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공간을 위해 만들어진 3D 프린터, 지구에 혁명을 가져오다?
어떤 특징이 산업혁명의 '힌트'될까, 3D 프린터만의 특징 5가지
'위기'는 언제나 '기회'의 동의어, 물류·유통은 3D로 도약할 수 있을까
글. 민정웅 인하대학교 물류전문대학원 교수
(사진. SIKA's 3D CONCRETE PRINTING)
‘Offshoring’에서 ‘Offearthing’으로
2014년부터 나사(NASA)는 메이드인 스페이스社(Made In Space)와 함께 우주정거장 International Space Station(ISS) 내부에 3D 프린터를 설치하였습니다. 프린터를 설치한 이유는 아주 명료합니다. 물류비 때문이죠. NASA에 따르면, 우주정거장에서도 다양한 부품과 연장에 대한 재고관리가 필요한데, 예상치 못한 파손이나 고장 등으로 인한 수요예측이 어려워 항상 골머리를 앓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경우 지구에서라면 전화한통으로 간단히 해결할 수 있지만, 배송지가 우주정거장이라고 하면 문제는 달라집니다.
스페이스X가 공개한 2018년 기준 로켓 표준 운임을 보면, FALCON9의 경우 약 700억 원이 소요됩니다. 우주정거장이 있는 지구 저궤도(Low Earth Orbit)까지 탑재할 수 있는 중량이 22800kg이니, 산술적으로 물류비용은 kg당 약 300만 원 가량입니다. 물론 FTL(Full Truckload)일 경우에 한해서죠. 만일 LTL(Less-Than-Truckload)로 보내게 되면 비용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것입니다.
▲ 스페이스X의 로켓 운임. (출처: 스페이스X 홈페이지)
중력이 지배하지 않는 공간에서는 프린팅 시료의 기계적 속성이나 밀도 등이 지구와는 판이하게 다르기 때문에, 3D 프린팅을 통한 제품의 생산에 좀 더 많은 제약조건이 따르게 됩니다. 하지만 NASA의 이러한 시도는 어찌되었던 이제 지역 외 생산을 의미하는 오프쇼어링(Offshoring)을 넘어 지구 외 생산(아마도 Offearthing)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낼지도 모르겠습니다.
3D 프린팅이 뭔데, 그래서?
과거의 생산은 재료를 깎거나 잘라서 부품을 만든 후, 이들을 다시 볼트와 너트로 조립하여 제품을 완성하였습니다. 그러나 3D 프린팅을 통한 생산에서는 몇 번의 마우스 클릭만으로 디자인을 완성한 후, 마치 샌드위치를 만들 듯 매우 얇은 수많은 층 Layer 을 아래에서부터 쌓아 올리듯 인쇄하여 제품을 만듭니다. 그래서 재료를 깎아 불필요한 부분을 없애는 전통적인 제조방식(Subtractive Manufacturing)과 대비하여, 3D 프린팅을 통한 생산을 적층 제조방식 (Additive Manufacturing)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 적층 제조방식을 가진 3D 프린터
3D 프린터를 이용하는 것은 여러분이 매일 사용하는 종이 인쇄방식과 기본 원리 자체는 동일합니다. 일반 프린터에서는 문서를 작성한 후 인쇄 버튼을 누르면 디지털화된 파일의 내용이 프린터로 전송되고, 프린터는 다시 파일에 담겨진 정보와 동일한 모양으로 종이 위에 얇은 잉크를 묻혀 2차원의 이미지를 만듭니다. 다만 3D 프린터가 2D 프린터와 다른 점은, 프린터로 보내지는 디지털 정보 파일이 인쇄하려는 물체를 일련의 연속된 단면들로 표현한다는 점과, 잉크 대신에 내구성과 강도가 우수한 입자를 사용한다는 점입니다.
▲ HP의 3D 프린터(출처: HP)
3D 프린터는 원래 신속한 프로토타입의 제작(Rapid Prototyping)을 위해 1980년대 초에 개발되었습니다. 그러나 관련 기술이 급속도로 발달하면서, 점차 시제품이나 일회용이 아닌 완제품을 만드는데 사용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실제로 보잉이나 GE 등 항공기 제조회사들은 3D 프린터로 인쇄한 엔진의 부품을 제품 생산에 사용하고 있습니다.
제3의 산업혁명을 불러올 특징 5가지
3D 프린팅 기술은 이렇듯 제3의 산업혁명으로서 인류사회에 많은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예상되는데, 이러한 예측의 근거는 3D 프린팅 기술이 가지는 다음 5가지의 특징들 때문입니다.
첫 번째는 전통적인 제조환경에서 적용되던 규모의 경제에 관한 법칙이 더 이상 통용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인쇄 방식이기 때문에 10개를 만들 건, 1000개를 만들 건 단위 제품 당 소요되는 생산 시간과 비용이 거의 동일합니다. 이것은 마치 우리가 프린터로 문서를 인쇄할 때 1000장을 인쇄한다고 해서 페이지 당 인쇄비용이나 인쇄시간이 10장을 인쇄할 때보다 감소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의 원리입니다.
두 번째는 규모의 경제가 없는 대신 대량 맞춤 생산(Mass Customization)이 완벽하게 구현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델컴퓨터는 물리적인 공급사슬의 혁신적 운영을 통해 우리에게 컴퓨터라는 다소 복잡한 구성을 가진 제품을 개인별 요구사항에 따라 맞춤형으로 제공해주었습니다. 하지만 3D 프린터는 디지털화된 제품설계 정보를 활용하기 때문에 추가적인 비용이나 지체시간 없이도 우리 생활 전반의 모든 제품을 맞춤형으로 만들어줄 수 있습니다. 아울러 디지털이라는 정보 형태의 특성으로 인해 제품 설계 정보에 대한 공유가 쉬워져, 새로운 제품의 디자인과 개발이 그 어느 때보다도 오픈된 인터넷 환경에서 자유롭게 이루어질 수도 있습니다.
▲ 가정용 3D 프린터 'Cube'
세 번째 특징은 사용되는 재료의 특수성에서 비롯된 내용입니다. 3D 프린터에 사용되는 탄소섬유와 같은 신소재는, 실탄을 발사할 수 있을 정도로 견고한 내구성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알루미늄이나 강철보다 훨씬 가볍습니다. 또한 소재의 대량생산을 통한 재료비의 인하가 용이하기 때문에 다양한 금속 수요를 대체할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특징으로 인해 3D 프린팅은 금속 및 광물자원에 대한 자원 보존에도 기여할 뿐 아니라, 생산되는 제품의 중량을 최소화하여 차량, 항공기, 선박 등에 사용되는 화석 연료의 사용을 절감할 수 있게 해줍니다.
네 번째는 적층 방식의 특성상 얇은 층을 겹겹이 쌓아올려 제품을 만들기 때문에 깎거나 잘라내는 생산과정에서 발생하는 불필요한 원자재의 낭비를 획기적으로 감소시킬 수 있습니다. 더불어 생산과정에서의 무인 자동화가 대폭 확대될 수 있어, 제품 생산 원가를 획기적으로 감축할 수 있는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다섯 번째는 나노기술 등과의 접목을 통해 제품의 정밀도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향상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에 따라 기존 반도체보다도 집적도가 훨씬 큰 칩이 개발될 수 있어, 컴퓨터나 IT제품들의 기능 향상 뿐 아니라, 획기적인 경량화와 소형화가 이루어질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피부에 컴퓨터를 이식하는 공상과학 영화의 한 장면이 현실에서 이루어질 수도 있는 것입니다.
3D 프린팅이 가져올 생산, 물류 그리고 유통의 변화
세상의 많은 일들이 그러하듯, 이러한 엄청난 장점을 갖는 3D 프린팅 기술은 누군가에게는 새로운 기회를 제공해주기도 하겠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심대한 위협을 초래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것이 우리에게 기회냐 위협이냐 하는 문제가 아니라, 어떠한 결과이건 그 방향성을 객관적으로 예측하여 새로운 기회로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는 일입니다. 3D 프린팅 기술이 공급 사슬을 둘러싼 생산, 물류, 그리고 유통 분야에 미칠 수 있는 영향은 다음의 4가지 정도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 3D 프린팅이 가져올 변화와 새로운 기회
첫 번째는 현재 우리가 가지고 있는 공급사슬의 지정학적인 특성이 무의미해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의 글로벌 공급사슬은 비용 절감을 위해 생산비용이 저렴한 곳에서 제품을 생산한 후, 이를 다양한 운송 수단을 통하여 소비지로 이동시키는 체제를 기본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3D 프린터는 이러한 공급사슬 구성 방식의 기본적인 전제 조건이었던 재료비와 인건비를 현저히 낮춤으로써, 전 세계에 산재되어 있던 공급 사슬을 소비지 시장 중심으로 재편할 가능성이 큽니다. 이렇게 되면 제품 보관과 운송을 근간으로 하는 기존 물류기업들에게는 상당한 위기가 초래될 수도 있습니다. 왜냐면 보관과 운송을 위한 물량 수요 자체가 급감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는 새로운 형태의 민첩한 공급 사슬(Agile Supply Chain)이 등장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공급사슬의 운영에 있어 가장 다루기 힘든 난제중의 하나는, 불확실한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어떠한 방식으로 공급의 민첩성을 확보할 것인가에 관한 문제입니다. 이는 스탠포드대학 하우 리(Hau Lee)교수가 이야기한 ‘Triple A Supply Chain’*의 한 요소이기도 합니다. 전통적인 생산에서는 급변하는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생산 용량 자체를 탄력적으로 조정할 수 있는 역량을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공급용량을 탄력적으로 가져가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왜냐면 생산용량의 탄력성이라는 것이 단순히 설비규모를 늘이거나 줄인다고 해서 얻어질 수 있는 그런 간단한 문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3D 프린팅은 짧은 준비 시간만으로 하나의 기계에서 다양한 제품을 찍어낼 수 있기 때문에 제품별 수요 변화에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습니다. 마치 일반 프린터로 각 페이지마다 서로 다른 내용을 가진 문서를 출력할 수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또한 생산 용량과 관련하여 필요한 경우, 3D 프린터를 단순히 추가하거나 혹은 다른 생산시설로 신속히 이동함으로써 민첩한 대응이 가능해질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공급사슬의 민첩성은 천재지변 등과 같이 예기치 않은 블랙스완으로 인한 공급사슬의 교란(Disruption)에도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게 해줍니다.
▲ 3D 프린터로 생산한 아디다스 운동화
세 번째로 3D 프린팅 기술은 극단적인 지연전략(Postponement)과 완벽에 가까운 JIT(Just-In-Time)의 실행을 가능하게 하여, 결국 제품 재고를 현재 수준보다 현저하게 낮출 수 있을 것이라 예측됩니다. 완제품 생산에 필요한 자재(탄소섬유와 같은 신소재)의 종류가 매우 단순화되고, 생산에 소요되는 시간 또한 단축됨에 따라, 제조업체는 정확한 수요정보가 확정될 때까지 생산을 극단적으로 지연시킬 수 있게 됩니다. 이러한 극단적인 지연 전략은 공급사슬 전반에 걸친 완벽한 JIT의 구현으로 이어질 수 있으며, 이를 통해 완제품에 대한 재고 또한 획기적으로 감소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아울러 고객 수요예측의 기본적인 기법과 접근 방법에도 상당한 변화가 예상됩니다.
네 번째는 보다 큰 의미에서 제조 산업 자체의 진입장벽이 무의미해질 것으로 생각됩니다. 즉 전통적인 제조 산업의 틀에서 바라봤을 때 신규 진입자나 기존 경쟁자의 도전을 억제하기 위해 사용되어온 많은 방법들이, 앞으로는 아무런 소용이 없어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동안 이러한 목적으로 사용되었던 대표적인 전략들은, 대규모 자본 투자와 생산 설비 확충을 통해 가격 경쟁력을 확보한다던지, 제품 자체에 대한 원천 기술을 확보하여 단단한 기술 진입장벽을 두르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3D 프린터는 한 번의 구입으로 거의 모든 종류의 제품을 생산할 수 있다는 범용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특징은 생산설비 마련을 위한 자본 투자 리스크를 현저히 낮추어주며, 또한 규모의 경제 자체를 무력화하기 때문에, 누구든 손쉽게 제조 산업에 진출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된다면 그나마 제조업체에게 남는 유일한 경쟁력은 아마도 제품 설계나 디자인에 대한 기술력일 것입니다. 하지만 디지털 정보에 대한 오픈된 환경에서의 집단 지성(Collective Intelligence)은 이러한 기술 장벽마저도 손쉽게 무너뜨릴 수 있을 것입니다.
‘위기’는 언제나 ‘기회’라는 동의어로 시작된다!
3D 프린터로 인한 이러한 글로벌 공급사슬의 퇴조, 공급사슬 민첩성의 향상, 극단적인 지연 전략과 JIT의 구현, 그리고 제조 산업에 대한 진입장벽의 유명무실화는, 물류기업에게는 그 존재 자체에 대한 커다란 위협이 될 수 있습니다. 보관할 재고가 없어지고, 이동할 제품이 존재하지 않으며, 모든 것이 디지털로 연결되면서, 시간과 장소에 대한 효용성이 물류기업이 아닌 3D 프린팅 기술에 의해 제공되기 때문입니다.
▲ 3D 프린터를 활용해 생산한 의류(출처: Shapeways)
하지만 위기는 곧 기회라는 말처럼, 여기에는 새로운 가능성 또한 분명히 존재하고 있습니다. 이를테면 현재의 제3자 물류 3PL 에 제조기능을 더한,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창조해 낼 수 있는 것입니다. 퀴네나겔(Kuehne Nagel)이 일본에서 의료 장비 제작을 시도했던 사례처럼, 물류기업이 3D 프린팅 기술을 활용하여 물류와 생산을 함께 제공하는 새로운 형태의 서비스 제공자로 진화할 수 있습니다. 3PL에 IT와 컨설팅을 추가한 형태를 4PL이라고 한다면, 여기에 생산을 더한 이들 서비스를 ‘5PL’이라 부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서비스 형태의 핵심은 물류기업이 보유하고 있던 기존의 물류 네트워크를 완제품의 생산시설로 활용하는 것입니다. 글로벌 공급사슬이 퇴조함에 따라 생산은 소비지와 가까운 쪽으로 이동될 수밖에 없는데, 현재 물류기업이 보유하고 있는 물류센터의 대부분은 생산시설과는 달리 이미 소비지와 인접한 지역에 입지해 있습니다. 더군다나 수적인 측면에서도 생산시설보다는 훨씬 많은 수의 물류센터가 이미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만일 이곳에서 단순한 물류기능 뿐 아니라 3D 프린터를 이용한 생산기능을 제공할 수 있다면, 과거에는 전혀 볼 수 없었던 새로운 형태의 산업과 서비스를 창출해낼 수도 있습니다.
3D 프린팅 기술은 인류가 수천 년간 유지해온 제조업의 근간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음으로써, 생산과 물류, 그리고 유통에 대한 정의를 새롭게 할 날도 그리 멀지 만은 않은 것 같습니다. 마치 나비효과처럼, 무관한 영역에서 시작된 생소한 기술의 발달이 앞으로 우리 연관 산업에 어떠한 후폭풍을 몰고 올지 함께 지켜보고 고민해야할 시기입니다.
필자는 현재 인하대학교 아태물류학부 및 물류전문대학원 교수로 재직 중으로 정석물류통상연구원 부원장을 겸직하고 있다. 역-저서로는 ‘미친 SCM이 성공한다(2014, 영진닷컴)’, ‘물류학원론’, ‘공급사슬물류관리’, ‘물류기술과 보안의 이해’등이 있다. IT 및 Operation 컨설턴트로 활동했던 실무적 경험을 바탕으로 공급사슬관리, 물류정보시스템, 물류보안, SCM과 소셜네트워크 등에 대한 연구를 활발히 진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