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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창민의 공급망뒤집기] 마른 수건도 다시 짜라고요? 파스값이 더 들어요

by 설창민

2016년 06월 21일

마른 수건도 짜라고? 파스값이 더 든다
 
글. 설창민 SCM 칼럼니스트
 
 

Idea in Brief

 

마이클 해머의 비즈니스 프로세스 리엔지니어링과 GE의 식스시그마는 한 시대를 풍미하던 시대, 우리는 눈에 보이는 비용절감에 익숙해져있었고, 그것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글로벌 소싱과 공급망 관리가 화두가 되고, 기업 경영환경이 더욱 더 복잡해지면서, 얼마짜리를 얼마로 만드는 비용절감은 단시간 안에 역전되는 사례가 많아졌다. 이제는 오히려 시행착오를 줄이고, 위험 발생 요인을 줄여서 물 흐르듯 안정적으로 업무를 하는 것이 비용 절감에 기여하는 경우가 더 많다. 마른 수건을 더 짜는 시대는 끝났다. 마른 수건을 짜면 손만 아프고 파스값만 더 든다. 눈에 보이지 않는 비용절감을 생각할 때다.

 

 

 
 
올초 모 시사 프로그램에서 국내 유명 자동차 회사의 차량에 장착된 전동식 파워 스티어링의 결함을 지적했다. 스티어링 휠을 돌리는 전동 모터와 조향축 사이에 플라스틱으로 된 작은 부품이 있는데, 이 부품이 마모될 경우 차가 원하는 대로 조향을 하지 못할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그 다음 달인 2월, 해당 회사는 문제가 된 부품을 사용하는 차량 소유주들에게 문자 메시지를 발송하여 공식 서비스 센터를 방문하여 무상수리를 받을 것을 알렸다. 여기까지 보면, 늘 있을 수 있는 자동차 회사의 흔한 사후관리다.
 
 
이 대목에서 필자의 관심을 끈 것은 그 부품의 가격이었다. 해당 시사프로그램에서는 800원 짜리라고 했는데, 호기심이 발동하여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작년 가을에는 순정부품 취급 대리점에서 610원에 구매했다는 후기가 나온다. 그리고 올해 초에 구매한 사람의 경우는 605원에 구매했다고도 한다. 검색해 보셔도 좋다.
 
 
그 자동차 회사의 ERP에 그 부품의 단가가 얼마로 등록되어 있는지 필자는 모른다. 따라서 정말 5원을 깎은 걸 수도 있고, 판매자에 따라 가격이 다른 건지도 모른다. 국제유가가 하락 추세이므로 플라스틱 소재의 부품가격을 내리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니, 만약 정말로 5원을 깎았다면 구매담당 직원은 할 일을 다한 셈이다. 연간 소요가 1천만 개라고 가정해도 이거 하나로 무려 5천만 원을 아꼈다. 작년에서 올해 1년 사이에 이 정도였으면 과거 몇 년 동안에도 꾸준히 단가를 재검증하고 인하했을 것이다. 몇 년 동안 누적으로 보면 수십억 원의 원가를 절감한 셈이다.
 
 
그런데 이번 일로 언론의 보도 대상이 되어 버렸고, 제조사는 무상 수리를 약속했다. 이미 자비로 수리를 한 사람은 제외되겠지만 대상 차량이 족히 수백만 대는 될 것이다. 원가가 600원지 800원인지 모를 부품을 무상으로 교체해 준다. 이거 공지하려고 소유주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냈고, 해당 차량이 입고되면 수리사업소에서는 수리시간인 1~2시간 동안 돈을 지불하고 차를 고치고자 하는 손님을 못 받는 기회비용 손실도 발생한다. 몇 년 동안의 원가 절감을 한방에 원점으로 되돌린 사례다.
 
실사구시라고 했던가. 사실에 토대하여 진리를 탐구하라는 조선 후기 실학의 핵심 정신이다. 훌륭한 선조들의 정신을 면면히 이어받은 탓일까. 기업들은 눈에 보이는 비용절감에 익숙하고 그것을 절감하는 데 많은 에너지를 쏟는다. 언론에서는 이러한 기업들의 움직임을 놓고 “마른 수건도 짠다”는 말을 자주 인용한다. 최소한 마이클 해머의 비즈니스 프로세스 리엔지니어링과 GE의 식스시그마가 세상을 지배하던 시절에는 그러한 원가 절감이 가능했을 것이다. 현장에는 낭비가 많았고, 다른 부문에 영향을 주지 않으면서 낭비되는 비용을 절감할 여지가 많았다.
 
 
눈부신 비용절감 사례들의 대부분은 이 두 사상이 경영의 화두였던 시절에 이룬 업적이다. 대표적으로 예전에는 수기 영수증을 첨부하여 비용을 청구하면 경리부서에서 비용을 지급했기 때문에 과다 지급되기 쉬웠지만, 이제는 법인카드 영수증이 없으면 비용을 지급하지 않는다. 그 때의 그 손맛(?)을 못 잊어서 그런가, 우리는 아직도 눈에 보이는 비용절감에 익숙해져 있다.
 
 
그러나 글로벌 소싱과 공급망 관리가 화두가 되고, 기업 경영환경이 더욱 더 복잡해지면서, 얼마짜리를 얼마로 만드는 비용절감은 단시간 안에 역전되는 사례가 많아졌다. 이제는 오히려 시행착오를 줄이고, 위험 발생 요인을 줄여서 물 흐르듯 안정적으로 업무를 하는 것이 비용 절감에 기여하는 경우가 더 많다. 굳이 먼 데서 예를 찾을 필요도 없다. 그게 바로 JIT(Just In Time) 정신이다. 생산계획을 평준화해서 재고를 발생시키거나 잔업비용을 발생시키지 않음으로써 근본적으로 재고비용 절감, 잔업비용 절감은 물론, 작업자의 피로도가 일정 수준으로 유지되면서 품질불량 가능성도 감소한다.
 
 
과거에는 신제품 개발 후 시험생산 과정에서 발생하는 각종 시행착오를 당연시했다면, 이제는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 미리 그 시행착오를 겪어 봄으로써 실제 생산 시 발생할 수 있는 위험을 사전에 감지하고 조치해서 비용을 절감한다. 물류비를 단순히 Tariff 재협상을 통해 절감하던 때도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교통 체증이 덜 발생하는 운송경로를 개발하고, 고속도로 통행료를 내지 않는 운송경로를 이용하며, 납품 정확도가 우수한 공급업체를 대상으로 검수를 생략하고, Front Haul, Back Haul, Milk Run을 활용하여 비용을 절감하고 있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요컨대, 비용 절감의 방법도 진화해 간다.
 
 
눈에 보이는 비용 절감에 집착하면 절감하는 입장은 난처하다. 절감하라고 재촉하는 입장도 성격이 모질지 않으면 난처하다. 눈에 보이는 비용을 절감하면 서비스 수준의 하락은 불 보듯 뻔하다. 그 서비스 수준 하락은 경우에 따라 앞에서 본 것처럼 큰 비용을 발생시킨다. 하지만, 눈에 보이는 비용 절감은 말 그대로 눈에 보이기 때문에 그 유혹을 쉽게 뿌리치지 못한다. 특히 글로벌 기업의 경우 해외 현지법인들을 대상으로 본사보다 더 공격적인 비용절감 목표를 할당해 주기 마련이다.
 
 
이건 한국 뿐 아니라 외국도 마찬가지다. 눈에 보이는 비용절감을 하라는 것이다. 하지만, 눈에 보이는 비용절감은 언젠가는 반드시 역효과가 되어 돌아온다. 당장은 아니더라도 쌓이고 쌓이면 터진다. 이제는 마른 수건을 짜야 하는 시대가 아니다. 마른 수건을 짜면 손만 아프고, 손이 아프면 파스값이 더 든다. 마른 수건을 짤 힘이 있으면 그 마른 수건이 아예 필요 없도록 젖은 손을 탁탁 털어 주고 햇볕에 말려야 하는 시대다.
 
* 해당 기사는 CLO 통권 71호(2016년 5월호)에 수록된 기사 일부를 발췌했습니다.


설창민

군 복무 전 우연히 하게 된 창고 알바를 계기로 물류에 입문, 아직 초심을 안 버리고 물류하고 살고 있는 평범한 직장인. 글을 쓸 때가 가장 행복해서 개인 블로그(http://blog.naver.com/dcscully)를 운영하고 있고, 다양한 실무 경험으로 물류업계 종사자들의 삶과 애환을 독특한 시각과 필체로 써내려가는 것이 삶의 보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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