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째 뜬다는 물류산업, 현실은 아직도 좌천의 대명사
물류산업 인식개선, 업계 내부 인식 전환이 선행돼야...
글. 권정욱 콜맨코리아 SCM팀장
Idea in Brief
창고관리자, 창고작업자는 일정 수준 이상의 업무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업무에 필요한 지식과 기술을 습득해야 하며, 현장에서 일정기간 근무하며 실무를 경험해야 하는 전문 영역이다. 창고 장비들의 사용법을 익히고, 창고 시스템인 WMS 사용법을 익히는 데만 해도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그러나 우리들은 스스로가 창고를 ‘좌천의 대명사’ 혹은 ‘한직’이라 평가하고 있지 않았나 생각해 본다. 물류업계의 고도화를 위해서는 결국 물류업계 종사자 스스로가 전문가로 위상을 높이며 우리들의 직업을 ‘전문 영역’으로 만들어 나가야 한다. |
필자는 과거 신입사원 시절 외부 물류, SCM 교육을 참 많이 다녔었다. 그 때마다 강사들이 강의 첫머리마다 하던 이야기가 있었다.
“예전에는 물류부서로 발령이 나면 한직으로 좌천됐다거나, 곧 권고사직을 당할 것이라 생각했던 사람들이 많았어요. 그런데 요즘은 회사 내부적으로도 인식이 많이 바뀌었습니다. 물류와 SCM 부서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지요. 때문에 여러분 또한 앞으로 열심히 하면 분명 좋은 기회가 올 수 있습니다!”
왜 물류부서 발령이 좌천의 대명사가 됐을까는 잠시 차치해두겠다. 안타까운 것은 신입사원부터 지금까지 계속해서 물류, SCM분야를 담당했던 필자의 경험상 수많은 강사들이 이야기했던 ‘좋은 기회’는 아직도 오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물류가 뜬다는 이야기는 지금도 미래형이지 진행형이나 완료형이 아니다. 그렇다고 신입사원이 아닌 매니저 위치로 올라온 필자의 상황에서 사과나무에서 사과가 떨어지기를 마냥 기다릴 수 없는 노릇이다.
어떻게 하면 물류산업에 좋은 기회를 불러올 수 있을까 수도 없이 고민했다. 결국 방법은 필자가 연재를 통해 이야기했던 ‘물류와 SCM의 대중화’이며 또 다른 하나는 이번 기고부터 이야기할 ‘물류와 SCM의 고급화 및 전문화’라고 생각한다.
도서관과 창고의 공통점
이야기의 첫 시작으로 도서관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왜 물류 이야기하다가 뜬금없이 도서관이냐 물을 수 있겠지만, 도서관과 물류의 시작격인 창고는 생각보다 공통점이 많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도서관을 좋아한다. 책 읽는 것도 좋지만, 도서관에 들어섰을 때의 조용한 분위기와 책 냄새가 정말 좋다. 그리고 직업 때문인지 몰라도 물류창고도 참 좋아한다. 창고에 들어섰을 때 들리는 현장에서 작업하는 소리와 랙을 채우고 있는 화물이 정말 좋다. 도서관과 물류창고라는 두 장소가 공통적으로 주는 느낌은 ‘정돈된 가지런함’이라 볼 수 있겠다.
그렇다면 도서관 관리자는 어떨까. 한국직업사전에 따르면 ‘사서(Librarian)’는 도서관 및 자료실에서 도서 및 자료를 관리하고 이용자가 원하는 자료를 대출 및 수납하는 업무를 하는 사람이며, 1~2년 정도의 숙련 기간이 필요하다고 정의하고 있다. 박물관과 미술관에서 사서와 유사한 역할을 하는 ‘큐레이터(Curator; 학예사)’는 ‘박물관 및 미술관에서 소장품에 대한 관리, 전시기획, 학술연구 등의 업무를 수행하며, 4~10년 정도의 숙련기간이 필요한 직업’이라 정의된다.
다음으로 창고 작업자 혹은 창고 관리자의 정의를 살펴보자. 우선 창고 작업자는 ‘창고 관리자의 지시를 받아 자재, 공구, 설비, 생산제품 및 기타 물품의 입고, 보관, 불출 등의 업무를 수행하며, 1~3개월 정도의 숙련기간이 필요한 직종’이라 정의된다. 창고 관리자는 ‘자재, 공구, 설비, 생산제품 및 기타 물품의 입고, 보관, 불출, 기록 등의 창고 관리 업무를 하며, 1~2년의 숙련 기간이 필요한 직종’이라 기록돼 있다.
물론 직업사전의 정의로만 3가지 직무를 비교 판단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큐레이터(학예사)는 차치하더라도 ‘사서’와 ‘창고 관리자’는 ‘자신들이 다루는 물건을 일련의 규칙에 따라서 찾기 쉽게 보관하고, 물건의 손상을 방지하는 방향으로 관리하며, 필요시 물건을 찾아서 꺼내준다’는 개념에서 ‘다루는 물건의 종류’에만 차이가 있지, 업무상 큰 차이가 없다. 즉 창고와 도서관은 ‘정돈된 가지런함’이라는 장소에서 오는 공통점 이외에 사서와 창고 관리자의 업무가 유사하다는 공통점이 있다.
도서관에는 있고, 창고에는 없는 것
업무가 유사하고, 공통점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사서(liabrarian)나 큐레이터(curator)에는 있으나, 창고 작업자 혹은 관리자에게는 없는 것이 있다. 바로 자격증이다. 학예사와 사서는 일정한 자격을 갖춘 자에 한하여, 자격증을 부여하고, 일정기간 그 분야에 근무해야 해당 자격증을 승급해주는 절차를 밟고 있다.
반면 창고 근무자나 관리자에게는 별다른 자격증이 존재하지 않는다.(물론 보세창고 등 특수 환경에서 근무하는 창고 근무자는 ‘보세사’라는 자격증을 보유한다.) 필자가 별다른 자격증이 없어도 근무가 가능한 창고 관리 업무에 자격증을 도입하여 진입장벽을 높이자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창고현장 업무 혹은 관리 업무 역시 사서나 큐레이터처럼 전문 영역임에 불구하고 창고 관리자 그들 스스로를 낮게 평가하고, 일 자체를 쉽게 생각하고 있지 않나 생각해보고 싶은 것이다. 우리 스스로 ‘긍지’를 갖고 있지 않나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이에 더해 한국직업사전에서 정의하는 것처럼, 창고 작업자가 1~3개월의 숙련 기간만 거쳐서 창고에서 사용하는 수많은 장비를 다룰 수 있도록 익히고, WMS 같은 IT 시스템을 사용할 수 있을까? 절대 아니다. 창고에서 사용하는 장비나 WMS 같은 IT 시스템의 주 사용자인 창고 작업자가 아닌 창고 관리자라고 하더라도, 관리자가 되기 위한 필요한 숙련기간 1~2년은 창고의 장비나 IT 시스템에 익숙한 사용자가 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다.
이렇듯 창고 작업자든 관리자든 일정 수준의 업무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업무에 필요한 지식과 기술을 습득해야 하며, 현장에서 일정기간 근무하며 실무를 경험해야 하는 전문 영역이다. 그래서 필자는 물류, SCM 종사자들이라도 창고 작업자(Warehouse operator), 혹은 창고 관리자(Warehouse manager)라는 칭호보다는 ‘창고 운영 전문가(Warerarian 혹은 Warerator)’로 호칭하며, 우리 스스로 전문가로 위상을 높이며 우리들의 직업을 ‘전문 영역’으로 만들어 가자는 제안을 하고 싶다.
물론 한국은 조직문화 특성상 업무별로 한직과 요직이 나뉜다. 회사 내부적으로도 직무상 위계가 존재하며, 명문화되지는 않았지만 우리들 인식 아래 자리 잡고 있는 직업상 위계 또한 존재한다. 때문에 이를 무시하고 업무를 진행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물류·SCM 부서 담당자 스스로가 우리의 가치를 부정하고, 평가 절하한다면 어느 누가 우리 직군을 인정할 것이며 높이 평가하겠는가. 물류·SCM 부서의 중요성을 부각시키고, 좋은 기회를 만드는 방법 중에 하나인 고급화 및 전문화는 우리 업무의 고향인 창고, 그리고 그 창고를 운영하는 우리들 스스로가 ‘창고 운영 전문가’의 마음을 갖는데서 시작한다고 감히 제안하고 싶다.
식품, 타이어, 자동차, 반도체, 주류회사 등에서 다양한 물류를 경험한 현장 전문가. 현재는 콜맨코리아에서 SCM팀장직을 맡으며 ‘다품종소량’ 물류 업무를 주로 수행하고 있다. ‘물류가 세상을 바꾼다’는 신념을 갖고 언젠가는 CLO가 CEO가 되는 시대가 오길 바라며 보다 나은 SCM(Better SCM forward)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