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엄지용 기자
빠른 배송을 무기로 탄생한 국내 퀵서비스에는 ‘급송’이라는 부가 서비스가 존재한다. 빨라서 이용하는 퀵서비스에 ‘급송’이 생긴 이유는 무엇일까.
퀵서비스는 ‘직송방식(Point to Point)’을 기반으로 한 서비스다. 어찌 보면 집하 과정을 거쳐 리드타임이 길어지는 허브앤스포크의 틈새를 공략한 서비스가 ‘퀵서비스’라 할 수도 있겠다. 퀵서비스는 택배에 비해 높은 물류비를 받는 대신 1시간 내외의 빠른 배송 서비스를 제공해준다.
직송방식을 개선하라, 허브앤스포크 탄생 일화
한 대학생이 비즈니스 모델을 제출하라는 과제를 받았다. 그는 허브에 화물을 모았다가 다시 전국적으로 배송하는 방식의 비즈니스 모델을 제출했다. 지도교수는 학생이 제출한 리포트에 현실적으로 실현할 가능성이 없다며 C학점 이상은 줄 수 없다고 평했다. 학생은 훗날 그 리포트를 바탕으로 회사를 설립했다. 프레드릭 스미스(Frederick. W. Smith) 페덱스 회장의 일화다.
한 대학생의 C학점짜리 아이디어로 시작한 ‘허브앤스포크(Hub & Spoke)’는 현대 물류 전략의 정설로 자리 잡혔다. ‘당일집하’와 ‘익일배송’으로 대변되는 국내 택배 시스템은 허브앤스포크를 사용하고 있는 대표적인 사례다. 전국의 화물들은 중앙 물류센터에 모여 ‘규모’를 만들고 이는 다시 지역별로 분류되어 순회 배송된다. 허브앤스포크 방식은 직배송 방식에 비해 ‘속도’는 느리지만, 택배차량의 총 이동거리를 줄이고 1회 배송 물량을 늘려서 비용효율을 만들어냈다. 서울에 있는 쇼핑몰에 주문한 상품이 인천에 있는 우리 집으로 바로 출발하지 않고 애꿎은 군포에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오는 이유다. |
그런데 실제 한국에서 퀵서비스를 주문하고자 하면 이상한 서비스가 눈에 띈다. 바로 ‘급송’ 서비스다. 태생이 빠른 서비스인 퀵서비스에 급송이 웬 말일까. 한 퀵서비스 제공업체의 온라인 페이지는 ‘급송’ 서비스를 ‘퀵라이더가 고객의 물건을 받고 바로 목적지로 이동하는 서비스’라 설명하고 있다. 이상하다. 그렇다면 ‘일반 퀵서비스’는 내 화물이 바로 고객에게 전달되지 않는다는 말일까.
▲ 한 퀵서비스 업체가 제공하는 요금표. ‘프리미엄 오토바이 운송’으로 급송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퀵’이 아니게 된 ‘퀵서비스’
퀵서비스에 ‘급송’이 등장한 이유는 퀵라이더의 업태를 보면 알 수 있다. 많은 퀵라이더들은 특정 퀵서비스 업체에 전속되지 않은 채 화물건당 수임을 받는다. 때문에 기왕 이동하는 것이라면 같은 방향에 있는 여러 주문들을 잡고, 3~4개의 화물을 혼재해서 이동하는 것이 이득이다. 같은 시간, 비용을 투자하여 높은 매출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이 되기 때문이다.
때문에 퀵서비스의 속도는 느려졌다. 퀵서비스 업체 또한 퀵라이더의 이런 행태에 고민하고 여러 제약들을 만들기는 했지만, 현실적으로 개인 사업자처럼 움직이는 퀵라이더들을 퀵서비스 업체가 완벽하게 통제하기는 어렵다. 이런 현실을 인정하고 나타난 서비스가 ‘급송’이다. 퀵라이더들에게 “이 고객은 정말 급한 운송이 필요한 고객이니 웃돈을 받고, 추가화물 업어가지 말고 빨리 배송해 달라”고 말해주는 개념인 것이다.
재밌는 점은 급송 역시 급송이 아닌 경우가 많다는 사실이다. 퀵라이더들이 급송 주문을 받았음에 불구하고, 같은 방향에 좋은 주문이 나오면 역시 업어서 가는 경우가 존재하는 것이다. 이는 ‘급송’ 역시 퀵라이더의 직업윤리를 믿는 방법에 불과하며 실질적으로 업체에 속하지 않는 퀵라이더들을 통제할 수 있는 방안이 되지 않음을 의미한다. 결국 지금의 퀵서비스는 ‘퀵’임에도 불구하고 ‘퀵’이 아니게 된 이상한 상황에 봉착했다.
서울 서초구에서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는 한 퀵서비스 업체 대표는 “퀵라이더들이 빠른 주문을 수행하도록 만든 서비스가 급송이지만 실제 그것을 지키는 퀵라이더들은 그렇게 많지 않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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