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IGHT

[천동암의 물류에세이] 물류부장 오달수 중국에 가다⑨ 아웃소싱의 함정

by 천동암

2016년 10월 23일

물류부장 오달수 중국에 가다⑨
아웃소싱을 했는데 비용이 늘어난 이유
 
 
글. 천동암 박사
 
오 부장이 하루 일과를 끝내고 숙소로 돌아가는 도중 핸드폰 전화 진동이 요란하게 울리기 시작했다. 오 부장은 잠깐 망설이다가 전화를 받았다. 대학 동기인 김우람이었다. 지난번 대학 동창모임에서 명문대에 입학한 아들 자랑을 의기양양하게 떠벌려서 부럽기도 했지만 내심 별로 자랑할 것이 없는 오 부장의 아들과 비교되어 씁쓸했었다.
 
“오 부장, 해외에 있는 것 같은데 한국에 오면 통화 할까?”
 
김우람은 해외에 있는 오 부장에게 국제전화를 하는 것이 미안했는지 전화를 끊으려고 했다.
 
“아니야! 괜찮아, 지금 중국 공장에서 프로젝트하고 있어, 무슨 일 있어?”
 
오 부장은 이 친구에게 무엇인가 좋지 않은 소식이 있는 것 같아서 조심스럽게 되물었다.
 
“너도 알다시피 내가 부장 9년차라 권고사직 압박이 너무 심해서 이번에 회사 때려치우고........, 무엇인가 해 보려고 하는데 무슨 일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막막하고 해서, 상의 좀 하려구!”
 
강직한 성격을 소유한 친구인데 말끝이 흐려지고 수화기 너머에 절박한 마음이 느껴졌다. 이른 저녁 시간인데 벌서 술기운이 감도는 목소리였다.
 
“어, 이런! 그런 일이 있었구나! 서글픈 현실이구나, 근데 너 큰 아들이 미국 콜롬비아대학에 이번에 입학하지 않았냐?”
 
우람 친구는 지난 동창 모임 때의 생기발랄한 모습은 어느새 사라지고 풀이 죽어 있었다.
 
S사 부장 출신의 김우람 친구는 모범생이었다. 1987년 민주화 항쟁 당시, 반정부 시위가 있는 날에도 도서관에서 책과 씨름만 했다. 그런 노력 끝에 여러 회사중 고르고 골라서 굴지의 대기업인 S사에 입사했고, 정말 열심히 일했다. 회사에 대한 자부심 역시 대단했다. 친구들을 만나면 늘 회사 자랑하기 바빴다. 연봉도 많았다. 친구들은 그런 우람이를 부러워하기도 하고 시샘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회사의 선제적인 구조조정의 일환으로 부장직을 끝으로 회사를 그만둬야 했다. 회사를 위해 죽어라 일했건만, 돌아온 건 권고사직이었던 것이다. 그는 심한 배신감을 느끼고 있었다.
 
“시벌, 큰 놈 미국대학에 들어가는 돈이 1년에 큰 걸로 1장이야! 그 놈이 미국 명문대 들어갔는데 애비가 돈 없다고 자퇴할 수도 없고 며칠 동안 잠을 설치고 그리고 억울하고 분해서 자다가 벌떡벌떡 일어나고........, 달수야 땀도 배신하더라! 세상 모든 일이 열심히 노력한 만큼 다 잘되는 것은 아니더라고. 그것을 지금 알았으니 내가 바보 멍청이지. 천지가 감동할 정도로 열심히 일하고 모시던 임원과 사장 뒤치다꺼리도 하면서 정말 코에 단내 나도록 했는데 돌아오는 것 권고사직이야!”
 
오 부장은 국제전화로 오랜 동안 그 친구와 통화 할 수가 없어서 한국에 돌아가면 만나는 것으로 하고 전화를 끊었다.
 
오 부장은 ‘땀도 배신하더라’는 친구의 말이 계속 귀전에 맴돌았다. 그의 말은 ‘노력의 분노’였다. 그의 땀방울이 눈물방울이 되어 그의 가슴을 헤집어 놓고 윙윙 울리고 있었다.
 
‘나도 언젠가는 저렇게 되겠지!’
 
오 부장은 마음이 스산해지고 무엇이라고 표현할 수 없는 허전함이 쓰나미처럼 몰려왔다.
 
친구 얘기를 듣고 우울해서 호텔 방안에서 혼자서 맥주를 들이키고 있는데 갑자기 핸드폰 전화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성 전무 전화였다.
 
“오 부장, 너 물류 아웃소싱 하는데 비용 절감이 전혀 안되고 있다고 거기 공장의 김태윤 부장이 보고하던데 어떻게 된 것이야? 너 제대로 일하고 있는 거야! 내용 자세히 조사해서 보고 해.”
 
“예, 전무님. 내용 알아보고 정리해서 바로 보고 드리겠습니다.”
 
성 전무는 언제나 그랬듯이 필요한 말만 하고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었다.
 
‘김 태윤 생산팀장이 왜 그런 보고서를 나와 협의를 하지 않고 본사에 보고했지!’
 
오 부장은 중국공장 관리자들이 자기들의 잘못을 희석시키기 위해 물타기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 중국 공장 인력들은 물류TF에서 하는 일들에 대해서 탐탁하게 생각하지 않은 것이 분명했다.
 
이튿날 아침 오 부장은 김필립 차장을 불렀다.
 
“김 차장, 물류 아웃소싱 실행한 것이 불과 2달 정도인데 성과가 바로 나오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웃소싱 시행 전과 후를 중간 점검해볼 필요는 있습니다. 어제 성 전무가 전화를 했는데 여기 생산팀장인 김 팀장이 비용이 오히려 늘었다 보고했다고 합니다.”
 
“오 부장님, 성과 측정을 위해서는 어떤 부문을 비교해야 할까요? 제 의견은 시행 전후 각각 CBM당 물류비 증감을 분석해야 하고, 두 번째로는 인력 변동을 비교하는 것이 필요해 보입니다.”
 
김 차장은 차분한 어조로 말했다.
 
“김 차장, 좋은 의견이야. 그리고 자가 소유의 트럭과 지게차도 K물류업체에게 매각하기로 했는데 이것도 확인해 보도록 하고, 현재 흩어져 있는 외부 창고도 큰 창고로 통합하기로 했는데 아직 시행이 안 되고 있잖아. 이것도 신속히 진행하도록 하자고.”
 
오 부장은 마음이 조급했다. 160명이나 되는 자사 인력을 K업체가 무리 없이 인수하고 우선 물류 운영상 안정화를 꾀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판단하고 있었다. 그러나 벌써 본사와 공장에서는 비용 절감의 가시화를 요구하고 있는 현실이 안타까웠다. 아웃소싱을 시행한지가 겨우 2달 정도인데.......,
 
김 필립 차장이 공장물류 창고 아웃소싱의 전후를 비교하여 조사했다.
 
▲ 김필립 차장이 보고한 아웃소싱 전후 물류비 변동내역
 
“오 부장님, 여기 표에 보시는 바와 같이 최초 계획했던 물류비 감축은 진행 중입니다. 인력은 이관 완료되었습니다. 그러나 물류업체가 단가 절감은 최초 2개월 동안은 시행하지 않고 4월부터 단가 절감을 순차적으로 10%, 5월에 15%, 6월에 20% 적용 예정이라 실제적인 비용 절감은 5월 결산에 반영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김 차장은 세부적인 데이터를 근거로 제시했다.
 
“김 차장, 이해했고. 근데 4월 창고 비용은 왜 소폭 증가되었지?”
 
“4월 창고비용은 물류 아웃소싱 인건비는 전월 동등 수준이지만 재고증가로 창고수를 더 늘리고 보관면적이 늘어나서 비용이 늘어난 것입니다. 아시다시피 창고비용은 고정비입니다.”
 
오 부장은 김태윤 생산팀장이 왜 아웃소싱을 하면서 비용이 증가되었다고 보고를 했는지 그 내용을 이해 할 수 없었다.
 
“김 차장, 혹시 인력을 K사에 이관할 때 공장에서는 퇴직 직원들에게 위로금을 주지 않나요? 그 비용을 계상하면 회사에서는 비용절감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으로 볼 수 있는데, 이 비용은 별도 항목으로 계상해야 하는 것이 맞는 것 같은데, 김 팀장이 보고했던 보고서를 입수해서 비교해 보도록 합시다.”
 
오 부장은 의혹이 풀리지 않은 듯 고개를 갸우뚱거리면서 말했다.
 
이윽고 김 차장이 인력변동 현황과 퇴직인력의 위로금 내용을 정리해서 오 부장에게 보여주었다.
 
▲ 김필립 차장이 정리한 인력변동 현황
 
“부장님 말씀대로 김 팀장은 퇴직 위로금 약 3백만 RMB(약 5억 원)을 비용을 따로 구분 하지 않고 물류비용으로 계상을 했기 때문에 초기에는 당연히 비용절감이 이루어지지 않고 대폭적인 비용증가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공장물류 아웃소싱으로 비용만 증가하고 나아지는 것이 없다고 얘기할 수는 있겠군. 15년 물류비 절감액으로 위로금 비용을 상계하면 비용 절감은 거의 없는 것이고 16년에는 비용 절감이 이루어지는 것이군. 당초 물류 아웃소싱 절감 금액을 산정할 때는 위로금 비용을 계산하지 않았기 때문에 고려하지 못했던 것이 물류TF의 불찰이군.”
 
오 부장은 허탈한 심정으로 김 차장의 뿔테 안경을 바라보면서 얘기를 했다.
 
“김 차장, 물류 KPI 비교는 했나?”
 
“당초 물류 KPI은 6개 항목이었고 KPI는 당초 목표로 제시했던 수치를 전부 달성했습니다. 특히 당사가 직접했을 때 발생했던 제품의 파손은 하나도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이 부문을 성 전무와 여기 공장에게 강하게 어필하면 될 것 같습니다.”
 
김 차장은 안도의 미소를 보이면서 분석된 내용을 설명하고 있었다.
 
오 부장은 공장에서는 자신들의 허물은 감추고 상대방의 오류는 강하게 부각시켜서 자신들의 이득을 극대화하려는 조직의 생리에 신물이 났다.
 
 


천동암

시와 소설을 쓰는 물류인 천동암 박사는 한국코카콜라와, 삼성전자, 한화큐셀에서 근무했던 물류 전문가입니다. 2010년 계간 한국작가에 등단(시)하여 시집으로 <오른다리>, <천가박가> 소설은 <아버지의 유산>, <물류 부장 오달수의 하루-일본편>을 출간 했다. 경영학 박사학위와 국제자격증인 CPL, CPIM 및 CPSM을 보유하고 있으며 전문서적으로는 국제물류론, 창고하역론을 집필했다. 물류와 문학을 융합시켜 4차 산업혁명 속에서도 인간이 창의적으로 할 수 있는 영역을 개척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현재는 경동대학교(경기도 양주 캠퍼스)에서 물류와 SCM 및 물류정보시스템을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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