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로벌 물류스타트업백서⑱ 벌사플릿(Versa Fleet)
- 주먹구구식 동남아시아 물류, 소프트웨어 해결책으로 대두
- SaaS 기반 소프트웨어 경쟁력, 물류도 빌려쓰는 시대
- 한국 진출한 벌사플릿, 동남아 진출 꿈꾸는 한국업체에 도움될까
글. 김정현 기자
동남아시아에서 발생하는 화물운송의 88%는 중소기업을 통해 수행되고 있으며, 업체 대부분은 수십년 동안 ‘주먹구구식’의 물류 운영방식을 고수하고 있었다. 2012년 설립한 업체 벌사플릿은 ‘클라우드 소프트웨어’를 기반으로 중소기업에 소프트웨어를 공급하여 수작업이 일반화된 동남아시아 물류판에 자동화 물결을 일으키고자 한다. 벌사플릿은 싱가포르를 시작으로 이제 동남아시아 전역, 더 나아가 올해 한국시장으로 서비스 영역을 확장했다. 벌사플릿이 바꾸자 하는 인도네시아 물류, 그리고 벌사플릿이 보유한 ‘클라우드 소프트웨어’ 역량이란 대체 무엇일까.
동남아시아에 수출하는 역직구 기업은 늘어나고 있지만, 그 중 많은 기업들이 물류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 현지 항만까지는 포워더를 통해 여차저차 보내지만 그 후 최종 수취인까지 도달하는 리드타임은 한국과 비교해서 상당히 길고, 화물 트래킹 역시 까다롭다는 후문이다. 대표적으로 인도네시아는 1만 7000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군도 국가이기 때문에 라스트마일 물류의 숙제가 산적해 있다는 것이 국내 역직구 기업들의 평가다.
역직구 업체가 라스트마일 물류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은 반대로 해석하면 현지에서는 내륙에서 일어나는 물류 전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실제 동남아시아는 수십년 동안 주먹구구식의 ‘수동 처리’ 물류를 고수하고 있었다.
벌사플릿(VersaFleet; 사명= Sypher Labs)은 이런 문제점을 극복하고자 지난 2012년 설립한 업체다. 배송관리시스템(Transport Management System)을 제공하는 SaaS 비즈니스 모델을 경쟁력으로 동남아시아 물류에 최적화된 솔루션을 공급하고자 한다. 그렇다면 벌사플릿이 극복하고자 한 동남아시아 물류시장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그리고 벌사플릿이 강조하는 ‘솔루션’ 역량이란 과연 무엇일까.
주먹구구가 당연한 세상
벌사플릿 창업자인 샤미르 라힘(Shamir Rahim) CEO는 25년 전 그의 유년기를 아버지가 운영하는 3PL(Third party Logistics) 회사를 도우며 보냈다. 당시(1990년대) 그의 아버지는 다음날 운송기사의 운송 경로 라우팅(Routing)을 위해 언제나 늦은 밤까지 회사에 남아있었다. 운송기사들은 그렇게 인쇄된 운송경로 시트(Run sheet)를 따라 라스트마일 물류를 수행했다. 모든 물류 실무가 수동으로 처리됐던 것이다.
사진= 벌사플릿 샤미르 라힘 CEO
때문에 운송사의 운영매니저(OM: Ops manager; Operator)들은 운송기사들이 오후에 복귀하기 전까지는 화물운송 상태(Status)를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운송사는 이를 위해 별도의 관리부서를 두어 많은 양의 주문, POD(Proof of Delivery), 송장(Invoice)을 실배송과 대조시키는 방식으로 주문을 처리했으며, 화주(Shipper)들에게 해당 정보를 송부하는 업무를 맡기도 했다.
이 모든 업무들은 직원들이 건건이 확인해야 했다. 자연히 실수가 잦을 수밖에 없었다. 실수는 다시 배송 일정을 재설정하는 등의 여러 가지 부가적인 업무와 비용 증가로 이어졌다. 화주의 클레임 또한 늘어났으며, 그로 인해 발생하는 금전적인 위약금(Penalty) 역시 운송사의 몫이 됐다. 운송사에 근무하는 운송기사와 운영 매니저들은 이렇게 발생하는 문제들을 처리하기 위해 매일 매일의 야근이 당연한 세상을 살게 됐다는 설명이다.
20년이 지난 지금도 ‘수동방식’
20년이 흐른 2012년. 슬프게도 동남아시아의 물류 처리방식은 여전했다. 샤미르 CEO에 따르면 현시점 동남아시아에서 발생하는 화물 운송의 88%는 중소기업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으며, 이들 대부분은 아직도 ‘수동’으로 물류를 처리하고 있었다.
여전히 화물운송 운영 매니저들은 항상 운송기사에게 전화를 하거나 문자 메시지를 남겨 그들의 현위치와 업무 처리 상태를 체크해야만 했다. 이 과정은 운송기사와 매니저, 모든 주체에게 번거로운 작업이었다. 설상가상으로 동남아시아 이커머스의 폭발적인 성장은 물류의 혼란을 가중시켰다. 늘어나는 주문 처리를 위해서 물류가 뒷받침돼야 하지만 물류 부문이 이커머스의 성장을 따라가지 못해 발생한 문제이다.
샤미르 CEO는 “이커머스의 폭발적인 성장은 한 거점에서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상품의 흐름, 즉 공급사슬의 병목현상(Bottle neck)을 야기했다”며 “이커머스의 급격한 성장으로 화물 물동량은 증가했지만 이를 처리할 수 있는 물류는 예전 방식을 그대로 고수하고 있기 때문”이라 그 이유를 설명했다.
물론 나아진 점도 없지는 않았다. 화물 가시성을 확보하기 위한 GPS(위치발신시스템)가 보급된 것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GPS는 정작 화물 운영을 담당하는 매니저들의 라우팅과 같은 실질적 업무에는 별다른 도움을 주지 못했다. 게다가 GPS 소프트웨어는 단순히 현재 화물차의 위치만 보여줄 뿐 운송기사가 성공적으로 화물을 운송했는지 확인할 수도 없었다.
사진= 벌사플릿 어플리케이션을 통해 실시간 화물 트래킹이 가능하다.
샤미르 CEO는 동남아시아의 주먹구구식 물류 문제를 자동화하기 위해 수십 개 회사의 솔루션 도입을 테스트해 봤다. 그러나 샤미르 CEO가 테스트한 모든 솔루션은 중소기업(SME)이 대부분인 3PL업체에 적용시키기에는 적합하지 않다는 결과가 도출됐다. 솔루션 자체가 매우 고가이며, 사용법 또한 까다로웠기 때문이다. 더욱이 하나의 배송 처리를 위해서 6페이지에 이르는 문서를 작성해야만 했으며, 실질적인 라우팅에는 도움이 안되는 ‘GPS트래킹 솔루션’이 대부분이기도 했다.
벌사플릿의 탄생, 소프트웨어로 혁신하라
샤미르 CEO는 결국 직접 소프트웨어 개발을 시작했다. 벌사플릿이 탄생한 계기다. 브라우저 기반의 벌사플릿 소프트웨어는 중앙 관리형 서비스 포탈이라 할 수 있다. 실제 운송사 계정을 통해 화물 이동과 같은 정보가 클라우드에 연동된다. 이 정보는 소프트웨어를 이용하는 운송사뿐만 아니라 화주 역시 확인할 수 있다.
운송사의 운영매니저는 수신되는 주문을 추적할 수 있으며, 모바일 어플리케이션 ‘벌사드라이브(VersaDrive)’를 통해 배차를 할당하고 화물운송기사를 출발시킬 수 있다. 또한 어플리케이션을 통한 실시간(Real-time) 공지를 통해 24시간 화물 수거 현황 및 배송 상태에 대한 가시성을 확보할 수 있기도 하다.
사진= 벌사플릿은 화물 운영 매니저들의 발송 스케쥴을 실시간으로 기사들에게 전달할 수 있으며 VersaDrive는 운송기사들이 사용하는 모바일 어플리케이션이다.
샤미르 CEO는 “현재 동남아시아는 공급사슬 전 과정에 ‘가시성(Visibility)’이 필요하다는 것은 알지만 그 원리를 이해할 수 없거나 기술 부족으로 현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블랙박스(Black box)와 같은 상태”라며 “벌사플릿은 이러한 문제점들을 클라우드 소프트웨어를 기반으로 해결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클라우드가 뭐길래
벌사플릿이 강조하는 ‘클라우드’란 대체 무엇일까. 일전 운송 솔루션을 도입한 기업들은 일반적으로 SAP이나 오라클(Oracle) 같은 전사적 소프트웨어를 사용했다. 전사적 소프트웨어 라이센스는 매우 고가이며, 소프트웨어 유지비용, 회사 자체의 서버 구조에 구입한 소프트웨어를 통합시키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비용, 반강제적으로 구매해야하는 추가 업데이트 버전과 같은 부가적인 비용 또한 발생한다는 단점이 있다.
벌사플릿은 이러한 문제를 SaaS(Software as a Service) 비즈니스 모델로 해결했다. 일명 온디맨드(On-demand) 소프트웨어라고도 불리는 SaaS는 클라우드 환경에서 운영되기 때문에 시스템을 부가적으로 컴퓨터에 설치하지 않고, 웹에서 소프트웨어를 빌려 쓸 수 있다. 때문에 벌사플릿의 소프트웨어는 동남아시아 라스트마일 물류의 88%를 담당하는 중소기업들도 월비용을 지불하는 형식으로 쉽게 이용할 수 있으며, 항상 최신 버전의 소프트웨어를 이용할 수 있는 장점도 있다.
특히 벌사플릿의 솔루션은 라스트마일 물류에 특화되어 있다. 동시에 여러 명의 사용자가 이용할 수 있으며 물류 운영 담당자는 비주얼 플래닝(Visual Planning: 업무 드러내기)과 같이 업무량을 측정할 수 있어 업무 생산성 향상에 도움을 준다는 설명이다. 그 결과 벌사플릿의 솔루션은 국제적으로 여러 포상을 받기도 했다.
글로벌 컨설팅기업 프로스트앤설리반(Frost & Sullivan)은 2016년 운송&물류 고객가치 리더십 수상에서 ‘차랑 라우팅과 스케쥴링’ 부문에서 벌사플릿을 선정, 수상했다. 또한 KPMG싱가포르 라이언포(Lyon Poh) CIO는 “벌사플릿은 현존하는 최고의 물류 솔루션”이라며 “SaaS는 물류 산업이 나아가야할 방향”이라 극찬하기도 했다.
그래서 뭐가 좋은데
벌사플릿 소프트웨어는 현재 NVOCC(None-Vessel Operating Common Carrier, 무선박운송인), 화주, 포워더 등 많은 고객사가 사용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3PL업체뿐만 아니라 음식배달업체, 심지어 사설 응금이송차 운영회사까지 벌사플릿 소프트웨어를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벌사플릿은 기본적으로 중소기업(SME)의 운영방식 개선을 위한 솔루션을 만든 것을 강조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벌사플릿을 이용하는 중소 운송사들은 벌사플릿 소프트웨어를 이용할 경우 매월 약 500달러 이상의 추가이득이 발생하며, 이는 소프트웨어 이용료의 약 10배 이상의 효과라는 게 벌사플릿의 증언이다. 운송기사들 역시 벌사플릿 솔루션을 통해 전자상거래 업체인 아마존(Amazon), 우버잇츠(UberEats), 자롤라(Zalora), 코튼온(Cotton On) 등 글로벌 전자상거래 업체와 거래를 진행할 수 있게 됐다는 설명이다.
이에 따라 벌사플릿의 고객사는 점차 증가하고 있다. 벌사플릿에 따르면 현재 동남아시아 66개 업체가 약 500개의 화물운송자를 관리하기 위해 벌사플릿을 사용하고 있다. 또한 2016년 상반기 기준으로 동남아시아 전역에서 벌사플릿 소프트웨어를 이용하는 사용자는 약 10만명 이상으로 추정되며 지속적으로 그 영향력을 넓혀가고 있다.
한국업체, 벌사플릿 통해 동남아 품을까
벌사플릿은 현재까지 80만 달러(약 9억 4000만원) 규모의 누적투자를 유치했으며, 투자 금액 대부분은 상품 개발과 싱가포르 시장 진출에 사용했다. 사업 초기 단계 벌사플릿은 일시적인 급성장보다는 점진적으로 시장 진출 영역을 넓혀가는 전략을 택했다. 회사 자체 영업과 마케팅 활동은 물론 시스템과 같은 백엔드(Backend)도 함께 성장시켰다는 설명이다.
이제 벌사플릿은 글로벌 시장으로 확대할 준비가 되어있다고 말한다. 현재 250만 달러(약 29억 4000만원) 규모의 시리즈A 펀딩을 마무리 짓는 단계에 있기도 하다. 벌사플릿에 따르면 이번 투자금은 벌사플릿이 생각하는 미래 핵심 시장인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그리고 한국 사업 진출에 투입할 예정이다.
벌사플릿은 2016년 한국 시장 진출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동남아시아 수출을 고려하고 있거나, 진행하고 있는 한국 역직구 업체들을 목표로 진입한 것이다. 벌사플릿은 지난해 11월 안덕명(安德明, Arianto Usman Adamy) 매니저를 한국지부 총괄로 임명했으며, 한국에서 벌사플릿이 나아갈 방향에 대해 지속적으로 검토중이다.
사진= 벌사플릿 한국지사를 총괄하고 있는 안덕명(한국이름) 매니저가 '케이-스타트업 그랜드 챌린지에서 사업을 설명하는 모습
벌사플릿은 한국 시장 진출의 가장 큰 이유를 ‘한국 물류 시장의 가능성’으로 꼽았다. 한국은 세계 5위의 수출경제규모를 자랑하는 국가로, 한국의 수출액 중 약 15%는 동남아시아로 이동한다. 그러나 한국의 화주와 포워더들은 동남아시아 라스트마일 물류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대표적으로 항구 도착 이후 라스트마일 물류에 대한 트래킹이 까다로운 점을 꼽을 수 있다.
위와 같은 문제점을 겪고 있는 한국업체 또한 벌사플릿 소프트웨어를 이용할 경우 화물 가시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뿐만 아니라 실제로 화물을 받는 수취인 입장에서도 화물 배송을 트래킹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서비스를 강화할 수 있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당연히 동남아시아로 수출하는 국내기업, 그리고 화주들 입장에서 현재보다 더 나은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이 벌사플릿의 설명이다.
벌사플릿은 한국 진출 이후 미래부와 정보통신산업진흥원(NIPA)에서 주최한 ‘케이-스타트업 그랜드 챌린지(K-Startup Grand Challenge)’에서 결승전 출전자로 선발되기도 했다. 또한 벌사플릿의 한국 운영 파트너인 엑셀러레이터 ‘쉬프트(Shift)’와 한국 시장 동향을 조사한 후 현재 자회사 설립을 논의중이라는 설명이다.
안덕명 매니저는 “벌사플릿은 까다로운 동남아시아 물류를 최대한 쉽게 만들고자 한다”며 “현재 한국 네트워크를 확충하고 있으며, 곧 좋은 성과를 보일 수 있을 것”이라 자신했다.
벌사플릿은 동남아시아 시장을 중심으로 한국 등으로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현시점 벌사플릿은 싱가포르에 본사를 두고, 말레이시아에 지사를 설립했다. 인도네시아와 한국의 경우 지점 설립을 준비하고 있다. 벌사플릿은 가까운 미래에는 ‘인도’와 ‘중동’ 지역까지 비즈니스 영역을 확장하고자 한다.
벌사플릿의 궁극적인 목표는 글로벌 물류 사회에서 더 많은 사람들이 더욱 나은 기술을 사용하도록 하는 것이다. 더불어 벌사플릿과 고객사가 함께 성장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안덕명 매니저는 “벌사플릿을 사용하는 모든 운송사들이 더 많은 고객을 유치하고, 벌사플릿의 솔루션을 사용하는 화물운송기사들의 업무가 간편해지는 것을 보면서 큰 만족감을 느낀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