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귀중한 화물”
글. 설창민 SCM 칼럼니스트
※ 우선 글에 앞서 세월호 침몰 사고로 희생된 모든 이들과 그 유가족 분들에게 마음 속 깊은 곳으로부터 애도의 뜻을 표합니다.
장난감 고무보트에 천진난만하게 웃는 아이들 몇 명이 타고 있는 사진과 함께 “세상에서 가장 귀중한 화물”이라는 광고 문구를 큼지막하게 박아 넣었던 국내 한 대형 해운회사의 해외 인쇄물 광고가 문득 떠오르는 4월이었다.
맞다. 세상에서 가장 귀중한 화물은 사람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수많은 안전에 대한 규정과 규제들은 결국 사람을 향한 안전이다. 헐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들에 등장하는 슈퍼 히어로들은 도시 전부가 부숴질 때까지 적과 싸워서라도 사람을 구해낸다. 그러므로 우리가 매우 일반적이고 정상적인 이성을 가지고 있다면 화물운송 수입을 위해 그 화물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이 고귀한 수백명의 사람을 처절하게 희생시킨 희대의 사건을 보고 당연히 분개해야 한다.
필자 역시 시간의 수레바퀴가 육해공 동시 다발로 대형 사고가 발생하던 20년 전으로 되돌아간 느낌이었고, 대부분의 희생이 모두가 저출산으로 고민하는 시대에 몇년만 지나면 이 나라의 노동력이자 유권자가 되어 미래를 짊어지고 나갈 젊은 학생들이었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안타까웠다. 케이블TV 드라마 ‘응답하라 1994’로 대표되듯이 90년대에 대한 향수를 갖는 것은 좋지만, 사고에 대처하는 정신자세와 프로세스마저 90년대 수준을 유지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세월호가 침몰한 원인은 아직 명쾌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현재 선박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직접적인 원인이 과적과 화물고정 불량, 과속운행 등 화물과 관련된 요인들에 점점 더 힘이 실리고 있다.
여기서 잠간 생각해보자. 과적이나 화물고정 불량, 과속운행은 지난 수십년간 잊을만 하면 9시뉴스를 장식하던 단골 메뉴다. 과적으로 인한 도로 손상, 대형트럭 통행금지 구간을 버젓이 달리는 대형트럭들, 건설자재를 싣고 달리면서 제대로 덮개를 씌우지 않아 길바닥에 돌멩이나 모래를 뿌리는 바람에 뒷차를 위협하는 덤프트럭들. 곡예운전을 하는 음식 배달부들, 어린아이들을 정원보다 많이 싣고 안전벨트도 채우지 않고 달리는 유치원이나 어린이집 버스들, 아이가 보채고 칭얼거린다는 이유로 아이를 유아용 카시트에 앉히지 않는 부모들 등 그 사례는 셀 수 없이 많다. 굳이 세월호 얘기를 꺼내지 않아도 우리나라는 지난 수십년간 과적과 화물고정 불량, 그리고 과속운행의 천국이었다.
그렇다면 과적과 화물고정 불량, 과속운행의 천국은 운송업자가 원죄를 짓고 태어났기 때문에 생긴 것일까? 아니다. 그 천국 아닌 천국을 이룩하기 위해 운송업자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가 조금씩 힘을 보태 왔다. 구매자의 지위를 이용하여 납품업자에게 무리한 납기를 제시해 봤다거나, 원가 절감을 아무리 해도 달성하기 어려운 운임을 강요해 봤다거나, 어린 아이들이라는 이유로 정원보다 더 많은 인원을 승용차에 태워 봤다거나, 아이를 차에 태울 때 아이가 칭얼거린다고 카시트에 앉히지 않았거나, 음식 배달부에게 조금이라도 더 빨리 오라고 재촉해 봤다거나, 이삿짐을 실으면서 마지막에 싣지 못한 물건을 이삿짐 트럭 맨 뒤에 스카치 테이프로 고정하고 이사를 가 봤다면, 요컨대 화물이 무엇이건 우리 모두는 세월호 침몰의 원인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물론 과적이나 화물고정에 대한 시비 없이 잘 운영되는 업종도 더러 있다. 대표적인 것이 항공운송분야이다. 필자가 잘 몰라서 그들의 과적행위를 모르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최소한 항공기 추락사고의 원인을 보면 조종사 과실은 많이 봤어도 과적이나 화물고정 불량은 별로 경험하지 못했다. 그런데 항공사는 돈이 많아서 화물취급에 대한 안전을 더 꼼꼼히 챙기는 것이라고? 사실 요즘 항공사들도 무척 어렵다. 아마 과적이나 화물 고정에 대한 규제의 테두리가 없다면 과적하고 싶은 심정일 게다.
항공사가 과적을 자제하는 것은 과적을 할 경우 이를 잡아낼 수 있는 수단이 도처에 있고, 과적으로 인한 손실이 한번 드러날 경우 너무나 막대하기 때문이다. 항공기의 엄격한 좌우측 균형 관리는 여러 차례 언론보도화되어 별반 새롭지 않다. 균형이 맞지 않는 상태에서 이륙했다가 공해상에서 잘못되는 날에는 구조하기도 쉽지 않다.
또 수입지 세관의 경우 중량이 적하 목록에 표시된 내역과 다르면 밀수로 의심하는 사례도 있다. 이래저래 과적을 할래야 하기가 힘들다. 게다가 항공기 가격이 매우 비싸서 만약 운항 중 잘못되면 그 손실은 상상을 초월한다. 보험금을 받는다 해도 차후의 보험료가 올라갈 것이고, 당장의 서비스에 차질이 생기는 것은 물론 화주들의 기피 대상이 되어 영업에도 문제가 생긴다. 호모 이코노미쿠스의 특징은, 자신의 경제적 의사결정에 따른 행동의 결과로 자신이 기대하는 수익보다 손실이 더 크다면, 그런 행동은 절대 안 한다.
거꾸로 말하면 과적, 화물고정 불량, 과속을 하는 이유는 적발 가능성이 매우 낮은 상태에서 이로 인해 기대되는 수익이 손실보다 크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해결방안은 간단하다. 손실이 더 크게 만들어 버리면 된다. 손실이 더 크게 만들기 위해 중량물 적재나 화물 고정 관련한 규제 수단을 동원하고 철저하게 관리 감독해야 한다. 운송수단을 운영하는 주체를 대상으로 그렇게 규제 수단을 동원하고 관리하면 된다.
이 방법이 성공하려면 화주도 바뀌어야 한다. 물류비 관리를 잘 하는 화주일수록 물류기업의 원가 분석에 강하기 마련이다. 원가 항목 중에 안전 규제에 의한 안전장비 확충비용이 들어 있다면, 이것을 반드시 넣어야만 정상적인 물류원가 관리가 가능하도록 하고, 안전장비 확충과 안전관리에 대한 노력을 물류관리의 프로세스 중 일부로 만드는 것이 최선이다. 예를 들어 디젤차량의 매연저감장치가 의무화되고, 그 장착비용이 상당하다고 해 보자. 앞뒤 가리지 않는 화주라면 그 비용은 무조건 운송업자에게 전가할 것이다. 그러면 운송업자는 그 손해를 전부 다 떠안으려 할까? 당연히 피할 수 있으면 피하려 하고, 조금 부실해지더라도 싸다면 과감하게 부실해지려 한다. 그 과감하게 부실해진 운송업자로 인한 손실은 누가 입게 되는가? 독한 디젤엔진 배기가스로 인한 미세먼지 증가는 불특정 다수의 대중에게 손실을 입힌다. 만약 정말 치밀한 관리를 하는 화주라면 물류비 원가를 분석할 때 매연저감장치를 원가에 반영함과 동시에 규제에 의한 원가 상승 요인으로 간주하고, 그것을 제외한 다른 분야에서 원가 절감을 달성하고자 노력한다.
요컨대, 안전을 언제든 떼어 버리고 싶을 때 떼어 버릴 수 있는 짐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물류관리에 있어서 수많은 제약사항 중 하나로 인식하는 노력이 무엇보다도 필요하다. 특히 요즘과 같은 공급망 관리의 시대에서 사고는 ‘Seamless Supply Chain’을 가로막는 최대의 적이 아니던가? Seamless Supply Chain을 담보로 안전을 포기하고 공급망을 관리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고귀한 인명을 위해 안전을 포기하지 않는 나라, 그런 나라가 선진국일 것이다.
세월호 침몰사고는 외견상 어리석은 선원들의 행동과 선사의 과욕, 정부 기관의 관리 소홀로 인한 참사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물류업계와 화주의 상생까지도 돌아보게 만드는 반면교사(反面敎師)인 것이다.
당장 눈앞의 사고만을 바라보고 대책을 세우기보다는 좀 더 거시적인 차원에서 상생이 되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속절없이 죽은 젊은 학생들의 넋을 기리는 방법이 될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
군 복무 전 우연히 하게 된 창고 알바를 계기로 물류에 입문, 아직 초심을 안 버리고 물류하고 살고 있는 평범한 직장인. 글을 쓸 때가 가장 행복해서 개인 블로그(http://blog.naver.com/dcscully)를 운영하고 있고, 다양한 실무 경험으로 물류업계 종사자들의 삶과 애환을 독특한 시각과 필체로 써내려가는 것이 삶의 보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