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IGHT

VC판은 비슷비슷한 남자들의 리그?

by 김도현

2018년 06월 17일

벤처캐피탈업계, 여성 투자자 비율은 10% 미만...

명문대학을 나온 40대 남자가 주도하는 판... '다양성' 반영 가능한가

 

글. 김도현 국민대 경영학부 교수

 

Idea in Brief

지난 3월 국내 벤처캐피탈 업계에서 보기 드문 여성 대표이사 선임 사례가 등장했다. 카카오벤처스의 정신아 공동대표다. 실상 벤처캐피탈 업계는 지금까지 ‘명문대학 나온 40대 남자’들의 리그였다. 국내는 물론 미국 실리콘밸리까지 여성 벤처캐피탈리스트의 비율은 10%가 채 안 된다. 그래서 여성 대표이사는 의미가 있다. 끊임없는 다양성을 갈구하는 스타트업에 투자한다고 하는 획일적인 그들만의 리그에 한 줄기 경종을 울릴 계기가 되기 때문이다.

 

올해 우리나라 스타트업 생태계는 매우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정부의 정책적 의지가 투자시장을 풍요롭게 하고 있다는 점도 한 역할을 하고 있겠습니다만, 스타트업들로 자금과 인재가 이동하는 경향이 분명해지고 있습니다. 또 스타트업들이 보다 적극적으로 자기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는 것도 주목할 만합니다. 코리아스타트업포럼이 사단법인으로 본격적으로 출범한 것이 그 한 예입니다.

 

벤처캐피탈에 여성 대표라고?

 

올해 들어 일어난 일 가운데 또 한 가지 빠뜨릴 수 없는 상징적인 사건은 카카오벤처스(구 케이큐브벤처스) 정신아 대표의 취임입니다. 제가 아는 한, 벤처캐피탈 업계에서 여성 대표이사가 탄생한 것은 처음이기 때문입니다.

 

벤처캐피탈 업계의 남성중심성은 잘 알려져 있는 일입니다. 최근 한 통계에 따르면 미국 실리콘밸리 벤처캐피탈의 여성파트너 비율은 10%가 채 안됩니다. 75%에 달하는 벤처캐피탈에는 여성 파트너가 아예 없다고 합니다.

 

최근 CB인사이트와 포츈 등에서 선발한 최고의 벤처캐피탈리스트 상위 순위에서도 여성을 찾아보기란 매우 어렵습니다. 올해 상장한 스포티파이(Spotify)와 도큐사인(DocuSign)의 투자자로서 자신의 존재감을 다시 한 번 과시한 클라이너퍼킨스(Kleiner Perkins)의 메리 미커(Mary Meeker)가 거의 유일한 예외가 아닌가 싶습니다. (네. 전 세계가 매년 기다리는 인터넷 트렌드 리포트를 쓰는 그 메리 미커가 맞습니다.) 최근 인포메이션이라는 매체에서 미국 벤처캐피탈들의 다양성지수를 발표한 자료를 보면, 전체 파트너의 1/3 이상이 여성인 경우는 전체 조사대상 73개 가운데 딱 여섯 개에 불과했습니다.

 

미국 벤처캐피탈리스트들은 상당히 비슷한 사람들입니다. 확인해보니 CB인사이트가 선정한 최상위 벤처캐피탈리스트 20명 가운데 16명이 백인(나머지 3명은 중국계, 1인은 인도계)이며, 11명은 컨설팅 및 IB출신(나머지는 엔지니어출신)이었습니다. 미국 투자자의 출신대학을 전수 조사한 한 연구는 전체 인력의 42%가 12개 명문대학 출신이라는 결과를 발표한 적이 있습니다. 상위 20명 가운데에는 16명이 이들 대학 출신이었습니다.

 

우리나라의 여성 벤처캐피탈리스트 상황은 어떨까요? 확실한 수치는 불분명합니다. 2014년 기준으로 5%라는 통계가 있고, 최근 어떤 매체에서는 7%라고 발표했습니다. 제가 최근 조사한 바로는 8% 가량인 듯합니다. 어느 경우이든 10%는 안 되는 것이 확실합니다. 그리고 이 수치는 주니어 인력을 포함한 수치인데, 만약 대표펀드 매니저들만을 대상으로 하면 이보다 훨씬 낮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들만의 리그에서 ‘다양성’ 찾기

 

이처럼 주요 투자자들이 ‘명문대학을 나온 40대 남자’로 획일화되는 것은 어떤 결과를 낳게 될까요? 많은 연구들은 투자자의 다양성이 낮아지면 투자대상 기업의 다양성도 줄어든다고 봅니다.

 

남성 투자자들의 경우 조건이 같은 경우 여성 창업자보다는 남성 창업자를 선호하는 경향이 나타납니다. 이것은 주로 여성창업자가 가진 사회적 자본이 적을 것이라는 편견 때문이라는 것이 최근 연구들에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인종 문제도 있습니다. 투자자들이 대체로 백인인 미국의 경우, 소수민족 창업자들이 소외될 위험이 상존한다고 보는 이들이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단일민족이니 인종문제가 없을 것이라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외국인 창업팀이 등장하고 있을 뿐 아니라, 앞으로 외국인 창업자들을 독려해서 우수인력이 우리나라로 유입되도록 해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창업자들을 바라보는 편견만이 문제가 되는 것도 아닙니다. 저는 몇 년 전 학내 창업팀에 대한 지원자금 심사 자리에서 아주 난감한 경험을 한 적 있습니다. 아주 야심만만하면서도 야무진 팀이 하나 있었는데, 이 팀은 개인화된 맞춤 속옷 제작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가슴의 모양은 사람마다 상당히 다르기 때문에, 획일화된 브래지어로 불편을 겪는 이들이 아주 많다는 것이 이들이 발견한 문제점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들의 주장에 대해 심사위원 중 누구도 제대로 판단할 수 없었습니다. 심사위원들은 모두 남자였으니까요. 이후 저는 인적구성이 다양하지 않으면 좋은 판단을 하기 어려울 수 있다는 점을 잊지 않으려 합니다.

 

여성의 구매력이 점차 증가하고, 특히 아름다움에 관련된 산업들이 크게 성장하는 상황에서 여성의 삶과 마음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올바른 투자의사결정을 하기 어려울 수밖에 없습니다. 세상 소비자들의 반은 여성이고, 창업자들의 25% 가량이 여성인데 여성투자자는 겨우 손꼽을만하다는 것은 그리 균형이 잘 맞는 것은 아니지요.

 

이런 상황에서 정신아 대표가 적지 않은 자금을 운용하는 카카오벤처스의 대표로 선임된 것은 매우 긍정적인 신호가 아닐 수 없습니다. 정 대표는 매우 화려한 경력과 탁월한 실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어찌 보면 좀 늦은 것 같기도 합니다.

 

이번 임명이 다른 투자기관들도 앞 다투어 여성 투자자들을 선발하고 육성하게 되는 계기가 된다면 좋겠습니다. 다양성을 생명으로 하는 스타트업 생태계에서 좀 더 많은 여성 투자자를, 그리고 그 다음에는 좀 더 많은 외국인 투자자를 만나게 되길 꿈꾸어 봅니다.



김도현

창업과 전략을 공부한 인연으로 스타트업이 바꾸어가는 세상을 관찰합니다. <국민대 창업지원단장, 한국벤처창업학회 명예회장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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