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당 기사는 CLO 통권 64 호 (10 월호 ) 에 게재된 기사를 일부 발췌했습니다
혹시 슬럼프를 겪고 있나요?
글 . 김철민 편집장
“ 할 일 없이 모바일이나 웹서핑 하는 직원들이 정말 미워 보이더군요 .”
회사를 창업해 본 경험이 있는 한 사업가의 솔직한 경험담입니다 . 직원들 월급을 주기 위해 밤잠을 설치는 많은 오너 기업인들은 이 사업가의 말에 공감할 것입니다 . 필요 이상으로 소모되는 각종 비품 , 부서 업무에 비해 과도한 인력 , 공장에서 실수나 업무 태만으로 낭비되는 자원들 … . 이처럼 기업에 불필요한 낭비를 가져오는 요인들은 수없이 많습니다 .
경영학에서는 낭비적 자원을 ‘ 슬랙 (slack)’ 이라고 부릅니다 . 슬랙이란 생산에 필요한 최소 요구사항을 초과하는 잉여 자원을 의미합니다 . 따라서 효율을 중시하는 기업에서 이런 슬랙은 ‘ 타도와 극복의 대상 ’ 입니다 .
하지만 경영학 ‘ 고수 ’ 들의 시각은 이와 달랐습니다 . 조직이론의 대가인 제임스 마치 (James G. Mar-ch) 스탠퍼트대 경영대학원 교수와 노벨상 수상자인 고 허버트 사이먼 (Herbert A. Simon) 박사는 이미 1950 년대부터 슬랙이 혁신에 도움을 준다고 지적한바 있습니다 .
이후 몇몇 경영학자들은 이런 대가의 통찰이 진짜로 옳은지 실험을 해봤습니다 . 하지만 조직의 슬랙을 정확히 측정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 설문조사를 하더라도 자기 기업에 잉여 자원이 많다고 순순히 실토할 관리자가 드물기 때문입니다 .
하버드대 니틴 노리아 (Nittin Nohria) 교수 등은 묘안을 짜냈습니다 . 기업인들에게 “ 만약 갑자기 일이 생겨 직원 10% 가 부서 업무를 못하게 된다면 당신 부서의 내년 실적은 얼마나 악화되겠습니까 ” 라고 물어본 것입니다 . 급격히 나빠질 것이라고 대답한 부서의 경우 슬랙이 거의 없다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 반면 실적이 그대로일 것이라고 대답한 부서에는 슬랙이 많다고 판단할 수 있습니다 . 연구팀은 이 설문을 토대로 슬랙과 혁신 성과 ( 각 부서의 혁신이 기여한 이익 규모 ) 와의 관련성을 통계적으로 분석했습니다 .
그 결과 , 슬랙과 혁신 성과는 ‘ 역 U 자 (inverted U shape)’ 관계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 다시 말해 슬랙이 늘어날수록 혁신 성과가 높아지다가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성과가 다시 나빠졌다는 것이죠 . 즉 , 슬랙이 너무 많은 것도 문제지만 너무 적은 것도 문제였습니다 . 오히려 ‘ 적당한 ’ 슬랙을 가진 기업이나 부서의 혁신 성과가 가장 좋았습니다 .
왜 일정 수준의 슬랙이 혁신에 도움을 줄까요 . 슬랙 없이 최소 필요자원만으로 운영되는 기업이나 부서는 원가를 낮출 수는 있겠지만 창의적 아이디어를 만들기는 힘이 든다는 게 주변의 이야기입니다 . 당장 생산과 관련된 일 외에 다른 생각을 할 틈이 없기 때문이죠 . 또 새로운 시도하기가 어렵습니다 . 새로운 시도에는 필연적으로 위험이 따릅니다 . 하지만 슬랙이 없으면 생산 활동에 큰 지장을 주기 때문에 위험이 따르는 시도를 하기가 거의 불가능합니다 .
경영자에게도 슬랙은 매우 중요합니다 . 경영자의 ‘ 관심 (attention)’ 은 매우 희소한 경영 자원입니다 . 경영자가 한정된 관심을 어디에 쏟느냐에 따라 회사의 운명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 슬랙이 없는 경영자는 당장의 현안에만 신경을 쓸 수밖에 없습니다 . 당연히 미래에 대비하거나 변화하는 고객 욕구를 감지해 새로운 시도를 할 여유가 없어진 것이겠죠 .
따라서 현명한 기업이나 경영자는 의도적으로 일정한 슬랙을 만듭니다 . 아마존이 기술진에게 개인별 프로젝트를 수행하도록 하루 일과 중 절반의 시간을 준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일 것입니다 . 지식 경제 시대를 맞아 슬랙을 또 다른 경영자원으로 보는 지혜가 필요할 때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