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설창민 SCM 칼럼니스트
한국에 방문한 외국인들이 가장 놀라는 것 중 하나가 배달 문화라고 한다. 하긴 맥도날드가 미국에서 처음 ‘맥딜리버리’를 시작한 게 1993년이니까 말 다했다. 80년대 초반 공중파 방송에서는 매주 토요일에 ‘배달의 기수’를 방영해줬다. 그로부터 30여 년이 흐른 지금, 우리는 진짜 배달(Delivery)의 기수를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스마트폰 앱이 발달하고 소비자 기호가 다양해짐에 따라, 이제는 배달을 하지 않는 음식점의 포장주문 배달대행도 많이 활성화되었다. 필자가 홍대 근처 수제버거집을 방문한 적 있었는데, 자리가 나길 기다리는 40분 동안 7~8대의 배달대행 오토바이가 그곳을 방문했을 정도다.
그러나 예나 지금이나 배달기사의 근무 여건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과거부터 지금까지 사람들은 음식배달 오토바이의 곡예운전을 문제로 꼽는다. 그런데 그들이 곡예운전을 하는 이유는 뭘까? 배달기사가 정해진 시간에 배달을 완료하지 못하면 수수료를 지급하지 않거나, 소비자로부터 받아야할 음식 값을 배달기사 월급에서 공제하는 등, 배달기사에게 가해지는 ‘경제적 불이익’이 바로 그 원인이다. 또한 배달기사는 보험의 보호를 받지 못해 사고가 나도 보상받을 길이 없다. 음식이 식으니까 빨리 배달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보온상자에 넣어서 배달하기 때문에 음식이 식을 리도 없거니와, 음식이 식는 게 두려우면 500미터만 가도 다 불어터지는 자장면은 왜 굳이 배달시켜 먹는가?
곳간에서 인심난다고 했다. 배달기사의 근무여건이 변하지 않는데, 오토바이의 위생 상태는 어떻겠는가? 2015년 메르스가 창궐했을 때 모 치킨업체는 자사 배달 오토바이의 손잡이와 배달상자를 세척한다고 홍보했다. 평소에 안 했으니까 홍보하는 것일 터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보자. 예를 들어 피자를 주문하면 보통 보온이 되는 배달상자에 담아 배달하는데, 이때 배달상자 안에는 따뜻한 피자로 인해 열이 발생할 것이고, 그 열은 다시 배달상자 안에 습기를 만들 것이며, 습기는 세균과 곰팡이가 몹시도 좋아한다. 이 오토바이가 돌아와서 곧바로 다른 피자를 싣고 떠나는 일을 반복한다면? 세균과 곰팡이가 그 안에 가득할 것 같지 않은가? 식사를 하면서 이 칼럼을 읽는 독자를 위해 더 이상의 설명은 생략하도록 하겠다.
라스트마일 배송 서비스가 전체 공급망의 질을 좌우하는 시대가 됐다. 이제 배달앱 업체와 음식점이 머리를 맞대고 배달기사의 근무 여건과 배달 오토바이의 위생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할 때라고 생각한다. 물론 오토바이를 정기적으로 세척하려면, 오토바이를 추가 투입해야 하고 이는 곧 비용 증가로 이어질 것이다. 보험 적용이나 추가 보상 등 배달기사의 근무여건을 개선하는 일에도 많은 돈이 들 것이다. 하지만 몇 년 전 택배업체가 택배요금 일괄 인상을 추진할 때 ‘택배기사의 여건을 생각하면 500원 정도의 요금인상은 받아들이겠다’는 소비자가 제법 많았다는 사실을 기억해보자.
어느 영화에서는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 줄 안다’는 대사가 나온다. 무료배송(무배)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우리의 문화도 조금씩 바꿀 때가 되었다. 최근엔 음식을 식당에서 먹는 것과 음식을 포장해가는 가격에 차등을 두는 경우도 많다. 배달비용 일부를 소비자가 내도 전혀 이상할 것 없다. 요즘 ‘치킨값 2만원 시대’라고 다들 아우성인데, 배달과 직접수령, 매장취식으로 분류해 배달은 비싸게 받고, 직접수령은 가격을 좀 깎아줘도 괜찮지 않을까?
호주 도미노 피자의 사례는 눈여겨 볼만하다. 미국 도미노 피자는 ‘30분 내 배달, 30분 초과 시 환불’ 정책을 시행했다가 정시배달 압박에 배달기사가 연달아 사고를 내면서 정책을 접은 바 있다. 반면 호주 도미노 피자는 20분 내 배달, 20분 초과 시 무료 피자 바우처를 보내준다. 이것이 가능한 것은 유료배달과 스마트 기술 덕분이다. 주문을 받으면, 즉시 시스템 알고리즘을 통해 매장과 주문지와의 거리, 매장의 미처리 주문, 가용 배달기사, 구글 교통정보를 활용한 교통체증 등을 감안하여 20분 내 배달이 가능한지 판단한다. 가능하다면 소비자는 3달러를 더 내고 20분 내 배달 서비스를 받거나, 그것이 실패했을 때 무료로 피자 한 판을 더 먹을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다. 배달기사에게 정시배송을 강요하는 대신 스마트기술을 활용해 사전에 20분 배송가능 여부를 확인한다는 점이 배달기사의 업무 스트레스를 줄이는 데 나름의 역할을 할 것이라 생각된다. 육체노동의 노무비가 비싸기로 유명한 호주 아니던가.
한편 2016년 11월 영국 BBC One 채널은 2주간 자사 리포터를 아마존 배송서비스 기사(물론 정규직이 아닌 파견업체를 통해 입사한 파견직이었다)로 잠입시켜 취재한 결과를 방송했다. 방송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법적으로 하루 11시간 이상을 근무할 수 없는 데도 그 이상 근무를 하는 배달기사가 수두룩했다. 심지어 3분에 한 박스를 배달하도록 경로를 지정해 주는데, 배달기사는 많으면 하루 200개 이상의 박스를 배달해야 했으며, 화장실 갈 시간도 없이 일하는 배달기사도 많았다. 하루 11시간 이상을 근무하다 보니 시급으로 따지면 최저임금도 안 되는 수입을 올리는 기사도 있다고 방송은 지적했다.
비슷한 사례로 우버가 미국 대도시를 중심으로 운영하는 자전거 배송 서비스, ‘우버러시(UBER Rush)’가 있다. 일반 배송업체는 자전거 라이더를 직원으로 채용하고 보험 가입, 사고 시 보상 등을 제공하는 데 반해, 우버는 이들과 독립사업자 관계로 계약하기 때문에 보험 가입은 물론이고 사고 시 보상도 제공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알려진 것이다. 우리나라 택배기사의 현실, 그리고 오토바이를 이용한 배달기사의 현실과 너무도 비슷하지 않은가? 늦지 않았다. 지금부터 머리를 맞대면 미래를 보다 나은 사회로 만들 수 있다.
최근 한 라스트마일 배송업체의 배송기사 처우 개선과 배달상자 위생관리 강화 정책이 언론에 보도되며 주목을 받았다. 이런 일이 더욱 많이 확산되고, 그 사회적 비용을 누가 어떤 방식으로 부담할지에 대한 토론이 이뤄지는 세상이 하루빨리 오길 바란다.
‘배달의 민족’이라고 할 때, ‘배달’은 ‘밝다’라는 말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이 땅의 수많은 배달의 기수들이 밝은 표정을 짓는 그날이 어서 왔으면 좋겠다.
군 복무 전 우연히 하게 된 창고 알바를 계기로 물류에 입문, 아직 초심을 안 버리고 물류하고 살고 있는 평범한 직장인. 글을 쓸 때가 가장 행복해서 개인 블로그(http://blog.naver.com/dcscully)를 운영하고 있고, 다양한 실무 경험으로 물류업계 종사자들의 삶과 애환을 독특한 시각과 필체로 써내려가는 것이 삶의 보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