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IGHT

제품對제품,공급망對공급망, 그리고 산업 對 산업 간 경쟁의 시작

by 민정웅

2014년 11월 03일

글. 민정웅 인하대학교 아태물류학부 교수


메인



우리가 보통 ‘경쟁’이라는 단어를 접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모습은, ‘갤럭시S와 아이폰의 경쟁,’ ‘현대자동차와 토요타의 경쟁,’ ‘페덱스(FedEx)와 UPS의 경쟁’ 등과 같은 구체적인 제품이나 기업 간의 경쟁입니다. 그런데 어느새 부터인가 이러한 기업 혹은 제품 사이의 경쟁은 글로벌 공급사슬의 확장에 따라 공급사슬 對 공급사슬의 경쟁으로 그 경쟁 단위가 확대되기 시작했습니다. 갤럭시S와 아이폰의 경쟁이 아니라 ‘갤럭시S를 구성하는 삼성전자의 공급사슬’과 ‘아이폰을 생산하는 애플의 공급사슬’이 마치 단체전 경기를 치루는 듯한 형태를 보이기 시작한 것입니다.

공급사슬 수준으로 경쟁의 기본 단위가 커짐에 따라, 경쟁에 참여하는 기업들의 개별적인 역량보다는, 이들의 역량을 효과적인 협업을 통해 하나의 집중된 힘으로 발휘할 수 있는 전체 공급사슬의 경쟁력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글로벌 공급사슬이 본격적으로 가동되기 시작했던 2000년대 초부터 이미 많은 전문가들에 의해 이러한 변화가 인지되고 있었는데, 2000년에 발표된 한 연구에서는 이를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BMW 對 메르세데즈 벤츠(Mercedes Benz)와 같은 개별 기업들의 경쟁이 아닌, 공급사슬 단위의 경쟁이 보편화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미래에는 BMW의 공급사슬 對 메르세데즈 벤츠의 공급사슬이 경쟁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공급사슬을 가장 잘 조율하는 조직만이 성공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공급사슬 수준으로 경쟁의 기본단위가 확대되기 시작한지 불과 10여년도 지나지 않은 지금에는, 이 경쟁 단위가 개별 산업 수준으로까지 확장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기업들이 점차 그들 비즈니스의 핵심 역량으로 물류를 활용해감에 따라, 제조산업과 물류산업, 유통산업과 물류산업, 그리고 제조산업과 유통산업이 서로 경쟁하는 모습을 띠기 시작한 것입니다.





‘물류에 도전장’ 내건 제조업

처음에는 이러한 산업간 경쟁이 단순한 부가가치를 만들어내기 위한 활동으로 인식되었습니다. 가령 물류센터가 제조업체의 지연전략(Postponement)을 지원하기 위해 제품 생산의 마지막 공정을 처리하여 고객사에게 새로운 부가가치를 제공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타 산업 활동과의 융복합 현상이 심화되기 시작하면서, 지금까지는 수직적인 협력관계를 구축했던 산업들이 이제는 서로의 새로운 경쟁자로 대두되고 있습니다. 이렇게 제조, 유통, 물류 등 세 종류의 산업이 서로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는 사례는 생각보다 어렵지 않게 우리 주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림그림



먼저 첫 번째로 제조산업과 물류산업이 경쟁하는 사례는 이케아(IKEA)를 비롯하여, 퀴네나겔(Kuehne+Nagel), 현대글로비스 등의 최근 비즈니스 모델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IKEA의 물류에 초점을 맞춘 비즈니스 모델은 제조산업이 물류산업에 도전장을 내민 경우입니다.

앞서 살펴보았던 것처럼 원래는 제조업체였지만, 현재는 포장을 통한 제품 보관 및 운송의 효율화라는 물류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입니다. 반대로 물류가 제조산업 영역으로 그 기반을 확장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물론 이 경우는 제조업의 물류영역 확장보다 아직은 그 수준이 미약하기는 하지만, 최근 들어 부쩍 이러한 기업 사례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세계적인 제3자 물류기업 중의 하나인 퀴네나겔은 2012년 일본 지바 현으로부터 의료장비 생산을 위한 정식 인가를 취득하였습니다. 의료산업에 보다 특화된 물류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것이라고는 하지만, 물류기업이 의료장비 생산을 진행하려한다는 사실 자체가 상당히 재미있습니다

. 마찬가지로 자동차 제조산업에도 퀴네나겔과 유사한 모델을 도입한 기업이 있는데, 바로 우리나라의 현대글로비스입니다. 현대자동차는 해외로 수출하는 자동차에 대하여 통관 및 수출 관세 상의 이점을 얻기 위해 CKD(Complete Knock-Down) 방식으로 자동차를 생산하고 있습니다. CKD 방식이란 부품을 국내에서 생산한 후, 이를 해외로 수출하여 현지에서 완성차를 조립하는 방식입니다.

미국 앨라배마州 몽고메리에 위치한 현대자동차 공장에서 생산되는 산타페와 소나타의 경우에도, 상당수의 부품이 현대글로비스에 의해 한국에서 수출된 후 이를 현지공장에서 조립하고 있습니다. 이들 차량은 ‘Made in KOREA’가 아닌 ‘Made in USA’가 되기 때문에, 완성차를 한국에서 직접 수출하는 경우보다 관세를 절감할 수가 있게 됩니다. CKD 생산의 핵심은 수만 개에 달하는 자동차 부품을 적시에 생산라인으로 투입시켜주는 물류 역량인데, 이 부문을 현대글로비스가 담당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곳 몽고메리 공장 바로 옆에 위치한 현대글로비스의 물류센터에서는 단순히 부품을 보관하기 위한 공간 이외에, JIS(Just-In-Sequence)라는 작업 공간을 별도로 구비하고 있습니다. JIS란 적시에 적량의 부품을 공급한다는 JIT(Just-In-Time)처럼, 적시 적량 뿐 아니라 자동차의 생산 스케줄과 순서에 맞추어 부품의 순서를 미리 배열하여 공급하는 것을 말합니다. 몽고메리 공장에서는 산타페와 소나타 2개의 차종이 하나의 생산라인에서 함께 조립되는 혼류생산 방식을 채택하고 있기 때문에, 이 공정을 준비하는 작업 공간을 물류센터 내에 별도로 마련한 것입니다.



원래 혼류 생산을 위한 JIS 준비는 제조업체가 진행해야하는 제조 공정의 일부입니다. 그런데 이를 생산라인에서 함께 진행할 경우에는 작업장이 매우 혼잡해질 뿐 아니라, 작업자의 오류로 인해 잘못된 부품이 차량에 조립될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가령 현대자동차와 같이 두 개의 차종이 혼류생산 되는 경우, 각 차종별로 4개의 모델과 5개의 색상이 함께 만들어진다고 가정해보겠습니다. 이러한 경우라면 각 부품별로 총 40가지 종류(2개 차종 × 4개 모델 × 5가지 색상 = 40)를 생산현장에 구비해야합니다. 그리고 작업자는 이 40가지 부품 중, 1분에 한 대꼴로 생산라인을 따라 자신 의 앞에 놓이는 차량에 맞는 부품을 빠르게 선택하여 조립해야만 합니다. 바로 이 부분을 현대글로비스는 그들의 물류센터 내 JIS 작업장에서 직접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림에서와 같이 각 시간대별로 생산라인을 통과할 차종의 생산스케줄을 토대로, 다른 색상과 모양을 가진 부품을 번호에 맞추어 순서대로 카트에 준비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준비된 카트는 그대로 생산라인 작업자에게 전달되며, 작업자는 생산라인에서 이동하는 차종과 모델, 색상 등을 크게 고민할 필요 없이 카트 위에서부터 하나씩 꺼내어 조립하면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현대자동차라는 제조업체의 제조공정 일부를, 물류업체인 현대글로비스가 창고 안에서 진행하고 있는 셈이 됩니다.



앞서도 언급한바와 같이 제조업체가 물류영역으로 확장하고 있는 수준에 비해 아직까지는 물류기업이 제조영역으로 진출하는 정도가 미약하기는 하지만, 분명한 것은 제조가 물류로 넘어오듯 물류 또한 제조로 그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림2

2 ‘제조-유통’ 산업간 경계 넘어서

두 번째로 제조산업과 유통산업 또한 서로의 영역을 넘보며 경쟁하고 있습니다. 나이키나 애플 같은 기업은 제품의 유통을 유통업체의 네트워크에 의존하지 않고 직접 운영하고 있습니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애플은 애플스토어(Apple Store)를 통해 직접 제품을 판매하고 있으며, 나이키도 유통 물량의 50% 정도를 본사가 직영하는 매장을 통해 판매하고 있습니다. 고객과 직접 소통하고 있는 유통업체와의 힘겨루기에서 불리함을 느낀 제조업체들이, 유통 네트워크의 구축에 팔을 걷어붙이며 직접 판매에 나서고 있는 것입니다. 심지어 일부 제조업체들은 자신의 핵심역량이었던 생산을 아웃소싱업체에게 모두 맡기고, 자신은 유통에만 집중하는 그런 기업들도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렇듯 기업의 핵심역량 기반(Platform)을 제품개발이나 유통에 두고, 생산은 협력업체를 통한 아웃소싱에 의존하는 기업 형태를 플랫폼 기업(Platform Company)이라 합니다. 생산기반 인프라가 전혀 없기 때문에 ‘생산은 어디에서도 하고 있지 않지만, 판매는 어디에서나 하고 있는(Produce nowhere, but sell everywhere)’ 그런 기업들입니다.

나이키나 H&M;, 그리고 홍콩의 리앤펑(Li & Fung) 같은 회사들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이러한 플랫폼 형태의 비즈니스 모델은 일부 기업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산업 전반으로 광범위하게 확산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전 세계 750여 글로벌 기업을 대상으로 2011년 ‘SCM World’에서 조사한 보고서에 따르면, 디자인과 같은 핵심 역량을 외부에 아웃소싱하고 있는 기업은 극히 일부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하지만 응답자의 50% 가량이 생산량의 절반 이상을 아웃소싱 형태로 생산하고 있으며, 또한 이들 대부분을 본사가 위치한 국내가 아닌 해외에서 판매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습니다. 다양한 산업에 속한 750개 제조기업의 평균치임을 감안할 때, 플랫폼 기업의 형태가 상당히 확산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 조사결과입니다.

한편 이와는 반대로 유통산업이 제조분야로 활동범위를 넓힌 경우도 상당히 많이 있는데, 그 대표적인 예가 유통업체들이 판매하고 있는 PB(Private Brand, 자체 상표 상품)제품입니다. 독립브랜드를 가지고 있는 제조업체의 제품을 판매하는 것 뿐 아니라, 자신이 직접 개발한 제품을 협력업체의 생산시설을 통해 생산한 후 자신의 유통네트워크를 통해 판매하고 있는 것입니다. 실제로 국내의 경우 PB제품 관련 매출이 최근 급성장하고 있는데, 편의점 업계 뿐 아니라 홈플러스, 롯데마트, 이마트 등 대형할인점의 PB매출은 전체 매출의 약 25%에 이르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3 유통인 듯 유통 아닌 유통 같은 물류

마지막 세 번째로 상호 경쟁하고 있는 산업은 물류산업과 유통산업으로써, 최근 들어 가장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는 분야입니다.

우리나라에서 택배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우정사업본부가, 우체국 쇼핑을 통해 지역특산물을 판매하고 있는 사례는 물류가 유통으로 그 영역을 넓힌 경우에 해당합니다. 그러나 이들 두 산업 간의 경쟁은 아직까지는 유통업체들이 물류영역으로 확장하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이미 앞에서 살펴보았던 자포스(Zappos)나 아마존, 그리고 이베이(ebay)의 사례처럼 유통을 본업으로 하는 그들이 물류라는 영역에서 새롭게 수익을 거두고 있는 것입니다.

최근 국내에서는 유통에서의 수익을 완전히 포기하고 아예 물류 수익만으로 사업을 운영하려는 유통업체가 등장하기도 했습니다. 바로 떡볶이 프랜차이즈 사업을 하고 있는 국대떡볶이 라는 회사입니다.

지난 2008년 12월 농림수산식품부가 발표한 떡볶이 산업 육성대책 이후, 떡볶이 브랜드 업체들의 증가세가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2011년 1조원 정도였던 국내 시장규모는 2013년 현재 약 1조6000억 원에 이르고 있으며, 동기간 가맹점포의 수도 약 3배 이상 급증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아딸(2011년 매출 1700억), 죠스떡볶이(2011년 매출 1000억), 국대떡볶이(2011년 매출 1000억) 등 3개 메이저 업체가 시장을 과점하고 있는 브랜드 업체의 대부분은 프랜차이즈 형태를 통해 운영되고 있습니다.

프랜차이즈의 운영 수익은 신규점포 개설 시에 1회성으로 발생하는 가맹비와 인테리어 비용, 교육비, 상표권에 대한 로열티 등 소위 ‘점포개발 수익’에서 주로 발생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매월 각 점포로의 식자재 공급에 따라 발생하는 재료비와 물류비가 부수적으로 추가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2012년 6월 국대떡볶이는 홈페이지를 통해 프랜차이즈 수익모델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점포개발 수익을 하나도 남기지 않고, 물류 수익으로만 본사를 운영하겠다는 방침을 공개하였습니다. 유통업체로서 얻고 있었던 다른 수익은 모두 포기하는 대신, 물류를 수익원으로 하는 비즈니스 모델로의 전환을 선언하게 된 것입니다.

이러한 결정을 내리게 된 이유는 고추와 파 등 식자재 구매의 합리화를 통해 원가를 절감하고, 여기에 제조, 물류, 유통을 포함하는 가치사슬의 통합을 통해, 매월 발생하는 물류 부문의 매출이 두 자릿수 이상의 수익률을 기록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아직까지 물류기업 이외에 전적으로 물류 수익에 의존하고 있는 유통이나 제조업체는 찾아보기 힘들지만, 국대떡볶이와 같은 새로운 시도는 분명 산업 간의 경쟁이 어떠한 방식으로 지금 이 순간 우리 주위에서 일어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극명한 사례라 할 수 있습니다.



민정웅

필자는 현재 인하대학교 아태물류학부 및 물류전문대학원 교수로 재직 중으로 정석물류통상연구원 부원장을 겸직하고 있다. 역-저서로는 ‘미친 SCM이 성공한다(2014, 영진닷컴)’, ‘물류학원론’, ‘공급사슬물류관리’, ‘물류기술과 보안의 이해’등이 있다. IT 및 Operation 컨설턴트로 활동했던 실무적 경험을 바탕으로 공급사슬관리, 물류정보시스템, 물류보안, SCM과 소셜네트워크 등에 대한 연구를 활발히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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