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후버
최근 국내 유수의 가전업체들과 정부가 스마트 냉장고 개발을 합동으로 추진하게 되었다는 소식이 있었다. 통합식품안전정보망은 12개 부처 및 지자체에 분산되어 있는 식품안전정보를 안전행정부 행정정보공동이용시스템을 통해 통합하는 시스템으로 스마트 냉장고는 이의 활용도 증진을 위해 추진하는 것이다.
현재의 스마트 냉장고는 냉장고 안을 카메라로 촬영하여 음식이 얼마나 보관되고 있는지를 보여주고, 요리 만드는 방법과 필요한 식재료, 건강 상태에 따른 식단 등을 인터넷으로 검색해 준다. 스마트폰과 연계한 냉장고 조작, 전기료 확인은 기본이고, 냉장고 문을 얼마나 열었는지도 확인할 수 있다. 대형마트 쇼핑몰과 연계하여 아예 식재료 발주를 해 주기도 한다. 여기까지는 그런대로 사용자가 불편하지 않게 쓸 것 같다. 내가 굳이 뭔가 하지 않아도 냉장고가 알아서 해 주니까.
그런데, 내가 굳이 뭔가를 해야 편리하게 쓸 수 있는 기능이 하나 있다. 바로 유통기한 관리다. 유통기한을 관리하기 위해서는 내가 냉장고에 무엇을 사서 쌓아 놓는지 일일이 등록해야 한다. 또한 유통기한이라는 것이 대형마트에서 산 경우는 그나마 라벨에 표시되어 있어서 보고 입력하면 되지만, 재래시장에서 산 경우는 등록자가 대강 입력해야 한다. 스마트 폰 보급대수 4천만대를 넘는 시대다. 사람들은 점점 '입력'이라는 행위를 하지 않으려 한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점점 '입력'이라는 행위를 지양하려 한다. 필자가 지난 7월에 쓴 '요즘 젊은 것들은 가격도 넣을 줄 몰라!'에서 충분히 설명했듯이 입력이 서투른 시대다.
결국 그 대안은 누군가가 찾겠지만, 필자가 보기에 가장 유력한 대안은 대형마트의 구매정보와 스마트 냉장고의 직접적인 연동이다. 대형마트에서 물건을 구매한 소비자는 영수증을 받는다. 만약 그 소비자가 그 대형마트의 할인카드 회원이라면, 아니면 그것이 신용카드 구매라면 그것을 스마트폰 또는 스마트 냉장고가 그 소비자의 구매 정보로 인식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동네 마트도 포인트 카드 관리하는 세상이다. 특히 요즘 대형마트 영수증은 특정 품목의 EAN 코드가 찍혀 있다. 스마트 냉장고가 인식할 수 없는 현금구매라면 스마트폰 카메라로 촬영해서 EAN 코드 숫자를 인식한 냉장고가 구매 정보를 인식할 수 있다. 일단 냉장고가 구매정보를 인식하면 그 다음은 쉽다. 소비자가 냉장고에 보관할 식품을 선택하면 냉장고는 빈 공간을 보여준다. 아까도 말했지 않은가?
냉장고 안에 카메라를 넣는 것이 요즘의 기술이다. 구입한 물건의 길이/너비/높이를 관리하는 것은 좀 무리인 것 같고, 마치 물류센터에 입고한 물건을 보관하기 위해 WMS가 빈 로케이션을 찾듯이 보여줄 수는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소비자가 보관을 확정하면 냉장고는 그때부터 해당 식품이 어디에 보관되어 있고, 유통기한은 언제까지인지, 그리고 유통기한이 임박한 식품을 모아서 해 먹을 수 있는 식품을 추천하는 기능이 작동할 수 있게 된다. 굳이 사람이 하나하나 입력하지 않아도 말이다. 유통기한이 지나면 스마트 냉장고는 이 식품을 다 먹었는지 스마트폰을 통해 물어볼 것이고, 소비자가 '예'를 누르면 해당 식품은 삭제 처리되고, '아니오'를 누르면 유통기한을 연장할 것인지, 폐기할 것인지를 물어볼 것이다. 통합식품안전정보망이 특정 식품에 대한 위험을 경고하면 스마트 냉장고에서도 이를 인지하여 이 식품을 폐기할 것인지를 물어볼 수도 있다.
이렇게 되면, 현재는 오프라인 매장의 선반까지 공급망 관리의 결품 관리 대상으로 간주되는데, 소비자의 냉장고 속까지 결품 관리 대상으로 관리가 가능해진다. 이러한 관리를 안 하는 소비자가 대부분일 거라고? 상관 없다. 재고관리에서 재주문점을 지정하는 중요한 포인트는 현재의 재고가 소진되는 데 드는 소비 리드타임이다. 즉 다 꺼내먹고 나면 구매한다고 가정했을 때 꺼내먹은 기록 없이 구매해서 집어 넣은 기록만 있어도, 소비 주기 측정은 가능하다.
특히 신선식품에 대해서는 가치 있는 정보가 나올 수 있다. 여름철의 우유, 치즈, 아이스크림 등은 구매한 기록만 있으면 소비 주기를 측정해서 수요 예측에 활용이 가능하다. 이사를 가거나 새 냉장고를 사서 그러한 정보를 신뢰할 수 없으면 어쩌냐고? 통계학이 그 문제를 간단히 해결해 준다. 통계학은 모집단에서 표본을 추출했을 때 그 표본이 모집단을 대표할 지 여부를 유의수준으로 판단한다. 소비 리드타임을 측정하는 전체 가정에서 이사가는 집이나 새 냉장고를 산 집을 감안하여 유의수준을 설정하고 판단하면 되는 일이다.
또한 통계분석을 할 때 신뢰할 수 없는 데이터는 제외하고 분석하는 것이 기본 아니던가? 요컨대 스마트 냉장고가 취합한 정보 중 신뢰할 수 없는 데이터를 제외하고 분석해서 수요예측에 활용하는 것은 해당 유통업체 또는 제조업체의 능력 문제지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뜻은 아니다. 게다가 요즘과 같은 공급망 관리 시대에는 수요예측에 도움을 주고 공급망 안정화에 기여하는 소비에 대해서는 할인을 해 주는 것이 맞다. 할인의 유혹이 있다면 소비자가 제한된 범위 내에서 스마트 냉장고가 취합한 정보를 제공하도록 유도할 수도 있다. 창고형 할인매장에서 물건을 사면 싼 이유는 소비자의 구매가 유통업체의 재고 부담을 덜어주기 때문이다.
구매 시점을 고려한 수요 예측과 이를 통한 할인 행위는 약을 주문할 때 이용되고 있다. 아마존에서 비타민제 등을 구매하려고 시도해 보시라. 이 약에 대한 재주문 시기를 정하겠느냐고 묻는 메뉴가 별도로 있고, 이를 선택하면 할인해 준다. 이러한 이유로 각종 치료제 성격의 약에 대한 수요 예측은 타 업종에 비해 비교적 쉽다고 한다. 일단 판매되는 매장이 제한적인 데다(약국/병원), 약은 꾸준히 규칙적으로 먹기 때문에 소비 리드타임을 보고 재주문점 지정이 가능하다는 뜻이다. 스마트 냉장고는 그런 의미에서 가볍게 볼 일이 아니다.
우리가 편해지고 싶을수록, 그 편해지고 싶은 욕구를 해소해 주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노력한다. 특히 요즘은 스마트폰 앱 개발자들이 그 편해지고 싶은 욕구를 스마트폰이라는 도구로 달성시켜 주기 위해 열심히 노력한다. 그와 동시에 개인정보 유출 및 사생활 보호 취약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는 것은 물론이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소비자의 냉장고 속까지 결품 관리 대상으로 관리하려면 결국 개인정보 제공 동의가 필수적으로 요구되고, 이를 이용하는 유통업체와 제조업체는 제한된 범위 내에서 그 개인정보를 사용했고 사용 후 폐기하였음을 입증해야 한다.
2001년 개봉한 톰 크루즈 주연의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는 우리 앞에 펼쳐진 미래를 묘사할 때 지금도 곧잘 활용된다. 특히 주인공 이던 헌트가 터치로 각종 정보 검색을 하거나, 로봇이 사람의 홍채를 인식하여 신원을 확인하고 다니는 장면이 많이 활용된다. 필자가 한 장면 더하고자 한다. 바로 이던 헌트가 신분을 감추기 위해 안구 이식을 받고 회복이 안된 상태에서 냉장고에서 우유를 꺼내 먹는 장면. 상한 우유임을 알고 바로 뱉어낸다. 그리고 그 냉장고는 분명 스마트 냉장고가 아닌 보통의 냉장고였다. 안구 이식을 해 준 돌팔이 의사는 유통기한까지 관리해 주는 스마트 냉장고를 집에 들일 경우 자신이 추적당할 수 있음을 알았던 것이리라. 그러니 우유가 상할 때까지도 몰랐으리라 생각된다.
하지만 어찌하랴. 지금의 소비자들은 네트워크에 연결되어 있지 않으면 불안해 하는 것을. '호빗', '퍼시픽 림' 등의 판타지 영화를 감독한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이 만든 미국 드라마 '더 스트레인' 4화를 보면 마스터의 추종자들이 좀비의 확산을 사람들이 모르게 하고 불안감을 높이기 위해 인터넷을 차단하는 것을 보라. 대중은 네트워크에 연결되어 있지 않으면 불안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