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후버/인터넷 물류논객
국민의 4대 의무 중 하나라는 국방의 의무. 국방의 의무를 위해 절대 다수의 성인 남성들은 2년여의 시간 동안 외부와 차단된 격리 생활을 감내한다. 일제 강점기 때부터 유구히 내려온 구타와 가혹행위를 근절하기 위해, 즉 예전에는 당연하게 여겼던 것을 무의미한 것으로 만들기 위해 군 전체적인 노력이 있었던 것은 분명하다.
동원예비군 훈련을 받으러 갔다가 현역병들에게 '요즘도 때리냐?'고 물어봤더니, 현역 일병이 '우린 그런 일 있으면 벨 눌러 버립니다'라며 간부 집무실과 직통으로 연결된 벨을 자랑스럽게 보여주던 시절이 있었다.
그런데 최근 영내에서 발생하여 언론에 보도된 일련의 사건들은 지금까지의 노력이 덧없는 것이었는지 의문을 던진다. 아니 덧없었던 것은 아니다. 단지, 이제 시대가 바뀌어서 그런 노력들이 무의미해졌을 뿐이다. 노력을 해도 그것이 무의미하니까 그런 황당한 사건들이 일어나는 것이지 노력을 안 해서가 아니다.
관심사병(?)이 늘고 있는 이유
최근 십여년, 즉 지금 병영 생활을 하는 사병들이 자아를 형성해 가던 시절에 일어난 굵직한 추세들이 과연 제대로 된 자아를 형성해 나갈 수 있는 기회를 주었는지 생각해 보자.
자주 바뀌는 대입시험제도. 이에 따른 사교육 비용의 증가. 공부에 관한 한 모든 뒷바라지를 해 주고, 심지어 어느 학원 어느 강사 강의를 수강해야 할지까지 지정해 주며, 오직 공부만 잘 하면 사회인으로서의 기본적인 교양이 없어도 괜찮다고 본 헬리콥터 부모의 등장. 인스턴트 식품과 이동통신 발달로 대표되는
'즉시 무언가를 충족하지 않으면 왠지 불안'한 참을성이 부족한 젊은 세대의 양산.
자기와 다른 사람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집단 따돌림의 증가. 아르바이트를 아무리 열심히 해도 등록금을 채울 수 없는 힘겨운 대학생활. 졸업 후 '괜찮은 직장'을 찾지 못해 생기는 구직난. 이를 뒷받침한 대졸자 양산. 신용 불량자 양산. 자영업 몰락으로 인한 중산층 감소. 사회 진출을 위해, 또는 사회 진출 이후 예전보다 고비용을 감수해야 하는 시대….
즉 지금 병영 생활을 하는 이들은 자아 형성의 과정에서 조직과의 융화, 단체 생활, 상대방에 대한 예의와 존중과 배려가 아니라 치열한 경쟁, 내가 잘 되기 위해서는 남을 철저하게 짓밟아도 좋다는 정신의 발로에서 나온 집단 따돌림
그에 따른 스트레스를 인스턴트 식품이나 트랜스지방이나 당분이 잔뜩 들어간 식품이나 전자 미디어 등 자극적인 수단과 방법으로 해결하는 것, 공부 한가지만 잘하면 이 세상 그 어느 누구도 자신을 제지할 사람이 없다는 이 사회의 불문율, 원하는 것을 손에 넣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것에 너무나 익숙해진 세대다. 모두가 그렇다는 것은 절대 아니다. 그저 예전에 비해 그런 사람들이 증가했고, 따라서 예전보다 기대하지 않은 사건이 일어날 확률이 더 높아진 것 뿐이다.
그런 사람들을 병영에 밀어 넣으면 그들이 강도 높은 군사 훈련을 통해 상대방을 예의바르게 대하고 존중하고 배려하며, 경쟁을 안 하고, 집단 따돌림을 안 할 것이며,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자극적인 수단을 안 쓰게 될 것이므로 병영 내에서 그런 일이 발생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했는가? 그들은 온갖 스트레스를 감내하고 전투 준비를 위해 병영에 들어간 것이지 청학동에서 천자문 배우거나 보이스카웃 잼버리 대회 참여하러 병영에 들어간 것 아니다.
병영 생활은 쉽게 익숙해질 수 없다. 규율이 엄격하고, 폐쇄적이다. 예전보다 참을성 부족하고 경쟁과 집단 따돌림에 익숙해져 있으며, 뭔가 즉각적으로 자신의 욕구를 해결해 주지 않으면 스트레스부터 받는 세대는 더욱 더 익숙해지기 어렵다.
동료간 무관심, 물류현장이 위험하다
물류전문 매거진에 갑자기 병영 내 구타와 가혹행위 얘기를 길게 늘어놓는 이유가 궁금한가? 병영 생활에 발을 들여놓기 전, 또는 전역한 후의 젊은이들이 비교적 쉽게 사회에 발을 들여놓는 곳이 어디던가? 바로 ‘물류’다.
고도의 육체 노동과 두뇌 회전을 융합시킨 물류 업무는 아르바이트, 인력파견회사, 지입차주 등 다양한 형태로 군 복무 전후의 젊은이들을 부른다. 특히 물류업무 경력은 군 복무 전후의 젊은이들에게는 비교적 이력서에 쓰기 괜찮은 사회경험 중 하나이고, 물류센터는 출하량의 심한 부침에 대비하여 투입할 수 있는 인력을 확보하게 되니 서로 이득이다.
설마 병영 내에서 했듯이 물류센터 현장에서 일 못한다고 탈의실에서 구타하고 식당에서 밥 먹는데 침뱉고 3단 마스트 지게차 꼭대기에 올려 버리고 지게차 키 끄고 퇴근해 버리는 그런 야비한 짓을 하고 있다고 감히 상상하지는 않겠다.
하지만 물류 현장에서 예전보다 일에 잘 적응 못하는 이들과 예전보다 자신의 이성을 통제하기 어려워하는 작업자들을 맞는 감독자들이 이들을 다독이고, 동기부여를 해서 생산성을 높이는 데 힘이 들지는 않을지 걱정이 앞선다. 어차피 일시적으로 이용하는 인력이므로 상관없다고? 그 일시적으로 이용하는 인력 중 쓸만한 인재를 찾아내서 육성하는 것 또한 우리에게는 중요하다.
어쩌면 지금 이 순간에도 감독자들이 왜 자신이 이 일을 해야 하는지 동기부여가 안 되고, 힘든 일에 적응을 못 하거나, 너무 거칠게 굴어서 주변 사람을 불편하게 하는 작업자로 인해 골머리를 앓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제는 작업자가 정말 심신이 안정된 상태로 일에 전념할 수 있도록 배려해야 할 때다. 그 배려가 어떤 형태로 나타나야 하는지는 필자는 인사 전문가가 아니므로 뭐라고 설명을 못 하겠다. 하지만, 분명히 필요해졌다. 이런 얘기가 과거라고 없었겠냐만, 작금의 병영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보고 있노라면 중고생 때 교정에서 벌어졌던 일들을 그들이 병영에서 재생산하고 있다는 것이 명약관화하다.
그렇다면 그 다음 순서는 이런저런 이유로 군 복무 전후의 휴학생들을 받아 부족한 일손을 채우는 물류업계에서 이들이 작업생산성에 미치는 악영향은 없는지 면밀하게 살펴야 한다. 그들을 과거와 동일한 교육훈련과 리더십으로 인재로 키울 수 있겠는지 여부를 생각해볼 때다.
어쩌면 지금의 물류업계에는 과거 하이틴 영화에서 자주 보이던 가난하고 생활이 어려운 학생을 물심양면으로 도와주는 총각 선생님 같은 그런 리더십과 배려가 필요한 것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