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빌리티에 ‘e’가 붙었다
단순히 굴러가던 자동차의 시대는 끝났다. 이제는 전기차다. 올해 미국 CES(전미가전전시회)가 ‘신형 자동차’ 발표회로 변한 것을 생각해보자. 여기에 ‘무인’과 ‘자율주행’이 붙었다. 영화 <트랜스포머>에 나왔던 옵티머스 프라임처럼 자동차가 사람 없이 움직이는 플랫폼이 됐다.
전기차라고 하면 대부분 일론 머스크의 테슬라를 떠올린다. 테슬라는 2003년 전기승용차를 시작으로 전기트럭, 전기버스 등으로 사업을 확장했고, 이제는 ‘무엇인가를 이동시키는’ e모빌리티(전기이동수단)로 나아가고 있다. e모빌리티에 몰린 기대에 부응하여 나타난 것이 2017년 11월 공개된 테슬라의 전기트럭 ‘세미(Semi)’다. 이 트럭은 지난달 처음으로 화물을 싣고 약 400km를 주행했다.
테슬라가 대단한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는 ‘굴러가는 이동수단’이 아니라 ‘굴러가는 IT플랫폼’으로 자동차를 해석했다는 것이다. e모빌리티가 단순히 전기로 굴러가는 차가 아닌, 그 이상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이유다. 앞으로 자동차는 IT, 전기, 전자가 합쳐진 플랫폼으로 ‘커넥티드카’가 될 것이다. 삼성이 자동차 전장사업에 뛰어들고, 관련 스타트업에 투자를 진행하며 ‘홈-비즈니스-모빌리티’의 연계를 만들겠다고 이야기하는 이유도 이와 같다고 본다.
둘째는 ‘배터리’를 신산업의 일축으로 만들었다는 점이다. 전기자동차, 전기바이크, 전기자전거, 세그웨이 등 e모빌리티를 운영하기 위해선 이동수단에 전력을 공급하는 ‘배터리’가 필수적이다. 배터리 성능이 곧 e모빌리티의 성능을 좌우한다.
녹색광물이라 불리는 ‘코발트’, ‘리튬’은 배터리의 핵심부품이며, 최근 각광받고 있는 코발트는 가격이 폭등하고 있다. 배터리 산업분야로 보면 국내에서는 LG화학과 삼성SDI가 해마다 기록적인 판매성장을 하고 있다. 후발주자인 SK이노베이션 또한 배터리와 정보전자소재에 관한 딥체인지2.0에 들어갈 준비를 끝냈다.
한국산 e모빌리티, 굴러는 가나요?
한국에서도 e모빌리티를 활성화하겠다는 욕심은 있다. 비단 정부의 화려한 4차 산업혁명 청사진을 이야기하진 않겠다. 업체들의 홍보자료만 봐도 그것은 노출된다. 물류업계만 해도 CJ대한통운, 쿠팡 같은 업체들이 전기택배차를 테스트했다. 우정사업본부는 집배원 오토바이를 모두 전기차로 바꾸겠다고 선언했다.
그런데 정부와 업계의 욕심에 불구하고, 국내에선 e모빌리티가 활성화되지 못하는 모습이다. 8년 전인 2010년 전부터 전기차 보급이 시작됐으나, 2017년 말 기준 고작 약 28만대의 전기차가 판매된 수준이다. 더군다나 이는 모터와 배터리를 동시에 사용하는 하이브리드 전기차를 포함한 숫자다.(순수전기차는 3만대에 불과) 2017년 기준 대한민국 등록 차량은 약 2,200만 대가 넘었는데, 그 기준으로 봤을 대 0.14%가 채 안 된다.
활성화 지연 사유중 하나로 충전 인프라 부족이 꼽힌다. 부족한 충전 인프라는 소비자의 전기차 구매심리를 견인하지 못했다. 전기차의 주행거리는 배터리 기술개발과 차량 경량화의 영향을 받는다. 이중 배터리 개발속도는 상대적으로 더디기에, 현재는 ‘빠른 충전속도’나 ‘충전시 발열제어’를 만드는 기술이 상대적으로 발달되고 있는 모습이다.
대한민국은 전기차가 출시되더라도 ‘만족스럽게 멀리’가지 못한다는 물리적 한계뿐만 아니라 심리적 한계 또한 구매 장벽으로 나타난다. 한국 소비자들은 “자동차는 크고 편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때문에 ‘후대에 물려줄 깨끗한 환경을 만들 대기오염 저감 차량’과 같은 전기차 마케팅 캐치프레이즈로는 소비자의 구매욕을 자극하기 어렵다.
그렇다고 전기차가 안 굴러가나요?
어찌됐든 전기차는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프로스트앤설리번(Frost & Sullivan)은 2017년 전기차 판매량은 전체 승용차 시장의 1% 이하의 비중을 차지했으나, 2025년에는 이 비중이 14~16% 가량이 될 것이라 발표했다.
2015년 기준 242만대 규모의 판매량을 기록한 친환경 자동차시장은 2025년까지 연평균 23.7%의 폭발적인 성장을 거듭해 1,900만대 규모의 판매량을 기록할 것으로 예측됐다. 친환경 자동차시장이 확대됨에 따라 기존 완성차 제조업체뿐만 아니라 테슬라를 필두로 한 스타트업들이 대거 등장해 시장선점을 위한 경쟁이 더욱 치열해 질 전망이다.
물론 전기차는 연비, 이동거리, 비용 측면에서 휘발유 차량에 뒤쳐진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아래의 표는 동급 일반트럭과 전기트럭의 소요비용을 비교한 자료인데, 휘발유차의 연비가 리터당 약 14.28km가 나오는 반면, 전기차는 1KWh당 4.35km에 불과하다. 그러나 연료가격을 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같은 자료에서 전기트럭은 일반트럭에 비해 약 9.3배 저렴한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 가격의 연료를 넣었을 때 이동할 수 있는 거리는 전기차가 약 40.5km 로 휘발유 차량에 비해 2.8배 효율적이라 볼 수 있다.
전기차에 맞는 정책 정비 선행돼야
한국에서 e모빌리티 산업 활성화를 위해 당장 필요한 것은 ‘정책’의 정비다. 중국의 전기자동차가 세계적인 경쟁력을 가지게 된 이유는 정부 지원 때문이었다. 중국과는 달리 한국은 일관성 없는 정책, 기반산업에 대한 이해 없는 지원으로 비판 받는다.
먼저 성과중심의 제한적 자원(보조금)을 대표적인 정책의 문제점으로 볼 수 있다. 국내에서는 ‘보조금’이라는 할인촉진제를 활용하여 전기차 보급을 활성화하고자 하는데, 실상 올해 판매지원금 대상 차량은 2만대로 축소됐다. 기존 신청제가 아닌 출고등록제로 변경되면서 혼선까지 야기됐지만, 어찌됐든 그 2만대는 사전예약으로 완판됐다.
충전기 설치 및 관리에도 한계가 있다. 국내 충전기 설치를 수행하는 사업자는 5곳이다. 이 사업자는 정부가 운영하는 기업이 아니기에 하청, 재하청이 꼬리를 물면서 저품질의 충전기 공급과 함께 사후관리 부재로 이어졌다. 이런 구조로 인해 충전기 공급업체는 공급만 하고 AS는 책임지지 않게 됐다. 시간이 지나 고장난 충전기가 늘어나기 시작했고, AS 주체가 명확하지 않아 충전기가 불량이 되도 전기차주는 AS를 요청할 곳이 없게 됐다.
더 심각한 것은 충전관리 부재로 누전으로 인한 감전사고 확률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국민안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요인이다. 고전압 전기의 힘으로 움직이는 전기차이기에, 제조사는 소비자를 위한 안전교육 및 사고대응 교육을 할 필요가 있다.
가령 이런 상황을 생각해볼 수 있겠다. 전기차가 사고가 나면 일반차와 동일하게 소방관, 경찰관, 보험사, 견인기사 등이 출동할 것이다. 그러나 전기차는 외견상 일반자동차와 거의 구분되지 않는다. 차체를 살피다가 ‘고전압’에 노출돼 추가적인 안전사고가 발생할 위험이 생긴다.
때문에 차체를 살피기 전, 전기차의 고전압이 어떤 방식으로 노출되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도록 하는 교육이 필요하다. 그러나 현재까지 안전교육을 받았다고 하는 전기차 구매자는 거의 없다. 제조사는 안전교육 관련 안내책자조차 지급하지 않는 게 실정이다.
해외의 경우는 이야기가 다르다. 미국 및 유럽은 전기차 정비와 관련한 16주 교육 커리큘럼을 마련하고 있으며, 충전기설치 자격도 활성화 돼 있다. 내연기관차와 다른 전기차의 특성을 이해한 전문 인력 수요가 점차 늘어날 것이 예측되는 가운데, 국내 정책은 전기차 활성화를 위한 기반 산업을 지원하지 못하는 모습이다. 전기차를 기반으로 한 ‘친환경’ 마케팅에만 몰두하는 업체들의 모습 역시 요식행위처럼 보인다. 국내에서도 진정한 의미의 e모빌리티가 탄생하기 위해서 각별한 노력이 필요하다.
2001년부터 2010년까지 브리티시아메리칸타바코에서 트레이드와 마케팅을 담당했다. 2010년 자동차 외형 제작사업(M2CORETUNE)을 시작, 운영했다. 2017년 이빛컴퍼니를 설립하여 전기자동차 제작 및 고전압안전교육, 전기차 관련 토탈솔루션 컨설팅 사업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