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퀵에도 미친 '저단가' 여파... 최저임금도 못받는 기사의 현실
주먹구구가 당연한 지하철퀵 업계, 영세업체 중심의 시장 형성
퀵퀵의 지하철 공유망 시동, 시스템 활용해 지하철퀵 현실 개선 목표
지하철 퀵서비스는 65세 이상 노인이 지하철 무임승차가 가능하다는 점에 착안해 탄생했다. 이론적으로 지하철 퀵서비스는 사회간접자본인 ‘지하철’을 활용하기 때문에 배송 인프라 구축비용이 전혀 들지 않으며, 배송인이 지하철에 무임승차할 수 있기 때문에 배송비(지하철 요금) 역시 들지 않는다. 이런 이유로 ‘노인복지의 영리 활동’이라는 논란만 차치한다면, 지하철 퀵서비스는 꽤 경제성 있는 사업 모델이 될 수 있어 보인다.
그런데 이상하다. 지하철 퀵서비스가 등장한 지 10년도 넘게 지났지만, 아직도 업계에는 영세한 군소기업이 대부분이며, 지하철 기사는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수익을 받으며 일하고 있다. 실제로 하루 3개 이하의 주문을 수행하는 기사가 벌어들이는 수익은 일평균 2만 원이 채 안 된다. 심지어 이는 65세 이상 노인, 그러니까 지하철 무임승차가 가능한 인력을 기준으로 삼아 산정한 값이다.
이러한 상황은 어디에서 기인할까. 국내 물류업계의 고질적인 문제로 꼽히는 ‘저단가’에서 이유를 찾을 수 있다. 11년 역사의 지하철 퀵서비스업체 ‘빛가운데로걸어가면’의 신현경 대표는 “지하철 퀵서비스는 태생적으로 오토바이보다 빠를 수 없기 때문에 오토바이 퀵서비스 대비 20~30% 낮은 가격으로 가격표가 형성돼 있다”며 “오토바이 퀵서비스가 오랫동안 저단가 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듯, 지하철 퀵도 10년 가까이 요금 체계의 변화가 없는 상황”이라 밝혔다.
▲ ‘빛가운데로걸어가면’의 강남구발 지하철 퀵서비스 이용요금. 최저 5000원부터 가격이 형성돼 있다.
신 대표가 바라보기에 지하철 퀵서비스 기사의 고충도 결국 낮은 ‘수익성’에 있다. 신 대표에 따르면 현재 지하철 퀵기사들이 업무를 수행하지 않고 대기하는 시간은 전체 업무시간의 30%가 넘는다. 배송 수행 건당 돈을 받는 기사 입장에서 이렇게 낭비되는 시간은 곧 기회비용이다.
‘주먹구구’가 통하는 세상
지하철 퀵서비스는 여전히 주먹구구식의 운영이 횡행하는 시장이기도 하다. 시스템 하나 없이 사람이 일일이 고객사 주문수령부터 배차, 픽업지와 배송지 안내까지 손으로 처리한다. ‘문자’나 ‘전화’를 통해서 말이다. 더욱이 고령 인력이 배송을 하는 지하철 퀵서비스의 특성상 관리 부담과 인건비 부담도 크다는 게 업계 관계자의 설명이다.
한 지하철 퀵서비스업체 관계자는 “고령 배송인력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젊은 퀵서비스 라이더에 비해 세심한 관리가 필요한 경우가 많다”며 “가령 기사가 픽업지역에서 상품을 수취했다는 연락을 보내면, 기사에게 재빨리 도착지 정보를 ‘문자’로 전송하고, 기사가 목적지를 못 찾을 경우를 대비해 목적지를 찾아가는 방법까지 일일이 ‘타이핑’해 문자로 전송한다”고 말했다. 이 업체는 관리 직원 8명이 약 100명의 지하철 배송기사를 관리하고 있었는데, 정말 모든 프로세스는 수동으로 처리됐다.
지하철에는 왜 ‘인성데이타’가 없나
이쯤 되면, 퀵서비스 시장을 장악한 프로그램 업체 ‘인성데이타’가 생각나지 않을 수 없다. 업계 추산에 따르면, 전체 퀵서비스 프로그램 시장에서 인성데이타의 시장점유율은 70~80%에 이른다. 인성데이타가 퀵서비스 시장을 장악하는 데는 ‘공유망’의 역할이 컸다는 게 업계 관계자의 중론이다. 공유망이란 같은 프로그램을 사용하는 퀵서비스 업체가 합의하여 서로의 기사와 주문을 공유하는 채널을 말한다. 공유망을 통해 퀵업체는 영업을 하지 않는 지역의 주문을 수행할 수 있고, 배송기사는 공유망을 사용하지 않을 때보다 더 많은 주문을 잡을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이와 같은 공유망 모델은 현재 국내 퀵서비스 업계에 표준처럼 자리 잡은 상황이다.
그런데 지하철 퀵서비스 업계에는 오랫동안 공유망이 형성되지 않았다. 지하철에 공유망을 구축해 인성데이타와 같은 지위를 누리고자 했던 업체가 있었음에도 말이다. 과거 지하철 공유망 사업을 검토했던 한 퀵서비스 프로그램업체 관계자는 “퀵서비스 공유망 구축에 대한 관심은 업계에 예전부터 많았지만, 한계가 명확했다”며 “지하철 퀵서비스는 기존 퀵서비스보다 낮은 단가 때문에 무임승차가 가능한 어르신이 아니면 남는 것이 없는 요금구조를 가지고 있었고, 지하철 퀵서비스를 이용하는 고객사 또한 섬유 샘플과 같은 패션업체에 국한돼 확장에 어려움이 있어 보였다”고 밝혔다.
인성데이타에 따르면 개별 퀵서비스 업체는 그 소속 기사 수에 한계가 있고 주문량 또한 천차만별이어서, 어떤 때는 기사가 모자라고 어떤 때는 주문량이 모자라 수급에 불균형을 초래할 수밖에 없다. 이에 회원사들이 서로 상부상조하여 품앗이 개념으로 오더와 기사를 공유하여 부족할 때 서로 도와주는 것이 공유망의 시초다. 기사가 없어 포기할 오더를 공유오더로 다른 업체가 도와주고, 기사 유지에 부족한 오더를 공유오더를 통하여 해소하기도 하면서 수급의 불균형을 서로 도와가며 해결하는 것이 공유망인 것이다.
이러한 공유망이 활성화되고 규모가 커져감에 따라 개별 업체 간의 갈등이 생기기도 했다. 그러한 여러 가지 문제점들을 원활히 해결하고, 상호 지켜야할 공유업무를 전담하며, 업체와 기사들을 교육해 나갈 조직의 필요성이 대두됐다. 이에 따라 공유 오더를 처리하는 업체와 배송기사들에 대한 관리와 교육, 조정 역할, 공용영수증의 처리, 구성원들의 복지 등 다양한 회원들의 요청과 업무처리를 보다 원활하게 만들기 위해 공용센터가 생겼다는 것이 인성데이타의 설명이다.
그럼에도 공유망이 탄생한다면
이런 상황에서 또 다시 ‘지하철 공유망’을 구축하려는 업체가 등장했다. 구상에 그친 것이 아니다. 이 업체는 KG로지스, 코오롱, NHN엔터테인먼트로부터 투자를 받은 이후 업계 1, 2위라 불리는 업체(1위: 빛가운데로걸어가면, 2위: 로지템)를 포함하여 총 10여 개의 지하철 퀵서비스업체를 인수하는 대담함을 보였다.
해당 업체의 설명에 따르면, 이 업체의 현재 월매출은 5억 3,000만 원가량, 거래 고객사는 10만 개 이상, 하루 처리 배송건은 약 3,000건, 이중 지하철 운송 부담률은 60% 이상이다. 그야말로 지하철을 기반으로 한 공룡 퀵사의 탄생이 아닐 수 없다. 업체의 이름은 바로 ‘퀵퀵’이다.
퀵퀵은 크라우드소싱 배달기사를 활용하는 ‘클라우드 물류’를 지향한다고 스스로 말한다. 하지만 퀵퀵이 처음부터 일반인 배달기사를 물류에 활용했던 것은 아니다. 퀵퀵은 먼저 크라우드소싱을 가능케 하는 ‘기반’을 만드는 데 집중했다. 처음에는 현행 퀵서비스 수수료인 23%보다 낮은 수수료로 일반 퀵서비스 모델을 운영하면서 차차 기사를 끌어 모았으며, 이후 많은 지하철 퀵서비스 업체를 인수함으로써 그들의 ‘영업망(물량)’과 ‘기사’를 흡수했다.
▲ 퀵퀵 지하철 공유망 개념도와 목표(자료: 퀵퀵)
퀵퀵은 그 다음으로 인성데이타의 공유망 모델을 벤치마킹한 ‘지하철 공유망’ 모델을 도입했다. 이후 퀵퀵이 인수한 10여 개 업체를 포함해 총 20여 개의 업체가 퀵퀵의 지하철 공유망에 참여했다. 이로써 퀵퀵은 인수한 업체들의 물량 처리는 물론 공유망에 참여한 지하철 퀵서비스업체를 통해서도 물량을 처리할 수 있게 됐다. 퀵퀵이 일반인 배달기사를 확충하기 시작한 것은 이 무렵에서였다. 초기 지하철 퀵기사들의 주문 처리가 대부분이었던 퀵퀵은 현재 1,000명이 넘는 일반인 배달기사를 확보했으며 전체 주문의 약 40%를 공유 및 일반인 배달기사를 통해 처리하고 있다고 한다.
이필잎 퀵퀵 대표는 “퀵퀵은 지하철 퀵서비스를 기반으로 시작했지만, 장차 오토바이, 소형 이사, 당일 화물운송 시장까지 모두 공유망에 유입시킬 계획”이라며 “이를 통해 노인과 장애인 등 사회적 소외계층을 위해 좋은 일자리를 창출하는 데 기여하고 싶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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