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고 사상 최초, 물류출신 임원 '발리 파다' CEO 발탁
발리 파다, 10년 전 레고의 공급망 위기 헤쳐나간 장본인
레고가 겪은 위기와 극복의 열쇠 '공급망'
사진= 차기 레고그룹 대표 발리 파다(Bali Padda). 과거 레고 그룹의 공급사슬 전반을 관리했다.
덴마크 완구회사 레고(Lego)의 차기 CEO로 물류담당 임원이 지목됐다.
2017년부터 정식 취임하는 발리 파다(Bali Padda)는 2002년 레고 그룹에 합류했다. 그는 2002년부터 2010년까지 약 8년간 공급사슬부문의 EVP(Executive Vice President: 전무이사)를 역임했다. 발리 파다는 레고에서 첫 물류출신 CEO다.
레고 그룹 이사회 의장인 닐스 야콥센(Niels Jacobsen)은 “발리 파다는 레고 그룹에서 그 동안 혁신적인 기록을 이어왔다. 특히 공급사슬 부문에서 그의 성과는 상당하다”며 “그는 과거 레고 그룹이 재정적인 위기를 겪었을 때도 과감한 공급사슬 혁신을 추구해왔다"라고 설명했다.
물류를 모르기에 나타난 문제들
2003년~2004년 레고그룹은 거대한 재정위기를 겪었다. 포브스(Forbes)에 따르면 2004년 레고는 일평균 백만 달러의 손실을 내고 있었다.
레고가 겪은 위기의 원인은 비디오 및 컴퓨터 게임 시장의 성장이다. 당시 레고는 새로운 경쟁자의 등장과 고객 이탈에 대응해 '패션', '출판', '영화', '게임산업' 등 각 분야에 신제품을 내놓았다.
물론 레고의 사업 다각화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다. 그러나 레고는 출시 과정에서 공급사슬을 고려하지 않고 경영 전략적 측면에서 신제품 출시를 결정했다. 당시 레고가 판매하는 전체 상품 중 30개 제품이 전체 매출의 80%를 차지하는 상황이었다. 이는 역설적으로 레고가 물류센터 안에서 관리하는 전체 SKU(Stock Keeping Unit)의 2/3가 더 이상 생산되지 않는 상품이라는 것을 의미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늘어만가는 신상품 때문에 SKU 숫자는 매년 증가했고, 덩달아 재고는 더더욱 증가해갔다.
레고의 무분별한 사업 다각화 전략은 결국 회사 공급사슬 전체의 문제를 발생시켰다. 레고가 다루는 상품 종류가 급증하면서 생산과 물류 부분의 문제가 점점 가시화되기 시작한 것이다. 레고에 부품을 공급하는 거래 업체들도 증가했고, 새로 줄줄이 선보인 상품들의 마케팅 실패로 인해 레고의 재고비용은 증가했다. 제조부터 물류관리까지, 공급사슬 전 과정이 복잡해 지면서 당시 물류 배송 정시성은 하락했다. 대규모 비효율이 발생한 것이다. 레고그룹이 대대적인 공급사슬 재구축 작업에 들어간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결과였다.
(자료= 레고그룹)
대규모 수술 들어간 레고의 공급망
레고는 생산과 물류 거점을 북미와 서유럽 지역에서 체코와 멕시코로 이동시켰고 이를 통해 비용을 절감했다. 2004년 당시 레고 상품은 덴마크, 스위스, 체코 등에서 생산되었다. 고객 주문 관리와 배송이 이루어지는 전국 11개 DC(Distribution Center) 또한 덴마크, 스위스, 프랑스, 독일 등에 위치했다.
당시 레고는 아시아로 생산 거점을 이동시키기 보다는 상대적으로 북미와 가까운 멕시코, 그리고 서유럽과 가까운 동유럽으로 생산 거점을 이동시켰다. 물류거점 또한 비용 절감을 위해 체코로 이동했으며 이를 외주 형태(Outsourcing)로 운영했다.
에길 몰러 닐슨(Egil Møller Nielsen) 레고 전부회장은 "대개 회사가 하나의 DC를 가진 경우 그 거점을 독일이나 베네룩스 3국에 위치시킨다"며 "이러한 변화가 최대한 고객 접점에 영향을 주지 않도록 매끄럽게 진행됐다"고 설명했다.
한편 레고는 증가한 재고와 SKU 숫자를 줄이기 위해 생산 상품을 줄이기도 했다. 이로써 공급사슬 부문에서 발생하는 비용을 절감하고 동시에 생산 아웃소싱 기회를 증가시킬 수 있었다는 설명이다. 전체 공급사슬 관점에서 사업을 바라봄으로 생산 프로세스를 단순하게 재정비하고 그간 발생했던 비효율성을 없앤 것이다.
발리 파다는 레고의 대대적인 공급망 정비 과정에서 직접 유동적인 공급 사슬 체계를 만들기 위한 전략을 펼쳤다. 레고는 상품 생산에 사용하는 색상 팔레트 수를 50개로 대폭 줄였으며 생산에 필요한 부품의 80%까지 줄였다. 원료(Resin)에 들어가는 비용 또한 50% 절감했다 궁극적으로 원재료 조달업체 수는 약 1/5로 줄어들었다. 이로써 레고는 필요에 따라 상품 제조를 아웃소싱 할 수 있게 되었다. 유동적인 공급사슬이다.
공급망을 사랑한 레고, 물류 출신 CEO가 만드는 미래
12월에 퇴임하는 외르겐 비 크누토르프(Jørgen Vig Knudstorp) 대표는 2003~2004년 당시 레고 그룹의 거대 재정위기를 타개한 장본인이다. 크누토르프 대표가 취임한지 1년 만인 2005년 레고는 흑자전환에 성공했으며, 2015년에는 25.2% 매출 신장율을 기록했다.
레고가 위기를 극복할 수 있던 핵심 요소 중 하나는 '공급사슬'이라는 설명이다. 몰러 닐슨 전부회장은 2010년 온라인 회의(Webinar)를 통해 "대대적인 공급사슬 개선은 마치 사람의 심장수술(Open heart surgery)과 같다"며 "광범위한 공급사슬에 대한 변화는 레고를 적자에서 흑자로 돌려놓았다"고 강조했다.
공급사슬 개편으로 위기를 극복한 크누토르프 대표를 발리 파다가 잇는 것도 어찌보면 예견된 일이다. 2007년 크누토르프 대표는 “나의 관점에서 공급사슬은 회사에 산소를 공급하는 순환기계(circulation system)라고 생각한다”며 “혈액이 지속적으로 흘러가게 고쳐야 한다. 공급사슬도 마찬가지다”라고 강조했다.
포브스는 이번 발리 파다의 CEO 취임 소감을 두고 공급사슬을 가장 잘 이해한 명언이라고 설명했다. 포브스가 전한 그의 말은 이러했다.
"우리는 급변하는 혼란 속에서 살고 있다. 당장 내일 우리에게 찾아올 변화에 대비하기 위해 어떻게 더 민첩해질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