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인가구와 택배기사 사칭 법죄 증가, 택배 대면수령에 대한 불안 증대
대안으로 부상한 ´무인보관함´, 택배수령 거점으로
´서울시´, ´편의점´, ´주택공사´, ´지하철´의 무인보관함 활용사례
글. 김정현 기자
Idea in Brief 1인 가구, 맞벌이 가구가 늘면서 택배기사가 배송차 방문해도 집에 사람이 없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뿐만 아니라 택배기사의 신원을 가장한 사고들이 발생하면서 사람들의 직접 대면 수령에 따른 불편함, 범죄 노출에 대한 우려 또한 증가하고 있다. 이로 인해 직접 택배기사와 대면하지 않고, 집이 아닌 다른 곳에서 택배를 대리수령하고자 하는 수요가 증가하고 있다. 이런 추세와 함께 대두된 것이 ‘무인보관함’이다. 하나의 물류 거점으로 활용되기 시작한 무인보관함이 다양한 업체들과 협업한 사례를 살펴보자. |
# 얼마 전 오후 2시, 사무실에서 일하고 있는데 엊그제 주문한 택배가 오늘 도착한다는 문자 메시지가 날아왔다. 오후 6시 전까지 집에는 택배를 받을 사람이 없어서 항상 상품 주문 시 ‘부재시 경비실에 부탁드려요’라는 메모를 남긴다. 의례 이번에도 경비실에 택배가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6시 업무를 마치고 경비실에 들렀지만 경비아저씨는 받은 택배가 없다고 한다. 서둘러 올라가자 대문 앞에 택배가 놓여 있었다. ‘만에 하나 누가 가져갔으면...’ 아찔한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비단 기자만의 경험이 아닐 것이다. 1인 가구, 맞벌이 가구가 증가하면서 택배 기사를 직접 만나 택배를 수령하는 일이 줄어들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5년 10월 기준 한국의 유배우자 가구는 1185만 8천 가구이며, 이 중 맞벌이 가구는 520만 6천 가구로 유배우자 가구의 43.9%를 차지한다. 이는 2014년 대비 2만 가구가 증가한 수치이다. 1인 가구 또한 우리나라 전체 인구의 1/3로 추정된다. 통계청에서 집계한 가구유형별추계가구 자료에 따르면 2035년까지 서울특별시 1인 가구 숫자는 126만 4976명으로 증가할 전망이며, 이는 2010년에 비해 48% 증가한 수치이다.
맞벌이 가구나 1인 가구가 늘면서 택배원이 가구를 방문해도 집에 사람이 없는 경우가 많고, 직접 택배를 받는 것을 꺼리는 인구가 늘어나면서 해마다 택배 위탁을 선호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뿐만 아니라 택배기사 신원을 가장한 사고들이 발생하면서 사람들의 직접 대면 수령에 따른 사생활 노출 문제, 불편함, 범죄 노출에 대한 우려가 함께 증가하고 있다. 이러한 사회적 양상은 직접 택배기사와 대면하지 않고, 집이 아닌 다른 곳에서 택배를 받고자 하는 수요를 증가시켰다.
“소화전 안에 넣어주세요, 화분 뒤에 숨겨주세요” 택배 위탁처가 없는 경우 각종 장소에 택배 보관을 요청한다.
유통업체에서 SCM을 담당하고 있는 한 차장은 “직접 배송기사와 대면하지 않고 택배를 수령하고자 하는 고객 니즈가 증가하고 있다. 자사 택배 수령방식에 대한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고객의 43%가 택배를 위탁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위탁처도 경비실부터 인근 세탁소, 편의점 등으로 다양해지고 있다”며 “하지만 이렇게 위탁처를 통해 대리 수령을 할 경우 업주 눈치도 보이고 분실시 책임 소지 문제가 있기 때문에 최근에는 무인보관함이 하나의 방법으로 떠오르고 있다”고 설명했다.
변하는 사회 상황에 맞춰 무인보관함이 다른 산업들과 협업한 사례들이 속속 등장하면서 무인보관함이 하나의 물류 거점으로 대두되고 있다.
① 서울시가 전하는 ‘여성안심택배’
서울시는 무인택배보관함을 통해 택배를 받아볼 수 있는 ‘여성안심택배’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다. ‘여성안심택배’는 낯선 사람을 대면하지 않고 집 주변에 설치된 무인택배보관함을 통해 원하는 시간에 택배를 받을 수 있는 서비스다. 택배기사를 가장한 강도사건 등 여성을 타깃으로 한 범죄를 예방하기 위해 서울시가 2013년 7월 전국 최초로 도입했다.
‘여성안심택배함’ 서비스는 50개소를 시작으로 이용률이 증가함에 따라 2014년 100개, 2015년 120개로 설치대수가 늘어났으며 2016년 6월부터는 160개로 확대 운영되고 있다. 서울시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현재까지 여성안심택배함의 총 누적 이용자 수는 53만 명 이상이다.
여성안심택배함은 주로 여성 인구가 많이 분포된 다가구, 다세대, 주택가와 범죄취약지역인 원룸촌을 중심으로 설치됐다. 또한 시민들이 쉽게 찾을 수 있는 지역주민센터, 주민이 많이 방문하는 문화센터 등 지역 거점 중심으로 안심택배함을 설치했다. 특히 올해 증설한 40개소의 경우 여성 1인 가구 밀집도와 택배주문 다수 지역 등 데이터를 고려해 선별했다고 서울시는 전했다. 서울시 ‘여성안심택배함’은 이제 서울을 넘어 대구시청, 제주도청, 부산시청, 광주 광산구청, 경기도 성남시청 등의 시·도가 벤치마킹해 운영, 전국으로 확산되고 있다.
② 편의점 속 무인보관함
사진= CU의 무인보관함
편의점 3사는 각각 무인보관함을 이용한 배송 서비스를 기획하고 있다. BGF리테일은 올해 1월부터 무인택배보관함 서비스를 도입했다. BGF리테일 측은 부재중인, 혹은 1인 거주자와 같이 택배 수령이 불편한 고객들이 편하게 택배를 이용할 수 있도록 24시간 사용 가능한 ‘택배보관함’을 설치했다고 설명했다. 고객이 택배기사에게 위탁을 원하는 CU편의점 점포명을 사전에 알려주면 택배기사가 편의점 사물함에 택배를 보관하는 형식이다. 보관 즉시 고객의 핸드폰으로 보관함 번호와 일회용 비밀번호가 발급되며 고객은 편한 시간에 해당 점포를 방문해 1000원의 수수료를 지불하고 물건을 찾아갈 수 있다. 무인보관함은 별다른 업무제휴 없이 이용할 수 있다. BGF리테일 관계자는 “1인 가구가 많은 지역부터 우선적으로 편의점 내 택배보관함을 늘려나갈 계획”이라고 언급했다.
사진= GS25의 무인보관함
GS리테일은 올해 9월, 이베이코리아와 협업해 무인안심택배함 ‘스마일박스’ 서비스를 시작했다. 스마일박스 서비스는 G마켓, 옥션, G9에서 상품 구매시 근처 GS25에 설치된 스마일박스에서 택배를 받아볼 수 있도록 만든 서비스다. 현재 1인 가구가 밀집한 관악구, 강남구, 송파구 등 서울 내 50개 GS25 편의점에 설치됐다. 고객 주문시 배송지를 스마일박스가 설치된 GS25 점포를 지정하면 해당 택배는 그 점포로 발송이 되며 택배 도착 즉시 고객의 휴대폰으로 인증번호가 전달된다. CU의 무인택배보관함과 마찬가지로 24시간 이용 가능하며 이베이 측에서 전담 콜센터를 운영하는 등 맞춤형 배달 시스템을 구축했다. 이베이코리아 관계자는 “1인 가구, 맞벌이, 다세대주택 거주자 등 집에서 직접 택배를 받기 곤란했던 고객들이 보다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을 것”이라 강조했다.
사진= 롯데의 스마트픽 서비스
롯데가 2014년부터 시도해온 ‘스마트픽’은 고객이 온라인에서 주문한 상품을 지정한 오프라인 매장에서 받아갈 수 있는 서비스다. 물건 수령이 가능한 오프라인 거점 중 하나는 세븐일레븐 편의점이다. 현재 전국 세븐일레븐 4만 2000개 점포에서 스마트픽 서비스 이용이 가능하다. 일부 편의점 점포에는 무인보관함(픽업라커)이 설치되어 있어 고객은 원하는 시간에 편의점을 방문해서 상품을 수령할 수 있다. 백화점과 같은 스마트픽 거점은 영업시간 중 방문을 해야만 수량이 가능하지만 편의점 보관함의 경우 24시간 운영되어 백화점 영업시간 외에도 고객이 원하는 시간에 언제든지 주문 상품을 찾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③ 아파트, 빌라에도 무인보관함 빌트인
서울주택도시공사는 택배 물품 수령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을 위해 다가구, 다세대 등 소규모 임대주택 33개동 4476세대에 무인택배보관함 326개를 설치한다고 지난 7월 밝혔다. 임대주택 입주민들이 1인 가구, 맞벌이 가구 등이 많아 직접 택배 배송기사와 대면 수령이 어렵다는 점을 고려해서 무인택배 시스템을 도입하게 되었다는 것이 서울주택도시공사의 설명이다.
사진= 서울주택도시공사의 무인보관함
최근 온라인 주문과 TV홈쇼핑 이용 증가로 택배물량이 급증세를 보이고 있지만, 소규모 임대주택의 경우 정작 쏟아지는 물건을 수령해줄 경비실 등 상시 관리인이 없어 입주민들의 불편이 컸다는 것이다. 이에 서울주택도시공사는 소규모 임대주택 입주민의 불편을 해소하여 입주민의 삶의 질과 주거만족도를 높이기 위해 무인택배보관함을 설치하기로 했다.
서울주택도시공사에 따르면 실제로 무인보관함 도입 후, 외부 배달기사와 직접 대면 수령에 따른 불편 및 사생활 노출, 택배 기사를 가장한 범죄 노출 우려가 획기적으로 줄어들게 됐다.
서울주택도시공사 정갑수 처장은 “올해 8월부터 설치하여 9월까지 다가구 다세대 무인택배 보관함 설치를 완료할 예정”이라며 “앞으로 다가구 매입 및 건설 시 세대수가 일정 규모 이상일 경우에는 무인 택배보관함 설치를 의무화할 계획”이라 설명했다.
④ 서울도시철도공사의 해피박스
서울도시철도공사(이하 공사)는 사물인터넷(IoT)을 적용한 물품보관함인 ‘해피박스(Happy Box)’를 작년 말부터 운영했다. 해피박스는 택배기사가 물건 보관 시 고객 휴대폰 번호를 입력하면 해당 번호로 보관함 위치와 일회성 비밀번호가 전송되는 방식을 사용한다.
사진= 무인보관함 업체 ´스마트박스´가 에뛰드하우스와 제휴하여 제공하는 해피박스 서비스
작년 12월, 공사는 현대홈쇼핑과 연계해 무인보관함에서 택배를 수령할 수 있는 ‘지하철 안심배송’서비스를 시작했다. 이어 두 번째는 에뛰드하우스와 협약을 체결해 56개 역사에 에뛰드 전용함을 배치했다. 올해 5월부터 온라인으로 주문한 에뛰드하우스 화장품을 지하철 역사에 설치된 물품보관함인 해피박스에서 수령할 수 있는 서비스를 시작했다.
공사 관계자는 “지하철역은 시민들이 주로 이용하기 때문에 접근성 측면에서 쉽게 이용할 수 있다는 점을 활용했다. 이러한 지하철의 특징을 이용해 해피박스를 만든 것”이라며 “지속적으로 해피박스를 이용한 배송서비스를 확대할 예정이다. 특히 외출 시 택배를 수령할 사람이 없는 1인 가구가 늘어나는 추세 속에서 매력적인 서비스가 될 것”이라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