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토부, 30일 화물운송시장 발전방안 기본(안) 발표 예정
등록제부터 허가제까지, 증차의 역사
코 앞으로 다가온 증차, 남겨진 자들의 회자정리
글. 임예리 기자
Idea in Brief
6월 발표 예정이었던 ‘화물운송시장 발전방안 기본(안)’이 업계의 어긋나는 이해관계로 인해 현재까지(8월 26일 기준) 발표되지 않았다. 국토교통부는 26일 본지와의 통화에서 업계 이해관계자들과의 전체적인 합의는 이미 이루어졌으며, 8월 30일 기본안을 발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번 개선안의 핵심 논점인 ‘1.5톤 미만 소형 화물차 증차’를 두고 택배·용달·유통업계뿐만 아니라 노동자 단체까지 합세해 각자의 입장을 밝혔다. |
등록제부터 허가제까지, 증차의 역사
1997년 정부는 화물자동차 등록제를 시행했다. 말 그대로 등록만 하면 누구나 화물차로 영업할 수 있었다. 하지만 IMF 위기로 인한 대량실업, 비정규직 노동자의 증가 등으로 인해 화물운송시장으로 유입되는 영업용 화물차 수도 자연스레 늘어났다. 영업용 화물차의 공급 증가로 인해 운임 단가는 떨어졌고, 이에 화물연대는 2003년 ‘생존권 보장’을 이유로 총투쟁에 돌입했다. 화물연대는 면세유 지급과 노동기본권 인정 등을 요구했고, 그중에는 화물차 수급동결도 포함되어 있었다.
2003년 화물연대의 총투쟁으로 물류대란과 정부 추산 11억 달러의 산업 손실이 일어났다. 결국, 정부는 화물연대의 화물차 수급동결 요구를 수용하며 2003년 허가제를 도입했다. 이후 현재까지 현행 영업용 화물자동차의 수급은 ‘허가제’ 하에서 이루어지고 있으며 ‘화물자동차운수사업 공급기준심의위원회’(이하 공심의)를 통해 화물차의 구체적인 증차 수량이 결정됐다.
공심의에는 국토교통부와 산업계, 연구기관, 한국통합물류협회, 전국화물연합회, 전국용달연합회 등 각 화물업계의 주체들이 참여한다. 한국교통연구원의 자료를 바탕으로 한 해의 물동량 추이를 감안하고, 경제 상황을 예측해 분야별로 화물차 수급량에 대해 논의한다. 냉동차, 소방차, 살수차 같은 특수목적 차량 역시 논의를 거쳐 증차가 결정되는 방식이다.
소형차 증차를 바라본 자들의 회자정리
이번 발표될 기본안의 핵심 논점은 ‘영업용 소형화물차’의 증차다. 영업용 소형화물차는 보통 1.5톤 미만의 화물차를 가리킨다. 증차에 앞서 운송업의 업종구분체계의 기준이 현행 ‘톤급’에서 ‘화물차 차량 대수’로 바뀔 가능성이 높다. 현재 운송업의 구분은 화물차 1톤 미만은 용달화물차 운송사업, 1톤 이상 5톤 미만은 개별화물자동차 운송사업, 5톤 이상은 일반화물차 운송사업으로 구분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는 직영 차량의 보유 대수를 중심으로 개인사업자와 법인사업자로 재개편할 예정이다. 그렇게 되면 일정 대수 이상의 직영 차량을 보유한 이는 업종에 구분 없이 운송업을 할 수 있게 되고, 자연스레 운송시장에 진입하는 화물차량도 늘어나게 될 것으로 파악된다.
① 택배업계 : 제조·유통업계의 물류시장 진입 사수
택배업계는 기본적으로 증차를 환영하는 입장이다. CJ대한통운, 한진택배 등 국내 택배사들을 대표하고 있는 한국통합물류협회(이하 물류협회)는 택배업계를 대표하여 꾸준히 택배용 화물차량의 부족을 호소했다. 동시에 유통·제조업 등 비(非)물류업계의 물류시장 진출에 대해서도 꾸준히 경계해왔다. 일례로 2014년 농협의 택배진출에 강력히 반대했고, 올해 6월 쿠팡의 ‘로켓배송’을 상대로 화물자동차 운수사업법 위반(유상운송)으로 고소하기도 했다.
이번 개정안과 관련하여 초기 택배업계는 개인에 대한 허가제 폐지를 요구하면서도 법인에 대해서는 ‘허가제’를 유지하는 방안을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입제가 대부분인 현재 운송시장에서 법인 증차가 허용되면 그만큼 비용과 노무관리에 관한 부담이 커지고, 쿠팡의 로켓배송 역시 합법이 될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택배업계의 주장은 최근 산업 융합이 활발해지는 시장추세를 의식해 화물 운송시장의 개방을 추진하는 정부의 정책 방향과 맞지 않았다.
본지가 입수한 택배업계의 논의 자료에 따르면, 초기 국토부 측에서는 직영차량 등록대수를 20대로 정했지만, 물류협회는 100대로 상향 조정할 것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유통·제조업체의 대량 유입을 원천적으로 막을 수 없다면, 차량 보유대수의 기준을 높여 무분별한 진입을 최대한 막겠다는 의도로 해석된다.
물류협회 관계자는 “유통사나 제조사 같은 화주 기업이 직접 운송사업을 할 때 택배처럼 전국적인 서비스를 하면 모르겠지만, 수도권 같은 ‘프라임 지역’에서만 직영으로 운송사업을 하고 그 외의 지역에 대해서는 ‘갑’이 되어 택배사를 이용한다면 시장운임구조가 더 형편없어질 것”이라며 “이런 이유로 운송시장 개방 자체에 대해 부정적이었지만, 정부 규제개혁 자체를 거부할 수는 없는 것이 현실”이라고 밝혔다.
정부는 위와 같은 택배업체들의 의견을 수렴하여 택배 전용 번호판인 ‘배’ 번호판에 대해 개인을 대상으로 규제를 완화하는 방안을 대응책으로 제시했다고 밝혔다. 국토부 관계자는 “산업 간의 경계가 무너지는 상황에서 기존 산업 보호를 위해 규제를 완화하고 새로 진입하는 주체들의 진입을 막는 것은 어불성설”이며 “기존 택배업체들이 더 많은 투자와 서비스 개선을 통해 새로운 시장 진입자와 경쟁한다면 자연스레 기존 업체들이 유리해질 것”이라고 밝혔다,
②용달업계 : 영업용 번호판 가격 하락 우려
2003년 화물차 허가제 시행 이후, 영업용 화물차 번호판은 점점 몸값이 올라갔다. 영업용 화물차 번호판을 사려면 웃돈, 소위 ‘프리미엄’을 주고 사야 하는데, 현재는 그 가격이 3000만 원을 호가한다. 이런 상황에서 화물차 공급이 늘어난다면 번호판의 가격은 내려갈 것으로 예상된다. 개인용달업계 관계자들이 증차를 극렬히 반대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또한, 정부가 택배업계에 제시한 ‘배’ 번호판 규제 완화 방안에 대해서도 용달업체의 반발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와 관련해 국토부 측 인사는 “용달 업계와 택배 업계의 상생방안이 별도로 마련됐다”며 “30일 기본안을 발표하면서 각 산업계의 업체가 모여 협의문에 서명하도록 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라고 밝혔다.
하지만 용달업계 역시 택배와 마찬가지로 유통·제조업체가 운송시장 진입한다면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이에 대한 기자의 질문에 사륜차를 포괄한 퀵서비스업체 한 대표는 “제조업체가 자신이 만든 물건을 무상 배송한다면 그것은 막을 수 없을 것”이라며 “하지만 유통업체는 화주로부터 판매의뢰를 받아 제품을 판매하는 기업인데, 돈을 받고 운송을 하는 것은 우리 입장에서 불편할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③유통업계 : 때를 기다리며 물류 진출 가속화 예고
화물차 증차와 관련해 택배업계와 용달업계, 화물연대의 공방이 계속되는 가운데 유통업계는 상황을 지켜보고 있는 듯하다. 지난 12일 본지와의 통화에서 쿠팡 측은 “증차 문제에 대해 어떤 요구나 입장을 낸 적이 없다”고 밝혔다. 실제로 ‘화물운송시장 혁신위원회’에는 참여하지 않았지만, 업계 의견을 듣기 위해 국토부가 주최한 ‘화물운송시장 발전포럼’에는 참석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정부가 제시했던 운송업 구조개편 중 법인의 보유 대수 기준이 20대가 아닌 100대로 상향 정해진다고 하더라도 현재 2500대 이상의 화물차를 운영하는 쿠팡의 로켓배송은 법적 분쟁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쿠팡은 확실한 기본안이 발표가 있기 전까지는 조용히 상황을 예의주시하는 것으로 파악된다.
쿠팡 관계자는 “화물운송시장 발전포럼에는 참여했었지만, 쿠팡은 별 다른 발언을 한 적이 없다”라고 전했다. 실제로 쿠팡뿐 아니라 이베이(eBay)코리아의 G마켓과 옥션, 홈플러스, 이마트, 롯데마트, 6대 홈쇼핑업체 등이 국토부의 화물운송시장 발전방안 기본안을 토대로 화물운송시장 진입을 검토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④ 차주 : 불합리한 위·수탁관리(지입제) 제도부터 바뀌어야
차주의 연합 화물연대 측은 기본안의 방향이 증차로 확정된다면, 다시금 총투쟁에 돌입할 것을 예고하며 증차에 대해 강력하게 반대하고 있다. 화물연대는 한국의 지입제도를 증차 반대의 근본적인 원인으로 들었다. 사실 화물연대에는 5톤 이상 대형 화물차의 차주가 1.5톤 미만 소형 화물차 차주보다 더 많다. 하지만 화물연대 측은 소형 화물차 증차가 대형 화물차 증차를 위한 사전 작업이라는 의혹을 제기하며 이를 강력히 반대하는 입장이다.
화물연대가 주장하는 지입기사들의 피해 중 대표적인 것이 운송업체의 부당한 지입료 수납이다. 현행 지입제 아래에서 화물차는 운송기사의 소유지만, 영업용 번호판은 운수법인의 명의이기 때문에 일을 해야 하는 지입기사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지입료를 낼 수밖에 없다. 한국교통연구원 자료에 따르면 일반 화물차의 평균 지입료는 월 19만 2000원이고, 일반화물의 94.5%가 지입차량이므로 21만 7000여 대가 지입료를 내고 것으로 나타났다. 이를 액수로 환산하면 한 달에 417억원, 1년이면 5000억 원이 넘는다.
정부에서도 지입제의 폐해를 해소하기 위해 화물운송시장 선진화제도를 내세웠고, 직접운송의무제, 최소운송의무제, 실적신고 등을 시행했다. 이로 인해 운송업체가 운송기사에게 장기운송계약을 제안하는 일이 늘어났다. 하지만, 선진화제도를 지키지 못하는 업체들이 행정처분을 받기 전 회사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지입기사들에게 일방적으로 위·수탁계약 연장이 불가능하다고 통보하는 일이 발생하고 있다.
이런 이유로 화물연대는 근본적인 지입제 폐지 없이는 운송기사들의 환경이 개선될 수 없다고 말하면서 화물운송시장의 증차 반대에 앞서 ‘실명제’ 도입을 요구하고 있다. 실명제는 화물차의 소유주와 실제 영업하는 이가 같아야 한다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한다. 개인사업자는 개인의 이름으로 차를 사서 영업을 하고, 운수 법인은 법인의 이름으로 차를 산 뒤 직원을 고용해 운수사업을 하자는 것이 화물연대의 주장이다.
화물연대는 정부가 초기 발표했던 화물운송시장 구조개혁 초안에 위수탁 계약을 해지한 자가 영업용 화물차 번호판을 신청하면 계약자가 1대 운송사업(개별 넘버) 허가를 받을 수 있고, 법인이 공(空) T/E로 증차를 할 경우, 직영(업체에서 직접 차를 구입하고, 운송기사도 정규직으로 고용하는 방식)만 가능하도록 한 안이 있었는데, 현재는 해당 안이 사라졌다고 전했다.
물동량에 비해 택배 차량이 모자라다는 업계의 주장에 대해 화물연대 박종관 인천지부장은 “화물연대가 주장하는 것은 화물차 수급의 무조건적인 동결이 아니며, 택배 차량의 증차가 필요하다면 해야 한다”며 “다만 그 과정에서 지입기사들의 생존권을 위협하는 지입제 폐지가 먼저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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