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IGHT

[이병휘의 포어캐스팅] 수요예측의 험난함, 알파고 일병 구하기

by 이병휘

2016년 05월 19일

글. 이병휘 켈로그 디맨드플래너
 

Idea in Brief

 

인공지능이 모든 인간의 영역을 대체할 것이라 예측되는 시대, 다행히도 아직까지 인공지능이 ‘수요예측’ 영역까지 침범했다는 이야기는 들리지 않는다. 인공지능이 수요예측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아웃풋을 위한 인풋이 필요한데 현재로써는 그 인풋에 대한 신뢰성과 적시성이 유의미한 수준으로 확보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몇몇 기업이 시도하고 있는 비정형 데이터 수집을 통한 시장 상황에 대한 실시간 업데이트가 가능해진다면 그간 수집이 어려웠던 수요예측의 인풋 공급을 해결해줄 수 있다. 현재까지는 수요예측 전문가라는 직업이 생존하고 있지만, 이것도 조만간이 되지는 않을까. 기계가 인간의 정성적 영역을 넘어오지 못하길 바라마지 않을 뿐이다.

 

세계 최고 기량의 바둑 기사인 이세돌 9단이 구글의 인공지능 알파고에게 패했다. 당초 5:0이냐 4:1이냐를 두고 고민하던 언론은 4:1로 패배한 이세돌 9단에게 마지막 남은 인간의 자존심이라며 태도를 바꿨다.
 
1997년 IBM의 슈퍼 컴퓨터 딥블루가 체스 세계챔피언 카스파로스를 꺾은 이래 2011년에는 퀴즈대회에서 컴퓨터가 사람을 이겼다. 물론 매우 불공평한 게임이기도 했다. 마치 DB를 검색할 수 있는 퀴즈대회와 다를 게 없었기 때문이다. 언론은 이세돌 9단의 첫 패배 이후, ‘인공지능이 대체할 직업 1위는 무엇인가’의 타이틀로 흥미유발성의 기사로 채워지기 시작했고, 이중 사라질 직업 1위로 영업사원을 공통적으로 꼽았다.
 
이에 대한 전문가의 의견에는 일정 부문 동의할 수 있다. 하지만 한때 영업을 담당하던 개인적 경험에 따르면 현실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 효율이 모든 영역의 의사결정에 최우선 가치로 결정되는 세상이라면 모를까, 컴퓨터가 단순한 정보교환 및 협상과정을 넘어 문맥과 행간을 읽어야 하는 세계를 지배하기는 어렵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런 관점에서 최고경영자가 컴퓨터로 대체되기 전까지는 단순 서비스직이나 응대를 제외한 나머지 직업들이 인공지능으로 대처되기에는 그 벽이 너무 크고 두텁지 않을까.
 
누군가는 증권가의 알고리즘 거래를 예로 들며 인공지능의 우수함을 설명할 수도 있다. 하지만 기존에도 데이터베이스를 기반으로 한 단타 매매를 선호하던 중소형 증권사가 인간 이상의 반응을 활용한 초단타 매매를 활용하고 있는 대형증권사와 경쟁하던 것을 생각하면 인공지능이라기보다는 빨라진 반응속도에 대한 부분에 대한 고려가 우선이 아닌가 싶다. 한명의 플로어 트레이더가 한건의 추세와 가격을 확인하고 반응하는 동안 알고리즘 프로그램은 수백, 수천종의 주식에 별도로 접근하여 매매까지 마무리 지을 수 있으니 말이다.
 
다행스럽게도 아직 수요예측 분야에 대한 ‘인공지능’ 진출은 아직 갈 길이 멀어 보인다. 인공지능이 대체할 직업리스트나 인공지능으로부터 안전한 직업 리스트에도 나타나지 않았다. 아직 몇 년은 더 밥벌이가 가능할 것 같지만 최근 개인적으로는 가장 필자의 직업을 위협하고 있어 보이는 한 기업을 소개하고자 한다.
 
보통 기업가치가 1조원을 넘어서는 기업을 유니콘이라고 한다. 이 리스트는 여러 가지 버전이 돌아다니지만 포춘지의 유니콘 리스트를 보면 낯선 이름의 기업이 4위에 이름을 올리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바로 팰런티어(Palantir)다. 팰런티어는 우버, 샤오미, 에어비앤비에 이어 약 25조의 기업 가치를 가진 스타트업으로 그 유명한 엘론 머스크가 속한 페이팔 마피아의 일원이다.
 
이 기업이 하는 일은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그 고객은 비교적 잘 알려져 있다. CIA, FBI, NSA 등 이름만 들어도 다 알만한 미국의 알파벳 3글자짜리 정보?수사기관들이다. 얼마 되지 않는 정보로 이 기업의 업무를 설명해보자면 주로 데이터의 축적과 가시성 확보(visualization)와 관련된 일을 하고 있다. 이 기업들은 공개된 기업의 회계?매출정보 등 정형?정량화된 데이터분만 아니라 소셜 네트워크에서 공개되는 비정형화된 데이터까지도 모두 수집하여 가시성을 확보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다만 그 판단에 대한 책임과 의사결정은 전문 분석가에게 돌아간다. 사실 이러한 방향성은 최근의 자동화?인공지능화 경향에서 가장 자주 보이는 부분이다.
 
이미 경향성을 중심으로 한 분석이나 데이터 수집 등을 주요 업무로 하는 RA(Research Analysist. 자료 조사원)는 모집 횟수 자체가 많이 줄었으며 증권가 애널리스트들도 예전처럼 증권가의 꽃이라고 보기에는 어렵다. 수요예측 업무로 한정지어 이야기 한다면, 아직 ‘인공지능’의 침공은 없지만 이미 10년도 전부터 수요예측은 통계적 모델로 접근을 시도하고 있었다.
 
과거 경향성을 기반으로 한 미래 수요의 예측. 사실 이 부분은 어느 정도 성과를 보이고 있다. 최신 버전의 엑셀에 구현된 예측(Forecasting) 함수만으로도 단기간의 미래에 대한 예측은 상당부분 성과를 보이고 있다. 거기에 더해 예측을 지점(주, 월)이 아닌 구간(분기, 반기, 연간)으로 확대한다면 거시적 시점에서의 접근은 상당한 적중률을 보인다. 구매자는 한정되어있으며 예측 가능한 또는 관찰 가능한 범위애서 성장 또는 감소하고 있으니까 말이다.
 
일반적인 카테고리로 한정되는 제품군에서의 전체 판매량은 구매 또는 소비층의 증가와 그 맥을 같이 한다. 판매량이나 판매금액 기준에서도 이 부분은 일정하다. 전체 소비층의 구매력 이나 소비량의 변화는 앞서 언급한대로 예측가능하거나 관찰 가능할 정도로 움직이니까 말이다.
 
예측 불가능한 부분은 그 제품군 안에서의 소비자의 구매 패턴 변화이다. 구매자 자체적으로도 다양한 영역에 영향을 받고 있지만, 동일 제품군 안에서의 경쟁은 구매자의 쇼핑 습관을 매번 다른 환경으로 만들어 놓는다. 제품의 가격은 매주 변동되며, 오프라인 유통업체의 행사 매대 또는 온라인 유통업체의 추천제품 배너 부분은 일주일 혹은 일일, 심한 경우 매시간 변경된다. 유통업체 간의 경쟁은 해당 제품군의 가격을 어느 순간 전체적으로 떨어뜨려 놓았다가 어느 순간 정상가로 환원된다. 이러한 계획들은 장기적인 안목을 가지고 사전 계획되기도 하지만 경쟁업체의 움직임에 맞추어 변화하고, 새로 만들어지고 또 폐기된다.
 
이런 과정들로 야기되는 나비효과들은 어느 순간 전혀 계획이 없던 제품을 메인 행사품목으로 만들어 행사 판매대에 진열하고, 주요 행사 품목으로 계획되어 있던 제품은 다른 제품의 등장으로 상대적으로 비싼 제품이 되어 구매자의 관심에서 벗어난다. 문제는 이러한 작업들에 대한 실시간 정보 수집이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이다. 이제는 다들 식상할 바둑을 예로 들자면 상대방이 돌을 내려놓기 위해 수를 옮기는 것까지는 봤지만 어디에 놓는지에 대해서는 예상치만 가지고 바둑을 두어야 하는 상황이다.
 
필자가 인공지능이 수요예측을 수행하기까지 앞으로 더 많은 시간이 더 소요될 거라고 예상하는 이유다. 아웃풋을 위한 인풋이 필요한데, 현재로써는 그 인풋에 대한 신뢰성과 적시성이 유의미한 수준으로 확보되지 않는다. 여기에서 위에 언급했던 팰런티어가 등장할 수 있다. 비정형 데이터 수집을 통한 시장 상황에 대한 실시간 업데이트는 아마도 수요예측에 대한 인풋 부분을 해결해 줄 수 있다. 인풋 부분이 해결된 수요예측은 이미 상당부분 자동화 내지는 통계적 접근을 통해 해결할 수 있다. 원인과 결과를 알고 있다면 그 원인과 결과를 그룹화(Grouping)해서 중간과정의 경향성을 강제적으로라도 도출해 낼 수 있다.
 
여기까지 써놓고 나니 수요예측이란 직업은 정말 몇 년 남지 않은 것 같아 보인다. 하지만 필자는 아직도 믿는 구석이 있다. 판매 예측치를 보고하러 들어갔을 때 CEO의 은근한 눈빛, 신제품 광고를 막 시작한 마케팅 담당자의 절박한 고개짓, 매출타깃 보다 높은 또는 낮은 예측치를 본 영업팀의 헛기침은 아직 인공지능으로 해석하기에는 무리가 있을 테니까 말이다. 적어도 아직 몇 년은 남아있지 않을까.
 
* 해당 기사는 CLO 통권 70호(2016년 4월호)에 수록된 기사 일부를 발췌했습니다.


이병휘

이병휘 SCM칼럼리스트는 생활용품, 전자제품, 식품, 화장품을 다루는 여러 제조·유통업체를 거치면서 SCM, 수요예측을 담당해왔다. 주요 관심사는 SCM프로세스와 정보 가시성(Information Visibility)이며, 최근에는 ‘인공지능’과 ‘블록체인’에 눈을 돌려 물류산업에서 활용을 고민하고 있다. 거창한 주제가 오고갔지만 결국 페북에 중독된 평범한 월급쟁이다. (byunghwi@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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