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IGHT

[설창민의 공급망뒤집기] 공급망이 바꾼 디즈니 공주들의 운명...

by 설창민

2016년 05월 27일

트랜스포머를 만들던 ´해즈브로´가 디즈니 공주를 생산하게 된 이유

"디즈니 공주들과 엘사는 왜 마텔을 배신했는가?"

 
글. 설창민 SCM 칼럼니스트

 

Idea in Brief

 

디즈니가 지난 2000년 공식 론칭한 ‘디즈니 프린세스’는 론칭후 3년 동안 10억 달러를 벌어들이면서 캐릭터 연관 산업의 무한한 가능성을 증명했다. 디즈니는 공장을 가지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디즈니 프린세스와 관련된 상품을 모두 아웃소싱했다. 디즈니 프린세스의 생산을 맡은 업체는 바비인형으로 유명한 ‘마텔(Mattel)’이다. 그러나 마텔과의 계약 만료를 2년 남긴 지난 2014년 9월, 디즈니는 디즈니 프린세스와 겨울왕국 캐릭터 인형의 생산을 일괄 ‘해즈브로(Hasbro)’에게 넘긴다고 발표했다. 해즈브로는 스타워즈, 트랜스포머, 어벤져스 등 주로 남자아이들이 좋아하는 캐릭터 장난감을 생산하던 회사였다. 이상한 일이다. 어떻게 트랜스포머를 만들던 해즈브로가 디즈니 공주를 생상하게 됐을까. 이 모든 것의 비밀은 ‘공급망’에 숨어있다.

 

 

 

 

영화를 고르기 어려울 때 디즈니 애니메이션은 가장 무난한 선택이 된다. 2013년 말 겨울왕국 열풍을 우리는 아직도 기억한다. 그리고 올해는 주토피아가 잔잔한 감동을 불러일으키며 흥행에 성공했다. 디즈니에서 지금까지 나온 애니메이션 중 주인공이 공주인 애니메이션을 떠올려 보자. 우선 고전인 백설공주, 신데렐라(왕자와 결혼했으니 공주 맞다), 오로라공주(흔히들 잠자는 숲속의 공주라 부른다)가 있다. 1980년대 이후 에리얼(인어공주), 벨(왕자와 결혼했으니 공주 맞다), 자스민, 포카혼타스(추장의 딸이니까 공주 맞다), 뮬란(국가의 영웅이 되었으니 공주 클래스 맞다), 티아나(공주와 개구리), 라푼젤(원래부터 공주 맞다), 메리다(원래 공주 맞다) 등 11명이 있다.

▲ 참고로 겨울왕국의 엘사는 공주가 아니다. 왕이다. (사진= 유투브 채널 Princess Frozen)

 

그런데 이들이 원래부터 이렇게 11공주로 우루루 몰려다닌 건 아니다. 디즈니는 애니메이션을 마케팅했지 등장인물들을 마케팅하지는 않았다. 그러던 중 2000년 디즈니의 새 CEO로 임명된 앤디 무니(Andy Mooney)가 디즈니 아이스 쇼를 참관했다. 앤디 무니는 여기에서 머리부터 발끝까지 디즈니 등장인물 차림새를 그대로 흉내낸 아이들을 보게 된다. 요즘이야 등장인물의 옷과 장신구, 구두를 흔하게 살 수 있지만, 그 때만해도 디즈니가 그것을 만들어 팔지는 않았다. 아이들이 입은 옷과 악세사리는 모두 엄마들이 손수 만들어 준 것이었다. 앤디 무니는 무릎을 쳤다.

 

디즈니는 2000년 그때까지 개봉된 애니메이션의 공주 8명을 앞세워 ‘디즈니 프린세스’를 공식 론칭했다. 디즈니 내부에서도 등장인물들을 한 곳에 모아 놓으면 신비감이 떨어진다면서 말들이 많았다. 그러던 디즈니 프린세스는 론칭 후 3년 동안 10억 달러를 벌어들이면서 캐릭터 연관 산업의 무한한 가능성을 입증한다. 그 무한한 가능성은 2013년 개봉한 ´겨울왕국´에서 절정을 이룬다. 겨울왕국 캐릭터 상품은 2014년 미국 여자아이들이 가장 갖고 싶은 장난감 수위에 올랐고, 그 해 5억 달러의 매출을 올렸다.

 

디즈니는 공장을 가지고 있지 않다. 디즈니 프린세스와 겨울왕국 관련 상품은 모두 외주 제작이다. 특히 가장 많은 사랑을 받는 인형은 1996년부터 20년 계약으로 디즈니 등장인물 인형을 만들어 팔아 온 마텔(Mattel)사가 단독으로 납품해 왔다. 마텔. 그렇다. 바로 바비(Barbie)인형과 아기들 장난감 피셔프라이스(Fisher Price)로 유명한 그 회사다. 이 회사에게 디즈니 캐릭터들은 아주 특별한 의미가 있다. 마텔의 자사 브랜드인 ‘바비 인형’은 2012년부터 2014까지 매출이 20% 하락한 반면, 디즈니 캐릭터 인형 판매는 반대로 꾸준한 성장을 지속했기 때문이다.

 

마텔과의 계약 만료를 2년 남긴 2014년 9월, 디즈니는 마텔과 재계약을 하지 않고 디즈니 프린세스와 겨울왕국 캐릭터 인형 생산을 일괄 ‘해즈브로’에 넘긴다고 발표했다. 미국 완구업계는 경악했다. 한 광고 전문지는 시카고 컵스가 미국 프로야구 월드 시리즈에서 우승한 것만큼 충격적인 사건이라는 기사를 실었다.(시카고 컵스는 지난 110년 동안 한 번도 우승한 적이 없다) 발표 당일 마텔의 주가는 하락했고, 해즈브로의 주가는 반등했다.

 

해즈브로는 스타워즈, 트랜스포머, 어벤져스 등 주로 남자아이들이 좋아하는 캐릭터 장난감에 강한 회사였다. 회사 규모도 마텔보다 작았고, 공주 인형을 만들어본 경험도 없었다. 게다가 해즈브로는 한때 경영이 어려워서 마텔에서 52억 달러라는 엄청난 금액을 걸고 인수를 타진한 적도 있는 회사였다. 모든 면에서 마텔보다 부족해 보였던 회사가 어떻게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손에 넣었을까.

 

필자는 지난 기고들을 통해 제조기술의 차별성 저하와 혁신기업의 등장으로 제조업체들은 이들 혁신기업의 주문을 받아 OEM 생산을 해서 수익성을 높이는 경향이 뚜렷해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해즈브로의 디즈니 캐릭터 완구 생산자 지정은 그러한 경향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다. 필자는 특히 제조업체들이 혁신기업의 선택을 받기 위해서는 SCM 역량을 키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해즈브로가 마텔을 상대로 이긴 일련의 과정을 들여다보면 역시나 마텔의 SCM 역량이 해즈브로보다 확연하게 떨어져 있었고, 해즈브로는 시대의 흐름을 정확히 읽어서 그 흐름을 제품 설계에 철저히 반영하는 등 마텔보다 나은 공급망 관리 전략을 구사했음을 알 수 있다. 실제 공급망 관리 포털 사이트인 서플라이체인 다이제스트(Supply Chain Digest)의 자료에 따르면 2014년 해즈브로의 재고회전율은 6으로 마텔의 5.4보다 높았다. 도대체 마텔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우선, 마텔은 디즈니 프린세스 제품 믹스와 재고 관리 측면에서 매우 안일한 태도를 보였다. 디즈니 프린세스는 분명 11명인데, 디즈니 공식매장에 진열된 인형은 보통 백설공주, 신데렐라, 벨, 인어공주 정도였다. 뉴욕타임즈 스퀘어의 토이저러스 매장의 경우 2015년 크리스마스 시즌 시작 직전 티아나 인형 재고가 단 한 개 뿐이었다고 한다. 한마디로 마텔은 팔릴만한 인형만 만든 것이었다.

실제 필자도 프랑스 파리 샹젤리제에 있는 디즈니 공식매장을 방문한 적이 있었는데, 정말 백설공주와 벨, 인어공주 정도가 눈에 띄었고, 자스민 공주나 포카혼타스는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당시 백설공주, 신데렐라, 오로라, 인어공주, 벨 이렇게 다섯 명을 묶은 세트를 판매했는데 이것마저도 단 한개 뿐이었다. 그러나 시대는 변하고 있었다. 미국의 여자아이들은 과거 남자의 선택을 기다리던 고전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공주들을 넘어 이제는 90년대 이후에 등장한 공주들의 자립심, 의지, 능력 등(뮬란, 포카혼타스 등)을 더 본받고 싶어 했다. 그러나 마텔의 대응은 미온적이었다.

다음으로, 인형 자체의 디자인에 문제가 있었다. 따지고 보면 마텔의 디즈니 프린세스 인형 생산은 원가 측면에서는 상당히 효율적이었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디즈니 프린세스 인형의 옷과 구두는 바비인형과 완전히 호환되었다. 얼굴은 바비인형과 달랐지만 몸은 바비인형과 거의 동일했다. 심지어 피부 색깔도 동일했다. 한마디로 바비 몸체에 디즈니 프린세스 얼굴만 가져다 붙인 것이었다. 때문에 인형들 사이의 특징이 뚜렷하지 않았다. 하지만 디즈니는 캐릭터 하나를 만들 때마다 피부색과 머리결, 머리카락의 색깔까지 심혈을 기울여 만든다. 그런데 디지니의 공식인형은 그것을 반영하지 못한 것이다.

▲ 현재 아마존닷컴에서 판매되고 있는 마텔사의 디즈니 프린세스 (사진= 아마존닷컴)

즉, 마텔은 자신들의 눈앞에 있는 이익에 눈이 멀어 본래 고객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완전히 잊어버린 셈이었고, 그렇게 된 데에는 자신들보다 공주 인형을 더 잘 만드는 회사는 없다는 자만심이 작용하지 않았을까 한다. 실제 2014년 해즈브로에 디즈니 프린세스와 겨울왕국을 빼앗긴 후 마텔의 경영진 중 한 사람은 디즈니 캐릭터 인형 판매를 너무나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고 밝혔다.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니 혁신이 없을 수밖에 없었다.

결정적으로, 마텔의 주력사업인 바비인형 매출이 하락하고 있었다. 침체를 겪던 ‘레고’가 닌자고를 주인공으로 한 애니메이션을 제작, 방송함과 동시에 ‘레고 닌자고 시리즈’를 출시해서 침체를 극복했고, 역시 경영난을 겪던 해즈브로가 이미 낡을 대로 낡은 자사 브랜드 ‘트랜스포머’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해서 영화로 재탄생시키고, 영화에 등장한 것과 똑같은 형태의 변신로봇 완구를 시장에 출시함으로써 부활의 신호탄을 쏘아 올린 상태였다. 이미 시대는 단순히 완구를 소비하는 시대가 아니라 애니메이션을 시각과 청각으로 받아들여서 캐릭터들과 자신을 동일시하고, 이후에 그 캐릭터와 똑같이 생긴 완구를 구매하는 수순을 따르고 있었다.

 

▲ 해즈브로가 생산, 유통한 트랜스포머 범블비 로봇 장난감

그러나 마텔의 경영진들은 애니메이션에 관심이 없었고, 바비인형 매출이 떨어지자 오히려 디즈니 프린세스 인형을 생산하면서 또 다른 공주 캐릭터인 ‘에버 애프터 하이’를 시장에 내놓음으로써 디즈니에게 이제 디즈니 프린세스 인형 따위는 자신들의 관심사가 아니라는 메시지를 분명히 던진 꼴이 되었다. 더군다나 에버 애프터 하이 시리즈는 출시 첫해인 2014년 5300만 달러라는 형편없는 매출을 올렸다.

한편, 해즈브로는 마텔의 안일한 대응과는 반대로 매우 치밀하게 대응했다. 이미 디즈니의 ‘스타워즈’와 ‘마블’ 캐릭터 라이센스를 가지고 있던 해즈브로는 스타워즈 캐릭터를 좋아했던 아버지 세대가 이제 그 스타워즈 사랑을 자식들에게 물려주고 있다는 것을 간파하고 그에 상응하는 완구를 제작해서 디즈니를 흡족하게 했다.

그리고 디즈니는 해즈브로에 새로운 제안을 했다. 디즈니 프린세스와 겨울왕국 캐릭터를 다 넘겨주면 어떻게 운영해 나갈 것인지를 물었다. 그러지 않아도 공주 캐릭터가 여자아이들에게 남자에 대한 의존, 남존여비 사상만을 심어주고, 돈만 비싸다는 비난에 넌덜머리가 난 디즈니는 디즈니 프린세스를 여자아이들을 위한 여자 히어로로 재탄생시키려 하고 있었다. 아까 언급한 마텔의 운영 방식으로는 도저히 달성 불가능한 과제였다.

이에 해즈브로는 디즈니 프린세스 11명 모두를 시장에 출시하기로 했다. 해즈브로 말을 빌리자면 디즈니를 기반으로 한 유비쿼터스(유비쿼터스는 ´어디에나 다 있다´는 뜻이다) 환경을 만들겠다는 것이었다. 11명 모두를 애니메이션에 등장했던 모습과 거의 흡사하게 다시 디자인해서 아이들이 디즈니 애니메이션과 캐릭터 인형을 동일시하도록 만들었다. 심지어 키나 피부색, 얼굴까지 다르게 제작했고, 마텔에서는 거의 신경도 안 쓰던 뮬란과 포카혼타스, 티아나 등 요즘 아이들이 본받을 만한 장점을 가진 캐릭터의 인형들을 시장에 내놓기로 했다. 이에 따라 해즈브로의 SKU가 늘어나고, 각 SKU가 서로 다른 사양을 갖는다는 것은 분명 공급망 관리를 어렵게 만드는 일이다. 그러나 해즈브로는 그것을 실천에 옮겼다.

▲ 해즈브로사가 출시한 디즈니 프린세스 11명의 인형 (사진= Elena´s Closet Toys)

해즈브로는 2016년 1월 1일부터 디즈니 프린세스와 겨울왕국 캐릭터 인형을 단독생산하고 있으며, 우리나라에도 4월 15일 공식 출시되었다. 마텔의 인형들은 재고로 처분되고 있는 중이며, 마텔의 경영진 2/3는 물갈이되었다. 인터넷을 찾아보면 알겠지만, 해즈브로에서 디자인한 인형들은 정말 실제 애니메이션과 거의 흡사하게 만들어져 있다. 매우 사실적이다.

이렇게 애써서 만든 만큼 1/4분기 해즈브로의 실적은 디즈니 프린세스와 겨울왕국이 견인했다. 거기에 더해 ‘스타워즈 깨어난 포스’ 영화 효과까지 겹쳐서 해즈브로의 주가는 연초 대비 30% 정도 오른 상태다. 이제 해즈브로가 마텔을 상대로 합병을 먼저 제안할 정도로 두 회사의 입장은 극명하게 바뀌었다. 그리고 그렇게 입장이 바뀐 데는 고객의 니즈를 제품 설계에 반영하고 그 결과를 다시 제품에 반영하며, 고객의 다양한 니즈를 골고루 충족시켜 주려는 의지가 있었던, 한마디로 공급망 관리에 경쟁사보다 조금 더 충실하게 대응했던 한 회사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설창민

군 복무 전 우연히 하게 된 창고 알바를 계기로 물류에 입문, 아직 초심을 안 버리고 물류하고 살고 있는 평범한 직장인. 글을 쓸 때가 가장 행복해서 개인 블로그(http://blog.naver.com/dcscully)를 운영하고 있고, 다양한 실무 경험으로 물류업계 종사자들의 삶과 애환을 독특한 시각과 필체로 써내려가는 것이 삶의 보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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