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형적 유통 비즈니스로 가는 마켓컬리, 그로스해킹 가능할까
마켓컬리의 엑싯(Exit) 가능성은
▲ 블루에이프런의 밀키트(사진 : Flickr)
글. 김진상 앰플러스파트너스 대표
미국 뉴욕시에서 설립한 스타트업으로 역사상 최대 IPO(기업상장) 사례로 꼽힌 업체 블루에이프런(Blue Apron). 블루에이프런은 요리에 필요한 신선식품 재료를 묶어서 배송해주는 밀키트(Meal-kit) 사업을 하는 회사다. 시장을 파괴적으로 혁신할 스타트업, 화려한 경력을 보유한 최고의 창업팀, 불과 5년 내에 수십 배의 성장을 이룬 그로스해킹(Growth Hacking)의 모범 사례까지. 2017년 상장할 때까지 블루에이프런에 쏟아진 업계의 찬사들이다.
그런데 현재 블루에이프런은 어떠한가. IPO 실패사례의 대표주자로 평가받고 있다. 상장 당시 2조 원이 넘었던 기업가치는 1년도 채 안된 지금 1/4 수준으로 떨어졌다. 표면상 이유는 고객 이탈에 따른 주문 감소지만, 진짜 이유는 ‘아마존’*과 ‘월마트’와 같은 유통공룡의 시장 진입 소식 때문이다.
* 아마존은 블루에이프런 상장 3일전 홀푸드 인수를 발표했다.
이 두 업체는 강력한 브랜드 파워와 풍부한 고객 데이터, 경쟁력 있는 오프라인 매장과 공급망(Supply Chain), 공급자에 대한 강력한 구매력, 이미 잘 갖춰진 풀필먼트센터(Fulfillment Center) 등으로 무장하고 있었다.
이에 따라 어제까지 잘나가던 유니콘이었던 블루에이프런은 기존 업체들에 습격에 박살난 ‘실현 가능성 없는 비즈니스모델’로 평가 절하됐다.
▲ 2018년 1월부터 3월까지 단 2달 사이 폭락한 블루에이프런의 가치(자료 : YCHARTS)
공룡은 괜히 공룡이 아니다
공룡 유통업체들이 블루에이프런이 다져놓았던(?) 신선식품 분야에서 무엇을 했는지 살펴보면 어마어마하다. 기존 유통업체들이 가진 자본과 조직력, 브랜드파워는 규모의 경제, 강력한 풀필먼트, 공급자 관리 차원에서 블루에이프런보다 우월한 모습을 만들어냈다.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신선식품 온라인 사업에도 적극적으로 그리고 비교적 용이하게 진출할 수 있었다.
대표적인 사례로 월마트를 살펴본다. 월마트는 아마존과 경쟁하기 위한 한 축으로 신선식품 사업을 강화하고 있다.
지난해 당일배송을 시작했고, 물류스타트업인 ‘파설(Parcel)’을 인수하였으며, 얼마 전에는 샘스클럽(Sam’s Club)용 당일배송 서비스를 위해 인스타카트(Instacart)와 전략적 제휴를 맺었다. 심지어 아마존이 시행하고 있는 고객 부재중 배송서비스에 대비하기 위해 자체적으로 스마트락 시스템을 테스트하고 있기도 하다.
월마트는 또한 최근 농장자동화용 드론 기술을 특허출원했다. 드론을 이용해서 해충을 탐지, 구분하고, 비료와 병충해방지 농약을 특정 영역, 농작물의 원하는 부위에만 살포하며 관리하는 기술이다.
이번 드론 기술은 월마트가 신선식품 사업의 공급망을 단순화하여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포석으로 보인다. 음식물 안전 관리를 위한 블록체인 기술 도입 등 월마트도 온라인 신선식품 사업을 위한 각종 기술을 개발하고 특허를 출원하는데 열심이다.
이와 같이 공룡 유통업체들은 공급자에 대한 직접 관리를 강화함으로써 공급망을 통합하고, 고객 신뢰를 얻을 수 있다. 월마트는 식료품 배송 사업을 위해 800개 점포까지 늘릴 계획이며, 우버를 통한 크라우드소싱 배달을 계획하고 있다. 현재까지 실험에 의하면 월마트는 배송 사업의 확장을 통해 새로운 고객층을 끌어 들이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시장이 원하는 흐름에 맞춰 신선식품 시장을 개척하고 투명한 공급자 관리를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마켓컬리의 미래는 ‘블루에이프런’인가
마켓컬리는 한국에서 ‘블루에이프런’과 수시로 비교되는 신선식품 이커머스 업체다. 마켓컬리의 비즈니스 모델은 신선식품 산업의 틈새시장을 노린다기보다는, 규모의 경제를 이루어야만 생존하는 모델로 보인다. 막대한 인프라 비용을 대량고객 확보로 보전해야 하는 전형적인 유통업체의 비즈니스 모델에 가까워지고 있다고 여겨진다.
이는 블루에이프런이 걸어간 길과 매우 흡사하다. 그 길의 끝은 익히 알려져 있다. 블루에이프런 입장에서는 막대한 투자를 통해 구축한 풀필먼트센터가 기존 유통공룡 입장에서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물류 투자는 새로운 고객을 유치하고 경쟁력을 갖추기는커녕 오히려 비용 증가만 불러온 꼴이 됐다.
블루에이프런 입장에서는 현재까지 생존하기 위해 모든 것을 다 해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경영진조차 전면 교체했다. 그래도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 한국에서 ‘총각네야채가게’가 규모를 키우기 위해 유통업체의 길을 걸으면서 경쟁 관계에서 어떤 결과를 보여줬는지 기억해보자.
▲블루에이프런의 배송용 박스. 블루에이프런은 물류 인프라를 내재화한 대표적인 신선식품 이커머스 스타트업이다.
블루에이프런의 고객은 마켓컬리와 같이 편리함을 위해서 비용을 기꺼이 지불하는 고객층이다. 이는 월마트 등의 고객층과는 겹치지 않는다고 보이나, 거꾸로 월마트의 고객층을 블루에이프런 고객으로 유입하기에 어렵다는 제한을 만들기도 했다.
편리함을 추구하는 블루에이프런의 기존고객조차도 아마존이 발표한 2시간 배송 서비스가 공식적으로 시작되면 이탈이 더욱 가속화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온다. 경쟁사의 움직임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진입장벽을 제대로 만들기 힘든 상황인 것이다.
실제 Recode 행사에서 블루에이프런의 CEO는 “(블루에이프런이) 고객에게 특별한 경험을 제공하고 있다”고 밝혔으나, 해당 경험을 바탕으로 경쟁사와 차별화된 고객기반을 만들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는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다.
공룡은 누군가의 멸망을 기다린다
다시 한 번 마켓컬리를 보자. 마켓컬리의 고객이 ‘마트 이용고객’이 아니라, 백화점에서 지갑을 열어 장보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중상층 소비수준의 고객이라면? 그리고 이들 고객층이 마켓컬리를 이용하는 이유가 백화점보다 더 뛰어난 제품을 갖췄기 때문이라기 보다, 백화점에 가는 것이 귀찮아서라면?
마켓컬리가 백화점과 ‘상품’으로 대결할 수 없다면, 배송 서비스를 위한 물류인프라를 잘 갖춘 신세계나 현대백화점 같은 유통공룡이 언제든지 진입할 수 있는 시장이 된다.
이런 가설은 어떨까. 신세계나 현대백화점과 같이 고도의 경쟁력을 갖춘 기존 유통업체는 때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신선식품 배송 스타트업이 열심히 시장을 개척하고, 고객을 교육시키고, 그 고객들이 “왜 너희들은 신선식품 배송사업을 하지 않느냐”고 아우성치는 순간을 말이다.
심지어 경쟁업체이기도 한 업계 B급 기업이 스타트업 경영을 한다면서 결국 자기들 방식으로 부조리하게 경영하면서 신선식품 배송사업에 뛰어들기도 하는 순간을 말이다. 그 순간이 되면 이렇게 나올 것이다. “그 동안 기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제대로 된 신선식품 사업, 우리가 만들어 보겠습니다. 자… 먼저 스타슈퍼부터 시작합니다” 또는 “성북동 며느리와 청담동 며느리께서 오전 11시만 되면 모이신다는 그 코너를 여러분께 이제 드립니다”라고 말이다.
한국의 유통공룡 입장에선 미사일배송 어쩌고 하며 갈아 넣어 억지로 만든 서비스의 한계를 보이는 신생 스타트업들이 스스로 망하는 모습을 느긋이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때 기존 스타트업을 인수합병한다고 해도 같은 분야의 경쟁 스타트업을 인수하기보다는, 유통공룡이 이미 잘 갖춘 인프라를 더욱 고도화하는데 기여할 수 있는 라스트마일 솔루션 스타트업 인수에 관심이 있을지도 모른다.
이 또한 블루에이프런 사례가 방증한다. 블루에이프런 투자자들은 기존 유통공룡들이 블루에이프런을 인수합병하기를 기대했다. 그러나 월마트 등의 사례를 봤을 때 그 꿈은 거의 사라졌다고 본다.
월마트는 블루에이프런을 인수하기보다는 블루에이프런과 유사한 비즈니스모델을 직접 구축했고, 블루에이프런은 이에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하는 것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한국의 유통공룡들이 이를 보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아마 최소한의 생각이 있다면 더 매력적인 사업을 준비 중일 수도 있다.
시장선점, 의미있나?
물론 마켓컬리는 ‘새벽배송’ 시장을 다지고, 의미 있는 성장을 보여준 선점업체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기존 한국 유통공룡의 ‘데이터 경영’이나 ‘풀필먼트센터’ 역량이 마켓컬리에 비해 뒤진다고 평가할 수 없다면, 마켓컬리의 시장선점도 별 의미가 없을 수 있다. 밤 11시까지 주문하면 다음날 새벽에 도착한다는 마법의 마켓컬리 주문 효과도 물류 시스템 구축을 위한 경쟁업체 대비 과도한 자본투입으로 사라질지 모른다.
마켓컬리 고객의 특이점으로 나타나는 ‘자기 몸을 소중히 여기는 1인가구’ 고객도 밀레니얼 세대에 집중되고 있다. 이들의 주머니 사정이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비싸지만 좋은식품 배송’이라는 마켓컬리의 사업 전략이 규모의 경제를 이룰 만큼 지속 가능할지 의문이다.
안타깝게도 신선식품 배송사업은 진입장벽이 존재하지 않아서 기존 유통공룡들이 언제라도 진입할 수 있다. 또 스타트업이 감당하기 쉽지 않은 물류비용이 끊임없이 발생하는 것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미국에서 블루에이프런은 현실성이 떨어지는 비즈니스모델에 적절치 않게 과도한 투자가 이루어지면 어떤 일이 발생하는지 보여준 대표적 사례로 자리매김하는 모습이다.
마켓컬리의 성공을 위해 필요한 것
현재까지 괄목할만한 매출 성장을 보여주고 있는 마켓컬리의 성공을 기원하기 위해 눈 여겨 봐야 하는 3개의 수익성 관련 지표가 있다.
바로 ‘고객당 주문수 증가 여부’, ‘고객당 매출 증가 여부’, 마지막으로 ‘고객 당 마케팅 비용의 감소 여부’다. 위 3개 지표가 부정적으로 흘러가는 것이 보인다면, 공급자에 대한 구매력을 갖추고, 내부 운용 효율화를 꾀하여 매출(총 고객수, 총 주문수)이 늘어나더라도 수익성이 악화돼 결국 지속 불가능한 사업이 되기 때문이다.
특히 지표의 명확한 개선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유통공룡들이 속속 이 시장에 진입한다면 고객생애주기(Lifetime Value), 고객확보비용(Customer Acquisition Cost)의 악화는 언제든 발생할 수 있다. 참고로 우리 회계 기준과 직접 비교는 어렵지만 블루에이프런의 IPO 당시 매출총이익(Gross Margin)은 30%대였다.
웨이트와처(Weight Watchers)의 신선식품 밀키트 시장 진입도 눈 여겨 볼만한 관전 포인트다. 웨이트와처는 건강한 식재료에 관심이 많은 중년 주부 고객을 풍부하게 보유하고 있는 헬스테크 기업이다. 이는 마켓컬리의 고객층과 일치한다고 할 수 있다.
마켓컬리 입장에서 이런 고객층을 잘 보유하고 있으면서도 마켓컬리가 갖고 있는 경쟁력이 결핍된 ‘하나로마트’와 같은 공룡 유통기업을 인수합병 제안의 잠재적 대상으로 삼을 수도 있겠다.
다른 측면에서 모빌리티 시장 진출을 고민하는 현대기아자동차나 GM 등과의 전략적 제휴도 생각해 볼 만하겠다. 어정쩡하게 주변 이해관계인 등골 빼먹는 B급 유통기업만 상대하지 않으면 수많은 긍정적 결과가 나올 잠재력은 무한하다고 생각한다.
마켓컬리의 진짜 무기
마켓컬리의 진짜 무기는 기존 유통공룡이 가지지 못한 것에서 나와야 할지 모른다. 신선식품과 이런 신선식품을 갈망하는 고객에 대한 전 직원 100% 혼연일체 된 사랑과 정성이 그것이다.
물론 창업자의 신선식품에 대한 사랑이 마켓컬리를 있게 했다고 하나, 사업 규모가 커져 경영에 집중할수록 그 사랑을 온전히 누리지 못하게 되는 세티스팩션매스(Satisfaction Math)의 딜레마에 빠질 수 있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이를 방지하기 위한 방법이 창업자만큼 신선식품에 대한 사랑으로 넘치는 인재들로 회사를 가득 채우는 것이다. 결국 사업 비전과 내부 직원에 대한 경영진의 진실된 사랑이 승부를 가를 수 있겠다. 홀푸드(Whole foods)는 이 사랑을 유지함으로써 아마존의 인수합병을 통해 새로운 길을 가고 있다.
마켓컬리는 ‘아마존’이 될까, 아니면 본연의 사랑을 유지하며 또 다른 생존의 길을 찾아간 ‘홀푸드’가 될까. 제대로 사랑하지 못하고 경영기법에만 몰두한 ‘블루에이프런’은 되지 않을 것이라 믿는다. 아, 사랑이여! 봄이구나! 이 봄에는 서로 사랑하자꾸나.
앰플러스파트너스(주) 대표이사 및 인하대 겸임교수. 넥스트벤쳐투자, 삼성전자, 3M, LG전자 등에서 연구개발, 기술마케팅 및 영업, Corporation Venture Capital, Venture Capital 업무 등을 수행하였으며, 창진특(톈진)전자유한공사 등에서 창업 및 사업을 하였다. 구글캠퍼스, 국민대, 서강대, 서울대, 유니스트, 한양대 등에서 기업가정신 및 스타트업 관련 강의 및 교육을 진행하였다. 스타트업 도우미가 되고 싶은 마음에 조용한 일상을 보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