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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속터미널, 8명의 퀵라이더를 만났다

by 임예리 기자

2016년 07월 14일

▲ 고속터미널로 이동하기 전 서울 성수동 모처의 퀵라이더 오토바이

 

엄지용 기자로부터 다짜고짜 퀵라이더의 이야기를 듣고 기사를 쓰라는 임무를 받았다. 퀵라이더가 자주 모인다는 ‘고속터미널’이라는 장소 외에 나에게 주어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기사 형식도 내 맘대로 쓰라고 한다. 그래서 진짜 내 맘대로 써본다.

 

입사 열흘차에 처음으로 혼자서 취재를 나갔다. 오전에 미리 약속을 잡아둔 퀵라이더와 몇 시간 동안 이야기를 나누면서 퀵서비스 업계 현황에 대해 대략적으로나마 전해 들었다. 정리를 끝내니 오후 3시다. 실제 현장에 있는 라이더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성수동 근처를 돌아다녔다. 퀵라이더에게 3번 인터뷰를 시도했고, 3번 모두 거절당했다.

 

다시 고속터미널역으로 갔다. 오후 6시 고속터미널 옆에 있는 오토바이 전용 주차장 쪽으로 갔다. 여기다 싶어 그 앞에 앉아 있다 보니, 몇 분에 한 대씩, 적어도 십 분에 한 대씩은 퀵라이더들이 멈춰서 짐을 내리거나 짐을 싣고 갔다. 기회를 봐서 여러 대의 휴대전화를 만지고 있는 한 라이더에게 다가가 인터뷰 요청을 했다. 역시나 거절당했다.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자판기에서 음료수를 하나 뽑았다. 그리고 짐을 풀고 있는 또 다른 퀵라이더에게 다가가 음료를 내밀며 인터뷰를 부탁했다. 드디어 성공했다. 다음 번에도 음료를 내밀었고, 역시 인터뷰에 성공했다. 수중에 현금이 2000원밖에 없었기 때문에 더 이상 음료를 뽑을 수 없었다. 마지막으로 시도했던 7번째 인터뷰 섭외는 실패했다.

 

2승 5패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

 

인터뷰 과정을 생각해보니 당연한 결과이지 싶다. 요즘 같은 세상에 다짜고짜 이야기 좀 할 수 있냐고 물어보며 다가오는 사람은 수상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특히나 퀵라이더에게 시간은 그야말로 돈이다. 월급을 받는 나는 하루 8시간을 일하든 12시간을 일하든 급여에 큰 차이가 없다.

 

하지만 특수고용직으로 분류되는 퀵라이더 대부분은 개인 사업자 형태로 퀵사와 계약 관계를 맺는다. 식비, 유류비, 보험료, 배차를 받을 기기와 소프트웨어까지 모두 라이더가 부담한다. 소비자가 지불하는 퀵요금 전부를 라이더가 가져가는 것도 아니고, 보통 약 23%의 수수료를 퀵사에 지불한다. 그렇기 때문에 퀵라이더에게 주문 한 건이라도 더 많이, 더 빨리 배달하는 것은 무척이나 중요하다.

 

퀵라이더, 무법을 달리는 자들

 

퀵서비스는 개인보다는 주로 기업이 이용하는 서비스다. 요즘 고객은 보통 카드로 결제하기 때문에 라이더에게 임금이 바로 전달되지 않고 ‘적립금’ 형태로 퀵사에 들어간다. 라이더는 퀵사가 정해놓은 기간에 따라 해당 적립금을 정산 받는다.

 

이렇게 주문을 수행하고 제 때 돈을 받는다면 그나마 다행이다. 혹여 퀵사가 퀵라이더의 적립금을 지급하지 않고 도망치더라도 관련 법안이 없기 때문에 퀵라이더가 구제받는 것은 힘들다. 실제로 업체의 ‘먹튀’ 사건은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지만, 퀵라이더 입장에서는 이렇다 할 방법이 없다.

 

먹튀는 물론이거니와 퀵라이더의 적립금 일부를 횡령하는 퀵사 또한 존재한다. 프로그램상에 저장된 퀵라이더의 적립금을 일부 빼가는 식이다. 해당 퀵사는 항의하는 퀵라이더에게 직원 실수라며 미안하다고 전했다고 한다. 이런 관행 때문에 일부 퀵라이더들은 자신이 당연히 받아야 할 적립금을 ‘수기’로 적어놓고 혹 차액이 발생하지 않나 대조하기도 한다.

 

퀵서비스 산업에서 가장 중요한 주체는 현장 배송을 담당하는 라이더다. 하지만 현재 퀵라이더 고용방식과 퀵서비스 산업 생태계 아래에서 라이더는 가장 약한 계층일 수밖에 없다. 특별한 조건 없이 산업에 진입할 수 있기 때문에 많은 퀵라이더들은 불합리한 고용 계약을 맺고 열악한 근무환경에서 일하게 된다.

 

개인사업자인 퀵라이더는 배차 프로그램 업체의 프로그램료를 부담한다. 업체마다 프로그램이 다르고, 하나의 업체에도 여러 프로그램이 있다. 퀵라이더들이 거치대까지 만들면서(이것 역시 돈을 주고 맞춘다) 적게는 두세 대, 많게는 대여섯대까지 휴대 단말기를 들고 다닌다. 이 또한 퀵라이더들의 부담이다. 또한, 퀵서비스 오토바이는 유상운송차량으로 분리되기 때문에 보험료도 굉장히 비싸다. 이 역시 라이더 혼자 부담해야 한다.

 

문제는 이 틈을 파고들며 생겨난 불법 프로그램이다. 흔히 지지기 프로그램이라 불리는 이것은 간단히 말해 기존 프로그램을 해킹한 프로그램이다. 지지기를 사용하면 기존 배차 프로그램에 올라오는 주문을 더 빨리 잡을 수 있게 된다. 때문에 많은 퀵라이더들은 기존 프로그램 사용료에 5~10만원의 돈을 내고 지지기를 설치한다. 사실상 전투배차에 뒤쳐지지 않기 위한 울며 겨자먹기식이다.

 

누구도 행복하지 못한 시장

 

내가 하루 동안 한 취재는 라이더 입장에서 본 퀵서비스 시장이었다. 아직 업체나 프로그램 제조사의 이야기를 직접 듣진 못했다. 퀵사는 ‘저단가 경쟁’과 ‘퀵라이더 관리’, 프로그램 제조업체는 ‘불법 지지기 프로그램’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고 한다. 퀵서비스 소비자 역시 ‘기준 없는 가격’과 ‘불친절함’ 때문에 퀵서비스에 대한 좋지 않은 편견을 가지고 있다.

 

이렇게 퀵서비스 산업을 구성하고 있는 주체들이 각기 다른, 하지만 서로 연결점을 가진 문제로 고민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는 관련 법안 제정은커녕 정확한 시장 규모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여러 정황을 종합해 대략적으로 4조 정도라고 추측하고 있을 뿐이다. 결코 작지 않은 시장이 비합리적인 질서에 기대 10년 이상 유지되고 있다.

 

얼마 전 크게 논란이 됐던 옥시 사건의 시작은 2006년이었다. 이 사건이 언론의 집중을 받고 정부가 진상규명 수사를 시작하기까지 10년의 시간이 걸렸다. 그 동안 폐질환 사망자의 유족들과 시민단체는 끊임 없이 사회의 관심을 촉구했다. 이와 비슷하게 퀵서비스 산업의 법제화를 외치는 목소리도 오래 전부터 나오고 있다. 하지만 퀵라이더들이 함께 모여 권익을 외쳤던 적은 없었으며, 언론, 정치권, 시민사회 모두 이들의 현실에 크게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이제 겨우 발을 뗀 신입기자지만, 이것만큼은 확실하다. 구성원 중 누구도 행복하지 않은 현실은 반드시 바뀌어야 한다. 그 방향은 구성원들 스스로가 결정해야 한다.



임예리 기자

三人行,必有我师。 페이쓰북 / 이메일: yeri@cloma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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