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스타트업 투자에도 '학벌'이 미치는 영향은 크다!
스타트업 투자에 '학력'이 미치는 영향은 낮아
편견 없는 사회를 기다리며
글. 김도현 국민대학교 경영학부 교수
스타트업은 일반 기업에 비해 학벌보다 ‘실력’을 중시하는 문화가 있어 보인다. 근데, 정말 학벌이 스타트업의 성과에 영향을 전혀 안준다고 볼 수 있을까. 실제 연구를 진행해 본 결과, 한국에서 스타트업 투자에 ‘학벌’이 미치는 요소는 큰 것으로 나타났다. 학력, 그러니까 최종학위가 박사인지 석사인지는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학사’이더라도 소위 명문대 출신 창업자라면 조금 더 많은 투자를 받는 분위기가 있는 것이다. 스타트업과 학벌사회, 그 의미에 대해 고민해봤다.
최근 많은 기업에서 이른바 ‘블라인드 채용’이라고 하는 제도를 도입하고 있습니다. 지원자의 출신대학이나 학점 등을 채용 전형 요소에서 고려하지 않는 방식입니다. 블라인드 채용은 선입견 없이 지원자들을 평가할 수 있다는 점에서 찬성하는 의견이 많습니다. 하지만 출신대학이나 학점이 해당 지원자의 과거경험과 성실성 등을 판단할 수 있는 좋은 요소라는 점에서 굳이 그걸 배제할 필요가 있냐는 시각도 적지 않습니다. 어떤 학생들은 자신이 그 동안 성실히 살아온 것이 전혀 반영되지 않는다면 그것이야말로 불공정한 것이 아니냐고 항변하기도 하더군요.
그럼에도 블라인드 채용은 흥미로운 실험입니다. 우리나라 사회는 그 어느 나라보다 강력한 학벌사회가 형성됐다는 평가가 아주 많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소수 몇 개의 대학 출신들이 사회 각 영역에서 주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때로 부당한 특혜를 받는다고 믿고 있습니다. 블라인드 채용이 이 같은 믿음에 균열을 가져올 수 있을지 자못 주목됩니다.
스타트업 생태계는 다르다?
스타트업 생태계는 이른바 학벌사회와는 좀 다른 것처럼 느껴집니다. 실력이 가장 중요한 가치라는 공감대가 널리 형성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스타트업 사람들에게서 매력을 느끼는 큰 이유 가운데 하나가 바로 이들이 배경이나 지위에 대해 그다지 많은 관심을 기울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나이, 직위로 대접받으려고 하는 성향도 매우 적고요.
그렇다면 스타트업계에서는 이른바 명문대학 출신이거나 석박사 출신 창업자가 갖는 프리미엄 같은 것이 진짜로 없을까요?
저와 다른 연구자들은 이 질문에 대한 실마리를 하나 가지고 있습니다. 지난 봄, 저희 연구팀은 우리나라 벤처캐피탈리스트들을 대상으로 매우 정교하게 설계된 실험연구를 진행한 적이 있습니다. 밴처캐피탈리스트들이 과연 어떤 기준으로 투자대상을 선정하는지 알아보기 위해서였습니다.
이미 해외 연구자들은 미국을 중심으로 1980년대부터 벤처캐피탈리스트의 투자의사결정 기준을 알아보기 위한 여러 가지 연구를 진행해 왔습니다. 이러한 연구의 첫 번째 목적은 “스타트업의 성공요인은 도대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서입니다. 겉으로는 매우 다양해 보이는 스타트업들의 성공요인을 추출해내는 것은 매우 어렵습니다. 때문에 훌륭한 투자성과를 낸 벤처캐피탈리스트들의 투자의사결정 기준을 연구함으로써 이를 간접적으로 확인해보고자 하는 것이지요.
두 번째 연구목적은 스타트업이 아니라 벤처캐피탈리스트들에 주목하는 것입니다. “어떤 벤처캐피탈리스트들이 어떤 기준을 중요하게 여기는가” 확인하는 것이지요. 예컨대 경험이 많은 벤처캐피탈리스트와 신참 벤처캐피탈리스트가 중요하게 여기는 기준은 어떻게 다른지, 바이오분야의 투자의사결정 기준과 온디맨드 분야의 투자의사결정 기준은 어떻게 다른지 연구하는 식입니다.
하지만 이런 연구는 매우 어렵습니다. 첫 번째로 벤처캐피탈리스트들은 어느 나라든 매우 바쁘고 비밀스러워서 많은 인원을 대상으로 연구를 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연구가 수십 명 수준의 벤처캐피탈리스트를 대상으로 연구를 진행하는 것이 보통입니다.
두 번째로는 단순한 설문방식으로는 좋은 결과를 내기 어렵다는 것이 점차 밝혀지고 있습니다. 실제 투자의사결정은 매우 상충되는 조건들 사이에서 고민해야 하는 일입니다. 예를 들면 시장전망은 밝아 보이지만 창업자가 좀 걱정된다든지 하는 식으로 말이지요. 그런데 설문으로는 이런 복잡하고 상충되는 의사결정을 포착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더 복잡한 실험설계가 요구됩니다. 이런 어려움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는 관련 연구가 아주 초보적인 수준에 머물고 있었습니다.
스타트업에도 학벌사회는 있다
그런데 운이 좋게도, 저희 연구팀은 매우 특별한 방법으로 대규모 인원을 대상으로 한 실험연구를 수행할 수 있었습니다. 연구 결과는 아직 한참 더 분석을 해야 하고, 또 논문으로 발표되기 전에 자세한 결과를 공개하기도 어렵습니다만, 앞에서 이야기한 ‘학력’과 ‘학벌’에 대해서는 약간의 결론을 찾아볼 수 있는 상태입니다.
결론적으로 말씀드리면, 우리나라의 투자자들은 창업자의 학벌을 상당히 중요하게 여깁니다. 학력은 그리 중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창업자가 비명문대의 박사 학위를 가지고 있는 것보다, 명문대의 학사학위를 보유한 것이 투자유치에는 유리한 것으로 나타납니다. 그리고 이와 같은 학벌 선호는 다른 나라들에 비해 더 높은 수준인 것으로 보입니다.
연구팀은 아직 이 이유를 밝히지는 못했습니다. 어쩌면 투자자들 스스로 명문대 출신이기 때문에 자신과 유사한 수준의 대학출신자를 선호하는 것일 수도 있고(이를 동종선호라고 합니다), 아니면 진실과 다른 편견에 사로잡혀 있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도 아니면 실제로 우리나라에서 명문대 출신 창업자들의 성과가 더 탁월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이런 경우 그 성과를 만드는 것이 창업자들의 탁월한 실력 때문인지, 아니면 사회적 네트워크의 덕을 보게 되는 것인지 확인이 필요합니다.
그 이유가 어쨌든, 우리나라 스타트업 생태계에 학벌에 대한 믿음이 존재하고 있다는 점은 확인된 셈입니다. 이 믿음이 과연 사실을 반영하고 있는지 확인하는 것은 물론 연구과제입니다. 그러나 어쩌면 ‘명문대 출신이 잘할거야’라는 믿음과 ‘명문대 출신이 실제로 잘해’라는 사실 사이의 관계는 연구자들이 풀어야 할 일이 아니라, 스타트업 생태계 참여자들이 만들어나갈 일이 아닐까 생각해보기도 합니다.
우리가 편견 없이 상대를 대우한다면, 학번과 선후배를 먼저 찾는 습관을 바꾼다면, 가는 곳마다 대학동문 모임을 만드는 것이 그리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고 여긴다면, ‘명문대 출신’과 ‘성공’ 사이의 관계는 상당히 달라질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