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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적가의 시대, 가치가 가격의 꼬리를 물다

by 엄지용 기자

2016년 01월 19일

엄기자의 세상에 없던 SCL (6) 최적가의 시대

가치가 가격의 꼬리를 물다

 

Idea in Brief

저성장의 시대가 지속될 전망이다. 이러한 추세 속에서 ‘가성비’가 주목받고 있다. 가성비란 가격 대비 성능을 의미하는 말로, 가성비가 좋은 상품이란 ‘저렴한 가격임에 불구하고 성능이 좋은 상품’을 뜻한다. 가성비를 만드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 중 ‘가격파괴’는 가장 좋지 않은 방법이다. 가격파괴 이후 기존 품질을 유지하지 못하면 오히려 소비자들의 외면을 받을 수도 있다. 저성장의 시대가 지속됨에 불구하고 소비자들은 자신이 가치를 느끼는 핵심 상품에 대한 소비는 유지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때문에 중요한 것은 파격적인 가격을 만드는 것이 아닌 가격을 뛰어넘는 상품가치를 만드는 것이다.

 

 

서울대학교 소비트렌드분석센터에서 연례 출간하는 책이 있습니다. 올 한 해의 국내 트렌드를 회고하고 키워드를 중심으로 내년 트렌드를 조망하는 이 책은 올해도 교보문고 2위, 영풍문고 2위, 예스24 3위 주간 베스트셀러(11월 29일 기준)에 오르며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이 책의 저자인 김난도 서울대 소비트렌드분석센터 센터장이 2016년 핵심 트렌드로 ‘가성비(가격에 비해 품질이 우수한 제품)’를 강조했습니다. 김난도 교수는 “저성장 추세는 올해는 물론 내년도 지속될 것”이라 예측하며 “브랜드가 몰락하며, 그 자리는 가성비 좋은 제품이 차지할 것”이라 말했습니다.

 

김 센터장은 가성비를 형성할 수 있는 전략으로 여러 가지를 언급했습니다. 그 중 ‘가격파괴’는 가장 위험한 전략입니다. 단순한 할인행사는 소비자의 기대가 할인된 가격에 고정되며, 이것은 기업입장에서 원가관리의 실패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올해 국내 유통업계는 이러한 추세를 역행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코리아블랙프라이데이’라는 행사가 대표적인 예입니다.

 

가격이 가치를 잡아먹다 : 코리아블랙프라이데이

 

미국에서는 매년 11월 소비가 폭발적으로 늘어납니다. 이는 미국 추수감사절 다음날인 11월 마지막 주 금요일 열리는 ‘블랙프라이데이’로 인한 것입니다. 미국에서는 이날부터 연말까지 대규모 세일을 진행합니다. 보통 이 기간 동안 미국 연간 소비액의 20%가 발생합니다.

 

한국에서는 이 기간 동안 미국 내 좋은 제품을 싸게 사기위한 ‘직구’가 유행합니다. 필자 또한 지난해 블랙프라이데이 기간 미국 아마존을 통해 국내에서 판매되지 않는 태블릿 킨들(Kindle)을 10달러도 안 되는 저렴한 가격에 구매한 경험이 있습니다. 직구는 한국에서 판매되지 않는 품목, 혹은 한국유통과 관련된 마진을 많이 붙이고 있는 품목에 한해 좋은 상품을 싼 가격에 구매할 수 있는 좋은 방법입니다. 많은 한국 소비자들이 한국에서 사야 될 상품을 현지에서 직접 구매하다 보니 국내 유통업체 입장에서는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코리아블랙프라이데이’입니다. SK플래닛 11번가는 지난해 12월 ‘코리아블랙프라이데이’라는 이름을 걸고 롯데닷컴, CJ몰, AK몰 등 국내 10여개의 유통업체와 제휴한 할인행사를 진행했습니다. 사실 13년에도 진행됐던 이 행사는 올해 들어서는 왠지 모르게 더 뜨거운 모습으로 바뀌었습니다. 소규모 기업 연합의 할인행사가 정부주도 대규모 행사로 변모했기 때문입니다.

 

지난 10월 1일부터 14일까지 국내 최대 규모의 ‘한국판 블랙프라이데이’ 행사가 열렸습니다. 정부 주도로 개최한 이 행사에는 백화점 71개점, 대형마트 398개점, 그리고 약 2만 5400개의 편의점까지 총 2만 6천여 개의 점포가 참여합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이 행사를 통해 소비자들의 소비는 상당부분 고취시킬 수 있었습니다. 지난달 25일 여신금융연구소가 발표한 카드승인 실적에 따르면 10월 한 달간 전체 카드 승인금액은 55조 6800억 원으로 지난해 동월증가율(7.5%)보다 5.6% 높은 13.1%를 기록했습니다.

 

할인행사를 통한 내수 활성화라는 정부의 초기 목적은 어느 정도 달성한 것입니다. 이 추세를 몰아 유통산업연합회는 지난달 15일 코리아 블랙프라이데이의 후속판인 ‘케이세일데이’를 개최했습니다. 그렇다면 연이은 가격파괴 행사에 대한 소비자들의 반응은 어떨까요. 케이세일데이 공식홈페이지 ‘소비자의견’란에는 한국판 블랙프라이데이에 대한 비판이 쇄도하고 있습니다.

 

소비자는 바보가 아닙니다. 많은 소비자들이 국내 유통업체들이 사용하는 미끼상품(Loss leader)을 통한 소비유도 전략을 인지하기 시작했습니다. 파격할인이라 해서 쇼핑을 하러 갔는데, 정작 필요한 것은 세일하지 않고 애꿎은 상품만 세일하고 있는 모습을 목격한 것이죠. 세일하고 있는 상품조차도 이월, 재고품목인 평소에도 할인하고 있던 상품이라면 소비자들의 분노는 더 올라가게 됩니다. 이제 한국 소비자들에게 ‘코리아 블랙프라이데이’는 특별한 행사가 흔히 볼 수 있는 ‘가격파괴 행사’가 됐습니다.

 

처음으로 돌아가서 소비자들이 ‘직구’를 왜 할까요? 단순히 싸서요? 앞서 언급했듯 필자는 지난해 블랙프라이데이 미국 아마존을 통해 킨들을 샀습니다. 필자가 킨들을 산 이유는 ‘싸서’가 아닙니다. 한국에 정식유통, 판매되지 않는 제품에 대한 희소성 때문이었습니다. 가격이 아닌 가치가 상품 구매를 결정한 것입니다.

 

한국 블랙프라이데이는 가격이 가치를 잡아먹은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처음 몇 번은 저렴한 가격을 통해 소비자를 현혹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소비자들의 역치가 늘 보았던 낮은 가격에 익숙해진다면 그때부터는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게다가 낮은 가격의 미끼상품의 뒤에 숨어있는 이면을 보았다면 그 반발은 더욱 심해지겠죠. 한국판 블랙프라이데이를 비판하고 있는 수많은 소비자들의 존재가 이를 반증하고 있습니다.

 

최저가가 아닌 최적가가 중요한 시대가 왔습니다. 가격이 아닌 가치를 중심으로 무장한 새로운 유통업체들은 작은 곳에서 태동하고 있습니다. 이들이 판매하는 제품은 파격적인 가격을 내세우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대중이 알고 있을만한 ‘브랜드 파워’를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닙니다. 저마다의 특별한 가치를 중심으로 무장한 그들의 제품은 소비자들에게 ‘가성비’를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경험을 입히다 : 트라이온 (Try-On)

 

미국의 비즈니스 매거진 패스트컴퍼니(Fast Company)는 매년 50개의 혁신기업을 선정, 발표합니다. 2015년 혁신기업 1위의 자리는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던 안경 유통업체인 ‘와비파커(WarbyParker)’가 차지합니다. 그 뒤를 애플, 알리바바, 구글이 이었습니다.

 

패스트컴퍼니는 와비파커를 1위로 꼽은 이유로 ‘고객 경험의 혁신’을 꼽았습니다. 온라인 유통이 가진 소비자들에게 실물경험을 주지 못하는 한계를 와비파커가 극복했다는 뜻입니다. 와비파커는 고객이 고른 5개의 안경을 먼저 착용해볼 수 있도록 고객에게 배송해줍니다. 고객은 실제 착용, 비교과정을 마친 후 와비파커에 해당 안경들을 반송합니다. 이후 고객은 가장 마음에 드는 안경과 자신의 시력을 입력하여 약 2주 뒤 맞춤 제작된 안경을 수령할 수 있습니다. 한 차례의 반송과 두 차례의 배송은 모두 무료입니다.

 

와비파커의 안경 판매가격은 95달러부터 시작합니다. 미국 아마존에서 판매되는 노브랜드 안경이 20달러 이내 가격대로 형성되고 있는 점을 고려한다면 상대적으로 비쌉니다. 와비파커는 고가격이라는 단점을 집에서 무료로 써보고 구매할 수 있는 트라이온 서비스를 통해 극복했습니다. 노브랜드 안경에 비해서는 비싸지만 기존 유명 브랜드 안경에 비해서는 저렴한 가격에 판매되고 있음은 물론입니다.

 

국내에도 와비파커와 같은 트라이온 서비스를 적용한 유통업체들이 존재합니다. 대표적으로 인디브랜드 편집샵 라운지에프는 제휴상품에 한해서 고객에게 무료 피팅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피팅 상품에 대한 배송비와 반송비용은 무료입니다.

 

라운지에프는 브랜드 개성은 있지만, 소비자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인디브랜드만을 취급합니다. 때문에 소비자들의 브랜드 인지도는 대중성 있는 브랜드에 비해 부족합니다. 그러나 라운지에프가 판매하는 상품의 가격은 브랜드가 없는 보세의류를 판매하는 온라인 쇼핑몰에 비해 높은 가격에 책정되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운지에프 트라이온 서비스의 반응은 좋습니다. 라운지에프에 따르면 라운지에프 온라인페이지 구매 전환율은 4%인 반면, 트라이온 서비스를 이용한 고객의 구매 전환율은 30%에 달합니다. 트라이온이라는 새로운 서비스를 통한 가치부여를 통해 높은 가격, 낮은 브랜드 인지도에 불구하고 매출상승을 일으킨 것입니다. 트라이온 서비스에 부가되는 물류비는 상승한 매출을 통해 자연스럽게 상쇄됩니다.

 

서비스가 가격을 상쇄하다

 

또 다른 사례는 남성맞춤복 유통업체인 ‘스트라입스’입니다. 스트라입스는 기존 양장점을 찾아가 맞춰야 되는 맞춤복 시장의 불편함을 ‘방문측정 서비스’로 차별화하여 시장에 진입했습니다. 스트라입스를 이용하는 고객은 스타일리스트의 무료 사이즈 측정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습니다. 구매를 원하는 고객은 즉각적으로 원하는 패턴, 원단의 의상을 직접 만져보고 구매할 수 있습니다.

 

스트라입스에 따르면 2014년 4월 첫 서비스를 시작한 이후 1년 이내 50% 이상 고객 재구매율을 기록했으며, 분기 평균 50% 수준의 성장세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처음 맞춤셔츠 판매를 전문으로 하던 스트라입스는 이제 맞춤정장, 바지, 코트까지 판매하고 있습니다.

 

스트라입스에서 판매되는 의류의 가격(셔츠 기준 : 5만원~12만원) 또한 기성복은 물론 같은 맞춤셔츠 제작업체와 비교하더라도 저렴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이제 3년차를 바라보는 스타트업 ‘스트라입스’의 브랜드 파워가 전통업체에 비해 강한 것도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객들이 스트라입스의 상품을 반복 구매하는 것은 제품품질과 서비스를 통해 함께 구축한 가성비 때문입니다.

 

가성비, ‘가격’ 아닌 ‘성능’에 주목하라

 

김난도 센터장에 따르면 저성장의 시대라고 사람들이 모든 품목에 대한 소비를 줄이는 것은 아닙니다. 개별 소비자들이 높은 가치를 느끼는 제품에 대해서는 오히려 소비를 유지합니다. 이 때 나타나는 중요한 개념이 ‘가성비’입니다. 각각의 소비자가 가치를 느끼는 품목에 대해서는 마냥 싼 가격의 제품을 사기보다 어느 정도의 가격과 가치를 동시에 지닌 제품에 과감히 돈을 쓴다는 이야기입니다. 김 센터장은 이 부분에 대해 “사치 아닌 가치의 시대가 온 것”이라 강조했습니다.

 

브랜드의 후광효과가 사라지고 있습니다. 상대적으로 비싸더라도 높은 가치를 지닌 제품들이 각광받고 있습니다. 신생업체인 와비파커, 라운지에프, 스트라입스는 각각 높은 가치를 무기로 시장에 진입했습니다. 이들이 판매하는 제품은 분명 블랙프라이데이에서 80% 이상 세일하는 제품처럼 저렴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상쇄하는 가치는 소비자를 끌어들이는 새로운 유인이 되고 있습니다.

 

현명한 소비자, 가격의 함정을 넘어서

 

김현우 : 세일의 품목은 한정되어 있으며 몇몇 재고떨이를 위한 눈속임용 상품이 눈에 띕니다. 단순히 주요 백화점의 수입만 늘리고 할인품목, 급조상품, 기존 가을 정기세일과 특별한 차이점이 없다면 무의미한 한국판 블랙프라이데이라 봅니다.

 

황다희 : 어제(11월 28일)가 블랙프라이인지라 마트, 백화점에서 쇼핑하는 사람들이 많이 눈에 띄더군요. 저도 그중 한명이었습니다. 마트, 백화점 입구부터 블랙프라이데이, 세일, 반값이라는 단어가 즐비했는데요. 실제 세일품목을 살펴보니 기존 잘 팔리지 않던 물품들에 한해서만 세일을 하더군요. 기존 행사상품들만 광고, 세일했기 때문에 필요한 물품은 거의 구매하지 못하고 돌아왔습니다.

 

김동욱 : 정부의 생각 없는 탁상행정이 문제입니다. 유통업계의 실상을 아는 전문인력이 없으며, 행사기업과 정부 간의 커뮤니케이션 또한 부족합니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대부분 이런 행사들을 경기부양과 정부정책의 일환으로 연말의 상품 땡처리를 위해 하는 행사로 보고 있습니다.

 

김진혁 : 비슷한 행사가 너무 자주 있는 것 아닌가요? 코리아 그랜드세일, 코리아 블랙프라이데이, 이어서 케이세일데이가 줄줄이 시행되고 있습니다. 연말 대폭할인행사를 주도함으로써 거창한 이름으로 소비자들을 유혹하는 행사가 너무 빈번합니다. 이런 행사들은 소비자들로 하여금 좋은 기회가 돼야함이 명백한데, 현실은 소비자들로 하여금 피로감을 주고 쓴 소리를 내뱉게 합니다.

 

*해당 기사는 CLO 통권 66호(12월호)에 게재된 기사를 일부 발췌했습니다

 



엄지용 기자

흐름과 문화를 고민합니다. [기사제보= press@clomag.co.kr] (큐레이션 블로그 : 물류로 세상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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