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간 결제 수수료 1000억 원, 카드업계 블루오션된 '화물운송 시장'
-화물운송 결제 구조 개선 기대···'한도' 문제는 여전히 숙제로
지난해 금융위원회(이하 금융위)는 화물운송 대금의 카드결제를 활성화하기 위한 방안을 발표했다. 전자고지결제 업무를 허용한다는 게 해당 발표의 주요 골자다.
5조 원. 국토연구원이 운송주선업체를 통해 온라인으로 중개되는 화물운송 시장을 추정한 규모다. 카드사에게 있어 화물운송은 연간 1,000억 원 이상의 결제 수수료를 취할 수 있는 매력적인 시장이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림의 떡일 뿐이었다. 화물운송료를 카드로 결제할 수 없다는 규제가 떡하니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카드사가 탐낸 ‘화물운송’
하지만 상황이 반전됐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지난해 9월 금융위가 화물운송 대금의 카드결제를 활성화하기 위한 방안을 발표하면서부터다. 해당 방안은 카드사가 운송료를 디지털로 고지하고, 신용카드로 수납해서 차주에게 지급하는 ‘전자고지결제업무’를 허용한다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금융위는 해당 방안이 카드사 신(新)사업 진출과 영업규제를 합리화하기 위한 과제라고 설명했지만, 실상은 실적 악화로 허덕이는 카드사 측의 입김과 로비가 빛을 발한 것이라는 게 업계 내・외부의 시각이다.
실제 카드사들의 실적은 바닥을 치고 있다. 금융감독원이 발표한 ‘2017년 카드사 영업실적’에 따르면 국내 카드사 7개 가운데 순익이 늘어난 곳은 단 한군데도 없다. 업계 1위인 신한카드를 비롯해, KB국민카드, 우리카드의 순익은 전년보다 40% 이상 줄었고, 삼성카드와 현대카드도 각각 2.5%, 10.8% 이상 감소했다. 롯데카드는 업체 가운데 유일하게 마이너스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때문일까. 카드사들은 새롭게 열린 화물운송 대금결제 시장에 진출할 채비를 차근차근 하고 있다. 악화되고 있는 수익을 개선할 수 있는 기회라는 판단에서다.
한 카드사 관계자는 “최근 카드사들이 수수료 인하 등으로 인해 실적이 안 좋아졌다는 건 널리 알려진 사실”이라며 “현 상황에서 실적을 개선하기 위해 화물운송료 결제 시장 진출에 본격적으로 나서려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말했다.
만만치 않은 시장
하지만 일각에서는 카드사들의 시장 진출에 회의적인 견해가 나온다. 운송업계 전반의 구조적인 문제가 발목을 잡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화물운송 대금은 생각처럼 쉽게 결제가 이뤄지는 구조가 아니다. 화물차주가 돈을 받기까지는 상당한 기간차가 생길 수밖에 없다.
화물운송 계약에 있어서는 여러 주체가 등장한다. 물건을 가진 화주와 물건을 운송해주는 차주. 그리고 화주와 차주를 주선해주는 운송주선업체다. 이때, 운송주선업체는 말 그대로 운송 차량과 계약을 맺고, 운송 계산서를 정산해 차주에게 화물운송 대금을 지급하는 일 전반을 관리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때문에 운송주선업체에게는 고민이 있다. 바로 화물운송 대금지급 시점에 관한 것이다. 운송 계약에 따라 달라지긴 하겠지만 차주에게 대금을 후지급하는 조건과 선지급하는 조건 등 크게 두 가지 계약조건이 존재한다.
후지급하는 조건의 경우 차주는 대금을 제 때 지급받지 못한다는 문제가 발생한다. 금융위가 화물운송료 시장을 카드사에게 열어준 명목도 이 같은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였다. 카드로 운송료를 결제하게 되면 차주는 지금보다 훨씬 빠른 시일 내에 차주가 대금을 지급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운송주선 및 대금결제 플랫폼을 운영하는 A社 관계자는 “운송료도 엄밀히 말하면 노동에 대한 대가지만 카드결제로 대금 지급이 가능한 이유는 차주가 개인사업자에 해당하기 때문”이라며 “카드사는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자본력을 바탕으로 화물운송료 시장에 진입하려고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대금을 선지급하는 조건의 경우에는 문제가 달라진다. 차주는 빠르게 돈을 받을 수 있어 좋지만, 그 부담은 운송주선업체에게 전가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운송주선업체가 현금흐름의 위험을 끌어안고 화주로부터 대금을 지급받기 전 차주에게 대금을 지급하게 되는 구조다.
바로 이 지점에서 운송주선업체의 딜레마가 발생한다. 화주로부터 대금을 지급받는 시기보다 차주에게 대금을 지급하는 시기가 빠르다보니 재무제표 상으로 이익은 늘고 있지만 부채비율 역시 높아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A社 관계자는 “운송사가 화주에게 돈을 받는 시점보다 차주에게 돈을 주는 시점이 더 빠르기 때문에 현금을 많이 보유한 대형 업체들의 부담은 비교적 적을지 몰라도 중소 규모의 업체에게 있어서는 큰 부담으로 작용한다”며 “회사 영업력이 좋아 화주를 많이 유치하게 되더라도 이는 운임 선지급이라는 부담으로 작용해 결국은 흑자도산할 가능성을 내포하게 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현행 구조 때문에 중소 운송사가 대형업체로 성장하기 힘들다는 한계점도 있는 게 사실”이라고 토로했다.
운송업계 고려하지 못한 ‘한도’
이에 등장하는 문제가 바로 ‘한도’다. 재무제표 상 부채비율이 수백% 대까지 치솟은 상태로 운영되는 운송 주선업체에게 어떻게 한도를 부여할 것인가 하는 문제다.
각 카드사가 화물운송료 전자결제서비스를 호기롭게 들고 나왔지만 실질적으로 서비스를 신청하는 운송사에게 부여되는 한도는 고작 수백만원 수준이라는 게 업계 관계자의 설명이다. 한도부여를 심사하는 기준은 화물운송 시장에만 별도로 적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 신한카드는 지난해 화물운송료 카드결제 사업에 진출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MOU를 화물맨, 트럭콜센터, 나이스데이터와 함께 체결했다.
물론 일부 카드사에서는 보증보험과 결합해 한도를 늘리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는 전언이다. 하지만 보증보험을 끼고 사업을 벌이더라도 수조 원에 달하는 화물운송료 영역 전반을 커버하기에 충분한 한도가 나올 수 없다는 건 쉽게 생각해볼 수 있다.
한 운송주선업체 관계자는 “카드로 운임을 결제하는 시장을 열었더라도 부채비율이 높은 주선사 특성상 충분한 카드 한도가 나올 수 없다”며 “이익이 나고 있는 상황일지라도 재무제표로는 사회에서 흔히 말하는 신용불량자인데 어떻게 높은 한도가 나오겠느냐”고 말했다.
하지만 카드사는 “아직은 지켜봐 달라”는 원론적인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현 시점에서 사업 진출을 본격화한지 초기 단계인 만큼 향후 해당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 신한카드와 삼성카드 등은 최근 보도자료를 통해 화물운송료 카드결제 시장에 본격적으로 진출하겠다고 밝혔다. (출처: 삼성카드)
화물운송료 시장에 진출을 공식화한 한 카드사 관계자는 “사업이 확장되면서 여러 운송주선사와 제휴할 것이고, 그 때 고려를 하는 게 맞다고 본다”며 “해당 사업에 (본격적으로) 진출하는 건 맞지만 사업 확장에 대해서는 좀 더 기다려 달라”고 말했다.
긍정적인 면은 없나
차주 입장에서 정해진 계약상의 운송이 끝났음에도 대금을 지급받지 못하는 상황이 비일비재하다는 건 업계의 오랜 병폐다. 문제는 늦게라도 대금을 받으면 그나마 괜찮겠지만 운송사가 도산할 경우엔 운송 대금을 지급받을 수 있는 방법이 사실상 사라지게 된다는 점에서 차주들은 항상 불안감에 떨어야 했다.
때문에 정부와 카드사가 시행하려는 서비스는 긍정적인 면만 놓고 보면 차주들에게 있어 획기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 현금 위주로 결제되던 재래식 화물운송료 결제 구조를 뒤바꾸고 대금 지급일도 앞당길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장기적으로 보면 운송을 주선하는 업체 입장에서도 좋을 수 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부채비율 때문에 당장 기대하는 성과를 거두긴 힘들겠지만 고질적인 문제로 지적되던 자금회전력이 좋아질 수 있다는 설명이다. 더불어 한도문제의 경우에도 화물운송실적시스템과 연동해 한도부여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란 견해도 있다.
이영재 로지스팟 영업팀장은 “카드 수수료가 운송주선업체에게 또 다른 부담으로 작용할 수는 있겠지만 자금회전력 측면에서는 좋을 것으로 판단된다”며 “현재 문제가 되는 한도의 경우 화물운송실적시스템과 연동이 되면 어느 정도는 해결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