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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기자의 현장까대기] 물류학에 있는 물류, 물류학에 없는 물류

by 엄지용 기자

2016년 02월 08일

[엄기자의 현장까대기 : 아홉번째 이야기]

전혀 새로운 녀석들이 몰려오고 있다

(사진 : 물류학 전공서적. 물류는 융합학문으로 공급망의 흐름을 관측하여 가치를 부여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사진제공 : 기자의 서랍)

 

황금연휴. 간만에 집에서 뒹굴거리다가 책장을 바라봤습니다. 제가 근 5년동안 공부했던 전공서들이 보이더군요. 오랜만에 책장을 폈습니다.

 

물류. 물류학원론 전공서에 나와있는 CLM의 정의에 따르자면 물류란 "고객의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발생지에서 소비자까지 원자재, 중간재, 완제품 및 관련 정보의 흐름과 저장이 효율적이고 비용 효과적으로 이루어지도록 계획, 실행 통제하는 프로세스" 입니다.

 

사실 요새 학계의 대세는 물류보다는 ´공급망´, 즉 ´공급사슬관리(Supply Chain Management)´입니다. 공급사슬관리 전공서에 나와있는 Global Supply Chain Forum의 정의에 따르자면 공급사슬관리란 "고객 및 이해 관계자들에게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도록 최초의 공급업체로부터 최종 소비자에 이르기까지의 상품, 서비스 및 정보의 흐름이 이루어지는 비즈니스 프로세스를 통합적으로 운영하는 전략" 입니다.

 

여기서 "그게 뭔 소리여?"라고 되묻는 분도 있을 듯 합니다.

 

그래서 제 나름대로 물류학에 대한 재해석을 해봤습니다.

 

교과서에 나타나 있는 물류와 공급사슬관리의 정의에서 나타나 있는 공통적인 단어는 ´흐름(流)´입니다. 사실 이게 물류학에서는 가장 중요해요. 흐름이 없으면 물류는 학문이 될 수 없습니다.

 

흔히들 ´물류학´을 공부한다 하면 "택배하는 데냐?"라는 질문을 많이 받습니다. 그것보다 조금 더 간지나게 물어봐 준다면 "항공기나 선박으로 물건을 옮기면서 해외에서 무엇인가를 하는 것 아니냐?"는 질문이 들어오죠. 물류학을 공부하는 많은 학생들이 ´글로벌인재´가 되기를 희망하며 ´선사´, ´항공사´ 취업을 꿈꾸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단편적인 현상만 바라보자면 명백하게 학문이 되는 것은 어렵습니다. 이는 한 업태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택배학, 해운학, 항공운송학이라는 말은 쓰지 않잖아요? 학문이란 모름지기 사회현상을 설명할 수 있는 보편성이 있어야 됩니다. (학사 과정에 한정합니다. 석박사 과정은 치밀하게 한 분야를 연구하기도 합니다.)

 
 
결국 물류는 ´흐름´을 연구하는 학문입니다. 가령 저는 지금 스타벅스에서 아메리카노 한 잔하며 글을 쓰고 있는데요. 원산지에서 커피콩이 생산되어 공장으로 이동, 가공되어 선박, 트럭을 통해 스타벅스로 도착하는 전체적인 프로세스 중에 ´불필요한 과정을 파악하고´, ´조금 더 빠르게, 혹은 저렴하게 올 수 있는 방법이 없는지 알아내고´, ´긴 시간의 이동에도 불구하고 커피의 향(가치)을 지킬 방법을 찾는 것´이 곧 물류입니다.
 
 
저는 물류학을 "공급망을 따라 재화(物)가 이동(流)하는 데 있어 가치를 창출하는 학문" 이라 정의하겠습니다.
 
결국 흐름을 알기 위해서는 제조, 유통, 물류, 그리고 그것을 지원하는 IT까지 다방면에서 발생하는 현상을 이해해야 되죠. 때문에 제가 학교에서 배운 물류학도 그 범위가 아주 넓습니다. 해운, 항공, 철도, 육상운송, 파이프라인 등 운송수단(MODE)은 물론 항만, 공항, 터미널, 물류센터 등 운송거점(NODE)에 대해서도 배웠죠. 운송 라우팅, OR(Operation Research)과 같은 IT를 활용하여 운송루트(LINK)를 설계하는 법도 배웠습니다. 이를 위해서 기본적인 컴퓨터프로그래밍, 통계학, 경제학, 경영학(마케팅, 생산관리, 회계)의 영역까지 배웠습니다.
 
네. 물류는 잡학(예쁘게 말하면 융합학문)입니다. 사회 곳곳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현상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없으면 ´흐름´을 이해할 수 없으니까요.
 
이런 제가 기자생활을 시작하면서 필드에 나왔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걸. 세상은 제가 지금껏 배우지 못했던 새로운 물류로 가득했습니다. 저는 앞서 물류학을 "공급망을 따라 재화가 이동하는데 있어 가치를 창출하는 학문" 이라 정의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필드에서 만난 이들은 이 정의에 따라 사업을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물론 그들 스스로는 그것이 ´물류´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이들이 대부분이었지만요.
 
저는 이것을 ´물류학에 없는 물류´라 부릅니다. 더욱이 무서운 것은 ´물류학에 없는 물류´가 전통물류를 넘어 트렌드의 중심에 나타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물류학에 없는 물류가 몰려온다
 
물류학에 없는 물류 1 : 라스트마일 배송(Last-mile Delivery)
 
아마존의 프라임나우, 쿠팡의 로켓배송, 티몬의 슈퍼배송, GS샵의 라이브배송, 예스24의 총알배송... 그 외 수많은 스타트업들의 서비스까지. 라스트마일 배송에 가치를 부여하고 있는 기업들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라스트마일을 만들기 위한, 특히 당일배송망을 구축하기 위한 방법 중 대표적으로 거론되고 있는 것이 ´이륜차 물류´입니다. 실제로 많은 스타트업들은 이륜차를 기반으로 물류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지요.
 
그러나 놀랍게도 물류학 교과과정에는 ´이륜차 물류´가 없습니다. 사실 한국은 ´이륜차 물류´와 관련된 제도조차 없는 것이 실정입니다. 시장이 규정되지 않았으니, 학문이 나타나기도 어려웠겠지요... 현재 이륜차 시장은 말 그대로 ´지하경제´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몇몇 기업들이 독과점 구조를 형성하고 있으며, 현장을 개척하고 있는 대부분의 라이더들은 제도의 보호를 받지 못합니다. 아무런 규제도 없기에 ´불법´이라 부르지도 못할 불공정한 실태가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습니다.
 
이륜차 배송분야는 지금 ´지키는 자´와 ´변화시키려는 자´가 전면으로 맞붙었습니다. 지금껏 지하에 있었기 때문에 관심받지 못했던 분야였지만, 시장을 변화시키려는 새로운 업체의 등장과 성장은 오랜시간 변하지 않던 이들을 움직이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한 가지 사실은 변하지 않습니다. 이들이 치열한 전투를 벌이고 있는 전장은 ´불법´도 아닌 ´무법지대´라는 사실입니다.
 
 
물류학에 없는 물류 2 : 공유경제(Sharing Economy)
 
공유경제. 물품을 소유하여 개인이 사용하는 것이 아닌, 필요에 따라 여러 명이 함께 공유하여 사용하는 경제활동을 말합니다. 경제학의 이단아라 불리기도 하면서 시장에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공유경제의 개념이 부상하게 된 것은 여러 이유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중 하나는 공유경제를 기반으로 한 스타트업의 폭발적인 성장을 들 수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운전자의 남은 자석을 활용하여 물류, 여객 서비스를 제공해주는 ´우버´와 자택의 남는 공간을 활용하여 숙박 서비스를 제공해주는 ´에어비앤비´가 있지요. 우버와 에어비앤비의 기업가치는 각각 625억 달러(75조 5000억 원), 255억 달러(30조 8000억 원)으로 평가받으며 창업 10년만에 종전 수십, 수백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기업의 가치를 넘어섰습니다.
 
 
물론 공유경제는 비단 물류의 영역에만 한정된 개념은 아닙니다. 그러나 스스로를 물류업체(Logistics Company)라 정의하고 있는 우버를 선두주자로 유사한 개념을 도입한 스타트업이 우후죽순 탄생하고 있는 것을 미뤄봤을 때 공유경제의 영역 안에서 ´물류´는 분명 큰 파이를 차지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국내에서도 일반인을 배송인으로 활용하는 서비스인 SNS퀵, 무버, 팩맨즈, 주퍼 등 많은 서비스가 탄생했습니다. 전혀 새로운 경제개념을 도입한 이들 서비스는 기존 물류학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개념입니다. 역시나 국내에는 이들을 포괄할 수 있는 제도가 없습니다. 한국에서 제도의 벽에 가로막혀 여러 서비스를 철수한 ´우버코리아´와, 최근 법적분쟁을 겪고 있는 ´콜버스´를 대표적인 사례로 언급할 수 있겠습니다.
 
이런 환경의 영향인지 국내에서는 공유경제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가 활발히 일어나지 않고 있습니다. 한 공유경제 배송 스타트업 관계자에 따르면 "관심을 갖고 다가오는 투자사는 많지만, 제도와 충돌 가능성 등 위험요소가 존재하기 때문인지 실제 투자까지 이어지지는 않는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국내 상황은 잠시 뒤로 하더라도 전 세계적으로 ´공유경제´가 하나의 대세를 형성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물류학에 없는 물류 3 : 온디맨드 물류(On-demand Logistics)
 
온디맨드(On-demand), 혹은 O2O(Offline to Online)는 스타트업 업계에서 그야말로 하나의 대세입니다. 임정욱 스타트업얼라이언스 센터장은 지난해 12월 CLO와의 인터뷰를 통해 “2015년 국내 스타트업 투자가 가장 활발히 일어났던 분야는 온디맨드라고도 불리는 O2O”라며 “이것은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인 메가 트렌드”라 언급했습니다. 그렇다면 O2O, 특히 온라인을 오프라인으로 옮기기 위해서(Online to Offline)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단언컨데 ´물류´가 필요합니다.
 
세탁 서비스 ´크린바스켓´, 이사 서비스 ´짐카´, 수하물 운송 서비스 ´베이팩스´, 온디맨드 생활편의 서비스 ´띵동´, 꽃배달 서비스 ´원모먼트´... 이들은 서비스 기업입니다. 저는 각 회사의 대표님들을 모두 만나서 이야기를 나눠봤습니다. 그리고 분명 이 업체들은 ´물류´를 메인으로 포지셔닝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앞서 제가 언급했던 물류의 정의인 "공급망을 따라 재화가 이동하는데 있어 가치를 창출하는 것"에 따르면 이들은 서비스에 필연적으로 물류가 포함되는 업체이기도 합니다. 크린바스켓은 서비스를 위해 자체차량을 마련했고, 짐카는 기존 용달 서비스업체를 활용하고 있죠. 원모먼트는 라스트마일 배송 스타트업과 제휴하고 있으며, 띵동은 100여명에 달하는 라이더를 직접고용하고 있습니다.
 
단순히 "물류는 배송이다"라는 명제로 바라본다면 이들은 물류업체가 아닙니다. 그러나 "물류는 흐름이다"라는 명제에서 바라본다면 이들은 분명 물류를 중심에 두고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는 업체입니다. 결과론적으로 공급망에 가치를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기 때문이죠.
 
그리고 역시나 물류학 교과서에는 ´온디맨드 물류´의 개념을 배울 수 없습니다. 학계는 서비스와 물류가 결합되면서 나타나는 전혀 새로운 비즈니스를 포괄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해당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는 업체의 대표 또한 스스로를 ´물류업체´라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정부의 도움이 필요할 때 ´국토교통부´를 찾아가지 않습니다. 중소기업청이나 미래창조과학부가 오히려 이들에게는 친숙한 기관이겠지요.
 
 
물류학의 이단아?, 시대의 혁신자?
 
물류학에 없는 물류, 지금껏 없었던 전혀 새로운 녀석들이 물류시장에 몰려오고 있습니다. 이들에 대한 물류업계의 반응은 어떨까요? 대부분은 이러한 테크트리를 탑니다.
 
1. "그게 뭐가 물류냐?"
2. "어, 물류 같기도 한데?"
3. "이거 써먹을 곳이 있겠는데?"
 
CJ대한통운과 이륜차 기반 물류스타트업 ´메쉬코리아´의 전국 당일배송사업 제휴, 같은 맥락에서 현대로지스틱스와 화물운송 중개 스타트업 ´고고밴코리아´의 당일배송 사업 제휴가 이를 증명하지요. 이 외에도 BGF리테일, 신세계, SPC, GS샵 등 스타트업과 협업을 하고 있거나 준비하고 있는 기존 물류, 유통업체들의 사례는 꽤나 다양한 곳에서 살펴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정부는 어떨까요. 강호인 국토교통부 장관은 지난달 12일 스타트업 대표단을 만나 "행정이 사회 혁신의 걸림돌이 되어서는 안된다"면서 "행정이 세상의 눈부신 변화에 부응할 수 있도록 행정의 속도와 사회 혁신의 속도 차이를 줄여가겠다" 밝혔습니다. 새로운 혁신 서비스와 친화적인 정책을 내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이지요.
 
아울러 향후 10년의 물류정책의 기조를 결정하는 국가물류기본계획(안)에는 "물류의 영역이 기존 B2B를 넘어 B2C, C2C, M2C 개념까지 다양하게 확장하고 있으며 관련 정책을 준비해야 할 것"이라 명기되어 있습니다. 확정된 국가물류기본계획은 오는 3월 발표될 예정입니다. 세상은 분명히 새로운 방향으로 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서 물류학계는 여전히 새롭게 등장한 녀석들을 포괄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나마 지난해 한국교통연구원이 처음으로 국토교통부의 의뢰로 국내 물류스타트업과 관련된 첫번째 국책연구를 수행한 것을 대표적인 사례로 언급할 수 있겠지요. 그러나 한국교통연구원이 시장조사 차 스타트업 대표들에게 던진 질문지를 보면 그야말로 가관입니다. 물류를 전혀 모를 수 있는 스타트업 관계자들에 대한 고민이 선행되어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대표적으로 해당 설문지의 한 질문을 뽑아 보겠습니다.
 
 
Q. ICT 융합형 물류스타트업들을 집적하기 위한 클러스터 단지를 기존 물류시설과 연계하여 조성하려 한다면 적합한 기존 시설은 무엇이라 생각하십니까?
(1) 첨단도시물류단지 (2) 복합물류터미널 (3) 내륙컨테이너기지(ICD) (4) 철도CY (5) 기타
 
서비스에 매진하고 있는 스타트업이 ICD와 복합물류터미널의 차이를 알 수 있을까요? 뭔지 알게 뭡니까... 행여 국토부가 기존 진행되고 있는 정책을 억지로 스타트업에 끼워맞추는 방식으로 스타트업을 지원하고자 한다면, 스타트업 지원정책임에 불구하고 스타트업 관계자에게 환영받지 못하는 우스운 상황이 발생할 것은 자명합니다. 이 질문지를 직접 받아본 스타트업 관계자는 저에게 "국토부가 스타트업 지원을 위해 무엇인가 하려고 하는 것 같긴 한데 도무지 뭔 소리를 하는지는 모르겠다"고 말했습니다.
 
방향성이 명확하게 잡힌 지금. 국토교통부의 스타트업 지원이 단순히 중앙정부의 창조경제 기조에 휩쓸리는 개념이 아니라면 스타트업에 대한 명확한 이해부터 선행되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기존 물류학에 있던 물류,
그리고 새롭게 등장한 물류학에 없는 물류,
변화를 뒷짐지고 바라보는 물류학계,
왠지 모르게 뒷배에 나타난 정부,
 
바람은 분명 불고 있습니다.
그저 이 바람이 한 순간의 바람으로 그치지 않기를 바랍니다.


엄지용 기자

흐름과 문화를 고민합니다. [기사제보= press@clomag.co.kr] (큐레이션 블로그 : 물류로 세상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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