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열대는 고객과 시장에 대해 무엇을 말해주는가
데이터 확보의 목적, ‘고객을 이해하고 이롭게 하라’
글. 신광섭 인천대 동북아물류대학원 교수
2016년 12월 아마존은 계산대 없이 운영되는 매장인 ‘아마존고(AmazonGo)’를 공개하며, 세간을 다시 한 번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전체 공급사슬 운영 측면에서 보면, 아마존고는 기기 간 의사소통 기술(M2M: Machine-to-Machine)을 통해 ‘고객의 상품구매에서부터 대금지급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자동화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렇다면 아마존고가 적용되는 범위 이전, 그러니까 ‘매장에 도착한 고객이 상품을 사게 만드는 과정’에는 어떤 기술이 적용될 수 있는 것일까? 고객이 상품을 사게 만드는 과정은 고객관계관리(CRM)나 진열대 관리(Shelf Management) 등의 분야에서 오랜 기간 연구되어 왔다. 본고에서는 ‘어떻게 하면 고객이 상품을 구매하도록 할 수 있을까?’라는 진열대 관리의 본원적인 목표를 IoT와 빅데이터 기술이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지 살펴보고자 한다.
고객 데이터를 ‘객관적’으로 확보하는 방법
많은 전문가와 실무자는 실시간 데이터 확보 기술이 공급사슬에 끼치는 가장 긍정적인 효과로 ‘공급사슬의 가시성 향상’을 꼽는다. 그렇다면 매장관리 영역에서 실시간으로 데이터를 확보하는 방법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첫 번째는 ‘고객이 구매하려는 상품을 직접 말하는 방식’으로서, 대표적인 사례로는 아마존의 ‘대시스틱(Dash stick)’, 11번가의 ‘스마트버튼 꾹’이 있다.
▲ 아마존의 대시스틱(좌)과 11번가의 스마트버튼 꾹(우)
만약 유통업체가 고객이 관심을 가질 만한 상품을 잘못 예측한다면, 이 오차는 곧바로 재고 과부족으로 이어진다. 위의 사례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유통업체의 고민의 결과물로 받아들이기에 충분하다. 아쉽게도 두 사례 모두 큰 성과를 내지는 못했지만 말이다.
매장관리 영역에서 실시간으로 데이터를 확보하는 두 번째 방법은 ‘고객의 행동을 모니터링 하는 것’, 즉 고객이 매장을 방문하고 상품을 구매하기까지의 전 과정을 실시간 데이터로 확보하는 것이다. 이 방법은 첫 번째 방법에 비해 처리해야 하는 데이터의 양이 훨씬 많긴 하지만 고객 행동에 내재돼 있는 니즈를 파악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갖는다.
위 두 방법은 모두 ‘유통업체가 고객으로부터 원하는 바를 데이터의 형태로 확보’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차이가 있다면, 첫 번째 방법은 데이터의 정확성을 높이기 위해 사전 예측 대신 고객으로부터 직접 요구사항을 확보하는 것이고, 두 번째 방법은 고객의 행동을 기록하여 이중 의미 있는 사실을 발견해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두 방법의 또 다른 공통점은 ‘데이터의 객관성 확보’가 목적이라는 것이다. 과거에는 고객이 원하는 바를 파악하기 위해 ‘설문조사’가 주로 행해졌다. 설문조사는 조사자가 알고 싶은 바를 질문의 형태로 만들고, 가능한 답변을 제시하거나 고객이 직접 답변을 작성하도록 하는 조사방법이다. 그러나 설문조사 방법은 질문과 보기를 만드는 과정에서 질문자의 주관이 담길 가능성이 있고, 답하는 잠재 고객 역시 현실과 동떨어진 답변을 할 가능성도 높다. 그리고 이는 데이터의 왜곡으로 이어진다.
애초 데이터의 개념적 정의가 ‘객관적 사실(Fact)을 의도에 맞게 정리한 것’이다. 즉 데이터를 확보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데이터 왜곡을 사전에 방지하여, 데이터의 객관성을 높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위의 두 방법은 이러한 노력의 일환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고객을 이해하고, 이롭게 하는 기술
다음 그림은 ‘미래의 식품 매장’이라는 제목으로 CBInsight가 발표한 자료의 일부분이다. 이는 식품 매장에서 필요한 기술·시스템·도구를 구분하고, 각 영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65개 스타트업을 매핑한 결과물이다.
▲ 미래의 식품 매장(자료: CBInsight)
이들 스타트업이 데이터를 어떻게 확보하고 활용하는지에 따라 이들의 활동 영역을, ‘고객과 상품의 위치를 종합적으로 파악하고 분석하는 영역’, ‘고객에게 더 많은 정보를 효율적으로 전달하고자 하는 영역’, ‘다양한 혜택과 부가서비스를 통해 매출을 높이기 위한 영역’ 등으로 나눠볼 수 있다.
결과적으로 이들은 모두 데이터를 활용해, 고객이 매장을 방문했을 때 구매하고자 하는 상품을 쉽게 발견할 수 있도록 돕거나, 고객이 조금 더 많은 상품을 구매하도록 유도하려 한다. 즉 이들이 활용하는 데이터 기술은 ‘고객을 이해하고, 고객을 움직이게 만들 수 있는 방법을 다양한 형태로 구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진열대에 배치된 상품의 위치, 고객의 동선 및 행동에 관한 데이터를 통해 우리는 어떻게 고객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일까? 나아가 어떻게 시장 전체를 파악할 수 있는 것일까? 이 질문의 답을 찾기 위한 시작점으로 삼을 만한 좋은 사례가 하나 있다. 바로 구글의 M&M프로젝트 사례(직원 식습관 데이터 분석 프로젝트)다.
구글은 “모든 직원들로 하여금 200피트(약 60m) 이내의 장소에서 공짜 간식을 마음대로 먹게 하라”는 공동 창업자 세르게이 브린(Sergey Brin)의 지시에 따라, 뉴욕 사무실에만 35개의 ‘간이 카페(Microkitchen)’를 운영하고 있다. 그런데 2012년 구글은 이와 관련하여 이른바 ‘M&M problem’에 봉착했다. 직원들이 초콜릿 등 칼로리가 높은 간식과 탄산음료를 너무 많이 섭취하는 게 문제가 된 것이었다. 회사는 이 문제가 직원들의 건강과 행복이 걸린 중대한 사안이라고 판단하고, ‘Project M&M’이라는 이름의 팀을 구성하여 ‘직원들의 간식 패턴’에 대한 분석에 들어갔다. 그리고 그들은 이러한 분석 결과를 토대로 초콜릿은 불투명한 용기에 담아 보이지 않게 하고 건강 스낵은 투명 용기에 담았다. 또한 탄산음료는 냉장고의 아래쪽에 두고 눈높이 위치에는 생수를 비치해 집기 쉽게 했다. 이 사소한 조치만으로 설탕이 첨가된 간식의 소비가 7% 감소했고, 생수 소비는 47%나 증가했다. 결과적으로 7주 동안 구글 뉴욕 사무실 직원들의 섭취량은 총 310만 칼로리나 줄었다.(CnE 혁신연구소 곽숙철 소장, “구글, 직원들의 간식까지도 데이터로 관리한다.” 中)
위 사례를 보면, 구글은 직원 복지를 위해 제공한 무료 간식이 아이러니하게 직원의 건강을 해치고, 장기적으로는 업무 생산성을 저하하는 원인이 될 것이라 판단했다. 이에 따라 직원들이 간식을 소비하는 행동을 분석하고, 진열대의 상품 위치를 바꿔 결과적으로는 직원들의 행동까지도 변화시켰다.
구글은 앞서 언급한 두 번째 방법을 사용해 직원 식습관 데이터를 확보했다. 즉 많은 사람들은 본인의 행동이 모니터링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 채 평소대로 행동했고, 구글은 그들의 행동으로부터 일정한 패턴을 발견해 문제를 해결했다.
물론 이 프로젝트는 다양한 관점에서 해석될 여지가 있다. 하지만 본고에서 주목하고자 하는 것은 데이터의 확보 및 분석이 ‘고객을 이해하고, 더 나아가 고객을 이롭게 하려는 목적’에서부터 출발했다는 사실이다.
진열대, 고객의 욕망이 모이는 곳
구글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매장의 진열대는 고객의 욕망이 모여 행동으로 표출되는 중요한 매개체다. 고객은 여러 진열대를 자신만의 순서대로 둘러보며 구매를 위한 일종의 여행을 한다.
진열대를 중심에 두고, 매장 관리를 위한 주요 이슈를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언제 얼마만큼의 상품을 진열대에 보충할 것인지’, ‘어떤 상품을 진열대에 배치할 것인지’, ‘한 진열대에 다양한 상품을 어떻게 배치할 것인지’ 등이다. 이러한 이슈는 진열대 관리 영역에서 오랫동안 연구돼온 주제들이다. 그런데 최근 IoT와 인공지능, 빅데이터 기술이 발달하면서 진열대 관리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고 있다.
진열대를 둘러싼 이슈를 해결하기 위해 어떻게 데이터를 확보하고, 분석하여, 활용할 수 있을까? 우선 데이터를 확보하는 방법부터 살펴보자. 가장 먼저 생각해볼 수 있는 데이터는 고객의 ‘구매내역’일 것이다. POS 장비를 보유한 모든 기업이 고객의 상품 구매목록을 확보할 수 있다.
또한 쇼핑카트에 담긴 상품 사이의 관계를 분석하는 ‘장바구니 분석(MBA: Market Basket Analysis)’을 통해 한 상품이 어떤 상품과 함께 판매되는지도 확인할 수 있다. 가령 식빵을 사는 고객 중 80% 이상이 우유를 함께 구매한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확보한 데이터를 진열대 배치에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까? 많은 사람이 ‘식빵 옆에 우유를 배치한다’고 답할 것이다. 하지만 식빵과 우유의 상관관계가 아주 강하다면, 식빵과 우유를 오히려 멀리 배치해서 고객이 식빵을 쇼핑카트에 담고 우유를 찾아 이동하는 동안 다른 상품을 구매하도록 유도하는 전략을 짤 수도 있다.
그런데 구매내역 분석과 장바구니 분석은 ‘소비자의 매장 내 이동 경로를 파악하는 게 불가능’하다는 한계를 갖는다. 이러한 분석을 통해서 어떤 상품들이 함께 구매되었는지는 알 수 있지만, 상품이 어떤 순서로 쇼핑카트에 담겼는지는 확인할 수 없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RFID 태그나 비콘(Beacon)을 활용하거나 매장에 설치된 CCTV 동영상을 분석해 고객의 동선을 파악할 수 있다. 또한 온라인 쇼핑몰은 로그 데이터를 분석해 로그인한 고객이 어떤 상품군을 검색했으며, 또 한 상품 페이지에서 어떤 페이지로 이동했는지 확인할 수 있다.
▲ 장바구니 분석(좌)과 비디오트랙킹을 통한 고객 동선 분석(우)
이러한 방식은 진열대를 하나의 노드(Node) 혹은 활동(Activity)으로 정의하고, 한 노드에서 다른 노드로의 이동 과정, 한 활동에서 다른 활동으로 전환 과정을 분석해 여러 패턴을 발견한다. 즉 어떤 진열대에 고객이 많이 방문하는지, 대부분의 고객들이 이동하는 패턴은 어떠한지, 쇼핑카트에 담긴 상품을 구매하기 위해 어떤 경로로 이동했는지 등을 파악하는 것이다.
이러한 방식을 활용할 때 중요한 것은 데이터 왜곡을 방지하기 위해, 고객이 자신의 행동을 누군가 보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매장 내 공사, 타임세일, 특별할인 등 소비자의 행동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다양한 이벤트도 분석에 정확히 기록돼야 한다.
한편 고객의 구매이력을 분석해 발견한 ‘동시 구매 패턴’ 데이터가 ‘매장 내 이동 패턴’ 데이터와 결합하면 더 가치 있는 정보가 만들어질 수 있다. 예컨대 이렇게 결합한 데이터는 매장 내 진열대 배치 및 진열대별 상품 배정과 같은 고민을 해결하는 근거로 사용될 수 있으며, 진열대 내 상품 보충 주기 설정이나 특별할인 등 고객 맞춤형 프로모션을 운영하는 데 기준으로 쓰일 수도 있다.
‘은밀하게 위대하게’
결국 고객으로부터 데이터를 확보하고, 데이터를 기반으로 고객을 이해하며, 고객에게 구매를 위한 동기부여를 하는 모든 과정은 하나로 연결돼 있다. 그리고 그 출발에는 ‘무엇이 고객을 이롭게 할까’ 라는 고민이 있어야 한다. 단기적 매출 증대나 순간적으로 고객을 현혹하기 위한 전략은 고객의 충성도 하락 등의 역효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실시간으로 데이터를 확보할 수 있는 기술과 정교한 데이터 분석을 위한 툴이 지금 이 순간에도 개발되고 있으며, 그 성능은 계속해서 좋아질 것이다. 시장의 변화와 기술 개발 속도를 고려할 때, 기업은 안정적인 시스템을 갖추는 것과 동시에 외부 변화에 기민하게 대응할 수 있는 유연성을 높여야 한다.
고객의 마음은 행동으로 드러난다. 그래서 행동을 기록해야 한다. 그 기록을 통해 고객 자신도 모르는 욕망을 캐치해내는 게 기업이 고객을 감독시키는 비법이다. ‘은밀하게 위대하게’ 고객의 욕망을 발견하고, 고객에게 이로움을 줄 수 있는 전략과 기술이 만들어지길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