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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의 계절, 꽃을 보고 울상짓는 사람들

by 임예리 기자

2017년 06월 02일

등락폭 큰 꽃 가격, 한국 화훼구조에서 기인

‘김영란법’으로 꽃 수요 줄어, 경매 나오는 꽃 1/3로 감소

시든 꽃

글. 임예리 기자

 

5월이 지나버려 조금 아쉽다. 5월만큼 화려한 달도 없다. 오죽하면 5월을 계절의 여왕이라고 부르겠는가. 그런데, 누가 5월을 계절의 여왕으로 추대했을까? 아마 ‘꽃’이 아닐까? 만발한 꽃은 평범한 5월을 화려하고 생기발랄한 계절로 만들고, 마침내 계절의 여왕의 자리에까지 등극시켰다. 그래서 5월은 꽃의 달이기도 하다. 많은 사람들이 꽃을 찾는다. 어버이날도, 스승의 날도 모두 5월에 있다. 심지어 결혼도 많이 한다.

 

수많은 꽃 중에서 5월에 가장 인기 있는 꽃은 아무래도 카네이션이다. 모두 어린 시절 출근하시는 부모님의 가슴팍에 카네이션 한 송이씩 달아 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실제로 5월이 되면 카네이션의 수요가 급증한다. 카네이션의 가격은 4월 말부터 조금씩 오른다. 올해 카네이션의 가격 동향을 살펴보면, 3월 초 평균 약 4,400원이었던 카네이션의 경매가가 최근(4월 26일, 카네이션 혼합(대륜)기준) 6,000원까지 올랐다.

 

수요가 많으니 가격이 오르는 것은 한편으로 당연해 보인다. 그런데 한 번 더 생각해보면 조금 이상하기도 하다. 어버이날과 스승의 날은 매년 5월 8일과 5월 15일로 고정돼 있다. 어버이날과 스승의 날에 선물용으로 카네이션을 다는 문화도 오래 전부터 있어왔다. 꽃을 파는 입장에서는 수요 예측을 어느 정도 할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런데도 5월만 되면 꽃의 가격이 오른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조금 이상하다고 느낄 수 있다.

 

일반 소비자만 이를 느끼는 것은 아니다. 플로리스트로 일하는 A씨 역시 “성수기인 졸업 시즌이나 5월에 도매시장에 꽃을 사러 가면 이미 꽃 가격이 전체적으로 많이 올라 있다”며 “많게는 평소보다 세 배 이상 비싸지기도 한다”고 전했다. 시즌을 유난히 타는 꽃 가격, 왜 그런 것일까?

 

종잡을 수 없는 꽃 가격, 이유는

 

문상섭 한국화원협회 회장은 등락폭이 큰 꽃의 가격이 한국의 화훼유통 구조에서 기인한다고 말한다. 꽃 가격을 종잡을 수 없는 이유는 구체적으로 다음과 같다.

 

우선, 꽃 공급자가 꽃의 출하시기를 의도적으로 늦추기 때문이다. 카네이션을 예로 들어보자. 꽃 생산 농가는 대략 4월 중순이 되면 카네이션의 출하를 늦춘다. 방법은 간단하다. 꽃을 잘라 냉동 보관해 더 이상 꽃이 크지 못하게 만든다. 꽃이 출하되지 않으니 꽃의 가격은 자연히 올라갈 수밖에 없다.

 

소위 ‘밭떼기’도 꽃 가격에 영향을 미친다. 몇몇 업체는 밭떼기로 꽃을 구매한다. 그런데 밭떼기로 거래되는 꽃은 경매시장이 아니라 업체로 흘러들어간다. 결국 도매시장에 유통되는 꽃의 양이 줄어든다. 이는 꽃 가격을 폭등시키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밭떼기: 밭작물을 밭에 나 있는 채로 몽땅 사고파는 일. 밭떼기거래 상품은 단기간에 수확해서 출하하는 품목들이 주류를 이룬다.(매일경제)

 

수입 꽃의 정확한 가격 기준이 없는 것도 문제다. 현재 국내 꽃시장에 유통되는 꽃은 크게 국내산과 수입산으로 나뉜다. 특히 카네이션은 수입량이 많은 꽃 중 하나다. 문 회장에 따르면 카네이션의 경우 수입산의 비중이 점점 늘어나 현재는 국내산과 유통 비율이 5:5 정도에 이르렀다. 문 회장은 “보통 카네이션은 중국에서 많이 수입한다. 중국산은 국내산보다 저렴하기는 하지만, 정확한 가격 기준이 없어서 국내산 카네이션 수급조절이 시작되면 중국산도 덩달아 가격이 오른다”고 전했다. 한편 카네이션 외에도 장미, 장례식 화환으로 많이 사용되는 국화 등이 수입량이 많은 축에 속한다.

 

도매와 소매가 혼재하는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꽃을 일반 소비자에게 파는 소매점은 도매시장에서 ‘단’ 단위로 꽃을 구매한다. 생화는 신선도가 중요하고 정확한 수요 예측을 하기도 쉽지 않기 때문에 소매점은 생화를 한 번에 많이 구매하지 않고 일주일에 두세 번 정도 도매시장에 방문해 구매한다.

 

한 소매업체 관계자는 “규모가 큰 웨딩홀이나 화원에서는 농장과 직거래를 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꽃집은 도매시장에서 꽃을 구입한다”고 전했다. 도매시장에서 직접 꽃을 사서 운반해 가져오기도 하고, 구매량이 많으면 배송기사를 활용하기도 한다. 화훼 도매시장에는 마치 동대문 도매시장의 ‘수거삼촌’처럼, 여러 도매업체를 돌며 소매상이 구매하기로 한 꽃을 대신 수거해 배달해주는 사람도 있다.

꽃 포장▲ 도매업체에서 주문한 꽃. 꽃을 신선한 상태로 유지하기 위해서는 수분이 날아가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에 따라 규격화된 습식유통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있지만, 아직까지 한국 화훼유통의 환경이 열악해 습식유통은 힘든 실정이다. 보통 포장에는 종이박스와 신문지가 많이 활용된다.

 

그런데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누구나 꽃 도매시장에 출입해 꽃을 구입할 수 있다. 즉 도매업체가 소매판매를 겸하는 것이다. 물론 화훼시장이 막 형성된 시기에는 도매와 소매가 명확하게 구분됐었다. 하지만 약 20년 전부터 경기가 나빠짐에 따라 화훼 도매업체가 소매 판매를 함께 하기 시작했다.

 

독일이나 프랑스, 일본의 화훼시장은 우리나라와 상황이 다르다. 이들 국가의 꽃 도매시장에는 플로리스트 자격을 보유한 사람이나 화훼 관련 업체 사람만이 경매에 참여해 꽃을 구매할 수 있다. 일반 소비자가 꽃 도매시장에 출입하기 위해서는 별도의 출입증을 받아야만 한다.

 

이에 덧붙여 문 회장은 “한국에서는 등록만 하면 누구든지 꽃집을 열수 있는 환경”이라며 “도매와 소매를 엄격히 분리하고 현재 등록제인 꽃집 창업을 허가제로 전환해야 소매점의 수익을 보장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또한 그는 “소매점은 양질의 꽃을 가공해 소비자에게 전달해야만 소비자의 신뢰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국화원협회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화훼 생산자, 유통업자 단체와 함께 화훼단체협의회를 구성하여 화훼 관련 법률 제정 제안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꽃을 ‘재사용’해 판매하는 것도 꽃 가격의 불투명성을 높이는 원인이 된다. 장례식이나 결혼식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꽃 화환은 재사용이 빈번하게 발생하는 대표적인 품목이다. 문 회장은 꽃 화환에 들어가는 꽃의 재사용 행태가 심각한 수준이라고 전했다. 그는 “작년 말 몇 군데 지역의 결혼식과 장례식장을 돌며 직접 화환을 조사한 결과, 손만 대도 어그러질 정도로 품질이 떨어진 꽃을 재사용한 경우도 많았다”고 밝혔다.

 

하지만 꽃 재사용에 관한 조사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게 현실이다. 당연히 꽃 재사용 행태를 처벌할 수 있는 법과 제도도 없다. 문 회장은 “경찰이 단속을 나서 꽃을 재사용한 업체에게 벌금을 물리고 해당 업체에 대한 세무조사를 하기도 했지만, 꽃 재사용을 근본적으로 근절하기는 어려웠다”며 “사기죄로 고소를 하려 해도 판매자가 새 꽃이라고 말하지 않았다면 범죄 요건이 성립되지 않는다”고 전했다. 문 회장은 꽃 생산자와 판매자의 수익성 확보와 건강한 화훼 유통 구조를 마련하기 위해서라도 꽃 재사용을 막아야 한다고 주장하며, 향후 화훼 관련 법률에 꽃 재사용을 원천적으로 막을 수 있는 내용을 넣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영란법에 울상 짓는 꽃집

 

해마다 유행하는 꽃들이 변한다. 2년 전부터는 색을 입힌 안개꽃이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수요가 증가함에 따라 안개꽃의 가격 역시 빠르게 올랐다. 과거 ‘장미를 사면 함께 끼워주는 꽃’이었던 안개꽃의 신세가 참 많이도 달라진 것이다.

 

최근에 사람들의 관심을 받고 있는 꽃 중 하나로 ‘목화’도 있다. 이전까지 목화는 별로 주목받는 꽃이 아니었다. 하지만 인기 드라마의 소품으로 목화가 사용되면서 꽃의 수요가 급증하기 시작했다. 한 꽃 소매업체 대표는 “드라마의 영향으로 늘어난 수요가 졸업 시즌과 맞물리며, 목화송이의 가격이 한때 평소의 3배까지 올라가기도 했다”고 전했다.

 

이렇듯 꽃을 파는 입장에서도 어떤 꽃이 잘 팔릴지는 쉽게 예측하기 어렵다. 하지만 앞서 밝힌 대로 계절이나 시즌에 따라 꽃이 잘 팔리는 성수기와 비수기를 구분하는 것은 비교적 쉽다. 가령 꽃 판매 성수기는 연말연시, 1월 인사이동 시즌, 2월 졸업시즌, 그리고 결혼식과 각종 행사 및 기념일이 많은 5월이다.

화훼 도매시장▲ 서울 양재 생화 도매시장

 

그런데 성수기를 앞둔 지금, 화훼업계의 분위기가 마냥 밝지만은 않다. 이런 분위기는 작년 9월 ‘부정청탁 및 금품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일명 ‘김영란법’이 발효된 이후 계속됐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당시 국민권익위원회(권익위)는 제자가 스승에게 카네이션을 주는 것이 법에 저촉될 소지가 있다고 주장해 논란을 빚었다. 올해 초, 스승의 날에 제자가 스승에게 달아주는 카네이션은 김영란법에 위배되지 않는다는 유권해석이 나와 다행히 논란이 일단락되기는 했지만, 화훼업계는 이전보다 카네이션 수요가 떨어질 것으로 예상하는 분위기다.

 

플로리스트 B씨 역시 작년 9월 이후 자신이 일하는 매장의 매출이 전년에 비해 떨어졌다고 전했다. 한국에서는 각종 행사나 기념일에 꽃을 선물용으로 구매하는 일이 많은데 김영란법 이후 소비자가 꽃을 구매하는 데 주저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한국에서도 꽃을 가족에게 선물하거나 기분전환용으로 구매하는 경우도 많아져 소량으로 판매되는 꽃의 비율이 늘고 있긴 하지만, 아무래도 선물용 꽃다발과 화분의 매출은 줄어들었다는 게 B씨의 설명이다.

 

B씨는 “선물용으로 화분을 많이 선물하는데, 받는 사람이 거절에 꽃을 반품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고 있다”며 “자사에 화분과 화양을 보내주며 오랜 시간 거래를 해오던 업체가 있었는데 김영란법으로 매출이 줄어 최근에 문을 닫았다”고 전했다.

 

한국화원협회가 주장하는 바에 따르면, 김영란법으로 인해 수요가 줄어 한때 경매에 나오는 꽃이 이전보다 30%까지 줄기도 했다. 소매업체가 느끼는 체감 수요는 더 떨어졌다. 물론 권익위의 유권해석에 따르면, 특별한 직무 관련성이 없는 동료 사이에 난(蘭)이나 꽃바구니를 선물할 때, 상급자가 하급자에게 선물할 때는 금액의 제한이 없고, 직무 관련성이 있다고 하더라도 5만 원 이하의 선물은 주고받을 수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화훼 업계에서는 꽃 매출이 예전으로 돌아가기 힘들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문 회장은 “김영란법으로 위축된 꽃 유통 활성화를 위해 권익위 유권해석에 대한 홍보와 함께 각 정부부처 산하기관과 협조해 ‘1테이블 1플라워’ 등의 캠페인도 전개하고 있다”며 “단지 선물용이 아니라 일상생활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꽃을 사는 문화를 정착하는 게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꽃의 달 5월,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꽃을 보고 울상을 지었다. 화훼유통 구조의 문제로 오락가락한 가격 때문에 꽃 소비자가 울상을 짓고, 김영란법으로 꽃 판매자가 또 울상을 지었다. 꽃과 울상은 잘 어울리지 않는다. 꽃은 사람들은 기쁘게 한다. 5월을 화려하고 생기발랄한 달로 만든 것도 결국 꽃이 아니던가. 5월이 지나가는 것도 아쉽지만, 이렇게 축 처진 5월은 더욱 아쉽다. 어서 다시 많은 사람들이 꽃을 보고 웃는 날이 오기를 바라본다.



임예리 기자

三人行,必有我师。 페이쓰북 / 이메일: yeri@cloma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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