럼 수시로 변한다”며 “이를 잘 인지하지 못해 사고팔 때 불리한 가격으로 거래하게 되면 난감하다”고 밝혔습니다.

작업중▲ 한 소상에서 철 스크랩을 분류해 화물차에 싣고 있는 모습. 자원사가 취급하는 품목은 주로 주위 환경에 따라 달라진다. 용인이나 광주처럼 물류창고가 많은 지역에서는 폐지를 수거하는 자원사가 많고, 제조업체가 많은 공단 부근에는 고철을 수거하는 자원사가 많다.

 

생활속 폐자원① 헌 옷이 모이는 곳

 

고철이나 비철과 같은 폐자원이 사업장에서 많이 나오는 것처럼 헌 옷은 가정에서 많이 나오는 폐자원 품목입니다. 가정에서 배출된 헌 옷은 보통 의류수거함, 중고품 상점, 지자체 재활용품 선별장 세 가지 경로를 통해 처리됩니다. 업계에서는 가정에서 배출된 헌 옷의 95% 정도가 의류수거함을 통해 유통되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습니다. 의류수거함을 통해 수거된 헌 옷은 수거업체에 의해 옷 공장으로 옮겨져 선별 작업을 거치게 됩니다.

 

의류수거함의 설치장소는 크게 공동주택지와 단독주택지로 나뉩니다. 아파트 단지와 같은 공동주택지는 해당 단지의 관리사무소, 부녀회 등과 폐기물 수거업체가 협의하여 의류수거함을 설치합니다. 일정 기간 계약을 맺어 공동주택에서 나오는 헌 옷에 대한 독점권을 사고 이를 관리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한 번쯤 길거리를 지나다니다가 단독주택 근처나 전신주 옆이나 골목길 모퉁이, 도로변에 설치된 의류수거함을 본 기억이 있을 것입니다. 이런 의류수거함들은 보통 단독주택 지역에 많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국민권익위원회의 지난 7월 실태조사에 따르면, 현재 전국의 의류수거함은 약 10만 개입니다. 하지만 그중 대부분은 불법 설치된 것으로 파악됩니다.

 

도로법 제61조에 의하면 공작물 물건적치, 시설의 신설 개축 변경 또는 제거하거나 그 밖의 사유로 도로를 점용하고자 하는 경우에는 도로관리청에서 도로점용 허가를 받도록 의무화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의류수거함이 도로점용대상 여부인지는 명확하게 나와 있지 않습니다. 이 때문에 의류수거함 설치에 대해 도로법을 적용하는 자치단체도 있고, 그렇지 않은 자치단체도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국민권익위원회의 동조사에 따르면 전국 226개 자치단체 중 11개 자치단체만이 도로점용허가 후 의류수거함을 설치, 운영하고 있습니다.

의류수거함▲ 모양과 형태가 제각각인 의류수거함.(사진= 국민권익위원회 실태조사)

 

지역마다 모양과 크기가 제각각인 의류수거함은 그 자체로 도시미관을 해치기도 하지만, 쓰레기 불법투기의 거점이 되기도 합니다. 의류수거함에 헌 옷만 넣어야 하는데 많은 사람들이 일반 쓰레기와 함께 베개나 이불 등 재활용할 수 없는 생활폐기물을 함께 버리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의류수거함에 대한 관리업무 주체가 명확하지 않아 이에 대한 관리는 미흡한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이유로 의류수거함은 가장 쉽게 헌 옷을 처리할 수 있는 창구임에도 불구하고 골칫덩이로 여겨집니다. 의류수거함이 설치된 지역에 사는 주민들은 주위 환경이 더러워지므로 의류수거함 철거를 원하고, 수거업체는 헌 옷과 폐기물을 선별하는 데 비용과 부가적인 노력이 든다고 호소합니다. 하지만 모호한 관리책임 탓에 정작 의류수거함 주위 폐기물 처리는 결국 지자체의 비용으로 처리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한편, 얼마 전 장애인단체나 복지단체 명의로 의류수거함을 설치해 수거한 의류를 유통하여 돈을 버는 민간 사업자들의 이야기가 매체에 보도되며 큰 파동을 일으키기도 했습니다. 불우이웃을 돕는 곳에 쓰이는 줄 알았던 의류수거함의 헌 옷이 사업의 도구로 이용된다는 소식에 배신감을 느낀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폐기물 관리 측면에서 보면 폐기물은 소각·매립보다 재활용이 우선이고, 재활용보다는 재사용이 우선입니다. 따라서 헌 옷 대부분이 민간 사업자에 의해 수익 창출 목적으로 유통된다 할지라도 이를 비난하기는 어렵다는 것이 업계의 설명입니다.

 

하지만 국내 중고품 시장의 관점에서 보면 과다한 의류수거함 설치수와 헌 옷의 해외 유출은 국내 재사용 의류의 유통체계 형성을 방해하는 요소가 됩니다. 업계에서는 옷 공장에서 선별 작업을 거쳐 재사용할 수 있는 의류의 95% 이상이 외국으로 유통되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국내 중고 의류시장을 활성화하기 위해서 일방적으로 빠져나가는 중고의류를 순환시키는 체계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존재합니다.

 

홍수열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 소장은 “의류를 포함해 현재 국내 중고물품 시장은 수익성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어 아름다운 가게와 같이 재사용 운동의 관점에서 출발한 인프라가 부족하다”며 “지자체에서 재활용품을 수거하는 것처럼 중고물품 순환에 대한 공공인프라를 만들 필요성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생활속 폐자원② 폐지 공급망의 함정

 

몇 년 전, 기자는 한 웹툰에서 인상적인 장면을 본 적이 있습니다. 어느 겨울 폐지를 줍는 노인이 고물상에 와서 폐지를 내려놓자 주인이 난데없이 폐지 위에 물을 뿌립니다. 옆에 있던 직원이 “눈이 와서 먼지가 날리지도 않는데 왜 물을 뿌리느냐”라고 묻자 주인은 “폐지 값을 더 쳐주기 위해서 그랬다”라고 답합니다. 고물상 주인은 따뜻한 마음으로 폐지 위에 물을 뿌렸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유통과정 전체를 생각하면 이는 옳은 행동이라 보기 힘듭니다.

 

폐지는 의류와 함께 일반 가정에서 나오는 재활용 폐자원 중 가장 수익성이 높은 품목으로 취급됩니다. 폐지 역시 다른 물품과 마찬가지로 소상에서 중상을 거쳐 폐지를 압축하는 업체, 혹은 바로 제지업체로 공급됩니다. 국내 폐지 유통 과정에서 가장 큰 문제는 이물질이 섞이거나 가수(加水) 행위가 이뤄진다는 것입니다. 폐지의 재생과정에서 이물질을 제거하는 데에는 추가적인 비용과 노력이 필요합니다. 재활용 펄프로 만들어지기도 하는 휴지가 다시 재활용되지 못하는 ‘일회용품’인 이유입니다.

 

가수(加水)란 쉽게 말해 폐지에 물을 뿌리는 행위입니다. 폐지에서 나오는 먼지를 잡기 위해 물을 뿌리기도 하지만 이를 악용해(혹은 선의라고 하더라도) 물을 뿌려 인위적으로 무게를 늘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물에 젖은 폐지는 잘 썩기 때문에 장기 보관이 힘듭니다. 언젠가부터 폐지 거래 과정에서 가수 행위가 빈번하게 발생했고, 이 때문에 대상이나 제지회사에서는 이로 인한 손해를 막기 위해 폐지를 매입할 때 감량, 즉 측정된 무게보다 적게 무게를 달기 시작했습니다.

 

폐지는 1kg을 기본 단위로 가격이 매겨지고, 철 스크랩과 마찬가지로 제지업체 등 최종매입업체가 가격을 공시합니다. 가격은 국내 공급되는 폐지와 수입폐지의 공급이 고려되어 결정됩니다. 가격은 업체별로, 또 지역별로 조금씩 다릅니다. 폐플라스틱과 유리병의 상황도 비슷합니다.

지역별 폐지 신문지 가격 동향

또한 수입되는 폐지는 국내에 들어오기 몇 달 전에 주문됩니다. 때문에 막상 국내에 도착했을 때 폐지의 수급 균형이 묘하게 틀어질 때가 있습니다. 이런 이유로 시장에 폐지가 공급과잉 상태가 됐을 때, 특히 가격변동이 급작스럽게 이뤄지면 개인이나 소상같이 하위 단계의 유통 주체는 이에 대응하기 힘들어집니다. 즉, 폐지 가격이 급작스럽게 내려간다면 가수 행위가 일어나게 되고, 매입업체는 다시 감량을 더 하게 되는 악순환이 반복됩니다.

 

홍 소장은 “폐자원 산업의 복잡하고 불투명한 유통과정, 명확한 매입가격 두 가지가 맞물리며 악순환되는 것이 업계의 고질적인 문제”라며 “분기별로 가격을 책정하거나 유통 주체들의 협의를 통해 시장이 운영될 필요가 있다”고 전했습니다.

 

불투명한 공급망의 악용사례, 탈세

 

재활용 폐자원 거래는 의제매입세액공제를 적용받습니다. 정상적인 사업자 간에는 세금계산서를 발행하고 사업자 통장을 이용해 거래합니다. 하지만 개인과 거래하는 일이 잦은 자원사의 경우 개인을 대상으로 일일이 세금계산서를 발행하기 힘든 것이 사실입니다.

의제매입세액공제: 부가가치세가 면제되는 재화를 구입하여 매입세액이 없는 경우에도 일정한 요건이 해당하는 때에는 그 매입가액 중에 일정한 매입세액이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간주하여 계산한 일정액을 매출세액에서 공제하는 세액.

 

의제매입은 이를 보완하기 위해 도입된 제도입니다. 가령 A라는 자원사가 B라는 노인으로부터 폐지를 매입했다고 합시다. 노인인 B는 계산서를 발행하기 힘들고, 부가가치세를 납부하기도 힘듭니다. 복잡한 유통구조와 현금 거래가 많은 업계의 현실을 인정한 정부는 A자원사가 B에게 부가가치세까지 포함해 대금을 준 것으로 가정합니다. A자원사는 매입금액과 B의 서명, 주민등록번호가 적힌 영수증이나 거래장부 등을 통해 둘 사이의 거래를 증명해 부가가치세를 면제받습니다.

 

하지만 이를 악용하는 자원사도 있습니다. 매입가격을 과도하게 부풀려서 신고하거나, 아예 거래가 없었음에도 주민등록번호 등을 확보해 허위 계산서를 발행해 세금 공제를 받는 것입니다. 이런 연유로 고물상은 ‘탈세의 온상’이라는 오명을 쓰기도 합니다. 이로 인해 폐자원 의제매입에 적용되는 공제율은 2013년 6/106, 2015년 5/105, 현재는 3/103까지 낮아졌습니다.

 

국세청은 폐자원사의 탈세를 방지하기 위해 지난달 1일부터 ‘철 스크랩 부가가치세 매입자 납부제도’를 시행하고 있습니다. 금, 은, 동, 구리 스크랩에만 해당했던 제도가 철 스크랩으로 확대 적용된 것입니다. 해당 제도는 철 스크랩 구매자가 구매대금을 부가가치세 매입자 납부전용계좌에 입금하면 은행 거래 대금에서 부가가치세를 제외한 금액을 판매자에게 지급하도록 하는 제도입니다. 철 스크랩을 매입한 사업자는 거래대금과 함께 지불한 부가가치세액을 자신해 내야 할 부가가치세액 범위 내에서 실시간으로 환급받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전용계좌를 사용하지 않고 거래 대금을 주고받으면 매수자와 매입자 모두 가산세 부과와 같은 불이익을 받을 수 있습니다. 폐자원의 시세가 점점 내려가는 추세에서 이런 제도가 영세 업체와 빈곤층에게 큰 타격을 줄 수 있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한 업계 관계자는 “대형 자원사는 거래량과 금액이 크기 때문에 이전부터 세금계산서로 거래한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공제율의 축소는 오히려 영세 자원사에게 치명적이다”며 “폐지나 고철에 대한 자원사의 마진은 대개 1kg 당 20원 내외인데 매출, 매입에 관계없이 품목에 대한 평균 마진율을 적용해 그것을 기준으로 부가가치를 적용하는 방안도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임예리 기자

三人行,必有我师。 페이쓰북 / 이메일: yeri@cloma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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