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일자리는 안녕하신가요
글. 설창민 SCM 칼럼니스트
Idea in brief
무인화, 자동화를 지향하는 물류와 SCM의 대세 속에서 디스토피아적 미래로 빠져들지 않으려면 시스템과 인간의 분명한 역할 분담이 요구된다. 인간이 전략적 판단을 놓아서는 안 되며, 모든 최종 의사결정은 인간이 해야 한다. 또한 인간은 시스템이 통제 못하는 예외적인 상황들을 통제하고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내 CPU는 신경망 프로세서다. 학습하는 컴퓨터라고 할 수 있다.”
“스카이넷 투자 법안이 통과되고 1997년 8월 4일 가동된다. 인간의 의사결정이 국방전략에서 배제된다. 스카이넷은 기하급수적인 속도로 학습을 시작하고 8월 29일 02시 14분에 자아를 인식하기 시작한다.
터미네이터(1984년, 제임스 카메론 감독)는 감독 자신이 꿈에서 본 내용을 토대로 만든 영화로, 자신이 감독을 맡는다는 조건으로 단돈 1달러에 판권을 넘긴 영화치고는 꽤 통찰력 있게 암울한 미래를 그려낸 작품이다.
생각해보니 소설가 조지 오웰이 국가가 국민의 모든 것을 통제하는 전체주의를 비판할 목적으로 1949년 발표한 소설 ‘1984’와 연대가 일치한다. ‘1984’는 올더스 헉슬리의 소설 ‘멋진 신세계’와 함께, 그리고 ‘터미네이터’는 리들리 스콧 감독의 영화 ‘블레이드 러너‘와 함께 디스토피아적 미래를 담아낸 대표적 작품이다. 특히 ‘1984’는 지금까지도 ‘누군가를 감시한다’는 말과 동의어로 사용되는 ‘Big Brother’를 실감나게 묘사했고, ‘터미네이터’는 이 세상 전부를 연결하고 있는 인공지능 자가학습 시스템 ‘스카이넷’을 실감나게 묘사했다.
서두에 언급한 대화는 ‘터미네이터 2’에서 미래의 저항군 지도자 존 코너를 보호하기 위해 미래에서 온 터미네이터 T-800이 한 말 중 일부로, 기계가 인간을 닮아가는, 그리고 인간을 멸망시키는 과정을 담담하게 묘사했다. 특히 터미네이터2를 지나 터미네이터3의 결말에 가면 모니터 화면을 통해 스카이넷이 어떻게 전 지구로 확산되는지 보여주고, 이어서 스카이넷이 어떻게 인류 멸망을 자초하는지도 보여 주는데, 여기서 존 코너의 대사는 매우 의미심장하다.
“스카이넷은 사이버스페이스에 존재하는 소프트웨어였다. 시스템 코어는 없었고, 멈출 수도 없었다. 공격은 터미네이터가 말한 그 시각, 심판의 날에 시작되었다.”
굳이 인류 멸망과 같은 별로 상상하고 싶지 않은 상황을 가정하지 않아도 영화 속에 등장하는 스카이넷은 몇 가지 키워드를 내포하고 있다. 그것은 ‘연결된 시스템’, 그리고 ‘자가학습’이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연결된 시스템’은 스마트폰으로 촉발된 SNS와 여러 스타트업 기업들이 제공하는 각종 플랫폼을 통해 사실상 이미 달성된 것이나 다름없다. 자가학습 또한 인공지능 연구의 진전에 따라 서서히 우리 앞에 그 실체가 나타나고 있다. 이미 지난해 11월 6일 아마존은 자가학습 기능을 갖춘 스피커형 개인비서 ‘아마존 에코’를 출시했다. 애플은 그보다 먼저 ‘시리’를 출시한 바 있다.
생각해보면 과거 디스토피아적 미래를 그린 이런저런 콘텐츠가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냈을 때는 많은 사람들은 ‘가능성은 있는 이야기지만 그것이 지금 당장 가능한지는 의문’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1995년 개봉된 영화 ‘코드명 J’에서 주인공 조니 니모닉(키아누 리브스)이 자신의 뇌에 이식된 ‘자그마치’ 80기가바이트의 저장용량을 가진 메모리 칩을 통해 데이터를 전달하는 전달책 일을 하는데 디스크 압축을 통해 ‘무려’ 160기가바이트의 ‘어마어마한’ 저장용량을 갖춤으로써 영화 시종일관 극심한 두통(너무 많은 데이터 저장의 부작용)에 시달린다. 필자가 1996년 구입한 W사의 하드디스크 드라이브가 1.6기가바이트였으니 영화에 등장한 160기가바이트는 그야말로 아주 멀고 먼 미래상이었다.
하지만 요즘의 기술 진보, 그리고 스마트폰과 인터넷으로 촘촘하게 연결된 우리의 삶을 보고 있노라면, 스카이넷이 보여준 디스토피아적 미래는 지나치게 현실적이다. 생각해 보면 우리는 디스토피아적 미래가 그 어느 때보다도 현실적으로 와 닿는 시대를 살고 있다. 길거리 사진, 수억 명의 회원 계정과 위치 정보, 엄청난 분량의 검색정보를 배경으로 한 무인자동차가 세상에 나오고, 로봇이 피킹하는 물류센터에서 피킹된 물건이 무인자동차에 실리며 실리는 순간 화주가 현재의 교통 체증을 고려한 도착예정시간을 확인하게 된다면 인간이 범하는 실수들이 사라지면서 그만큼 운송은 예전보다 통제 가능한 영역이 될 것이다.
아마존의 상품 추천 서비스는 이제 어느 정도의 학습을 시작했고 앞으로 얼마나 더 진보할지 모른다. 시스템은 책을 읽고 학습하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사용자의 검색기록, 방문기록, 구매기록 등 개인정보를 가지고 학습한다. 공급망의 가시성을 빅데이터와 연계해서 보여주고자 하는 스타트업도 나오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모든 것이 ‘연결된 시스템’과 ‘자가학습’으로 통한다. 이미 아마존 등 물류 역량을 키워 온 플랫폼 기업들이 일반 화주의 물류를 취
급하게 된 이상 수많은 정보 시스템이 플랫폼에 접속하게 된 지금의 상황에서는 그만큼 어느 한 시스템의 오류에 의한 전체적인 장애 가능성은 점점 더 커진다. 원래 공급망이라는 것이 그렇지 않던가? 시스템이 연결될수록 어느 한 시스템의 오류에 따른 공급망 전체의 위험은 더 커진다고 우리는 배웠다.
우리가 흥미롭게 보고 즐긴 디스토피아적 미래를 그린 영화들은 그 오류를 ‘인류를 멸망시키는 잘못된 판단’으로 보여 줬고, 자동화되어 가는 현재와 미래의 물류 현장에서는 시스템 스스로 판단이 불가능해짐에 따른 전체적인 운송 시스템의 장애로 나타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유명한 모 스마트폰 네비게이션 어플 K의 경우 간혹 과부하로 작동이 멈추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만약 이 어플이 어떤 기업체의 물류 시스템과 EDI로 연결되어 최단거리와 교통체증을 피한 최단시간을 알려 주고 있다가 멈춰 버리면 그 기업체의 물류 네트워크는 큰 혼란에 빠질 것이 자명하다.
아직 ‘기계가 인간의 일자리를 빼앗는다’는 러디즘(Luddism: 산업혁명 당시 네드 럿이라는 노동자가 양말을 짜는 기계를 부순 데서 유래한 기계에 대한 인간의 반발을 의미하는 단어. 필자 주) 얘기는시작도 안 했다. ‘터미네이터: 미래전쟁의 시작’에서처럼 자동으로 움직이는 운송 장비들이 인간을 납치하러 돌아다니는 그런 끔찍한 상상까지 가지 않아도 이미 지금 우리 앞에 펼쳐진 미래는 충분히 불안하다.
그래서 무인화, 자동화를 지향하는 물류와 SCM의 대세 속에서 디스토피아적 미래로 빠져들지 않으려면 시스템과 인간의 분명한 역할 분담이 요구된다. 인간이 전략적 판단을 놓아서는 안 되며, 모든 최종 의사결정은 인간이 해야 한다. 또한 인간은 시스템이 통제 못하는 예외적인 상황들을 통제하고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을 경우에도 업무 를 할 수 있도록 훈련되어 있어야 한다. 지하철을 타면 수동으로 문을 여는 방법을 끊임없이 동영상으로 보여주는 이유가 무엇인지 생각해 볼 때다.
군 복무 전 우연히 하게 된 창고 알바를 계기로 물류에 입문, 아직 초심을 안 버리고 물류하고 살고 있는 평범한 직장인. 글을 쓸 때가 가장 행복해서 개인 블로그(http://blog.naver.com/dcscully)를 운영하고 있고, 다양한 실무 경험으로 물류업계 종사자들의 삶과 애환을 독특한 시각과 필체로 써내려가는 것이 삶의 보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