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버가 뜬다, 지하철 어르신택배 노령화 시대 일거리 창출 일석이조
지하철 어르신(노인)택배가 활성화된 건 10년이 좀 넘었다. 지난해 SNS를 통해 소셜족의 눈물샘을 자극한 ‘지하철택배 할아버지의 가슴 아픈 사연’이 화제가 되고, 관련 이야기들이 대중매체를 타면서 사람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한 이 업태는 대중교통비용이 면제된 65세 이상 노인을 택배기사로 활용한 택배 서비스이다. 지하철 택배업체들은 이런 노인기사들을 평균 10여명씩 확보해 신도림, 사당, 잠실역 등 주요 거점에 한 명씩 배치하고, 배송 요청이 들어오면 가장 가까운 역에 있는 어르신을 메신저로 활용하고 있다.
사실 노인택배는 정부와 기업 간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져서 활성화될 수 있었다. 정치인들은 부동표층인 고령층을 위한 복지정책을 내기 위해 혈안이 됐고, 그 안에는 노인 일자리 정책 또한 포함된다. 기업은 네트워크 유지, 관리 비용을 제외한 운송비, 유류비가 전혀 안들기 때문에 비용측면에서 경제적이다. 이렇게 진입장벽이 낮은 노인 지하철 택배 사업이기 때문에, 수많은 업체들이 뛰어든 것은 어찌보면 필연이라 할 수 있겠다.
지하철 어르신택배는 어떤 측면에서 보면 노인 일자리 창출과 기업의 이익을 동시에 추구할 수 있는 매우 효과적인 모델이라고 볼 수 있다. 공공재인 지하철을 무료 배송수단으로 활용하여 운송비를 대폭 줄이고, 동시에 일자리를 구하기 힘든 65세 이상의 어르신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해준다는 측면에서 고용주와 피고용자 모두 만족할 수 있는 윈윈(win-win)사업구조를 가지고 있다.
어르신택배를 활용하면 택배고객의 니즈인 정시성과 신속성을 지키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가 있는 게 사실이다. 기존 오토바이 퀵서비스보다 저렴하다고는 하지만, 자체적인 운송수단을 보유하지 않은 노인들이 소중한 화물을 안전하게 잘 전달해줄 수 있을까하는 점이다.
그러나 이것은 교통체증이 극심한 서울에서는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직접 자가용을 가지고 출퇴근 시간에 서울 시내를 달려본 사람은 알겠지만, 빽빽하게 밀려있는 차량으로 인해서 차라리 걸어가는 게 빠르다고 느끼는 경우가 허다하다. 사실 이렇게 교통체증이 극심한 상황에서 지하철 택배는 오히려 신속성과 정시성 측면에서 오토바이 퀵서비스보다 효율이 좋다.
지하철은 교통체증에 영향을 받지 않는 지하운송수단이기 때문에 신속 하고, 정시성이 좋다는 것은 굳이 언급할 필요도 없는 사실이다. 때문에 두 가지 조건이 갖춰질 경우에 지하철 택배는 기존 오토바이 퀵서비스에 비해서 비교우위를 가진다. 하나는, 역세권 내에 수하인이 존재하여, 지하철 택배로도 문전운송이 가능해야 된다는 것이고, 둘은 교통체증이 심각한 도심내 배송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실제로 지하철 택배업체들의 고객은 대부분 이런 조건을 만족하는 사람들이다. 교통혼잡이 극심한 서울에 있으면서, 역세권 내에 사무실 혹은 상가를 가지고 있는 업체들이 지하철 택배의 주요 고객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서울은 세 블록 이내에 하나씩 촘촘한 지하철 망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어느 정도 문전배송도 가능하다. 이런 측면에서 본다면, 지하철 택배는 주류인 오토바이 퀵서비스에 비해 크게 밀릴 이유가 없다는 게 물류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그러나 이러한 지하철 노인택배는 몇 가지 한계를 가지고 있다. 앞서 말했던 조건들을 만족시키지 못하면, 서비스 품질이 급격히 떨어진다는 것이 첫 번째 문제이다. 신속하고 정확한 화물전달 이전에 택배의 기본은 문전운송(Door to Door Service)이다. 그러나 지하철 택배는 역세권 내에 있는 고객들에 한해서만 문전운송이 가능하기 때문에 모든 소비자의 수요를 만족시킬 수 없다.
이 보다 더 큰 문제는 사업구조 내부에 존재한다. 앞서 말했듯이 고용자인 지하철 택배업체는 네트워크 비용만을 부담한다. 피고용인인 노인들은 빠른 의뢰 수령을 위해서 스마트폰을 구입하고, 자가차량(지하철)을 사용해서, 자신의 발로 배송임무를 수행한다. 배송 중간중간 짬을 내서 먹는 식비 또한 어르신들의 부담이다. 업계에 따르면 어르신 택배 한 건당 수수료는 기존 오토바이 퀵서비스의 23%보다 7%나 많은 30%이다. 보통 한 건에 7000원인 배송을 하면 노인들이 실제로 받는 돈은 4900원인 것이다. 게다가 아직까지 노인택배에 대한 수요가 그렇게 많지 않아 배송업무가 없는 시간 동안 어르신들은 그저 마냥 기다려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일하는 노인들의 시간당 임금은 사실 최저임금에도 못미치는 경우가 많다.
일각에서는 지하철 어르신택배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 또한 존재한다. 한국노인복지운동본부 이명호 대표는 “지하철 노인택배는 실질적으로 노인분들에게 도움이 되는 사업이 아니며, 노인 일자리 수에만 집착하는 실적위주의 정책”이라고 평했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지하철 택배는 특정상황에서 오토바이 퀵배송에 비해 비교우위를 가지고 있고, 노인 일자리 창출에도 도움을 주고 있는 게 현실이다. 앞으로 이것이 국내에서 실효성 있는 사업으로 자리 잡으려면 두 가지 선행과정이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공통적인 하나는, 노인 고용인들이 충분한 수익을 얻을 수 있을만큼 다양한 수요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기존 퀵서비스 업체들이 하듯, 권내의 여러 화물들을 취합해서, 다른 지역권내의 여러 고객들에게 전달하는 방식을 사용할 만큼 수요가 충분히 늘어나고 그런 수요를 감당할만한 네트워크를 구축한다면, 시간대비 노인 고용인들의 수익을 월등히 증가시킬 수 있을 것이다.
또 두 번째로는 정부와 지하철 택배업체의 진심어린 관심이다. 사실 노인 일자리 창출을 위해 힘쓰고 있다고 말하는 정부는 지하철 어르신택배에 대한 현황자료조차 가지고 있지 않다. 정책을 만들어놓고, 모르쇠로 일관하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업의 틀 안에 있는 사람들을 보호해야 할 것이다. 업체 또한 그들의 고용인인 노인들의 복지에 더욱 힘써야 한다. 그들이 사업을 영위할 수 있는 이유는 대중교통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노인들이 있기 때문이다. 고용인이 없으면 그들의 사업 또한 존재할 수 없다.
결국, 단순히 네트워크만 주고 고용인들을 방치하는 것이 아니라, 네트워크 교육프로그램 운용 및 중식 지원 등 효율적인 복지 프로그램을 재정하여 이름만 ‘착한기업’이 아닌 진정한 상생기업으로 거듭나야 할 때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