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비스의 다양함보다 '확실하고 단순한' 콘셉트로 어필해야
IR의 시각자료, 화려한 겉모습보다 메세지를 중심으로
보여주기식 인맥보단 내실 있는 팀 구성이 매력적
글. 이종훈 롯데액셀러레이터 투자본부장
스타트업의 성장과정에서 투자금을 끌어오기 위한 IR(Investor Relations) 활동만큼 초기 창업가들의 높은 관심을 얻는 분야가 있을까요? 많은 스타트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을 때, 기업의 성공에 가장 필요한 요소로 ‘자금’이 1위를 놓치는 경우는 없습니다. 또한 회사의 청산을 결정하는 시점도 대부분 가용 자금이 없을 때입니의. 그만큼 스타트업의 흥망은 자금이 결정하는 경우가 많다는 의미입니다.
그렇다 보니 대부분의 스타트업 대표들이 많은 시간과 열정을 들여 IR 전략을 세웁니다. 이어 IR용 사업계획서를 만들고 발표 연습을 하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합니다. 이후 저 같은 투자자를 만나러 와서, 그 동안 준비 한 것들을 정성들여 설명하기 시작합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투자자들에게 기대 이상의 내용을 보여주고, 지속적인 관계를 맺음으로써 자연스레 투자유치에 성공하는 업체들이 있는가 하면, 사실 대부분의 기업들은 단 한 번의 만남도 가지지 못하는 안타까운 결말을 맞이하고는 합니다.
이번 시리즈의 첫 번째로 ‘절대 만나고 싶지 않은 IR용 사업소개서 3 요소’를 이야기해보고자 합니다. 쉽게 말해 소개 자료를 보면서 다음과 같은 혼자 말을 하게 되는 요소들입니다. “아… 이렇게 하면 안 되는데…”, “느낌이 쎄한 게 안 만나 봐도 될 것 같은데…”, “언젠가 사고 칠 것 같은데…”
(1) Multi-Function 보다는 Simple & Unique!
- 맥가이버 칼을 사례로
대부분의 창업자들은 소위 ‘맥가이버 칼’이라고 불리는 스위스아미(Swiss Army) 나이프와 같은 역사적인 제품을 손수 탄생시키고 싶을 것입니다.
▲ ‘맥가이버 칼’이라고 불리는 스위스아미(Swiss Army) 나이프
그런데 잘 생각해봅시다. 스위스아미 나이프는 아주 다양한 기능을 가진 여러 가지 도구(Tool) 들이 하나의 기구 안에 들어 있는 통합도구입니다. 우리 삶 속에서 스위스아미 나이프 중 칼 이외에 사용하는 것을 본 적이 있으신가요? 심지어 하나하나의 기능을 사용하는 것보다 별도의 제품을 사용하는 게 더 편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제품이 되었죠.
제품도, IR 자료도 마찬가지입니다. 일반적으로 소비자(투자자) 입장에서 본인이 구매(투자)하려는 제품이나 서비스가 다양한 기능을 가진 것을 싫어할 리는 당연히 없습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이 기능들이 간결하고 명료한 콘셉트에 잘 담겨 있냐는 것입니다. 각각의 기능과 장점들이 서로를 방해하는 것도 피해야 합니다.
이에 대해 두 가지 측면에서 좀 더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첫째, 본질이 완전히 상이한 사업 아이템들을 동시에 실행하거나 회사 소개에 담지 않기를 추천합니다.
▲ 개야, 새야? 하나만 합시다!
동종 분야의 유사한 사업들이지만, 그 본질은 완전히 상이한 여러 가지 사업을 동시에 실행하고자 하는 기업들을 심심치 않게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이를 장점인양 소개 자료에 섞어서 설명합니다. 얼핏 보면 문무를 다 갖춘 다재다능한 기업일 수 있겠으나, 개인적인 경험에 비추어 볼 때 깊이 이야기를 나누어 보면 사실 많은 창업가들이 본래 잘할 수 있는 사업 영역에 새로운 아이템을 나중에 추가하게 된 경우가 대다수였습니다. 막상 사업에 뛰어들고 나니 최초의 아이템이 경쟁도 심하고 시장도 작은 것 같다고 판단한 결과겠지요.
스타트업이 다양한 사업모델을 동시에 다룬다는 것은 역설적이게도 해당 산업에 변화를 몰고 올 새로운 기술도 콘셉트도 없고, 새로운 어젠더를 던질 역량도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봅니다. 그리하여 같은 산업 가운데 비교적 손 쉽게 접근 할 수 있는 영역으로 사업을 확장 한 것이라 포장하는 것이죠. 하지만 이러한 행위는 스타트업에서가 아닌 특정 아이템으로 성공한 기업이 상장 IPO 이후 주가 부양을 위해서, 또는 대기업 단계에서 진행하는 부류의 행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솔직히 이런 기업을 만나면 투자자로서 상당히 피곤합니다. 한 가지 사업만 가지고도 잘될지 아닐지 검토하여 판단하기도 어렵기 때문이죠. 완전히 다른 성격의 사업들까지 두루 판단해야 하니 일이 많아지고, 사후관리도 어렵. 투자 이후에 창업가 및 다른 투자들과 함께 어떤 사업에 더 집중하는 게 맞는 것인지에 대한 논쟁도 자주 발생하기 마련입니다.따라서 저의 경우 스타트업에게 본인들이 가장 잘할 수 있는 영역의 본질적인 한 가지에 지극히 충실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을 추천합니다.
둘째, 경쟁 제품 또는 서비스와 비교 시 단순히 더 많은 그리고 더 다양한 기능을 제공한다는 방식의 설명은 피하기를 추천합니다.
지식과 기술의 전이와 구입이 아주 용이해진 시대입니다. 제품 및 서비스들의 성능(또는 제공되는 기능)은 일반적으로 상당히 상향평준화되었고, 브랜드를 빼고 비교하면 서로 거의 유사한 수준에까지 이르렀습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특정 기능이 추가됐다는 것은 해당 제품의 콘셉트이지, 실력 차이라고 말하기 어려운 것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많은 기업들의 IR자료에서 타 제품과 단순히 기능적으로 ‘우리가 더 많이 한다’는 점을 내세우고 있습니다. 심지어 어떤 S/W 회사는 ‘구글, 바이두보다 우리가 더 많은 기능을 제공해요. 그래서 우리 제품이 더 뛰어나요!’라고 주장하죠. 한술 더 떠 ‘(사실은 내년에 나올) 우리 제품이 (작년에 나온) 경쟁사 제품보다 뛰어나요!’라고 비교시점에 있어 2년의 시간차를 두는, 다소 불공평한 오류를 범하기도 합니다.
창업가가 중요하게 고민해야 할 것은 기능의 수가 아닌, ‘우리가 제공하는 제품과 서비스를 어떤 콘셉트로 묶어 소비자에게 가치를 전달할까?’입니다. 기존과 확연한 차이를 보이는 혁신기술이 아니라면 새로운 콘셉트를 통해 시장에 새로운 어젠더를 던질 줄 알아야 합니다. 콘셉트가 간결하고 특별할수록 소비자에게 강력하게 전달되며, 해당 콘셉트의 어젠더 메이커로 거듭남과 함께 그 자체로 경쟁자들의 진입장벽이 되는 것입니다. 이런저런 기능이 하나 더 많고 적음은 절대로 유효한 진입장벽이 될 수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좋은 예로 텔레그램(Telegram) 이 있습니다. 텔레그램은 모두를 위한 소통수단이 아니라 ‘높은 수준의 정보 보안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위한 소통수단’이라는 지극히 단순하고 명확한 콘셉트로 자리 잡아 성공하였습니다. 이와 같은 제품을 구글이 안 만드는 것일까요? 못 만드는 것일까요?
(2) 불필요한 미사여구와 장신구는 버려라!
- 이것은 팸플릿인가 사업계획서인가?
다음의 문장을 읽어봅시다. 그리고 그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이 정확히 이해되는지, 또한 충분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고 생각하는지 판단해봅시다.
위 문장에서 모든 미사여구를 빼면 어떻게 될까요? ‘CLO는 물류기업들에게 콘텐츠를 가격에 제공합니다.’ 문장이 엉성하거나, 알맹이 없이 껍데기만 남은 소개문구가 돼버렸습니다. 이제 여러분들이 보고 있는(또는 작성 중인) IR 자료에 이를 적용해볼 차례입니다.
딱히 삭제할 미사여구가 없고, 핵심 내용이 정확히 전달되나요? 그렇다면 ‘좋은’ IR 자료의 자격 하나를 갖췄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반면 위 문장처럼 엉성한 자료가 돼 버렸나요? 그렇다면 여러분은 보고 계신 것은 IR 자료보다는 소비자의 지갑을 노린 팸플릿에 가깝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IR 자료와 팸플릿이 혼용돼서는 안 됩니다. 투자자들은 투자를 통해 업체의 이해관계인인 주주가 되기 때문에 ‘MSG’ 없는, 해당 회사의 진짜 모습 및 내부의 소통 언어를 보고자 합니다. ‘최적의’, ‘합리적인’, ‘신속한’과 같이 추상적인 용어로 얼버무려 자신의 발표를 마무리 짓기보다 회사의 본질과 방향성이 숫자와 명사로 정확하게 표현되는 것이 투자자에게는 더 매력적입니다.
사진 자료와 그림의 남용도 주의해야 합니다. 먼저 우리 회사의 IR 자료에서 사진과 그림을 모두 빼봅시다. 그래도 주요 내용들의 전달이 잘 되나요? 그렇다면 그 IR 자료는 그다지 좋지 못한 자료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발표 자료에서 그림이나 사진은 청중들로부터는 시선을, 작성자로부터는 시간을 가장 많이 빼앗는 욕심쟁이입니다. 그런데 이미지 자료가 아무런 정보를 담고 있지 못하다면 매우 비효율적인 자료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IR자료를 만드실 때 텍스트만으로는 설명이 어려울 경우에 한하여만 그림과 사진을 넣는 것을 규칙으로 해보시길 추천합니다. 불필요한 클립아트와 이미지, 애니메이션 효과 는 정보전달에 오히려 방해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최근에는 프레지(Prezi) 발표가 거의 사라졌네요!
▲ 동의보감2.0 자료는 저와 제 주변 투자자들이 추천하는 표지 중 하나입니다. 사진 한 장 없어도 어떤 콘셉트의 제품인지, 어떤 사람들이 모인 기업인지, 비전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전달됩니다. 사진을 골라서 편집하고 배치하여 꾸미는 시간에 제품과 기업의 진정한 콘셉트에 대한 고민이 더 깊어야 합니다. 실제로 동의보감2.0을 만든 업체는 오래지 않아 좋은 결과를 만들어 냈습니다.
(3) IR 자료는 인스타가 아니다
- 우리 회사 최고 성과가 청와대 만찬?
세 번째 조언은 제 흑역사로부터 비롯됐습니다. 10여 년 전 괜찮은 아이템을 가진 기업이 있었는데요. 당시 청와대에서 주최한 중소기업 격려용 만찬에 초대된 기업 중 하나였고, 청와대의 모 인사가 대표이사의 친구였습니다. IR 자료 후반부에까지 행사에 참여한 사진을 아주 멋지게 넣어두기도 하고, 대표이사 사무실에 해당 행사 사진이 크게 걸려 있었습니다. 그리고 틈틈이 그 인사가 많이 도와준다고 말하는 등 다소 탐탁지 않은 일이 반복되더니, 결국 그 투자의 끝은 상상 이상으로 좋지 않았습니다.
기업들이 IR 자료를 통해 특정 정치인이나 외부 인사와의 인연, 또는 그들과 함께한 이벤트 참가 이력을 필요이상으로 강조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한 해의 가장 중요한 성과가 청와대 해외 순방에 동참한 일이라고 이야기한다거나, 자료의 후반부를 개발도상국의 정부 고위직과 함께 찍은 사진(왜인지 모르게 그런 사진들 속 현지인들은 대부분 그 나라의 전통 의상을 입고 있더군요)으로 도배하기도 합니다. 개인적으로 이 또한 미사여구에 불과하다고 생각합니다.
마찬가지로 회사의 인력소개 자료에 고문(Advisor) 에 대한 내용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것 역시 그리 좋은 방법은 아닙니다. 가령 자료상으론 인력이 총 10 명인데, 그중 고문이 5 명을 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핵심기술은 모 대학 교수의 기술이고, 경영 전략은 모 컨설팅펌 출신이 도와주고 있는데, 투자는 심사역인 제게 도와달라고 합니다.
투자자 입장에서는 좋은 아이템과 인력을 확보하지 못한 채 주변 인력으로 때우려는 ‘수작’으로 보여질 수밖에 없습니다. 내실 없이 외부인들과의 관계를 내세우는 기업보다는 ‘알맹이가 꽉 찼는데 외부 네트워크 능력도 좋은’ 기업이 매력적이기 마련입니다.
국민대학교 글로벌창업벤처대학원에서 전임교수로 활동하다가 현재는 롯데액셀러레이터의 투자본부장을 맡고 있다. 기술경영학(MOT) 박사를 취득하였으며, 벤처기업 CFO로도 활동했다. 벤처기업 투자활동과 더불어 스타트업의 혁신, 액셀러레이팅, 벤처투자에 대한 연구 및 기고 활동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