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ST

사람을 고민한 사람, 故신태섭 이사를 기리며

by 임예리 기자

2017년 07월 21일

신태섭, 트레드링스 이사

 

지난달 23일, 오후 취재 일정을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서며 휴대폰을 보니 문자 한 통이 와 있었다. 여느 때처럼 광고문자겠거니 생각하며 대충 보고 지우려는데 잠김 화면에 뜬 문자의 내용이 어딘지 이상했다. ‘금일 트레드링스의 신태섭 이사님께서 별세하셨습니다.’ 말 그대로 ‘상상도 못한’ 내용이었다. 잠시 동안 눈도 깜빡이지 못하고 가만히 서 있었다. 이내 정신을 차리고 전화를 걸어 사실을 확인했다. 교통사고였다고 했다. 문자는 잘못 온 것이 아니었다.

 

6월 23일, 물류스타트업 트레드링스의 신태섭 이사가 별세했다. 향년 35세. 다음날 장례식장으로 가는 도중에 갑작스럽게 비가 내렸다. 빈소에 도착해 들어가 절을 하면서부터 나올 때까지 영정 사진을 제대로 바라볼 수 없었다. 집에 돌아올 때까지도 하늘엔 구름이 잔뜩 껴 있었다.

 

사람을 좋아한 사람

 

누군가의 죽음에 대해 생각하다보면, 그 사람과의 첫 만남을 떠올리게 된다. 내가 신태섭 이사를 처음 만난 건 트레드링스의 기고문 담당을 맡아 처음 회사를 방문한 날이었다. 포워딩 플랫폼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체라는 것만 알고 있었다. 첫 만남에 상대방이 어떤 사람인지 잘 파악하는데 재주가 없는 나지만, ‘인상만큼 친절한 사람이다’라는 것은 쉽게 알 수 있었다. 실제로도 그는 사람을 좋아하고, 특히 사람 챙기는 것을 좋아했다. 주위 사람들의 결혼기념일이나 아이 생일을 적어놓은 ‘기념일 전용 달력’이 따로 있을 정도다.

 

물류스타트업을 처음 시작했을 때도 ‘사람’은 그에게 중요한 요소였다. 오래된 산업으로, 4차 산업혁명이니 IT융합이니 하는 것들과 동떨어진 물류업계에서 물류와 무역에 종사하는 모든 사람과 시스템을 연결하고자 했다. 인터넷에서 쉽게 비행기표를 살 수 있는 시대에, 물류업계에도 그러한 고객과 서비스 제공자를 직접 연결해주는 서비스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런 연결이 그가 일전에 선사에 재직하면서 느꼈던 물류시장의 폐쇄성과 더딘 발전 속도에 대한 아쉬움을 해소할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그 믿음은 점차 현실로 나타났다. 물론 초기에는 흔들린 적도 있었다. 외부와 접촉이 많은 자리에 있었던 그는 회사 내에서 업계의 현실적인 이야기를 가장 많이 듣는 사람이었고, 자연스레 그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플랫폼 모델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 때문에 회사 내에서 온라인 포워딩 서비스만 제공하자는 이야기가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트레드링스의 플랫폼 서비스가 점차 자리를 잡아가면서 업계의 시선 역시 조금씩 바뀌어 갔다. 이런 외부의 변화를 가장 빨리 느꼈던 사람 역시 신 이사였다. 시장의 발전 방향이 이전과는 달라지고 있다는 것을 느꼈던 그는 더 명확한 방향에 대한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특히 그는 최근까지 블록체인에 대해 자주 이야기했다고 한다. 단순하게 블록체인이 시스템을 모두 연결해 일 처리 효율을 높이는 데 의미가 있다고 이야기한다면, 트레드링스의 출발점 역시 그와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다만 둘 사이에 한 가지 차이가 있다면, 신 이사가 생각한 연결에는 ‘사람’이 빠지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여행사를 방문해 사던 비행기표를 이제는 인터넷으로 쉽게 구매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만약 블록체인이 현실화된다면 지금의 포워딩 업계는 큰 타격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 시스템 사이의 연결이 이뤄지게 되면, 거래 과정에서 중개인은 점차 배제되고, 판매자와 실제 구매자만이 남기 때문이다.

 

그래서 동료들과 신 이사는 최근까지 수많은 포워딩 업체들이 어떤 방향을 잡아야 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다고 한다. 그는 설사 모든 시스템이 연결된다고 하더라도, 서비스, 특히 사람이 필요한 서비스는 여전히 필요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가령 창의적인 라우팅처럼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영역을 잘 공략한다면 미래 포워딩 시장이 새로운 방향성을 만들어 낼 수 있지 않을까 고민했다.

 

사실 트레드링스가 아니더라도, 또한 블록체인이 아니더라도 물류시장은 포워딩업체와 사람이 소외되는 방향으로 변하고 있다. 하지만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사람이 빠지면 안 된다는 것이 그의 입장이었다. 그는 이런 상황에서 진정한 상생이란 사람이 포함된 콘텐츠로 진화하는 것이며, 이러한 진화야말로 더 의미 있는 시스템 연계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사람들이 좋아한 사람

 

사람에 대한 그의 관심은 일상생활에서도 계속됐다. 매일 긴 시간 동안 보는 사람과 즐겁게 일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스스로 분위기 메이커 역할로 나섰다. 게임대회나 단체 영화관람 같은 작은 이벤트를 열기도 하며 동료들 사이의 친밀감을 높이고자 했고, 실제로 사내 분위기 역시 부드럽게 변해갔다.

 

그의 이런 행동은 회사 내에서 그치지 않았다. 트레드링스라는 회사가 누군가에게 즐거움을 줄 수 있기를 바랐고, 파트너사 사람들에게 작은 이벤트 차원에서 선물을 보내기도 했다. 회사 차원의 관리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그보다 파트너로써 상대방을 대접하고 하는 마음이 더 컸다. 그는 갑을 관계가 비교적 명확하게 형성된 물류업계에 만연한 불평등한 대우나 처우에 대해서 아쉬워하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향후에는 딱딱하고 낡은 이미지를 가진 물류업계를 바꾸고 싶다는 이야기를 종종 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의 물류인생은 사람들로 가득 차 있다. 사람을 좋아했고, 사람들이 좋아했던 사람 고 신태섭. 그의 뜨거웠던 삶에는 항상 사람에 대한 고민이 함께 자리하고 있었다. 그와 함께한 동료들이, 그를 사랑했던 사람들이 앞으로 변화시켜나갈 물류현장을 어디선가 지켜보고 있을 것이라 믿는다. 부디 편히 쉬시길 바란다.



임예리 기자

三人行,必有我师。 페이쓰북 / 이메일: yeri@clomag.co.kr




다음 읽을거리
추천 기사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