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와 여자만큼이나 다른 물류와 MD 사이의 이야기
글. 양거봉 미팩토리 물류팀장 / 정리. 엄지용 기자
물류는 MD를 모르고, MD도 물류를 모른다. 여기에다 커뮤니케이션 부재가 겹친다. 재앙이다. 그 구체적인 사례가 여기에 있다.
언젠가 회의 자리에서 A스타트업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다. 내용인즉슨, A스타트업이 투자금을 유치해 사업을 확장하고 연예인을 이용해 마케팅을 시도했는데도 불구하고 결국 사업에 실패하여 1년 치 매출에 맞먹는 재고가 창고에서 썩어가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 말을 처음 꺼낸 사람은 물론 이때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마케팅의 실패’에 주목했다. 하지만 필자는 의구심이 생겼다. 1년 치의 재고라니. 어떻게 이렇게 많은 재고가 쌓을 수 있는지 필자로서는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이후 A스타트업에서 일하는 지인과 식사할 일이 있었다. “정말 재고가 그렇게 많아요?” 회의에서 언급된 이야기에 대해 은근슬쩍 물었다. 지인은 잠시 생각하고 씩 웃더니 “아마 그 이상으로 많을 것”이라 대답했다. 이에 필자는 “물류팀은 그 재고에 대해 뭐라 하더냐?”고 되물었다. 그때 지인의 입에서 나온 대답이 압권이었다. “몰라, 걔네 말로는 다 팔 거래.”
이어 지인은 엑셀파일로 된 ‘폐기 리스트’를 보여줬다. 스크롤을 아무리 내려도 끝이 없었다. 지인은 수억 원의 광고비를 투입했음에도 불구하고, 유통기한 내에 절반의 재고도 팔지 못할 것이라는 예측이 돌고 있다고 했다. 지금도 월 폐기 재고가 수백만 원 어치에 달하는데, 이것을 다 팔겠다니,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이야기라는 것이다.
재고(在庫)를 재고(再考)할 때
대개 이커머스 스타트업의 발주 및 수요 예측은 MD가 담당한다. 필자의 경험에 따르면 MD는 초도발주 후 소량을 출시한다. 이 초도발주 수량은 ‘체험단 증정’과 ‘집중 광고’로 대부분 소진된다. 이 이후부터 예약판매에 들어가며, 2차 발주량까지는 별 문제 없이 판매가 된다. 하지만 이 다음부터가 문제다. 자신감이 충만해진 MD는 3차 발주에 들어간다. 하지만 이때는 보통 광고에 의한 매출증대 효과가 하락하고, 구매 타깃들이 재구매주기에 진입하며, 상품판매 후기 진입에 따라 소비자 기대심리가 하락하게 되는 시기다. 요컨대 이런 다양한 요인 때문에 판매량은 감소세로 돌아서게 된다.
이 문제는 물류팀에 바로 영향을 끼친다. 이때부터 물류팀은 재고와의 지난한 싸움을 시작한다. MD가 높은 판매량을 기준으로 발주를 넣었을 가능성이 높다. MD가 제조 리드타임까지 감안하여 발주를 했다면, 최고점 기준으로 5개월 치 이상의 재고가 쌓이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쌓인 재고가 언제라도 다 팔리면 그나마 다행이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최고점 기준 5개월의 재고는 이후 1년 치 판매액과 맞먹는 수준이기에, 대부분 업체납품이 불가능한 상황에 이르게 된다.
물류팀으로서는 갑갑한 노릇이다. MD의 발주에 관여하고 싶은 바람이 생긴다. 그러나 실제 광고와 할인에 따른 물동량 변동 요인이 매우 큰 상황에서 이를 예측하고, 심지어 MD에게 조언하는 것은 결코 쉽지가 않다. 결국 많은 기업이 이렇게 실패하는 줄 알면서도, 서로 아무 말 못한 채, ‘한 번 지켜보자’고 하고 마는 것이다. 이런 문제는 전혀 해결할 방법이 없는 문제인 것일까? MD가 어떤 문제를 야기했을 때, 물류팀만의 관점에서 문제를 해석하고 그걸 토대로 MD를 돕는다면 이 문제에 충분히 대응할 수 있지 않을까?
당연한 소리지만 재고는 회사의 비용이다. 재고 비용을 절감하면 전사적으로 더 많은 것을 시도할 여지가 생긴다. 따라서 필자는 ‘재고’에 대한 업계의 인식이 변화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MD와 물류팀이 함께 생산업체와 협의하고, 발주수량에 따른 리드타임과 단가를 고려하여 재고관리 계획(최소 리드타임 시 제품 당 단가 + 예약 판매 시 기회비용 < 재고관리비용)을 세워야 한다. 이와 더불어 마케팅과 광고비 대비 판매액 자료를 지속적으로 함께 공유하며 재고수량 변동폭을 예측한다면, 1년 매출액이 고스란히 재고로 남는 불상사는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물류가 통(通)하기 위하여
지금까지 물류와 MD 간의 커뮤니케이션 부재에 관해 이야기해보았다. 누군가는 전혀 이해하지 못할 수도, 다른 누군가는 필자와 같은 환경에 있어 필자의 이야기에 공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거듭 말하지만, 현장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MD의 책임으로 돌릴 생각은 없다. 물류팀 역시 MD의 업무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피차일반이기 때문이다. 필자가 물류에 갖고 있는 애정과 자부심만큼이나 MD 역시 제품에 큰 애정과 자부심을 갖고 있다는 사실도 잘 안다.
오히려 앞서 언급한 문제가 발생한 회사가 물류팀을 보유하고 있다면, 필자는 그 물류팀을 책망할 것이다. 앞서 언급한 문제는 물류 관점에서는 쉽게 보이는 것이며, 도움과 협업을 통해 개선 및 해결이 가능한 부분들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문제가 발생했다면 그것은 물류팀이 부서의 책임과 역할에 선을 긋고, 그 밖으로는 나가려 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결국 물류팀 역시 문제가 발생할 것을 알면서도 방관했다는 혐의를 피할 수 없다.
물류에 종사하는 사람으로서, 필자 역시 반성한다. MD에게 따뜻하게 말을 건네지 못했고, 항상 조금은 거칠고 투박한 말투로 업무에 관한 대화만 했다. 하지만 항상 고마운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만큼은 밝히고 싶다. 물류팀이 물류 업무를 계속할 수 있는 것, 그리고 그것을 통해 꿈을 이뤄나갈 수 있는 것은 광고와 판매 부분에서 헌신한 동료들이 ‘물류가 필요한 상황’을 만들어주었기 때문이다.
‘다름’은 ‘틀림’을 의미하지 않는다. 남자와 여자의 관계는 서로 다른 행성에서 온 것만큼 다르다.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라는 책도 있지 않았나. 제품에 대한 물류와 MD의 생각 역시 서로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러나 남자와 여자가 서로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서로를 궁금해 하는 것처럼, 물류팀과 MD가 보는 ‘박스와 파렛트’, ‘재고’를 보는 시각은 항상 다르다는 사실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해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그것에 담긴 의미에 대해 서로 먼저 이야기할 용기도 필요할 것이다. 아마 물류팀의 이런 이야기를 가장 귀 기울여, 재밌게 들어줄 사람들이 있다면 그것은 지금 우리 옆에 있는 MD들이 아닐까. 물류, 통(通)해야 산다.
배달의민족과 미팩토리, 두 곳의 이커머스 스타트업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물류업무를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마케팅과 MD 등 다양한 부서와 물류팀 간 커뮤니케이션 문제를 겪고, 또 해결해나가면서 모든 사람들이 쉽게 이해하고, 참여할 수 있는 물류를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