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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벌어 하루 사는 화물기사, 왜 돈은 하루에 받지 못할까?

by 임예리 기자

2016년 08월 01일

후지급 운송계약 일반화, 차주 임금지급 지연의 원인

저단가와 칼질은 화물운송시장에도

플랫폼발 변화의 바람부나

▲ 오버워치 맵 “Payload”의 화물차, ‘자동운전’으로 목적지까지 화물을 운반한다(사진= 블리자드)

 

최근 블리자드에서 발매한 ‘오버워치’라는 게임이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이제껏 FPS(First Person Shooting: 1인칭 슈팅) 게임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던 저에게도 조작법이 생각보다 어렵지 않게 느껴져서 재미있게 즐겼습니다. 물론 상대편에게 수많은 킬을 당했지만요.


오버워치의 맵 중에 ‘화물 운송(Payload)’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게임의 룰은 간단합니다. 공격팀이 움직이는 화물을 주어진 시간 내에 지정된 목적지까지 도착하게 하면 이깁니다. 하지만 막상 게임에 참여하게 되면 상황이 그리 간단하지 않습니다. 공격팀이 화물 가까이에 있으면 화물은 저절로 움직이고, 수비팀이 가까이 있으면 움직이지 않기 때문에 결국 화물 주위를 점거하는 팀이 이기게 되고, 이를 위해선 팀원들의 손발이 잘 맞아야 합니다.


현실 세계의 화물 운송도 마찬가지입니다. 생각보다 복잡합니다. “그냥 화물차로 도착지까지 물건을 옮겨주고, 돈 받으면 끝 아니야?”라고 물을 수도 있겠습니다. 기본 프로세스는 맞습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문제들은 전혀 간단하지 않습니다.

 

화물차 기사가 돈을 받기까지

 

먼저 화물 운송 계약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물건을 가진 화주 기업이 운송 차량을 보유하고 있다면 그것을 이용해 화물을 운송하면 됩니다. 참 쉽지요. 그러나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차주는 보통 개인사업자이고, 화물 운송은 건 단위로 계약이 이뤄집니다. 화주가 직접 차주나 운송업자와 계약을 맺을 수도 있지만, 자주 화물을 운송해야 하는 화주라면 이것을 관리하는 데 상당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이 때 ‘운송주선업자’가 등장하는데요. 운송주선업자는 말 그대로 화물 운송을 주선해주는 역할을 합니다. 일종의 ‘아웃소싱’이지요. 화주를 대신해 운송 차량과 계약을 맺고, 운송과 상하차 과정에서 발생하는 일들을 관리하고, 운송 계산서를 정산하고, 차주에게 운송료를 지급하는 일을 합니다.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문제점들이 있습니다. 첫 번째가 ‘운송료 지급 지연’입니다. 사람들이 게임을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는 노력에 대한 보상을 바로바로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경험치든, 아이템이든, 랭킹 상승이든 노력한 만큼의 결과가 눈앞에 바로 주어집니다. 하지만, 현재 화물 운송시장에선 차주가 운송을 완료해도 돈을 바로 받지 못하는 경우가 빈번합니다.


물론 운송주선자의 계약에 따라 차주가 운송회사에 속해 있어서 월급을 받거나, 선지급으로 운송료를 받거나, 목적지에 도착한 뒤 바로 운송료를 받는다면 문제가 될 리 없습니다.(계약마다 천차만별인 수수료 문제가 있기는 하지만요.) 하지만 운송 계약이 후지급 조건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운송 계약이 후지급인 경우 등장하는 것이 바로 ‘인수증’입니다.

 

인수증이란, 말 그대로 인수자가 화물을 인수했다는 증표입니다. 차주가 제대로 운송을 완료했다는 증거이지요. 인수증이 별도의 양식이 있는 것이 아니므로 업체마다 다르지만, 보통 거래명세표, 확인증, 계산서, 화물명세서 등이 인수증이 됩니다.


인수증은 상차지에서 화물이 상차된 뒤 발행이 되고, 하차지에서 화물을 하차한 뒤 인수증에 인수자의 서명을 받음으로써 완성됩니다. 차주는 서명을 받은 인수증과 운송 주선자 앞으로 발행한 세금계산서를 보통 우편으로 운송주선업체에 보냅니다. 운송주선업체는 처음 계약 내용과 인수증을 대조한 뒤 차주에게 운송료를 지급합니다.


운송주선업체가 인수증을 받자마자 바로 차주에게 입금하면 이것 역시 문제 될 것이 없습니다. 하지만, 실제 화물운송업계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운송료 후불 정산은 보통 빠르면 일주일, 늦으면 두 달까지의 시간이 걸린다고 합니다. 후불 지급 역시 업체마다 보름 정산, 30일 정산, 50일 정산 등 가지각색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업계 관행이라는 의견도 있고, 영세한 곳이 대부분인 운송주선업체의 자금 흐름 때문이라는 의견도 있습니다. 작은 운송주선업체는 큰 자본이 없기 때문에 화주에게서 돈을 받은 뒤에 차주에게 운송료를 지급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지요. 화주 업체 역시 정산일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그 날짜에 맞춰 돈을 받은 뒤 차주에게 운송료를 지급하게 됩니다.


이런 연유로 차주는 일은 했지만, 돈은 바로 받지 못하는 상황에 놓이게 됩니다. 말 그대로 ‘외상 노동’을 한 셈이지요. 최악의 경우, 화주나 운송주선업자에게 끝까지 돈을 받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합니다. 예전에 비해서 이런 사건이 줄어들었다고는 합니다만, 처음에 계약했던 시기보다 늦게 돈을 받는 일은 여전히 적지 않습니다. 이로 인해 차주는 불안감과 피로감에 휩싸이게 됩니다.


법은 멀고, 칼질은 가깝다


여기에 더해 ‘저단가’ 문제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서울에 사는 A라는 차주가 서울에서 부산까지 화물 운송을 했다고 가정해 봅시다. 화주와의 계약이 서울에서 부산까지 가는 편도 운송이라면 A 차주는 다시 서울로 올라올 때 빈 차로 와야 합니다. 빈 차로 오면 차주 입장에서는 그만큼 손해겠지요. 그래서 ‘정보망’에 올라와 있는 주문 중 부산발 서울행 주문을 받고 복귀하고자 합니다.


여기서 또 잠깐. ‘정보망’이란 주문이 공유되는 ‘플랫폼’입니다. 화주나 운송주선업체가 정보망에 주문을 올리면, 운송기사들은 주문을 선점합니다. 화주나 운송주선업체들은 A차주와 같은 경우가 있는 것을 악용하거나 혹은 단가를 맞추기 위해 임의로 ‘칼질(가격 후려치기)’을 한 저단가의 주문을 정보망에 올리게 됩니다. 결국, 차주는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저단가 오더를 수행하게 되고, 당연히 그 주문을 수행하는 누군가가 있기 때문에 저단가 오더는 다시 나타나게 되는 악순환이 반복됩니다.

 


저단가 오더 출현의 원인을 단순히 운송주선업체의 도덕적 해이로 돌리기는 어렵습니다.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경기침체입니다. 경기침체로 인해 물동량은 줄어들었지만, 화물 운송시장의 진입 장벽은 비교적 낮기 때문에, 차주의 유입은 오히려 늘었습니다. 전체적인 화물 운송 수요가 줄었고, 이를 선점하기 위한 가격 경쟁이 저단가 주문을 나타나게 했습니다.


이 외에도 가격의 무한 하락을 방어할 지배 사업자가 없는 운송 시장 구조, 하나의 운송주선업체가 아닌 여러 개의 운송주선업체가 중간에 끼인 형태인 ‘다단계 알선’ 등이 저단가의 원인으로 제시되고 있습니다.


정부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시장진입제한제도, 직접운송의무제, 유류비 보조금 지원 등을 도입했습니다만, 여전히 저단가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있습니다. 화물연대는 2002년 첫 대규모 파업을 한 이래 저단가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책으로 택시처럼 운임을 표준화하자는 ‘표준운임제’ 도입을 주장하고 있지만, 아직 법제화는 되지 않았습니다.


화물운송시장에 혁신이 찾아온다면


10여 년 넘는 세월 동안 화물 운송 시장에서 이런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사이, 바깥세상은 변했습니다. 우버와 같은 공유경제 플랫폼과 물류스타트업이 화물 시장의 문제점을 혁신하고자 진입하게 된 것입니다.


새로운 시장 진입자들은 여러 가지 전략을 내세우고 있습니다. 운송주선업체 없이 플랫폼을 통해 화주와 차주를 바로 연결해주거나, 노후한 주문관리시스템(OMS), 운송관리시스템(TMS), 아직도 아날로그 위주인 회계/세무 부문을 자동화하는 등의 방식입니다. 최근에는 플랫폼이 화주나 운송주선업체를 대신해 먼저 차주에게 운송료를 지급하도록 해 차주의 생존권을 보장해주는 서비스가 출시를 앞두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들 중에는 한국의 법과 제도, 기존 화물시장 주체들의 반대에 부딪혀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쿠팡의 로켓배송 논란이 그러했지요. 일각에서는 기존 화물 운송시장의 기득권층이 소비자의 권리를 침해하고 있다는 주장을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자신이 일한 대가를 제 때 받지 못해 생활에 타격을 입고, 이런 이유로 다시 저단가의 운임을 받고 운송을 수행하는 기사들을 ‘기득권’이라고 하는 것은 어쩐지 이해가 잘 되지 않습니다.


다시 오버워치 이야기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화물 운송 맵에 등장하는 화물차는 저절로 움직입니다. 즉, 자동운전 차량이지요. 얼마 전, 메르세데스벤츠가 자동운전 버스를 이용해 20km 도로를 달리는 데 성공했고, 구글은 자동운전차의 주행 실험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변이 없는 한, 화물 운송에도 자동 운전기술이 쓰일 날이 올 것입니다. 그 때 인간의 화물운송시장 진입은 더 쉬워질까요, 어려워질까요?


거스를 수 없는 기술의 발전, 공유경제 플랫폼과 같은 새로운 사회 인프라의 출현, 노동시장의 변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미래의 화물 운송시장이 어떻게 변할지 누구도 장담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법과 제도가 시대의 흐름에 발맞추지 못하고, 변화하는 시대의 사회안전망 역할을 하기에 부족하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습니다. 더 많은 변화로 인한 더 큰 혼란이 오기 전, 부조리한 구조의 근본적인 개선이 필요한 때입니다.
 



임예리 기자

三人行,必有我师。 페이쓰북 / 이메일: yeri@cloma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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