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IGHT

[김도현의 스타트업명강] 정말 사업계획서가 중요한 것일까

한 방 얻어맞은 다음엔

by 김도현

2017년 02월 15일

- 수십년간 창업교육의 핵심이었던 '사업계획서' 작성

- '사업계획서 찬성파'와 '린스타트업 지지파'의 논쟁, 해답은?

Idea in Brief

린스타트업 방식의 교육이 빠르게 늘어나면서 창업교육현장은 ‘사업계획서 작성 찬성파’와 ‘린스타트업 지지파’로 양분되어 있는 분위기다. 이런 가운데 스타트업 관련 학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학술지인 Strategic Entrepreneurship Journal 2016년 12월호에 사업계획서를 작성을 옹호하는 관점의 논문이 하나 실렸다. 그러나 해당 논문에는 한계가 하나 있다. 사업계획서를 어느 수준으로 쓰고 얼마나 자주 고치는 것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숙제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문제의 핵심은 여기에 있다.

 

마이크 타이슨이라는 권투선수가 있습니다. 그를 진정한 권투선수라기보다는 ‘핵이빨’이라는 불명예스러운 별칭을 남긴 사건의 주인공으로 기억하는 이가 더 많으실 겁니다.

 

하지만, 그가 남긴 기가 막힌 한마디가 있습니다. “누구에게나 계획은 있다. 링에 올라가서 턱에 한 방 얻어맞을 때까지는”이라는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링에 올라가는 그 순간, 상대에게 정신없이 얻어맞고 바닥에 길게 누울 계획을 세우는 선수는 없을 것입니다. 사실 우리의 삶도, 사업도 계획대로 잘되지는 않지요.

 

수십년 동안 창업교육의 핵심은 사업계획서를 작성하는 것이었습니다. 시장과 산업을 분석하고, 매출과 비용을 추정하여 수익성을 가늠해본 다음, 앞으로 어떤 일정과 방식으로 사업을 추진할 것인가 꼼꼼히 계획을 세워보는 것은 대단히 가치 있는 일입니다.

 

그런데 사실 스타트업들이 사업계획서를 쓰는 데에는 아주 큰 어려움이 있습니다. 우선 분석을 위한 데이터가 크게 부족합니다. 전에 없던 사업을 하고자 하면, 관련된 시장자료는 당연히 세상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잠재적으로 누가 경쟁자가 될지 모르니 경쟁분석을 하는 것도 어렵습니다. 그래서 사업계획서를 쓰기 위해서는 매우 많은 가정이 필요해지고, 이들 가정이 조금만 틀어지면 계획서의 내용이 다 무의미해지기도 합니다.

 

그래서 학자들은 사업계획서를 생각의 ‘과정’으로 여겨야 하며 생각의 ‘결과’로는 믿지 말라고 경고합니다. 사업계획서를 쓰는 과정을 통해 자신이 어떤 사업에 뛰어들고 있는 것인지 깊이 생각해보고, 어떤 위험요인이 있는지 인식하게 된다는데 그 의의가 있다는 것이지요.

 

그렇지만 이런 멋진 경고는 잘 먹혀들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깔끔하게 작성된 사업계획서에 뭔가 중요한 ‘결과물’을 담아야, 혹은 담겨있어야 한다고 믿는 이들이 아직 많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업계획서를 깔끔하게 만드는데 지나친 에너지가 소모되는 경우가 많고, 또 불확실한 가정으로 가득 찰 수밖에 없는 사업계획서를 들추면서 명확한 수익성분석 자료를 찾으려고 하는 의사결정자들도 적지 않습니다. 특히 아직도 순현재가치(NPV)나 내부수익률(IRR)과 같은 산업화시대의 의사결정기준으로 신규사업 추진여부를 판단하는 관습을 가지고 있는 대기업내에서는 비록 아무도 믿지 않겠지만 엄청나게 복잡한 재무예측을 담고 있는 사업계획서가 작성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최근에는 사업계획서 작성 자체가 득보다 실이 많으며, 따라서 창업교육과정에서 사업계획서를 제외하고, 기업들 역시 사업계획서를 잘 작성하려는 태도를 버려야 한다고 주장하는 학자들이 등장하였습니다. 전통적인 제품개발과정이 린스타트업(혹은 애자일) 방식으로 변화하였으므로, 사업계획서를 쓰게 하기보다는 린스타트업 과정을 실제로 경험하게 하는 것이 더욱 적절하다는 논리입니다.

 

이런 주장의 배경에는 최근 10여년 사이 이루어진 최신 연구들이 있습니다. 창업자들은 고도의 즉흥성을 가지고 있고, 미리 전체를 계획하기 보다는 우선 한발 앞으로 디딘 다음 그 다음 대안을 선택한다는 내용을 담은 논문들이 많습니다.

 

린스타트업 방식(린론치패드(Lean Lauchpad)라는 표현을 사용하기도 합니다)의 교육이 빠르게 늘어나면서 현재 창업교육현장은 사업계획서 작성 찬성파와 린스타트업 지지파로 양분되어 있는 분위기입니다.

 

이런 가운데 스타트업 관련 학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학술지인 Strategic Entrepreneurship Journal 2016년 12월호에는 흥미로운 논문이 하나 실렸습니다. 문서형태의 사업계획서를 쓰는 창업자와 그렇지 않은 창업자 가운데 어느 쪽이 더 성과가 높은지 분석한 것입니다.

 

1088명의 창업자들을 추적 조사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 이 연구의 결과는, 사업계획서 옹호론자들의 편입니다. 이 연구는 사업계획서를 쓰는 사람들의 학력이 높아 성과가 높아지는 효과를 통계적인 방법으로 제거했고, 대상자 규모도 적지는 않기 때문에 사업계획서 쓰는 것을 강조하는 학자들에게는 간만의 기쁜 소식입니다.

 

하지만 이 연구는 한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아예 안 쓰는 것보다는 쓰는 게 낫다고 할 수는 있지만, 사업계획서를 어느 수준으로 쓰고 얼마나 자주 고치는 것이 좋은지는 아직 모르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문제의 핵심은 여기 있을 것입니다. 사업계획서를 심각하게 딱 한번만 쓰는 것이 좋은 일인지, 아니면 가벼운 사업계획서를 작성한 다음 환경과 상황의 변화에 따라 자주 수정하는 것이 옳은지 말입니다. 저는 물론 후자가 옳다고 믿습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처음 세웠던 계획대로 일들이 잘 진행되고 있습니까? 아니면 제대로 된 일은 하나도 없어서 그냥 잊고 지내시나요? 계획과 달리 링 위에 올라가서 한방 크게 얻어맞은 타이슨은, 그래도 또 새 계획을 세웠을 것이라 저는 생각합니다. 그러다 또 얻어맞으면, 또 다른 새 계획을 구상하고요.

 

어찌 보면 사실 그게 우리의 사는 방식인지도 모릅니다. 이리저리 비틀거리면서도 이 악물고 조금씩 조금씩 앞으로 가는 방식 말입니다.



김도현

창업과 전략을 공부한 인연으로 스타트업이 바꾸어가는 세상을 관찰합니다. <국민대 창업지원단장, 한국벤처창업학회 명예회장 역임>




다음 읽을거리
추천 기사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