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글로비스, 포브스가 꼽은 세계 최고 직장 순위에 국내 물류기업으로 유일 랭크
미국기업으론 UPS(159위), FedEx(194위) 등 다양... 일본도 NYK, MOL, 야마토, 일본통운 순위권
왜 글로비스뿐일까…글로벌 역량 부족과 2PL이 장악한 시장 때문
▲ 포브스가 꼽은 세계 최고 직장 순위. 글로비스가 국내 물류기업으로서는 유일하게 264위에 이름을 올렸다.(사진출처: Forbes)
미국의 경제 전문 매체 포브스(Forbes)가 ‘세계 최고 직장(World best employer) 500곳’을 선정했다. 국내 물류 기업으로는 현대글로비스가 유일하게 264위에 이름을 올렸다. 글로벌기업으론 UPS, 페덱스, 야마토, 일본통운 등 여러 물류기업이 이름을 올린 상황에서, 국내 물류기업은 단 한 업체만 순위권에 이름을 올린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로 국내 물류기업들의 '글로벌 역량 부족'과 모회사의 물량을 기반으로 한 '2PL기업 중심의 물류생태계'가 꼽힌다는 지적이다.
지난 14일(현지시간) 포브스가 발표한 세계 최고의 직장 순위는 전 세계 58개국 2,000개 기업을 대상으로 근무 환경, 회사 이미지, 다양성 등을 평가해 500위까지 순위를 매긴 것이다. 1위는 미국의 IT기업 구글의 모회사 알파벳이 차지했고, 국내 기업 가운데 가장 높은 순위를 차지한 것은 ㈜LG(10위)였다.
구체적으로 어떤 기준을 가지고 500개 회사의 순위를 매겼는지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다만 포브스는 ‘직원들이 직접 자신이 다니는 회사에 등급을 매기고 회사를 친구나 가족에게 추천할 수 있는지 평가했다’며 ‘직원들이 자신이 존경하거나 일하고 싶은 회사를 추천하기도 했다’고 밝혔다.
물류업계는 일하기 힘든 곳일까
세계 최고의 직장 500위 가운데 국내 물류기업이 단 한 곳만 포함돼 있다는 것은 무엇을 뜻할까. 국내 물류업계가 여전히 열악하고 보수적인 곳으로 여겨지는 상황에서, 물류기업이 직원들에게 충분한 만족감과 즐거움을 제공하지 못 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을까.
국내 물류기업 H사 관계자는 “이번 결과에 3D산업으로 인식되는 국내 물류의 이미지가 반영된 것 같다”며 “물류는 제조나 유통업체가 일을 줘야 일을 하는 곳이기 때문에 갑을관계에서 오는 자괴감이 클뿐더러, 3PL 같은 경우 감정노동자와 마찬가지로 다양한 고객의 니즈를 끊임없이 맞춰야 하는 데서 느끼는 피로감이 상당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그는 “최근 SCM으로 포장돼 물류가 조금 뜨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 현장의 상황은 조금 다르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이번 조사 결과에 크게 의미를 둘 필요가 없다는 의견도 있었다. 국내 물류기업 S사를 거친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주변을 보면 설문을 받은 사람을 찾기가 어려워 무슨 기준을 가지고 순위를 매겼는지 알 방법이 없다”며 “해당 순위만을 가지고 물류업계가 일하기 좋지 않은 곳이라고 판단하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밝혔다.
국내서 UPS가 못 나오는 이유
그렇다면 시각을 조금 바꿔보자. 이번에 포브스가 발표한 세계 최고 직장 500곳은 포브스가 2017년 발표한 ‘Global2000(The Worlds Biggest Public Companies)’ 리스트를 모집단으로 삼고 있다. Global2000은 포브스가 매출(Sales), 이익(Profits), 자산(Assets), 시가총액(Market Value)을 기준으로 2,000곳의 글로벌 회사를 추린 것이다.
어느 정도 규모의 회사가 이 리스트에 이름을 올렸을까. 해당 리스트에서 1위에 오른 곳은 중국공상은행(ICBC)으로, ICBC의 매출, 이익, 자산, 시가총액은 각각 1,514억 달러, 420억 달러, 3조4,732억 달러, 2,298억 달러에 이른다. 한편 해당 리스트 최하위권(공동 1,998위)에 이름을 올린 기업은 인도 마힌드라그룹의 테크 마힌드라(Tech Mahindra)로, 이 회사의 매출, 이익, 자산, 시가총액은 각각 42억 달러, 4억6,900만 달러, 36억 달러, 67억 달러 수준이다.
문제는 이 정도 규모를 갖춰 Global2000 리스트에 오른 국내 물류회사도 현대글로비스 단 한 곳뿐이라는 것이다. 이 리스트에서 다시 ‘세계 최고의 직장 500곳’을 뽑았으니 거기에 현대글로비스만이 포함된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다.
애당초 규모 면에서 글로벌 순위에 랭크된 국내 물류기업이 없는 것이다. 가까운 일본만 하더라도 해운 분야에서는 NYK(Nippon Yusen Kaisha)나 MOL(Mitsui OSK Lines) 등이, 육상운송(Trucking) 분야에서는 야마토와 일본통운(Nippon Express) 등이 이름을 올리고 있다.
업계에서는 글로벌 규모로 성장한 물류기업이 국내에 적은 이유로 크게 두 가지를 꼽는다. 첫째 글로벌 역량 부족이다. 대기업 부설 물류연구기관의 한 연구원 A씨는 “항만과 트러킹을 통한 운송시장 위주로 발전해 온 국내 물류는 애초 글로벌 규모로 성장하는 데 한계가 있다”며 “한진과 세방, 동방과 같은 곳이 외부로 확장할 수 있는 역량이 부족하다”고 전했다. 또한 그는 “땅이 좁고 인구가 적은 국내에서는 회사가 아무리 커져도 어느 정도 사이즈 이상으로 성장하는 데 한계가 있다”며 “시장 형성 초기 글로벌 물류에 대한 관심 부족이 글로벌 물류 기업이 안 나타나는 현재의 상황과 연관돼 있는 것 같다”고 밝혔다.
▲ UPS. ‘World Wide’ Service
두 번째는 대기업 물류 계열사(2PL)가 시장을 쥐고 있기 때문이다. A씨는 “3PL이 좋은 것은 다 알고 있지만 안타깝게도 국내에서는 3PL이 성공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국내에서는 물류가 물류 본연의 서비스로 시작하지 않고 2자물류의 볼륨을 채우기 위한 방편으로 출범한 경우가 많으며, 그렇게 해서 성장한 2PL이 국내 물류시장 전반을 쥐락펴락하고 있다”고 전했다. 3PL업체가 제공하는 서비스가 아무리 좋아도 충분한 물량을 확보할 수 없으니 성장에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제3자 물류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UPS(Global 2000에서 159위)나 FedEx(194위)같은 기업이 나오지 못 하는 까닭이다.
또 다른 물류전문 연구 관계자 B씨 역시 “국내 물류 기업 중에 규모가 큰 곳은 삼성SDS, 현대글로비스, 판토스 등인데 이들은 대개 2PL 기반”이라며 “결국 돈은 많이 벌지만 국내에서만 성장하는 구조”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