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박의 생이 끝나갈 때...
함께 무너지는 노동자의 삶
그들은 왜 죽어가고 있는가
글. 한세혁 한국항공대학교 물류학과 4년
* 해당 수기는 필자가 홍콩폴리텍대학교 교환학생 과정중 수강한 ‘International Trade and Shipping’ 강의 내용을 바탕으로 작성됐습니다.
영원한 것은 없다. 화려하게 대양을 누리던 선박 또한 평균 25년의 수명이 다하면 생을 마감한다. 하지만 그들의 마지막은 그리 화려하지 않다. 서남아시아에 위치한 인도,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전 세계 선박의 80%가 이곳에서 최후를 맞이한다. 해체를 기다리는 선박으로 가득 찬 해안선은 삶과 죽음의 경계선에 가깝다.
▲ 인도 알랑(Alang) 해체 야드
불행하게도, 해체되고 있는 것은 선박뿐이 아니다. 그곳에선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을까? 선박은 철저한 통제 속에서 거대한 골리앗 크레인과 첨단기술로 건조되었다. 하지만 해체는 정반대이다. 낡은 쇠줄과 윈치(Winch) 그리고 가스절단기가 장비의 전부이다. 노동자들은 아무런 보호 장비 없이 작업을 하며 뿌연 유독가스를 마신다. 고된 노동의 흔적은 온몸에 지문처럼 남아있다. 용접 불꽃이 눈에 튀어 시력을 잃거나, 고철에 깔려 다치는 일은 더 이상 놀라운 일이 아니다. 매년 이 곳에서는 수십 명의 노동자가 죽어간다. 하지만 고된 노동의 대가는 10달러가 되지 않는다. 선박해체 기술은 이러한 열악한 환경 속에서 생명을 담보로 축척되었다. 무엇이 문제일까.
선박해체업의 태동
선박해체(Ship Breaking). 수명이 다한 선박에서 철 스크랩(흔히 말하는 고철) 등의 광물을 채집하기 위해 선박을 해체하는 것이다. 선박재활용(Ship Recycling)이라고도 불린다. 역사적으로 통나무배부터 현재의 강선(Steel ship)에 이르기까지 선박은 철저한 재활용의 대상이었다. 목선의 목재는 건물의 기둥이 되었고, 강선의 철은 가공 후 산업의 쌀로 다시 태어났다. 중량을 기준으로, 선박의 95%가 재활용된다는 사실은 선박해체업의 경제적 가치를 가늠하기에 충분하다. 20세기 중반까지 선박해체업은 산업화가 일찍 시작된 영국과 미국의 몫이었다. 실제로 2차 세계대전 이후 많은 군함과 화물선이 양국에서 해체되었고 양질의 철이 재활용될 수 있었다.
▲ 영국 Hartlepool 해체 야드
하지만 1970년대 세계 조선업의 중심이 서양에서 동양으로 옮겨오면서, 선박해체업도 같이 이동했다. 저임금과 느슨한 환경규제를 찾아서. 선박해체업은 중국, 대만, 일본 등 아시아 국가에서 새로운 먹거리가 되었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었다. 당시 선박해체업이 신 성장산업으로 부상하였고, 1983년에는 1백만 톤의 선박을 해체했었다. 이 때 대만은 세계 선박해체업 시장에서 절반 이상의 점유율로 주변국의 부러움을 사기도 했다.
선박해체 신흥국의 부상
차라리 다행이라고 보는 것이 맞을까. 1986년 대만에서는 탱커선 해체 작업 도중 큰 폭발사고가 일어났다. 이로 인해 수십 명이 목숨을 잃고 다치게 되었다. 이를 계기로 선박해체업은 국민적 비난과 반대에 부딪혔고, 대만 정부 또한 선박해체업에 강도 높은 규제를 시작했다. 무엇보다 1980년대 동아시아는 고도의 경제성장을 이루게 되었다. 이는 인건비 상승으로 이어졌고 노동집약적인 선박해체업의 채산성을 떨어뜨리는 결과를 낳았다. 결국 한국을 포함한 대부분의 국가에서 선박해체업은 사양산업이 되었다. 하지만 비슷한 시기, 인도의 서쪽에 위치한 알랑(Alang)은 4만 명이 일하는 선박해체의 중심이 된다. 방글라데시와 파키스탄이 그 뒤를 이었다.
그렇다면 무엇이 이들 삼국을 선박해체 중심국으로 남게 만든 것일까. 인도의 알랑(Alang), 방글라데시의 치타공(Chittagong), 파키스탄의 가다니(Gadani)는 지금 이 순간에도 선박해체가 이루어지는 대표적인 해체 야드이다. 이들의 지리적 특성과 선박해체 방식을 이해하면, 그 이유는 어렵지 않다. 세 지역의 지리적 공통점으로는 길게 펼쳐진 해안선, 큰 조수간만의 차, 해안선을 따라 끝없이 펼쳐진 해변과 갯벌을 들 수 있다. 이러한 특성은 선박해체에 가장 많이 쓰이는 방식인 좌주(Beaching)에 적합하다.
좌주는 만조에 선박을 육지와 가까운 해안가에 정박시키고, 간조에 해변과 갯벌에서 해체작업을 하는 것이다. 해변 한 가운데 덩그러니 놓여있는 폐선박 그리고 조각난 고철을 쇠줄로 감아 해변에서 육지로 끌고 가는 노동자를 상상하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이 방식은 해변가 임대료를 제외한 특별한 인프라 투자나 장비가 필요하지 않기 때문에 초기비용이 적어 경제적이다. 하지만 문제는 해체과정에서 선체에 남아 있는 폐유뿐만 아니라 환경적으로 유해한 중금속, 석면, 오존파괴물질이 다음 조수에 자연스럽게 바다로 흘러간다는 것이다. 해양생태계를 고려할 때, 과연 경제적인 방식이라 할 수 있을까. 자연은 인간에게 천혜의 선박해체작업장과 일자리를 주었지만, 결과적으로 스스로를 해치게 되었다.
▲ 방글라데시 치타공(Chittagong)
그렇다면 환경 규제가 엄격한 선진국의 경우는 어떻게 선박을 해체할까? 대표적으로 영국에서는 건선거(Dry dock) 방식을 활용한다. 출입 가능한 별도의 작업장(Dock)에서 선박을 해체를 하는 것이다. 폐선이 작업장에 들어오면 해수를 빼고, 밀폐된 공간에서 해체를 시작한다. 작업이 끝나면 유해물질을 제거하여 유해물질이 바다로 나가는 것을 사전에 방지한다. 모든 작업이 작업장 안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해양오염이 없다. 하지만 드라이독(Dry dock)을 설치하고 관리하는 데 막대한 비용이 들기 때문에 앞서 언급된 인도, 방글라데시, 파키스탄과 같은 국가에서는 거의 쓰이지 않는다.
▲ 건선거 방식 선박 해체작업(Dry dock Ship Recycling)
그들이 선박해체의 중심국이 된 이유
지리적 특성은 세 국가를 선박해체의 중심국으로 성장할 수 있는 환경적 조건을 제공하였다. 하지만 선박해체업은 분명히 자국 노동자의 생명과 환경을 담보로 하는 위험한 사업이다. 그럼에도 현재 계속 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한 선박을 해체하는 데는 수십 명의 노동자가 투입된다. 그만큼 고용효과가 크다. 방글라데시는 적게는 5만 명에서 많게는 10만 명의 노동자가 선박해체업에 종사한다. 또한 선박해체의 결과 다량의 철을 확보할 수 있다. 방글라데시는 선박해체를 통해 나오는 철 스크랩이 철강산업에 필요한 원료의 60%를 공급한다. 참고로 철 스크랩은 철광석, 원료탄과 함께 3대 제철원료이다. 철 스크랩이 충분히 확보되지 않으면, 철강가격이 상승하여 제조업 그리고 국가 경제 전체가 피해를 입을 수 있다.
▲ 인도 알랑(Alang)
2010년 방글라데시 정부는 환경단체의 압박으로 폐선박 수입을 제한하였다. 그 결과는 수만 명의 실직자와 철강재 가격 폭등. 이듬해 정부는 수입 금지 조치를 철회하였다. 일자리가 없는 가난한 나라, 철강 공급을 선박해체에 의존하는 나라에서 선박해체업은 피할 수 없는 숙명이었다. 하지만 이마저도 현재 치열한 경쟁에 있다. 2015년 7월, 파키스탄 정부는 선박해체업 활성화를 위해 폐선박 수입 부가세를 대폭 인하하였다. 양질의 철강을 다량 확보하기 위해서이다. 과연 국익을 위한 올바른 정책이라 할 수 있을까.
국제사회의 노력, 그 한계
그렇다면 지금까지 국제사회는 어떠한 노력을 했을까. 1990년 후반에 이르러 국제해운회의소(ICS), 국제노동기구(ILO) 등 다수의 국제기관에서 선박해체로 인한 인명사고와 환경오염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기 시작했다. 이에 국제해사기구(IMO)는 1998년부터 해양환경보호위원회(MEPC)에서 선박해체 작업에 필요한 사항에 대한 논의를 시작으로 2009년 5월 홍콩에서 ‘선박재활용협약’(The Hong Kong Convention for the Safe and Environmentally Sound Recycling of Ships)을 채택하였다. 이로써 지난 10여 년간 국제회의를 통해서 협의되었던, 선박재활용에 관한 사항들이 강제력을 지닌 협약으로 채택되었다. 이는 선박이 건조되는 순간부터 해체되는 순간까지 유해물질을 철저하게 관리하는 것으로, 선주와 선박재활용 시설업자에게 유해물질관리 의무를 부여했다.
그러나 이 협약은 수많은 환경, 인권단체의 비난을 받았다. 작업환경 개선과 환경오염 방지를 위한 실질적인 지침이 아닌, 선박의 ‘유해물관리’에 초점을 맞추었기 때문이다. 또한 ‘선주’에 대한 애매한 정의는 실제 선주에게 면책 가능성을 항상 열어두었다. 국제해사기구(IMO)의 팔이 선주들에게 굽었던 것일까. 선박을 둘러싼 이해관계자들(선주, 조선업, 선급협회 등)에게 명확한 의무가 부여되지 않았다. 결국 선박재활용을 둘러싼 모든 책임은 선박해체국에게 전가되기에 충분했다. 그래서일까. 선박재활용협약은 2009년 채택 당시 2013년 발효를 예상했지만, 현재까지 발효되지 않았다.
선박재활용협약과 함께 90년대 ‘바젤협약’(Basel Convention)에서도 선박재활용 규제를 위한 노력이 있었다. 1992년 발효된 바젤협약은 유해폐기물의 국가 간 이동 및 처리에 관한 국제 협약이다. 즉, 유혜폐기물의 수출입에 대해서 엄격하게 관리 및 규제하는 것이다. 이를 선박재활용에 적용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인 전제조건이 필요하다. ‘선박 is 유해폐기물’ 하지만 바젤협약에서 ‘선박은 may be 유해폐기물’일 뿐이다.
바젤협약은 이 외에도 선박의 ‘수출국’은 누구인지, ‘국가 간 이동’에 대한 정의 문제에 부딪혀 정확한 결론을 내지 못했다. 이러한 가운데 선박재활용 협약이 채택되었고, 아직까지 선박재활용과 관련한 안전 및 환경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어떤 체제를 적용해야 하는 지에 대한 협약국 간의 혼란이 있다. 물론 바젤협약의 실무단에 의해 선박해체의 친환경적 관리를 위한 지침서가 작성되었다. 하지만 지침은 지침일 뿐 전 세계적으로 표준화되거나 강제성이 없다. 사실상 규제는 자국 정부와 관련 기관의 몫이 된 지 오래다.
다행스럽게도 국제사회와 환경단체의 관심으로 작지만 개선은 이루어지고 있다. 파키스탄은 수입 시 유독물질 함유 여부를 검사하고 있으며, 특정 기준치를 초과할 경우 해당 선박의 수입을 금지하고 있다. 또한 방글라데시의 경우 선박해체 지역에 병원과 소방대가 설립되었고, 현장감독에게 안전 교육을 하는 등 작지만 개선의 노력이 있었다. 하지만 지난 7년간 방글라데시에서 90명 이상이 해체작업 도중 사망하였다는 사실을 바라보자면 근본적인 변화는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노동자를 죽이는 것은 누구인가
가장 큰 문제는 선박을 둘러싼 이해관계자들의 방관적 태도, 그리고 대중의 무관심이다. 관심을 가지지 않으면 알지 못하고, 알지 못하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국내 조선업과 해운업의 위기로 해운물류산업에 대한 국민의 관심이 어느 때보다 높다. 하지만 수명이 다한 선박이 어디로 가는 지, 그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 지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은 없다. 생명과 환경을 담보로 하는 선박해체업은 반드시 해결해야 할 해운물류산업의 어두운 그림자이다.
녹색물류(Green Logistics)는 매년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주제이다. 물류 활동에 있어서 에너지 사용 및 탄소 배출을 최소화하자는 것이다. 선박해체업의 실태를 보면, 녹색물류의 인식 범위를 좀 더 확대해야 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녹색은 자연을 상징한다. 궁극적으로 인간은 자연의 일부이다. 거대한 물류산업 속에서 소외된 노동자의 삶과 환경에 관심을 가지는 것도 녹색물류 실천의 출발점이 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