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민정웅 인하대학교 물류전문대학원 교수
창조적 파괴와 혁신. 이 두 단어는 지난 몇 년 스타트업 열풍과 함께 우리에게 매우 익숙하게 들리는 말이다. 반세기도 더 전에 슘패터라는 경제학자가 주창한 이 개념이 지금 시대의 우리에게 시사하는 것이 있다. 새로운 재화의 도입, 생산방법의 도입, 시장의 개척, 공급원의 개발까지. 슘패터가 정의한 창조적 파괴를 만들어내는 5가지 기업가의 행위가 현대 물류산업에 미친 변화를 살펴봤다.
“혁신이 없으면 기업가도 없다. 기업가적 성취가 없으면 자본가의 이윤도, 추진력도 없다. 산업혁명, 곧 혁신의 기류는 자본주의가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요소였다” - 슘페터의 경기순환론, 1939
자본주의라는 수수께끼를 좋아했던 남자, 슘페터
창조적 파괴와 혁신. 슘페터(Joseph Schumpeter, 1883-1950)라는 경제학자의 이름은 다소 생소하게 들릴지 몰라도, 창조적 파괴와 혁신이라는 두 단어는 그리 낯설게 느껴지지 않을 것입니다. 지난 몇 년간 스타트업 열풍과 함께 많은 사람들에 의해 너무나도 자주 회자됐기 때문입니다.
슘페터는 1930년대 미국의 대공황을 목격하며, ‘과연 자본주의는 살아남을 수 있을까’라는 본질적인 궁금증에 빠지게 됩니다. 왜냐면 당시 자본주의는 그 자체의 내재적 모순에 의해 더 이상의 발전이 불가능하여 결국은 붕괴될 수밖에 없다는 마르크스의 예언이 현실적인 불안감으로 엄습하고 있을 때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때 슘페터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그는 기업가의 혁신에 의해서 자본주의 경제는 영구적으로 발전할 수 있으며, 경제적 모순의 표출로 지적되었던 경제 공황도 자본주의 자체의 힘에 의해서 충분히 극복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오늘날 자본주의를 바라보는 시각의 상당부분은 그가 강조한 ‘혁신’, 기업가 고유의 가치관인 ‘기업가 정신’, 그리고 ‘창조적 파괴’에 무게를 두고 있습니다. 특히 그는 1942년에 낡은 것을 계속적으로 대체할 혁신적인 자본주의 상품과 방법이 무엇인지를 설명하면서, 그 유명한 ‘창조적 파괴(Creative Destruction)’라는 용어를 처음으로 사용하게 됩니다.
그는 “공장은 대장간을 쓸어버렸고, 차는 말과 마차를 대신했으며, 기업은 1인 소유권을 무너뜨렸다”고 이야기하면서, “자본주의에서 창조적 파괴는 가장 핵심적인 사항이며, 안정된 자본주의라는 용어 자체가 모순이다”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마치 우리에게 현대적 인간의 정신세계를 생각하면 바로 떠오르는 사람이 프로이트인 것처럼, 자본주의라는 단어와 함께 이내 떠오르는 사람이 슘페터가 됐습니다.
1883년 합스부르크 제국의 한 도시에서 태어난 슘페터를 농담 삼아 표현하는 단어는 ‘모태 혁신가’입니다. 슘패터의 집안은 대대로 오랜 기간 동안 직물제조업에 종사해 왔는데, 그의 증조할아버지는 증기기관을 도입한 바 있고, 할아버지도 직조공장을 수공업형태에서 기계화된 공업형태로 바꾸는 등의 경영혁신을 단행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슘페터는 이러한 집안 내력 때문이었는지, 자본주의 발전의 근본적 추진력이 무엇인가에 관한 수수께끼의 정답을 새로운 혁신을 관철하려는 기업가의 동기로 바라보았습니다. 그의 조상들이 몸소 실천했던 것처럼 말이죠.
슘페터의 이야기를 갑자기 꺼내는 이유는, 마치 데자뷰(deja vu)처럼 지금의 경제상황이 그가 숱한 고민을 했었던 20세기 초와도 너무나 비슷하게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점진적이고 정적인 환경 하에서 경제가 안정적으로 성장하는 시대가 아닌, 첨단 산업들의 등장과 기술독점이 시장을 지배하는 새로운 경제 혁명의 시대이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그렇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오늘날 바라본 슘페터의 책과 그의 생각이 지금 우리에게는 고전이 아니라 신간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기업가는 모든 것이 회전하는 중심축
슘페터는 혁신을 만들어내는 기업가에 대해 “모든 것이 회전하는 중심축”이라 이야기했습니다. 큰 기업이든 작은 기업이든, 오래된 기업이든 새로운 기업이든 간에 기업가는 혁신과 창조적 파괴의 대리인으로서 세상의 변혁을 이끌어내는 중심에 서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세상의 변혁에 대해 슘페터는 실크스타킹을 예로 들며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습니다.
“전형적인 자본주의식 생산이 추구하는 바는 값싼 옷, 값싼 면, 레이온 섬유, 부츠, 오토바이 등이 오직 부유한 사람들에게만 제공되는데 있지 않다. 엘리자베스 여왕은 이미 16세기에 실크스타킹을 신었다. 자본주의가 추구하는 바는 여왕이 더 많은 실크스타킹을 신는데 있지 않다. 대신 노력의 양을 지속적으로 줄여 그 대가로 가난한 공장 소녀들도 실크스타킹을 사서 신을 수 있도록 하는데 있다. 자본주의적 과정은 우연이 아니라 자본주의라는 제도의 힘에 따라 진행되는 것으로, 일반 대중의 생활수준을 크게 향상시킨다”
이러한 변혁의 중심에 서있는 기업가는 슘페터에 따르면 단순히 부자가 되고 싶다거나, ‘쾌락주의적 동기’로 인해 사업을 하는 사람들은 아닙니다. 그가 말하려는 기업가는 ‘자신만의 왕국’, 즉 하나의 새로운 가업을 건설하고 싶은 꿈과 의지가 있는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 기업가들은 성공에서 맛볼 수 있는 달콤한 열매만을 기대는 것이 아니라, 성공 그 자체에 커다란 의미를 두기 때문에, 자신의 에너지와 재능을 발휘하여 무언가를 창조해내고 일을 완성시키는 데에서 오는 즐거움을 맛본다고 슘페터는 말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기업가 정신을 기반으로 새로운 혁신을 성공적으로 관철하기 위해서는 혁신의 수행에 수반되는 사회적 혹은 경제적 저항을 극복해야 합니다. 그리고 선도자로서 미래의 불확실성을 확실성으로 변환시키는 능력을 가져야만 합니다. 슘페터도 이러한 리더로서의 기능을 기업가의 본질적 기능으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슘페터는 혁신이 기존 인물보다는 일반적으로 새로운 인물에 의해서 구현된다고 가정합니다. 즉, 철도라는 새로운 혁신을 만들어냈던 사람들은 분명히 과거에 역마차의 소유자는 아니었다는 것이죠.
따라서 혁신을 이끌어내는 아이디어와 실행력은 기존의 전통적인 기업에서는 발현되지 않고, 반드시 새로운 형태의 기업에 의해서 실현된다고 보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새로운 혁신이 도입된 이후, 그 혁신이 보편적인 과정이 되거나 쓸모없는 것이 될 경우 그 기업은 생명을 다하기 때문에, 어떤 기업도 영원히 존재하지 못한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렇듯 한 기업의 생사를 결정짓는 혁신이라는 것은 도대체 어떻게 만들어 지는 것일까요?
슘페터의 5가지 혁신 유형
“자본주의의 진화는 사회 동요를 불러 일으킨다“ 이는 슘페터가 거듭 강조하는 부분입니다. 변화가 없다면 자본주의 사회는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지요. 만약 자본주의라는 엔진이 멈추게 된다면 경제 제도도 무너지게 된다는 것이며, 그 엔진을 작동시키는 것이 바로 지속적인 혁신이라는 것입니다. 혁신을 통한 창조적 파괴는 끊임없이 과거의 제품과 서비스, 기업, 그리고 산업의 구조를 없애버리며, 이들을 새것으로 대체시킵니다. 그렇기에 모든 기업 전략은 끊임없는 변화의 바람 속에서 고민되고 분석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동태적 측면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그 분석은 의미가 없는 것이겠지요.
슘페터는 이러한 창조적파괴를 만들어내는 기업가의 행위를 크게 5가지 유형의 혁신으로 분류하고 있습니다. 각각 새로운 재화의 도입, 생산방법의 도입, 시장의 개척, 공급원의 개발, 산업구조의 구축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혁신의 관철로 비능률적인 기업이 파괴되고 새로운 기업이 시장을 지배하게 되는 과정을 창조적 파괴과정이라고 불렀던 것입니다.
기존에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형태의 제품과 서비스를 만들어 내거나, 새로운 방식으로 제품을 만들어 원가를 낮추고 품질을 높이는 것은 혁신의 가장 대표적인 형태입니다. 아무도 진출하지 않았던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여 성장을 가져오거나, 혹은 새로운 방식의 제품 공급 방법도 혁신을 불러일으킬 수 있습니다. 기존 산업 내 역학관계를 송두리째 무너뜨리고 새로운 질서를 도입하는 것 또한 창조적 파괴를 가져오는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창조적 파괴과정이 물류산업 내에서 빈번히 발생하고 있다는 것은, 이제는 더 이상 사람들의 시선을 끄는 새로운 뉴스거리가 되지 않습니다. 로봇과 드론, 인공지능과 센서 기술이 물류창고를 가득 채우고 있습니다. 무인자동차가 맥주를 싣고 목적지를 향해 질주하고 있습니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아우르며 두 개의 서로 다른 공간이 빅뱅처럼 하나로 합쳐지고 있습니다. 새로운 형태의 물류 비즈니스 모델이 등장하며 채워지지 않았던 소비자의 욕구를 충족시켜주고 있습니다. 기존 산업의 사업 영역은 새로운 업체들의 도전에 의해 쪼개지고, 재구성되며 그들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과거가 물류에 미치는 것들
이렇게 격변하는 경제 환경 속에서 물류 생태계의 혁신은 어떠한 시점에서 바라봐야 하며, 어떠한 깊이로 이를 이해하고, 또한 어떠한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을까요. 슘페터의 5가지 혁신은 그것에 대한 일말의 힌트를 줍니다.
새로운 재화와 관련해서는 ‘온디맨드 물류’를 꼽을 수 있습니다. 사실 ‘온디맨드(On-demand)’라는 개념 자체는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닙니다. 이미 10여년 전부터 IT산업을 중심으로 꾸준히 확산되어온 개념입니다. 제품이나 서비스를 바라보는 무게 중심을 공급 중심에서 수요 중심으로 이동시키는 이 개념은, 최근 들어 O2O라는 이름의 온라인-오프라인 연계형 비즈니스 모델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변화는 라스트마일 물류에서 나타났습니다. 사회경제적 변화에 따른 소비자들의 세분화된 수요를 충족시켜주고 있는 다양한 배송 서비스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특히 기존 사륜차 시장에 더한 이륜차 시장의 물류 분업화로 매크로(macro)한 시장의 효율성은 물론, 고도화된 소비자들의 마이크로(micro)한 요구사항을 현명하게 충족시켜주는 IT기반 스마트물류의 미래를 이야기하는 업체들의 도전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새로운 생산방법과 관련해서는 물류와 유통 분야의 서비스를 조직하는 새로운 방법이 주목 받습니다. 인더스트리 4.0은 모든 산업의 미래를 이야기하는 핵심화두입니다. 지난 200여 년간 우리 인류가 경험했던 3차례의 산업혁명은 기술의 발전을 중심으로 하는 개별 산업들의 발달에 기여해왔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지금 목도하고 있는 4번째 산업혁명은 ‘가상공간과 물리적 공간의 연결’이라는 새로운 화두를 던지며, 전체 산업의 동기화된 변화를 이끌고 있습니다. 이러한 동기화된 변화는 결국 제조와 유통 그리고 물류라는 산업을 하나의 범주로 묶어내고 있습니다. 때문에, 이들 기존 산업간의 헤게모니 쟁탈전은 너무나도 자연스런 수순으로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새로운 시장 영역에 대한 확장 가능성도 주목 받습니다. 대표적으로 해외에서는 동남아시아 지역의 전자상거래 시장을 주의 깊게 살펴볼 수 있습니다. AT Kearney 등 글로벌 전문 기관들은 한결같이 동남아 지역의 성장 가능성에 방점을 찍고 있습니다. 이미 중국과 미국 시장은 수많은 대규모 업체들의 각축전이 벌어진 지 오래인데, 이 경쟁이 서서히 동남아 시장으로 확산되고 있습니다.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 그저 막연히 생각되었던 동남아 지역 전자상거래 시장 접근을 위한 구체적인 방법과 진출 전략이 논의될 필요가 있습니다.
해마다 증가하고 있는 국가간 전자상거래 규모는 제품 공급원의 확장을 통한 혁신을 보여 줍니다. 국가간 전자상거래의 폭발적 성장에 발맞추어 다양한 비즈니스 기회를 발굴하고 있는 해외의 기업들과 함께, 국내 기업들도 서서히 가속 페달을 밟고 있습니다. 중소기업의 관점에서 CBT 시장에 성공적으로 진출하기 위한 전략적 도구로서의 IT기술과 오픈 플랫폼이 떠올랐습니다. 특히 블록체인 등의 기술이 결합한 물류 정보 처리와 함께 결제 연계를 통한 공급망 금융 기법의 미래를 함께 살펴볼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새로운 산업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고 있는 기술의 미래와 함께, 창조적으로 기존 산업의 질서를 파괴하고 있는 스타트업의 동향을 주목할 수 있습니다. 스타트업 전반의 기술적 동향과 사업 환경, 그리고 변화의 추세선 속에서 기존 물류 산업의 기회와 가능성을 조망해 볼 수 있습니다. 이와 함께 기존기업과 스타트업의 상호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는 연결과 협업 사례 또한 검토할 수 있습니다.
적응적 대응과 창조적 대응
슘페터는 변화를 맞이하는 기업가의 행동을 ‘적응적(Adaptive) 대응’과 ‘창조적(Creative) 대응’으로 구분하고, 이들 사이의 구분을 명확하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만일 경제, 산업, 기업이 단순히 기존 관행의 테두리 안에서 환경의 중대한 변화에 대응한다면 이를 ‘적응적 대응’이라고 합니다. 반면 경제나 산업, 그리고 기업들이 행하는 기존 관행범위 밖에서의 새로운 노력들은 ‘창조적 대응’이라 정의하고 있습니다.
창조적 파괴를 통한 혁신을 불러일으키기 위해서는 기존의 관행과 생각, 습관을 벗어난 창조적 대응이 필수적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창조적 대응의 첫 걸음은 우리의 시선을 현재가 아닌 미래에 고정시키는 것입니다. 바로 미래를 예측하는 것이지요. 우리의 시선이 미래를 향할 때에야 비로소 현실 속의 불확실성을 올바르게 이해할 수 있으며, 이러한 이해 없이는 기존의 구습을 벗어나 새로운 방식으로 혁신을 일구어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예측이란 어떤 현상에 존재하는 경향이 관찰하는 기간 중에 그대로 작동한다면, 그리고 이것을 교란하는 다른 요인이 없다면, 과연 미래에는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가를 생각해보는 것입니다. 이러한 제약 조건을 넘어 그 이상의 것을 이야기 한다면, 그것은 예측이 아니라 예언일 것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예측의 과정은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소명이라고 믿습니다. 왜냐면 창조적 파괴를 통한 혁신은 우리의 생존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시대적 요구이기 때문입니다.
필자는 현재 인하대학교 아태물류학부 및 물류전문대학원 교수로 재직 중으로 정석물류통상연구원 부원장을 겸직하고 있다. 역-저서로는 ‘미친 SCM이 성공한다(2014, 영진닷컴)’, ‘물류학원론’, ‘공급사슬물류관리’, ‘물류기술과 보안의 이해’등이 있다. IT 및 Operation 컨설턴트로 활동했던 실무적 경험을 바탕으로 공급사슬관리, 물류정보시스템, 물류보안, SCM과 소셜네트워크 등에 대한 연구를 활발히 진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