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스트마일이 불러올 참극(?)
‘저단가’, ‘고품질’ 물류서비스는 가능할까
Idea in Brief
그야말로 라스트마일의 시대다. 라스트마일 배송이 서비스 접점에서의 경쟁력으로 유통, 물류업계의 화두가 되면서 수많은 업체들이 색다른 서비스로 무장하여 고객접점을 공략하고 있다. 현재의 라스트마일 물류 서비스는 이례적인 ‘저단가’, ‘고품질’ 물류 서비스를 형성하면서 고객들의 만족도를 높이고 있다. 그러나 서비스와 단가는 서로 상충관계(Trade-off)로 양립할 수 없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공급자가 됐든, 하청업체가 됐든, 배송인이 됐든 누군가는 늘어나고 있는 비용을 감당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더욱이 소비자는 저렴하고 품질 높은 물류 서비스에 익숙해지고 있다. 피의 경쟁의 끝에서 누군가는 그 피해자가 될 수 있다. |
글. 권정욱 콜맨코리아 SCM팀장
라스트마일(Last-mile)이 최근 유통, 물류업계의 화두로 떠오르면서 자연히 라스트마일 배송(Last-mile delivery)에 많은 관심이 쏠리고 있다. 특히 온디맨드(On-demand), O2O 관점에서 본다면, 라스트마일 배송은 더욱 중요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러나 사실 ‘라스트마일 배송’이라는 용어가 오늘날 업계 트렌드로 대두되기 이전에도 라스트 마일 배송 서비스를 제공하던 업체는 많았다.
얼마 전 필자는 교통사고로 인해 차량 수리를 맡겼었다. 당시 회사 업무로 인해 차량을 직접 찾으러 가기 어려운 상황이었는데, 해당 업체는 고객이 원하는 곳까지 차량 탁송이 가능하다고 하더라. 사실 신차를 구매하더라도 굳이 자동차 전시장까지 가지 않더라도 집까지 탁송 받는 서비스는 아주 오래전부터 있었다. 자동차 업계의 라스트마일 배송이다.
냉장고, 에어컨 등 가전제품을 구매할 경우에도 설치기사가 방문하여 고객이 주문한 상품을 배송, 설치해준다. 이 또한 아주 오래전부터 있었던 서비스다. 가전업계의 라스트마일 배송이다.
그렇다면 차량이나 가전제품 등 부피가 큰 제품만 라스트마일 배송이 가능한 것일까. 아니다. 새로운 신용카드를 모바일로 발급하면, 해당 카드는 직장 등 고객이 원하는 곳에서 카드를 수령할 수 있다. 이마저도 여의치 않으면 가까운 은행지점으로 배송시키고, 찾아가는 서비스 또한 존재한다. 우리 생활 속의 라스트마일 배송이다.
그렇다면 예전부터 있었던 라스트마일 배송이 왜 이제 와서 물류, 유통업계의 큰 화두가 되었을까. 이는 여러 업체들이 자신의 제품과 서비스에 맞춰 전혀 새로운 ‘라스트마일 배송’을 개발, 발전시켰기 때문이다. 라스트마일의 접점에는 그들의 매출과 직결되는 ‘소비자’가 존재함은 물론이다. 라스트마일에 감성을 입힌 쿠팡의 ‘로켓배송’, 새벽에도 냉장 상태의 배송이 가능한 마켓컬리의 ‘샛별배송’ 등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라스트마일 배송의 경쟁 과열을 바라보면서 우려스러운 점 또한 존재한다. 업계 전반의 발전을 위해 선의의 경쟁을 하며 소비자에게 주어지는 혜택을 늘리는 것은 분명 긍정적이다. 그러나 혁신적이고 참신한 라스트마일 배송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그에 상응하는 ‘비용’이 따라온다.
대표적으로 유통업체와 배달 스타트업간의 라스트마일 배송 서비스 경쟁 또한 격화되고 있다. 두 산업 모두 라스트마일 배송의 목적은 소비자에게 보다 나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다. 건전한 경쟁은 산업 발전의 동력이기에 이것을 지적할 수는 없다.
문제는 라스트마일 배송이 치킨게임의 양상을 띠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사실 서비스와 단가는 상충관계(Trade-off)에 놓여있다. 그런데 최근의 라스트마일 배송 서비스는 대부분이 ‘저단가’로 ‘고품질 서비스’를 추구하는 양상으로 흘러가고 있다. 저단가로 고품질 서비스를 제공하다보니 그것을 받는 소비자의 눈은 높아져만 간다. 그리고 이를 견디지 못하는 업체는 시장에서 사라진다. 이것의 반복이다. 결국 최후의 승자 혹은 소수의 승자가 남게 되어도 상처뿐인 영광이며, 저단가 경쟁의 최종승자는 그때까지 흘린 피를 보상받고자 물류비를 올릴 가능성 또한 존재한다.
물류업체 또한 라스트마일 서비스를 개선하고자 수많은 솔루션을 제공하고 있다. 무인보관함, 편의점 등을 활용한 취급점 배송 개발이 대표적이다. 이는 물류산업 발전 측면에서는 분명 긍정적이며, 틈새시장을 공략함으로 인해 고용 창출이 일어나는 효과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안에서 그 누군가는 어떤 형태로든 ‘개발 비용’, ‘운영 비용’을 부담하고 있을 것이다.
비용을 부담하는 자는 누구일까. 그것은 하청업체가 될 수도 있고, 최종 소비자가 될 수도 있다. 라스트마일단에서 배송을 담당하는 ‘지입기사’가 될 수도 있다. 혹여 솔루션 개발에 따른 ‘비용 상승’이 없다고 하더라도 소비자가 체감하는 서비스의 질은 낮아지는 결과를 초래한다.
지난해 누리꾼들을 떠들썩하게 했던 이슈 중 ‘택배차량 진입 거부 아파트’ 사례가 있다. 안전을 이유로 아파트 단지내 택배차량 진입을 금지하고, 택배기사들이 ‘걸어서’ 택배배송을 하도록 만든 사건이다. 택배기사들은 아파트의 횡포에 분개하여 결국 해당 아파트로 배송되는 상품을 반송시키기 시작했다. 종국에는 누가 택배 거부를 먼저 했는지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 피해는 택배를 받는 소비자에게로 돌아갔다.
택배기사가 제공하는 저렴한 라스트마일 물류 서비스가 당연한 줄 알았던 인식이 부른 참극이다. 만약 택배가 아닌 ‘자동차 탁송차량’이나 ‘냉장고, 에어컨 설치기사’였다면 아파트 관리실에서 단지 내 차량 진입을 막았을까. 마찬가지로 소비자가 받아야 할 물건이 자동차나 냉장고였으면, 소비자는 그것을 ‘경비실’에 맡겨달라고 요청할 수 있을까. 택배차량 진입거부 아파트 사례에서 아파트 관리실, 택배기사, 소비자 중 누가 가해자이고, 누가 피해자일까. 의문이 앞선다.
결국 라스트마일 배송을 개선하는 솔루션이나 대안보다는 물류 서비스에 대한 우리의 인식 전환이 우선되어야 한다. 라스트마일에서 벌어지고 있는 치열한 전쟁은 결국 택배차량 진입거부 아파트 사례처럼 누구도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만 양산하는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다. 공급자, 배송인, 소비자 모두 물류 서비스에 대한 인식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며 이 인식전환을 기반으로 서로 합의된 내용을 기초로 산업 전반을 성장시킬 수 있는 기술 활용을 검토해야 한다.
현재의 라스트마일 배송 구조는, 피해자가 누군지도 모르는 현실을 남긴 채 환상처럼 사라질 수 있다.
식품, 타이어, 자동차, 반도체, 주류회사 등에서 다양한 물류를 경험한 현장 전문가. 현재는 콜맨코리아에서 SCM팀장직을 맡으며 ‘다품종소량’ 물류 업무를 주로 수행하고 있다. ‘물류가 세상을 바꾼다’는 신념을 갖고 언젠가는 CLO가 CEO가 되는 시대가 오길 바라며 보다 나은 SCM(Better SCM forward)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